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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코드’를 찾아서 ⑦

현대자동차 판매왕 임희성

충남 공주에서 팔리는 자동차 10대 중 1대를 파는 사나이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현대자동차 판매왕 임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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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에서 배운 교훈

현대자동차 판매왕 임희성

자동차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임희성 과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그의 부인이다. 요즘은 부인이 그의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 현대차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니 2001년에 입사했더군요. 왜 자동차 영업사원을 지원했나요.

“어릴 때부터 영업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연관성이 있는 학과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에서 지금의 아내와 교제하던 중에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서둘러 1998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라 마땅히 갈 만한 직장도 없었고, 결국 주유소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24세였는데 기름배달도 하고 보일러 청소일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제게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창피함이 나중에는 보람으로 바뀌더군요. 근무는 힘들었어요. 오전 6시에 문을 열어서 밤 11시까지 일했어요. 한 달에 두 번 쉬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항상 ‘어디에 가도 그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주유소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랬더니 주유소 매출이 늘어나더군요.”

▼ 주유소 매출도 직원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폭이 있는가 보지요.

“그럼요. 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손님에게 최선을 다했고 배달을 가면 현장관리도 잘하고. 또 나중에 일을 마감할 때 정산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도 정확하게 했어요. 그러니까 주유소 사장님이 무척 좋아했어요. 사장님은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분을 통해 공주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임희성’이라는 이름을 좋은 쪽으로 알리게 됐어요.”



그는 그 주유소에서 4년을 일했다. 이후 농협에서 기능직으로 6개월 동안 가스배달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뒤 그 주유소에서 1년을 더 일했다. 그러다가 2001년 우연한 기회에 현대차에서 영업사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응시해 공주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 입사 초기에 판매실적은 어땠나요.

“처음이라 자동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상담 기술도 몰랐기 때문에 고참을 따라다니면서 옆에서 지켜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40대 정도 팔았던 것 같아요.”

▼ 영업사원으로 첫해에 40대 정도 팔았으면 잘한 것 아닌가요.

“사실은 저도 놀랐습니다. 더구나 돈을 너무 많이 받았아요. 첫해 월급을 포함해서 저는 2000만원 정도 벌었어요. 주유소에서 일할 때에 비해 너무나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주유소에서는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항상 일하는 코드에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현대자동차에 들어오니깐, 당시 토요일은 반근무일이어서 절반만 일하고, 일요일과 국경일에는 놀고. 오후 5시 반이 되니깐 일이 끝났다고 집에 가라는 거예요. 그리고 오전 8시 반에 출근하고. 세상에 이런 직장이 있는가 싶었어요. 처음 2,3년간은 적응을 하지 못했어요.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어요. 주유소에서는 기름으로 목욕을 하면서 고생을 해도 연간 1500만~2000만원 벌어요. 그런데 현대자동차라는 좋은 회사에 와서,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에 오히려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는 남는 시간에 ‘일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해소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잠재적인 고객을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했다. 평일에도 근무시간이 끝난 뒤 현장을 누볐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틈틈이 택시회사를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했다.

입소문의 힘

남이 쉴 때 쉬지 않고 일하는 ‘임희성’의 모습은 금세 공주에서 화제가 됐다. 택시회사 사장들은 “임희성이라는 친구가 정말로 열심히 일한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은 계속 퍼져 나갔다.

“사실 제가 열심히 한 것은 10%밖에 되지 않아요. 나머지 90%는 입소문입니다. ‘임희성이 열심히 한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해줬고, 그것이 지금의 임희성을 만든 것입니다.”

▼ 자동차 판매실적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2002년 월드컵 때였습니다. 그때는 경기가 좋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업’돼서 지냈어요. 자동차를 사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축구경기에서 우리가 이기면 다음날 막 사주고 그랬습니다. 저는 월드컵 덕을 많이 봤어요. 그때 판매대수가 100대가 넘었고, 지역 판매왕이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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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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