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부상으로 입원해 있을 때 승부조작 유혹 받았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02-01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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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1만회 기승(騎乘), 통산 최다승·최다상금 기록
    • 경마팬들이 욕하면 대꾸 안 하는 게 상책
    • 1등으로 너무 앞서 나가면 속도조절 한다
    • 병문안 한다며 찾아와 돈봉투 내밀어
    • 당신 때문에 돈을 엄청 잃었으니 본전이라도 찾게 도와달라
    • ‘엽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협박도
    • 막노동, 포클레인기사 조수 하다 경마기수로 전환
    • 견습생 시절 나이 어린 선배들한테 ‘줄빠따’ 맞아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장면 1

    1월9일(토요일) 오전 10시50분 과천경마장 예시장(豫示場). 서울 1경주(일반경주, 국내산 6군, 1300m)에 출전하는 말들이 패션쇼를 하듯이 천천히 장내를 돌았다. 경마정보지를 손에 쥔 수십여 명의 사람이 말들의 몸 상태를 살폈다. 기수들은 무표정했다. 이윽고 5번 말을 탄 박태종(46) 기수가 등장했다. 박 기수의 모습은 그를 태운 밤색의 말 핍스플러스처럼 평범했다. 1만회 기승(騎乘)이라는 한국경마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나의 막연한 예상은 빗나갔다. 기수를 태운 말들은 마필관리사들에게 이끌려 지하마도를 거쳐 경주로로 나아갔다. 11시20분에 시작된 경주는 1분30초도 안 돼 끝났다.

    #장면 2

    경주를 막 끝낸 말들이 속속 장안소 하마대(下馬臺)에 도착했다. 말들의 몸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솟아났다. 역한 말 냄새가 진동했다. 기수들의 얼굴엔 모래가 묻어 있다. 색동저고리 같은 기수복은 모래와 흙으로 더럽혀졌다. 박태종 기수의 상의는 파란색인데 한가운데에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가로로 새겨져 있다. 하의는 다른 기수들처럼 흰색이다. 거기에 노란색이 곁들여진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

    박 기수는 검량(檢量)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에서 내린 후 안장을 풀고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들겼다. 이어 안장과 패드 따위를 들고 검량실로 들어섰다. 경기 후 기수의 체중과 마필부담중량을 재는 후검량을 받기 위해서다. 그의 후검량은 이상이 없었다. 만약 전검량(말을 타기 전 중량)과 후검량이 1㎏ 이상 차이나면 실격처리된다. 500g만 빠져도 조교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후검량 대상은 7착(7등)까지다. 12마리가 뛴 이번 경주에서 박 기수의 말은 6착으로 들어왔다. 상금은 5착까지만 주어진다. 그의 말은 1300m를 도는 데 1분25.3초 걸렸다. 우승마의 기록은 1분22.6초.

    후검량을 통과한 박 기수는 기수대기실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경주(서울 4경주, 오후 1시10분 발주)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는 오늘 2, 3경주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중간 이상은 되는 말인데, 순발력이 떨어졌어요. 만족스럽지 못하죠. 3, 4등은 할 줄 알았거든요. 추입말(追入馬)인데 처음부터 워낙 쫓아가질 못했어요.” 추입말은 선행말(先行馬)을 뒤쫓아가다 막판에 추월을 시도하는 말이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1월9일 서울 6경주에서 8번마를 타고 달리는 박태종 기수.

    경주가 끝나면 곧바로 마사회 홈페이지에 경주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온다. 박 기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경주를 모니터했다. 잠시 후 동료들과 함께 경기장 전광판이 보이는 대형화면을 통해 서울 2경주(11시45분 발주)를 지켜봤다. 말들이 결승점에 이르자 실내가 소란스러워졌다. 10분쯤 지난 후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더니 2경주를 마친 기수들이 대기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얼굴과 옷이 모래투성이다. 가벼운 언쟁도 있었다. “너 거기서 그렇게 파고들면 어떡해!”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한 기수가 마필관리사에게 말했다. “형! 밥 사! 1전1승 했으니.”

    #장면 3

    오후 3시20분. 서울 7경주(일반경주, 혼합 3군, 1400m)가 시작되기 5분 전이다. 마권을 사들고 4층 관람대로 갔다. 장내는 담배 연기가 뿌연 가운데 경마정보지와 마권을 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늘 박태종 기수의 4번째 경주다. 1경주에서 6등을 했던 그는 4경주, 6경주에서는 두 번 다 2등으로 들어왔다. 나는 단승식과 복승식, 복연승식으로 나눠 박 기수가 탄 13번 말 흑별에 걸었다. 단승식으로는 13번 말에 4000원, 복승식으로는 13번과 1번 말, 13번과 14번 말에 각 2000원씩, 복연승식으로는 13번과 1번 말에 2000원을 밀어넣어 모두 1만원을 걸었다.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1월9일 서울 4경주에서 박태종 기수가 탄 10번말(앞줄 왼쪽)이 4코너를 돌면서 선두로 나오고 있다.

    발권이 마감된 직후 경주가 시작됐다. 날씨가 추워선지 대부분의 사람은 실내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전광판을 지켜봤다. 그러다 말들이 4코스(결승점 400m 전)를 돌자 우르르 야외 관람대로 몰려나갔다. 말들 간 격차가 벌어지고 기수들의 엉덩이가 빠르게 들썩거렸다. 결승점이 가까워지자 두두두두 하는 말발굽 소리를 삼킬 정도의 거대한 굉음이 일었다. 1~5층 관람대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함성이었다. 바로 옆에서 “야, 더 뛰어” “야, 새끼야” 하는 고함이 들렸다. 기수들과 말들의 이름이 허공에 거칠게 흩뿌려졌다. 소리들은 눈덩이처럼 뭉쳐져 원래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말들이 결승점을 통과하자 환호와 탄식이 쏟아졌다. 흑별은 14마리 중 11번째로 들어왔다.

    승마투표(베팅)는 100원부터 할 수 있다. 1회 마권 구입 한도액은 10만원이다. 투표방식으로는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 복연승식, 삼복승식 6가지가 있다. 단승식과 연승식은 말 1마리를, 복승식 쌍승식 복연승식은 2마리를, 삼복승식은 3마리를 고른다. 단승식은 1등말을 맞히는 것이고 연승식은 투표한 말이 3등 안으로만 들어오면 배당금(환급금)을 받는다. 단승식보다 당첨 확률이 높지만 배당률(환급률)은 낮다. 복승식은 1등말과 2등말을 순서에 관계없이 맞히면 된다. 쌍승식은 1등말과 2등말을 순서대로 맞혀야 하므로 훨씬 어렵다. 배당률도 높게 마련이다. 복연승식은 3등 이내로 들어올 말 2마리를 고르는 것이다. 삼복승식에서 배당금을 받으려면 자신이 고른 말 세 마리가 순서에 상관없이 3등 이내로 들어와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대조적인 성적

    ‘경마계의 살아있는 전설’ ‘경마 대통령’으로 불리는 박태종 기수의 첫인상은 촌스럽고 풋풋했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검은색 점퍼에 운동복으로 보이는 검은색 바지 차림이었다. 1월11일 오전 10시. 우리는 과천경마장 내 한국경마기수협회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하관이 빨고 몸이 날렵해 보인다.

    새해 첫 경주 성적에 대해 그는 “토요일은 보통이었고, 일요일은 실망스럽다”고 했다. 1월10일 일요일 경주에서 그는 속된 말로 죽을 쑤었다. 총 11경주 중 8경주에 출전했는데 2착과 7착 두 번, 나머지 네 번은 8, 9, 10, 12착(꼴등)을 기록했다.

    1월9일, 나는 7경주까지만 보고 경마장을 떠났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성적은 내가 떠난 후로 더 좋았다. 8번, 10번 경주에서 연달아 2착을 했고, 마지막 12경주(일반경주, 국내산 4군, 1400m)에서는 갈색마 그랜드머니를 타고 우승했다. 총 12경주 중 8경주에 출전해 1착 1회, 2착 4회의 성적을 올렸으니 선전한 셈이다.

    경마는 크게 일반경주와 대상경주, 특별경주로 나뉜다. 일반경주는 1년에 1100회가량 치러진다. 보통 경마경주라 하면 일반경주를 가리킨다. 대상경주는 1년에 20~30회밖에 열리지 않는데, 일반경주보다 상금이 크다. 우승상금의 경우 일반경주가 1000만~4000만원인 데 비해 대상경주는 6000만~2억원이다. 대상경주 2착이나 3착이 일반경주의 우승보다 상금이 더 크다. 특별경주의 상금은 일반경주와 대상경주의 중간쯤 된다. 대상경주와 특별경주는 일종의 이벤트다. 상금이 높기 때문에 훨씬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펼쳐진다.

    지역 분류로는 서울경주와 제주경주, 부산경남경주 세 가지가 있다. 1월9일 서울에서는 12경주, 제주에서는 4경주가 열렸다. 부산경남경주는 금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

    출전마는 국내산, 외국산, 혼합종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실력에 따라 1~6군까지 분류돼 경기에 출전한다. 처음 출전하는 말은 대체로 6군이다. 상금도 차이가 난다. 1월9일 일반경주 국내산 6군인 서울 1경주의 우승상금은 1388만6000원이었다. 이에 비해 일반경주 혼합 1군인 서울 11경주의 우승상금은 4149만9000원이었다. 3배 이상의 차이다.

    박 기수는 지난해 그랜드머니와 두 차례 짝을 이뤘는데, 우승과 준우승을 했다. 그래선지 1월9일 서울 12경주에서 그랜드머니에 대한 배당률은 출전마 10마리 중에서 가장 낮았다. 단승식 1.1배, 연승식 1.0배. 맞혀도 본전치기인 셈이다. 반면 8착을 한 5번 말 퍼펙트드리머의 경우 단식과 연식 배당률이 142.2와 18.7이었다. 대체로 배당률이 높은 말일수록 우승 가능성이 낮거나 인기가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힘을 못 썼죠”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1월9일 서울 6경주에 출전한 박태종 기수가 출발점 앞에 대기하고 있다.

    이날 서울 4경주(일반경주, 국내산 6군, 1000m)에서는 쌍승식에서 무려 배당률 1559배가 터졌다. 마사회 관계자도 놀라워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런 게 터진다”고 했다. 나도 헛발질만 한 건 아니다. 서울 6경주에서 박태종 기수가 탄 8번 말 굿메시지에 연승식으로 2000원을 걸었다. 배당률은 1.4. 굿메시지는 ‘정말 고맙게도’ 2착을 했고, 생애 처음으로 경마에 돈을 건 나는 2800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배당률이 100배를 넘거나 배당금이 500만원 이상인 경우엔 22%의 세금을 뗀다. 이처럼 고액 배당에 대해 세금을 떼는 것에 대해 경마팬들은 이중과세라고 불만스러워한다. 배당률 자체가 전체 금액에서 세금을 뗀 상태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단승식과 연승식의 세금은 총액의 20%, 나머지 4가지 방식의 세금은 27%다. 다시 말해 총액의 80%와 73%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배당률이 결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말에 대해 경마팬들이 복승식으로 건 돈의 총액이 100억원이라면 실제 배당되는 금액은 73억원으로, 맞힌 사람들은 이 돈을 나눠 갖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간접세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01배가 터질 때보다 99배가 터질 때 더 많은 배당금을 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박 기수는 “그랜드머니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말들이 부족했다”고 내세울 일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힘이 아직 덜 찬 말이에요. 장거리(1700, 1800m)는 아직 안 뛰어봤어요. 또 4군 경기니까 뭐….”

    그랜드머니보다는 위너프린스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위너프린스는 그가 이날 10경주(국내산 2군, 1800m)에서 탔던 말이다. 그는 위너프린스에 대해 각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승을 기대했는데, 힘이 떨어지더라고요. 위너프린스는 끌고 가는 말이거든요. 기수 의지대로 움직여줘야 하는데, 처음부터 힘을 있는 대로 썼어요. 제어가 잘 안 됐죠. (고삐를) 잡아당기면 재갈이 당겨져 압박을 받는데 그냥 밀고 나가더라고요. 결국 마지막에 힘을 못 썼죠.”

    위너프린스는 2착으로 들어왔다. 우승말과는 0.4초 차이. 지난해 이 말을 네 번 타서 세 번 우승했으니 아쉬울 만도 하다. 더구나 이 경주는 우승상금이 1억원이 넘는 대상경주(헤럴드경제배)였다. 2착 상금만 해도 4400만원으로, 일반경주 우승상금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착순상금은 5등까지 주어지는데, 상금의 80%는 마주(馬主)에게 돌아간다. 나머지 20%를 기수와 조교사, 마필관리사가 나눠 갖는다. 기수가 6.5%, 조교사가 6%, 나머지 7.5%는 마필관리사 몫이다. 현재 과천경마장에는 54개조가 편성돼 있다. 각 조에는 조장인 조교사 한 명과 10명 안팎의 마필관리사가 소속돼 있다. 마필관리사가 10명인 조에서 우승할 경우 마필관리사 한 명에게 돌아가는 상금은 전체 상금의 0.75%인 셈이다.

    마주와 계약을 맺고 말을 위탁관리하는 조교사는 일반 운동경기의 감독과 같은 존재다. 기수와는 기승계약을, 마필관리사와는 고용계약을 맺는다. 기승작전 지시, 경마를 훈련하는 조교(調敎)계획 수립도 조교사의 일이다. 마필관리사는 말먹이와 목욕, 말간(마구간) 청소 등을 맡는다.

    기수는 프리기수와 계약기수로 나뉜다. 박 기수와 같은 프리기수는 경주가 있을 때마다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는다. 계약기수는 특정 조교사와 1년간 전속계약을 맺은 기수다. 자기가 속한 조의 말은 무제한 탈 수 있다. 반면 프리기수는 여러 조의 말을 탄다. 대체로 성적이 좋은 기수들이 프리기수로 활동한다. 프리기수 제도가 생긴 지는 3년 됐다.

    “야 새끼야, 똑바로 타라!”

    일요일 경주의 부진에 대해 박 기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대했던 말이 (상금)착순에도 못 들어왔어요. 초원드림(11경주)과 시크릿웨펀(10경주). 나머지는 특출한 말들이 아니었어요. 레이스 운도 안 따랐어요. 마번도 중요해요.”

    마번은 컴퓨터 추첨으로 결정된다. 번호 순서대로 안쪽으로 서는데 다른 조건이 같다면 아무래도 안쪽에서 출발하는 게 유리하다.

    그는 인기마를 탈 때는 적지 않은 부담을 갖는다고 털어놓았다. 뜻대로 안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특히 대상경주 때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관중의 비난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사실 경주 때는 관중의 소리가 안 들려요. 그런데 출장 전에는 들리지요. 앞 경주에서 성적이 안 좋으면 팬들이 욕을 합니다. ‘야, 새끼야. 똑바로 타라!’ 괴롭기보다는 듣기 싫죠. 대꾸를 안 합니다. 대꾸하면 팬들이 더 열 받거든요. 한번은 어떤 선배 기수가 예시장에서 심한 욕을 듣고 ‘그럼 당신이 한번 타보라’고 대꾸했어요. 신발 날아오고 난리가 났지요. 경주는 변수가 많아 늘 (성적이) 좋을 순 없죠. 그래도 지면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그가 조금 뜻밖의 얘기를 했다.

    “경마는 기록보다는 순위 경주입니다. 전에는 거리별 최단기록에 대해서도 포상을 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그게 있으면 경쟁이 더 치열할 텐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되고. 요즘은 1등으로 달리면 눈치를 봐서 2등과 너무 차이 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합니다. 기록 차이가 크면 나중에 중량이 늘게 되거든요.”

    경마에서 중량이란 마필부담중량을 뜻한다. 말 그대로 경주에서 말이 짊어지고 달리는 무게로 기승중량이라고도 한다. 경주 1주일 전 핸디캡전문위원회에서 3인 합의제로 결정한다. 말의 성별과 성적, 나이, 산지에 따라 달라진다. 대체로 성적이 좋은 말일수록 기승중량이 크다. 인기마가 매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데는 말의 상태와 기수의 능력 못지않게 기승중량도 영향을 끼친다.

    부담중량에는 기수의 몸무게, 패드, 안장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1월9일 서울 1경주에서 박태종 기수가 탄 핍스플러스의 기승중량은 54㎏, 10경주에서 탄 위너프린스는 57㎏이었다. 박 기수의 평상시 몸무게가 46㎏이므로 핍스플러스는 8㎏, 위너프린스는 11㎏의 중량을 더 얹어야 한다. 기수의 체중과 안장은 거의 일정하므로 중량이 모자라면 대부분 패드로 맞춘다. 패드는 100g, 500g, 1㎏ 세 종류가 있다. 중량을 맞추기 위해 몇 장의 패드를 겹쳐 끼우는 경우도 많다.

    경주 후 부담중량을 재는 후검량을 통과하지 못하면 실격처리된다. 실제로 박 기수는 2008년 국산마 1군 경주에서 시크릿웨폰을 타고 우승했다가 후검량에 걸려 실격된 적이 있다. 결승점 100m를 남겨두고 패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경주에 좋은 말일까. 박 기수에 따르면 골격이 발달한 말이 좋다. 덩치가 작은 말은 등급이 올라갈수록 불리해진다. 부담중량 때문에 힘을 못 쓰기 때문이다.

    데뷔전 치르고 다리 후들거려

    일정 체중을 유지해야 하는 경기가 다 그렇듯 경마기수에게도 체중관리는 고역이다. 많은 기수가 체중 감량으로 힘들어한다. 이 점에서 박 기수는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천운을 타고 났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다. 경주가 있는 날엔 기수대기실에서 김밥이나 과일을 먹는다.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말들이 결승점 가까이로 달려오자 경마팬들이 야외 관람대와 경주로 근처로 몰려들고 있다.

    기수생활 24년째인 그는 여러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 경마사상 최초의 1만회 기승 외에 통산 최다승(1567회)과 최다상금 기록의 소유자다. 대상경주 최다승 기록도 갖고 있다. 나이로는 서울경마장 소속 기수 61명 중 두 번째다. 2006년엔 120회 우승으로 역대 연간 최다승 기록을 세웠으나 이듬해 128회 우승한 문세영 기수에 의해 깨졌다.

    다승왕을 차지한 지난해 기록도 눈부시다. 654경주에 출전해 114승을 기록했다. 2착도 100회나 된다. 우승상금도 가장 많아 누적상금이 48억원을 넘었다. 그중 기수 몫이 6.5%이므로 실제 벌어들인 상금은 세금을 빼면 3억원이 약간 넘는다. 2008년에도 비슷한 소득을 올렸고, 경기 중 부상으로 몇 달간 입원했던 2007년엔 2억여 원을 벌어들였다.

    2010년 1월11일 현재 그의 통산 승률은 15.7%로 문세영 기수(16.6%)에 이어 2위다. 30세인 문 기수의 출전횟수(2651회)는 박 기수의 4분의 1이다. 박 기수는 또 최근 1년간 최다우승에 공동 3위의 승률(17.5%)을 기록하고 있다. 승률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꾸준한 체력관리가 중요하죠. 제 경우 기승기회가 많아 우승기회가 많았다고도 볼 수 있지요. 조교사들이 좋은 말을 탈 기회를 많이 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프로스포츠계가 다 그렇듯 경마기수들 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한 달에 2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면 상위권이다. 서울경마장의 경우 5명 안팎의 기수가 이에 해당된다. 올해 서울경주가 치러지는 날은 96일. 하루 평균 1승을 올리면 최상위권 기수다. 1주(2일)에 1승씩만 올려도 상위권에 들어간다. 반면 하위권 기수는 연수익이 5000만원에도 못 미친다. 3년간 우승을 못하는 기수도 있다. 그러면 출전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조교사들이 꺼리기 때문이다. 악순환인 셈이다.

    기수의 주된 소득은 물론 상금이다. 거기에 한 번 출전할 때마다 받는 5만4000원의 기승료가 보태진다. 박 기수의 경우 지난해 654경주에 출전했으니 기승료 수입만 해도 3500만원이 넘는다. 계약기수들에 한해 새벽조교 수당도 나온다. 마사회 관계자는 “아무리 성적이 나쁜 기수라도 월 200만원 이상은 보장된다”고 귀띔했다.

    박 기수가 경주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87년 4월1일 23세 때다. 그는 “어떻게 경주로를 돌았는지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경주 한 번 하고 나면 엄청난 체력이 소모됩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데뷔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100m를 전력질주한 것처럼 숨이 가쁘고 다리에 힘이 쫙 빠지거든요. 일반인은 보통(비경주용) 말을 1분만 타도 다리가 휘청거리죠. 데뷔전을 치르고 나서 몇 분 후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해 10월 첫 우승을 했다. 궁궐이라는 말이었는데 선행으로 달려 1위를 차지했다. 박 기수에 따르면 신인 기수는 대체로 선행마를 타고 우승한다. 추입마로 우승하기 위해서는 기승경력이 많아야 한다. 기술과 노련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4코너까지 가봐야 알 수 있어요. 그때쯤 대략 알게 되지요. 말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순간의 판단이 중요하죠.”

    말의 성격도 영향을 끼친다. 그는 “말도 사람처럼 얼굴에 성격이 드러나 있다”고 했다.

    “눈을 보면 알아요. 찢어진 눈을 가진 말은 성깔 있어요. 그런 말은 경주 전 허튼짓으로 힘을 다 빼버려요. 혼자 괜히 흥분해갖고.”

    20년 이상 함께 호흡해온 만큼 말에 대한 그의 느낌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말은 눈이 맑고 투명해요.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이죠. 덩치는 큰데 겁이 많아요. 소리나 물체에 민감해요. 훈련 중 트랙 자국을 보면 피해갑니다.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고 참새만 봐도 놀라요.”

    경주가 끝난 후 그가 말목을 가볍게 두들기는 건 일종의 애정 표현이다. 1등을 했건 꼴찌를 했건 고생했으니 위로하는 것이다. 그는 말을 다루는 요령에 대해 “특별한 게 없다”며 “애정이 가는 말이 능력 있는 말”이라고 했다.

    그에게 경마승부의 매력은 “마지막에 뒤집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빨리 판단해 빨리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달리면서 작전을 바꾸기도 하죠. 말들이 다 똑바로만 가는 건 아니거든요. 다른 말들의 상태를 봐가면서 속도를 더 내거나 진로를 바꾸기도 해요. 마지막에 앞서 가는 말을 제치고 우승할 때 짜릿한 느낌을 맛보죠.”

    그는 가장 극적인 우승으로 1999년 5월16일에 있었던 국산 1군의 대상경주(코리언더비) 우승을 꼽았다.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자당이라는 말이었다. 자당은 선행말이고 그를 태운 만석꾼은 추입말이었다. 어떤 말도 자당을 이길 수 없다고들 했다. 결승점 100m 앞에서부터 치고 나간 만석꾼은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그 우승이 더욱 뜻 깊은 것은 그날이 딸의 백일이자 아내가 처음으로 딸을 안고 경주장을 찾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부상 없이 잘 뛰게 해달라’

    경주 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부상이다. 천주교 신자라는 그는 한때 경주에 들어갈 때마다 속으로 “부상 없이 잘 뛰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나 요즘은 안 한다. “(성당을) 쉰 지 오래돼서…”라면서 쑥스러운 듯 웃는다.

    지금까지 그는 경주 중 사고로 10여 차례 입원했다.

    “진로방해를 한다든가 하는 고의적인 경우는 없어요. 대체로 말 습성 때문이죠. 요동하는 말이 있고 뒤로 까지는 말이 있죠. 그러면 굴러 떨어지고 깔리기도 하는 거죠. 말 뒷발에 명치를 채여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적도 있어요. 훈련을 끝내고 마방굴레를 벗기다가 그랬죠.”

    1989년 뚝섬에 있던 경마장이 과천으로 옮겨온 이후 지금까지 4명의 기수가 경주 중 사고로 사망했다. 대부분 낙마사고다. 말에서 떨어지더라도 말발굽에 머리를 밟히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헬멧을 쓰고 있어도 머리가 터지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순간은 잘 몰라요. 밟힌 건지, 차인 건지.”

    1월9일 서울경주에서도 낙마사고가 일어났다. 6경주에서 승률 1위의 문세영 기수가 말에서 떨어진 것. 그 바람에 문 기수는 다음 경주에 결장했고 다른 기수가 대신 출전했다.

    박 기수가 당한 사고 중 가장 아찔했던 것은 2007년의 낙마다. 경주 중 떨어진 직후 말발굽에 몸이 짓밟혔다. 이 사고로 그는 석 달여 동안 입원했다. 늑골과 쇄골이 골절되고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척추압박골절상도 당했다. 재활훈련을 받고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기수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다 나으면 또 하고 싶어져요. 배운 게 경마밖에 없으니 밖에 나가 할 게 없잖아요. 가정을 가진 후로는 예전보다 조심스럽게 타게 되더라고요. 다른 기수의 말이 내 앞으로 밀고 들어오겠다 싶으면 방어자세를 취합니다. 총각 때는 그 정도는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치고 나갔지요. 이제는 속도를 조절해요.”

    그는 부상으로 입원해 있을 때 승부조작의 유혹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병문안하는 것처럼 찾아와 돈봉투를 내밀더라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는데…’ 하면서. 중간에 말을 끊어버렸지요. 집으로 전화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당신 때문에 돈을 엄청 잃었으니 본전이라도 하게 도와달라’고요. 경마꾼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한번 걸려들면 계속 코가 꿰이게 됩니다. 아예 듣지를 말아야지. 저는 경마를 천직으로 여기기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일에 연루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과거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경마부정이란 게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기수가 누군가에게 ‘내가 몇 경주에서 우승하겠다’라고 얘기하면 걸려드는 겁니다. 그게 정보거든요. 1960~70년대 뚝섬경마장 시절엔 상금을 타도 생활하기 힘들었어요. 그 시절엔 ‘누가 우승하게 해주자’는 얘기가 가능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부정이 불가능해요. 예전엔 심사위원이 쌍안경으로 경주를 지켜봤지만, 요즘은 26대의 카메라가 감시해요. 기수의 손동작까지 관찰됩니다.”

    “경마란 레저스포츠다”

    그가 경마기수가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식품가게를 하는 그의 이모부가 식당에 배달 갔다가 벽에 붙어있는 기수후보생 모집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였다. 이모부는 그에게 “체격도 맞으니 한번 응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첫해는 떨어졌다. 서류심사와 체력시험은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탈락한 것이다. 나는 그의 탈락사유를 듣고 배꼽을 잡았다.

    “면접위원이 ‘경마란 무엇이냐’고 묻더라고요. ‘경마란 레저스포츠다’라고 대답했지요. 뚝섬경마장 건물에 붙은 포스터에 그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면접위원이 비웃는 것 같더라고요. ‘경마란 2마리 이상의 말이 시합하여…’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하필 그때 그 포스터가 생각이 나서….”

    그의 고향은 충북 진천이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키 150㎝인 그는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면제판정을 받았다.

    “막상 면제가 되니 서운하더라고요. TV에서 특수부대 훈련을 보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몸무게가 50㎏ 이하라고 헌혈도 안 받아주더군요.”

    서울로 올라온 그는 막노동을 하다가 식품가게를 하는 이모부를 도왔다. 운전면허를 따고나서는 포클레인기사 조수 노릇을 했다. 춘천으로 포클레인 면허시험을 보러 갔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최저연령에서 몇 개월 모자랐다는 것이다. 그는 이 일에 대해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원래 1964년생인데 호적에 1965년으로 기록돼 있어 피해를 보았다면서.

    그는 기수양성소 공채 13기다. 1년간 교육을 받고 6개월간 마방(馬房)실습을 거친 후 기수가 됐다. 요즘은 교육기간이 4년이다. 기수양성소는 경마교육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 2년간은 교육만 받고 뒤 2년간은 실습교육을 받으면서 경마교육원 소속 기수로 출전도 한다. 말하자면 수습기수인데, 착순에 들면 상금도 받는다.

    기수생활은 고됐지만 적성에 맞았다.

    “교관한테 기합도 많이 받았어요. 선후배 관계도 엄격했고요. 나이 어린 선배가 수두룩했어요. ‘줄빠따’를 맞았지요. 요즘은 ‘빠따’도 사라지고 군기도 약해졌지만 선후배 관계는 아직도 엄격한 편이에요. 마음이 해이해지면 사고나 부상이 생기거든요. 1년에 한번 단합대회를 갖습니다. 축구도 하고 래프팅도 하고 서바이블게임도 해요. 팬들과 함께하는 기수체육대회도 하고.”

    출발하자마자 말에서 떨어져

    기수인생에서 가장 쓰라렸던 일을 묻자 1993년 9월 과천경마장에서 발생한 대형사고 얘기를 들려줬다. 추석 전주였다. 케뷔라는 외국산 1군말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마였다. 그날 마지막 경주에서 케뷔를 탄 그는 출발하자마자 발을 헛디뎌 땅에 떨어졌다.

    “케뷔가 혼자 달려 1등인가 2등인가 했어요. 난리 났죠, 팬들은. 기수가 일부러 떨어졌다고. 그 다음주는 휴장이었거든요. 명절 전 마지막 경주라 다들 있는 돈 없는 돈 다 걸었던 거지요. 거의 폭동 수준이었어요. 관람대에 불 지르고 소화기 터뜨리고 마사회장실 쳐들어가고…. 맞은 직원들도 있었대요. 결국 경찰이 왔지요.”

    ‘경마의 전설’  박태종 기수

    1월9일 서울 1경주가 끝나고 장구를 챙기는 박태종 기수.

    그는 2주 동안 말을 못 탔다. 마사회 측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못 타게 한 것이다. 그를 엽총으로 쏴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명절 주간의 경주가 폐지됐다. 그는 “내가 마사회 역사에서 큰 공을 세웠다”며 웃었다.

    그 시절 그는 돈을 쓸 줄만 알았지 모을 줄을 몰랐다. 우승이 늘면서 상금도 늘었지만 버는 대로 다 빠져나갔다. 총각 때라 놀러 다니면서 쓰기도 많이 썼지만 어른 모시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부모를 부양하면서 각각 9명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매들까지 챙겼다.

    그가 돈을 모은 것은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결혼하고 나서다. 1998년 부상을 당해 입원해 있을 때였다. 팬 10명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승마장에서 일하는 여자를 소개해줬다. 두 사람은 사귄 지 6개월도 채 안 돼 결혼했다. 1999년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부인은 8세 연하였다. 아내 얘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첫눈에 반했어요. 동기생 중 가장 늦기도 해 안 놓치려고 기를 썼지요. 말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말에 대한 아내의 지식이 상당히 도움이 됐죠. 아내는 결혼상대가 자기보다 말을 잘 타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대요. 그런데 ‘박태종’은 잘 몰랐대요. 아내가 저보다 한 뼘은 더 커요. 후배들도 대체로 부인들이 커요. 결혼 후 더 좋은 기록을 세우고 집도 사고 상금도 모으게 됐어요. 결혼 전에는 전셋집 살 돈도 없었거든요. 결혼 안 했다면 아마 합숙소 생활을 했을 겁니다.”

    그의 아내는 매니저 노릇을 한다. 전화도 대신 받고 대외적인 약속도 잡는다. 결혼 전에는 그가 출전할 때마다 경주장을 찾았는데 요즘은 대상경주가 열릴 때나 참석한다고 한다. 그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성적이 안 좋으면 ‘다음에 1등 하면 된다’며 용기를 준다”고 아내 자랑, 아니 아내 찬가를 이어갔다. 내가 “너무 잡혀 사는 게 아니냐”고 힐난조로 묻자 정색을 하고 “잡혀 사는 게 아니라 맡기는 게 편해서”라고 대꾸했다. 말 타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아내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얘기였다.

    올해 여섯 살인 그의 딸은 그림에 소질이 있는데 ‘말 부부’의 핏줄이 아니랄까봐 특히 말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한다. 그는 딸과의 관계에 대해 “자주 못 놀아줘서 불만스러워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모래가 며칠간 눈에 끼어 있어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는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로 소문나 있다. 마사회 휴일인 화요일을 빼고는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경마장으로 출근한다. 경주 당일도 마찬가지다. 5시 반부터 조교사가 지정해준 말을 마방에서 끌어내 경주훈련을 한다. 보통 하루에 4마리를 조교하는데 한 마리에 40분씩 걸린다. 훈련은 9~10시에 끝난다. 이후는 자유시간. 그는 하루 두 차례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오전엔 기수협회 지하에 있는 체육관에서, 오후엔 집 근처 휘트니스센터에서 한다. 주로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기와 근육운동도 하는데 바벨보다는 하체운동에 주력한다.

    그에 따르면 많은 기수가 눈병과 허리병을 앓고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눈병이 생기는 것은 경기 중 모래가 눈 속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경주 다음날 아침엔 눈가에 모래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며칠이 지나야 다 빠진다. 허리병은 승마자세와 부상 때문. 경주시 기수들은 상체를 납작 엎드려 머리와 허리를 말등과 평행선이 되게 한다. 당연히 허리가 편안할 리 없다. 게다가 낙마사고로 말발굽에 등이라도 밟히면 척추골절 따위의 중상을 입게 마련이다.

    그의 취미는 자전거타기와 골프. 젊을 때는 산에 오르기를 즐겼는데, 경주 중 부상으로 무릎 인대 수술을 두 번 받고나서는 꺼리게 됐다. 골프를 배운 지는 10년쯤 됐다. 80대 중반을 치는데 두 번 싱글을 했고 홀인원과 이글의 짜릿함도 맛봤다. 아내에게도 골프를 권유해 요즘은 부부가 함께 즐긴다고 한다.

    기수들은 매년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대체로 건강검진 결과에 이상이 없으면 자동으로 갱신된다. 다만 기승횟수가 마사회가 정한 기준에 미달되면 주의나 경고를 받고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부정행위나 과오로 여러 차례 제재를 당한 기록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는 은퇴 후에는 조교사를 할 생각이다. 과천경마장에 등록된 54명의 조교 중 60%가 기수 출신이다. 또 마필관리사에서 조교로 전향한 사람이 30%쯤 된다. 그밖에 마사회 직원 출신이 몇 명 있다. 이들은 경마교육원 교관으로 8년 이상 재직한 경력을 가졌다.

    그는 명예기수여서 지금이라도 기수를 그만두면 조교사를 할 수 있다. 명예기수란 통산 500승 이상을 올린 기수로서 현재 7명이 있다. 그중 현역은 박 기수뿐이다. 조교사가 되려면 필기, 실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봐야 한다. 하지만 명예기수는 시험이 면제된다. 조교사의 정년(면허만료시점)은 62세인데 마사회장의 추천을 받으면 2년 더 할 수 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베팅하면 좋겠다”

    그는 ‘경마가 사행심을 조장하는 도박’이라는 비판에 대해 덤덤하게 말했다.

    “돈이 오가는 곳이니…. 편하게 놀러왔다고 생각하고 (돈을) 쓰면 되는데 자기가 내놓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챙기려 하니 문제가 되는 거지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베팅하면 좋겠어요.”

    끝으로 경마팬들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판에 박힌 듯한 얘기를 해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간 팬들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좋은 기록을 세웠는데 앞으로도 응원해주신다면 그 힘으로 매 경주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의 안내로 기수협회 건물에 있는 기승훈련실에 가봤다. 말 형상의 기승기가 설치돼 있었다. 러닝머신처럼 스위치를 조작하면 기계가 움직였다. 훈련방식은 1~5단계까지 있었다. 그가 익숙한 동작으로 인공마에 올라 5단계로 맞췄다.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기계가 작동되자 경주할 때처럼 납작 엎드린 그의 몸도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는 엉덩이를 들고 말고삐를 바싹 당기고 채찍까지 휘둘러댔다.

    그가 내리고 난 뒤 내가 올랐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생각보다 자세가 잘 안 잡혔다. 내가 3단계로 맞추라니까, 그가 “기왕 하는 건데” 하면서 5단계로 작동시켰다.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정신없었다. 상체가 앞으로 콱 처박혔다가 뒤로 확 젖혀지는 동작이 빠르게 반복됐다. 다리근육도 팽팽히 조여졌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속으로 ‘이거 매일 타면 복근운동과 하체운동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등자쇠에 끼웠던 왼쪽발이 빠져 몸이 앞으로 숙여질 때마다 왼쪽 정강이가 말 옆구리에 세차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에서 내리자 하체가 약간 후들거렸다. 그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왼쪽 정강이에 기념이라도 하듯 붉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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