2010년 2월호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마음 다스리기 대가 3인

  • 안기석│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daum@donga.com│

    입력2010-02-01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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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도갑 원불교 교무는 부친과의 불화 때문에 출가했다가 재회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행복가족캠프’를 열었다. 마가스님은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후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밥퍼 목사’로 유명한 최일도 다일공동체 대표는 국내외에서 활발한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혼신을 다해 개발한 프로그램을 체험해보고 그 배경을 들어보았다.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일도·김연수 목사 부부, 마가스님, 권도갑·양경희 교무 부부.

    한국은 1위 국가다. 자살률과 보행자 교통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 주당 노동시간, 국민 1인당 술 소비량, 간암 사망률, 청소년 유해사이트 접속률과 흡연율, 이혼율과 저출산율, 1인당 화장품 소비량, 인구대비 성형수술 등도 전세계 1위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 국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부지런히 일해 압축성장으로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개인과 가정은 해체되고 술이나 담배나 인터넷, 외모에서 위로를 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마음을 달래려 수련 프로그램을 찾는 이가 늘어나지만 특이한 체험만을 강조하거나 폐쇄적인 단체들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수도자나 성직자를 중심으로 수행을 하던 각 종교에도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을 개척한 사람들이 있다. 권도갑(60) 원불교 교무, 충남 천안 만일사 주지 마가(50) 스님,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53) 목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을 만나 영성수련과 마음공부의 프로그램을 체험해보았다.

    ▶▷ 권도갑 원불교 교무 - 출가 후 재회한 아버지를 통해 깨친 마음공부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권도갑 교무.

    권도갑 원불교 교무는 1972년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출가했다.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동국대 불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서울 돈암교당 부교무로 시작해 인천 부평교당, 서울 도봉교당 교무를 지냈다. 지금은 부인인 양경희 원광보건대 교수와 ‘행복가족캠프’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3월부터 직장인이 참여할 수 있는 3개월 과정의 마음공부시민대학을 개설할 계획이다.



    행복가족캠프 프로그램은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감정의 주인 되기, 나와의 만남 등 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분위기는 자유로운 편이며 프로그램 사이에 노래와 가벼운 율동을 섞어 마치 레크리에이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로그램 진행 중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첫 화두는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왜 그럴까’다. 이 화두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괴롭힌 것은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생각임을 깨닫게 한다.

    1월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하이원빌리지 지하 2층 강의실에서는 행복가족캠프에 참가한 40여 명이 노트를 펴놓고 왼쪽에는 ‘부모님의 문제점’을 쓰고 오른쪽에는 ‘나의 문제점’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상당수가 부모의 문제점은 쉽게 쓰지만 그 문제점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조별 대화 시간이 되자 돌아가면서 부모에 대한 아픈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매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 프로그램의 출발이 부모님인데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늘 화를 내셨어요. 퇴직 후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에는 가족들에게 더 화를 내셨죠. 그래서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어요.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상사와 자주 부딪쳤어요. 마음이 괴로워 제 살길을 찾고 싶어서 29세 때 원불교로 출가했어요.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떠났는데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부모님을 신앙처럼 받들어 모시라고 하니 참 힘들더군요.”

    ▼ 아버지와의 불화가 화두가 된 셈이군요.

    “그렇죠. 오랫동안 제 내면을 성찰하면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것은 저 자신의 문제이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출가한 지 3년 만에 아버지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용서의 편지를 보낸 뒤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다시 만난 아버지의 표정이 환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가 변했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저보고 변했다는 겁니다. 그때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가 한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새할머니 밑에서 늘 사랑에 목말랐는데 자식인 우리만 몰랐어요. 화를 내신 것은 당신의 마음을 안아달라는 것이었죠. 그것을 깨닫고 엉엉 울었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지요. 부모를 잘 만났으면 자기 인생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해법이 없습니다. 티베트의 선사 등 선각자 중에는 자신이 깨치기 위해 살림이 가난한 부모를 일부러 택해서 세상에 왔다고 말하는 분도 있죠.”

    부부 관계가 나쁘면

    ▼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007년 6월말 ‘우리시대의 마음공부’ 책을 내고 교보문고 주최로 전국 투어 특강을 했는데 기왕이면 사회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시작했어요. 반응이 좋아서 현재 26차까지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부부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가족프로그램으로 바뀌었어요.”

    ▼ 금슬이 좋은 부부도 여기에 들어올 필요가 있습니까.

    “꼭 특별한 문제가 있는 부부라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부부는 없습니다. 부부는 만나야 될 인연이 만난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해요. 배우자를 변화시키려고만 하지요. 배우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이 배우자가 정말 좋은 선물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혼자서 명상을 하면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관계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하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게 됩니다.”

    ▼ 권 교무님은 결혼 전에 여러 가지 수행을 한 것으로 아는데 결혼 후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부처님도 고행을 그만두고 깨우침을 얻었어요. 저도 결혼을 안 하고 오랫동안 수행을 해봤는데 몸만 지쳤어요. 39세에 결혼했어요. 아내가 저보고 당신은 나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농담해요. 축구를 좋아했는데 출가하면서 모든 취미생활을 다 버렸어요. 세상과는 절연했는데 결혼 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겁니다. 소태산 대종사도 가정을 가지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도 개념은 집을 떠나서 산속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인데 이분은 관계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고 하셨죠. 내 앞에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진정한 부처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운이 좋고 기가 세서 성공해도 어느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한번 지켜보세요. 타이거 우즈가 좋은 사례죠.”

    ▼ 사이좋은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 열정은 식고 자식 낳은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새로움을 느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無常)의 진리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또 보면 어제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념인데 사실로 보는 거지요. 인간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롭게 보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70대 노부부가 다음날 아침에 ‘처음 뵙겠습니다’면서 서로 인사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 가족 프로그램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그때부터 남편을 멀리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이를 놓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을 제자리에 놓으면 아이도 건강해집니다. 남편이 아내의 에너지를 못 받으면 나가서도 초라해지고, 에너지를 받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남편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족을 희생물로 생각하면 여기서도 온갖 문제가 나옵니다.”

    ▼ 감정의 주인 되기 프로그램에서 ‘모든 감정은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분노나 화도 그런 겁니까.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인데 그 주체를 자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분노도 참을 때 독이 되지, 분노를 제대로 자각하고 표현하면 축복이 됩니다. 화내는 것은 비인격적이고 참는 것이 수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상대편에게 ‘내가 이래서 화가 납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상대편이 반성하거나 연민을 느낍니다.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 자각도 못하고 그대로 벌컥 내던지면 상대편도 맞받아치지요.”

    ▼ 마지막 프로그램인 ‘나와의 만남’에서는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최고의 존재로 깨닫게 합니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은 좋지만 사회생활에서 패배한 ‘약자의 처세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가 승자고 누가 패배자인지,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인지도 생각의 틀에서 나오는 겁니다. 약자 속에도 강한 것이 있고 강자 속에도 약한 것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자존감이 추락한 사람일수록 인간관계 갈등이 심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므로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라’는 겁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1박2일 동안 체험담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모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며 감격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며 좋아하는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아직까지 혼란스럽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 교무 등 프로그램 진행자와 참가자들은 그런 발언에 대해 어떤 사족도 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이별의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 마가스님 -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단순명료한 자비명상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마가스님.

    마가스님은 1985년 도선사에서 현성 스님을 은사로 계(戒)를 받고 1990년 중앙승가대 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마곡사 포교국장 재임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현재 충남 천안 만일사 주지로 있다. 중앙대 겸임교수로 ‘내 마음 바로보기’ 강의를 하고 있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사찰, 대학, 기업, 교도소 등지에서도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마가스님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기쁨공동체’에 들어가면 각종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쉽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속에 묘한 감동이 있다. 지난해 4월 동국대 CEO 과정에서 행한 마음 다스리기 과정을 보면, 양손의 엄지 검지로 네모 모양의 사진기 틀을 만들어 찍게 한다. 처음에는 좁게 네모 모양을 만들었다가 점점 네모 모양을 크게 해서 나중에는 네모 모양 자체를 없애도록 한다. 무심결에 장난스럽게 따라하던 이들도 이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 크기를 상징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마가스님이 중앙대에서 하는 강의는 인기가 좋아 수강생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지난해 12월11일 오전 11시 중앙대 강의실은 종강에 참석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도시공학과 4학년 강영모군은 “이 강의를 통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이제까지 편지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부모님 답장을 받게 되니까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강의는 어떻게 진행합니까.

    “자기 마음속의 응어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긍정명상부터 합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기억이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달리기라도 1등 했으면 그런 기억부터 먼저 찾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면 남과 세상이 모두 미워지거든요. 추운 겨울에는 꽃이 피고 싶어도 주위 공기가 차가워 필 수 없어요. 봄이 돼야 자연스럽게 꽃이 피지요. 이 프로그램은 그런 따뜻한 분위기,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게 스님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절 생활을 체험해 깨달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지요. 발우공양 할 때 쌀 한 톨을 학생들에게 갖다주면서 대화를 하게 합니다. 볍씨가 논에 떨어져 여기에 올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적게 합니다. 보통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하는데 쌀 ‘미(米)’자를 쓰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공기와 물과 농부의 손길 등 88번의 은혜를 입었다고 보는 거지요. 그러고 나서 발우공양하면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

    ▼ 자비명상 프로그램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감정을 뱉어버리면 마음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생기는 감정을 살펴보고 반응하면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 한 남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교재에 보면 자기 인생 곡선 그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때 고통스러웠는지 쓰게 합니다. 자기 인생의 드라마에서 마음의 노예처럼 살지 말고 삶의 주인공이 되라는 겁니다.”

    이처럼 단순한 명제에 도달하기까지 겪은 마가스님의 인생역정은 간단하지 않다. 그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유머스럽게 펼쳤다.

    “어머니가 막내인 저를 임신한 지 7개월 됐을 때 ‘잘생긴’ 아버지를 어떤 여성이 몰래 스카우트해버렸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았지요. 중학생 때까지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광주에 사시던 아버지 댁으로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멋진’ 인생이 펼쳐졌습니다. 학교 성적은 꼴찌에다 친구들과 싸워 경찰서에 들락거였어요. 아버지를 괴롭히는 묘한 쾌감을 느꼈어요. 21세 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복수로 자살을 결심하고 광주에서 강원도 오대산까지 38일을 걸어 도착한 뒤 수면제를 먹었어요. 사흘 만에 눈을 뜨니 월정사 절방이더군요. 노스님이 저를 보고 ‘자네는 다시 태어났네’ 하는데 하느님 음성처럼 들렸어요.”

    ▼ 그전에는 불교와 인연이 없었습니까.

    “한때 교회에 다녔어요.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요. 갈 곳도 없어 행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스님들의 생활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태백과 장성 등 탄광을 전전하며 만행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성질이 날카로웠어요. 등산객이 절 마당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나가면 따라가서 다시 줍게 했어요.”

    ▼ 겉모습만 스님이었군요. 어떻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까.

    “인도 여행을 맨발로 6개월 동안 했는데 나름대로 특별한 체험도 있어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나름대로 법거량을 하려고 큰스님들을 찾아갔는데 만나주질 않아요. 그런데 태안사의 청화 큰스님이 ‘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한마디를 던지시는데 그 순간 가슴이 턱 막혀요.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저 밑바닥에 눌려 있다가 가슴으로 다시 올라온 겁니다. 한 달 반 동안 큰스님 곁에 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은연중에 자비심을 느꼈어요. 그런 어느 날 내 입에서 ‘아버지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엄청난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 후에는 등산객이 절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면 제가 주워 담았어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감사로 바뀌면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거예요.”

    50년 만에 화해한 부부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어린이같이 천진난만한 마가스님의 사인.

    ▼ 자비명상은 불교 전통의 간화선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불교계 일각에서는 저보고 간화선을 하지 않고 자비명상을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자비명상은 간화선을 하기 전에 하는 예비수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초보자가 간화선을 하는 것은 한글 자모도 배우지 않고 바로 작문을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 같은 수행자 역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몇 십 년을 수행해도 고생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리, 즉 깨달음에 싹이 트기 위해서는 자비라는 바탕이 필요합니다. 한국 불교가 깨달음 지상주의인데 득도(得道)는 바로 자비입니다. 일반인은 자비명상만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겁니까.

    “고통은 행복해지기 위한 소스(원천)입니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는 행복을 모릅니다.”

    ▼ 그렇다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삶 아닙니까.

    “일상생활에서는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보다 표현해버리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감정이 폭발하기 이전의 마음, 말하기 이전의 마음은 어떤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감정을 그냥 표현해버리면 자기도 다치고 상대편도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자각하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 마음은 뭡니까.

    “신기루입니다.”

    ▼ 그 신기루에 에너지가 있습니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에 자꾸 에너지를 넣으면 화가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해요. 명상은 이쪽으로 오는 에너지를 저쪽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에너지가 빠진 화는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불가에서는 성공설(性空說)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비어있고 거기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을 채우느냐 선을 채우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부나 가족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도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얼마 전 자신의 가족을 위해 행한 치유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지난해에 50년 만에 아버지가 어머니께로 돌아오셨어요. 어머니가 받아주긴 하셨는데 아버지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속상하셨죠. 그래서 두 분이 다투시다가 어머니는 제가 있는 절로 들어오셨어요. 2주 전에 어머니 팔순을 맞아 가족들을 모두 절로 초청했어요. 업(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 눈을 손수건으로 가린 뒤 ‘무조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았는데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삼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 길로 두 분이 손잡고 내려가셔서 잘살고 계십니다.”

    ▶▷ 최일도 목사 -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내공 다진 강렬한 영성수련

    마음의 상처는 깨닫고 말하는 순간 사라진다

    최일도 목사.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는 서울 청량리역 부근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밥퍼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활동 못지않게 영성생활수련 지도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기 가평군 설곡리에 있는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 현재까지 8000여 명이,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베트남 등 해외에서는 1000여 명의 교민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치인, 공직자, 예술인, 전문직 종사자도 많이 다녀갔다. 2007년 8월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허위학력을 고백한 것도 영성수련 프로그램 참여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 목사가 수녀 출신인 아내 김연수씨와 함께 진행하는 영성수련프로그램은 모두 3단계로 구성돼 있다. 1단계는 아름다운 세상 찾기. 참가자들이 4박5일 동안 침묵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자아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화는 오로지 프로그램 진행자와만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화가 날 일입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 ‘싫은 것입니까’ ‘정죄할 일입니까’ 등이 성찰의 ‘핵심물음’이다.

    1996년 시작한 영성수련프로그램은 1월18일 현재 118회를 기록했다. 해외 프로그램은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시작했다. 지난해 12월11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인근의 다일천사병원에서 만난 최 목사는 애틀란타에서 귀국한 지 채 하루가 안 됐는데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진지 알아차리기

    ▼ 해외의 영성수련프로그램은 국내 프로그램과 다릅니까.

    “기본 골격은 같지만 지역별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약간 변화시킵니다. 유럽 지역은 유학생이 많아 지적인 측면을 고려합니다. 미국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식을 직접 만들어줬더니 ‘진지 알아차리기’ 프로그램에서 큰 감동을 받아요. 미국은 음식이 풍족하니까 많이 남기는데 식사할 때 가져간 음식을 모두 먹게 하고 마치 세척한 접시처럼 되가져오라고 했더니 ‘충격’을 받는 동시에 밥과 음식에 담긴 깊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요. 김지하 시인도 ‘밥이 하늘이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겁니다. 밥을 먹어야 살지요. 이 보이는 생명의 양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리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입에 넣기만 했지요. 밥상 위에 놓인 음식은 산과 바다와 들에서 자란 생명들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바쳐진 거죠.”

    최 목사가 진행하는 영성수련프로그램 중 신혼시절 아내가 싫어하는 지렁이를 놓고 말다툼을 벌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싫은 것입니까’라는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고착된 관념에 얽매인 것을 풀어주는 과정이다. 참가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물음은 ‘누구의 것입니까’다.

    “자기가 가진 재산, 소중한 물건 등을 놓고 누구의 것인지 성찰하게 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얼른 ‘정답’처럼 말하는데 그 물음의 목적은 소유의 차원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기에 그런 사람일수록 큰 충격을 경험합니다. 특히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당신 아들이 누구의 것입니까’라는 질문만 던져도 도전과 충격을 받습니다. 자식에 집착하면서 마음고생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일찍 아버지를 여읜 최 목사는 청소년기에 많은 방황을 한 끝에 영성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한 뒤 유학을 꿈꿨다. 최 목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1988년 청량리역 앞에 쓰러진 노인의 눈빛이었다. 이 노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무의탁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영성수련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더 깊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30년 전부터 저와 아내는 그림 같은 초원에 공동체를 세우고 영성수련을 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청량리 밑바닥으로 저희들을 내몰면서 막장 인생을 체험하게 했어요. 섭리지요. 밑바닥 인생에서 CEO까지, 말단공무원에서 대통령까지, 이등병에서 군 장성까지 두루 만나게 해준 겁니다.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통해 누구와도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겁니다.”

    ▼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청량리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가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좌절해서 용문산으로 올라가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몸부림치다 거의 실신해 죽게 되었을 때, 밥 냄새에 의식이 깨어나 기어가 보니 한 노인이 밥을 짓고 있었어요. 좀 달라고 했더니 그 노인이 ‘젊은 놈이 늙은이가 한 밥을 그냥 얻어 먹으려 한다’고 호통을 치면서 ‘청량리에 가서 최일도 목사를 만나 자원봉사를 하고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 노인을 통해 ‘청량리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겁니다. 최일도를 그냥 쓰시기에는 모난 데가 많으니까 정으로 쪼고 대패질을 하신 겁니다.”

    강원용 목사가 부러워한 영성운동가

    ▼ 개인적인 고통이 영성수련프로그램에 반영되어 있습니까.

    “한때 아내가 지친 나머지 정식으로 이혼하자고 두 번이나 요구했고 어머니와 아들은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창피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큰 절망에 빠져 겪은 아픔이 영성프로그램 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란 함께 생활하면서 생긴 거니까 함께 풀어보자는 겁니다. 영성수련프로그램을 통해 이혼하고 헤어졌던 사람들도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며 화해를 합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아들이 아버지를 용서 못해 괴로워하다가 화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던 아들이 프로그램 마지막 날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수백 번 보았습니다.”

    ▼ 다른 종교에서도 영성수련과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체험해봤습니까.

    “그런 프로그램들이 유행하기 전부터 다양한 영성수련프로그램을 거의 모두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다원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수련전통과 다양성은 존중하되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진리를 믿고 그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 불교의 참선 수행이나 명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불교의 참선이 자신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과정이라면 기독교 영성수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출발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일치를 향해 가는 과정이죠. 이것을 체험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을 붙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일반인이 4박5일이라는 시간을 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는데, 주말을 이용한 단축 프로그램을 개설할 생각은 없습니까.

    “4박5일 프로그램 자체가 정수를 모은 겁니다. 줄여서 한번 해봤는데 효과가 나지 않아요. 그래도 주말 시간을 이용하는 분들을 위해 주말에 두 차례 나눠서 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5월부터 실시할 예정입니다.”

    수녀원에서 영성수련을 받은 적이 있는 최 목사의 부인 김연수씨는 고(故) 강원용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찬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개신교 목사들을 대상으로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4년동안 실행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최 목사를 알게 된 강 목사는 생전에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나는 ‘밥짓는 시인’ 최일도 목사처럼 살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와 생각만으로 그랬다. 다일공동체에는 내가 본받고 싶었던 성 프란시스코와 일본이 낳은 거리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의 영성이 모두 함께 녹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 강 목사도 한때는 최 목사를 아내만 고생시키는 ‘이상주의자’라고 오해했다. 나중에야 한국교회를 맑게 살리는 ‘영성운동가’로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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