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하기스를 건넨 스코티시 청년의 자부심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10-02-03 0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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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연구실 동료에게서 스코틀랜드 전통음식을 선물로 받았다.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먹을 엄두를 못 내고 며칠째 냉동고에 넣어둔 게 마음에 걸린다. 내가 머물고 있는 글래스고는 영국이면서 영국이 아니고, 심정적으로 독립을 원하면서 실제적으로는 독립을 주저하는 스코틀랜드다. 이곳 사람들의 남다른 자의식과 영국에 대한 반감이 도처에서 확인된다.
    하기스를 건넨 스코티시 청년의 자부심

    글래스고 시내 전경.

    지금 우리 집 냉동고에는 정체불명의 스코틀랜드 음식 하나가 한 달 가까이 꽁꽁 언 채로 방치돼 있다. 나는 웬만해서는 우리나라 남의 나라 음식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편이고, 남이 다 맛없다고 하는 영국 음식도 냠냠 맛있게 먹어치우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도 냉동고에 있는 꾸러미는 정말이지 처치곤란이다. 그러나 이걸 안 먹을 수도 없다. 영국 친구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음식꾸러미를 곱게 포장해서 건네준 영국 친구 앤디는 “끓는 물에 2~3분 데우기만 하면 된다”며 요리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그러지? 거위 간이라도 받았나?’ 하고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해 이 꾸러미의 정체를 설명하자면, 스코틀랜드 전통요리인 ‘하기스(Haggis)’다. 소시지 껍질에 양의 내장과 각종 양고기 부산물, 양파 등을 꼭꼭 채워 넣은 요리다. 잿빛 소시지같이 생긴 게 언뜻 봐서는 순대와 비슷하다(가만 생각해보면 내용물도 순대와 비슷한 듯싶다). 보기만 해도 금세 양고기 누린내가 확 끼칠 것 같아서 도저히 손이 가질 않는다. 앤디가 그 많은 크리스마스 선물 중 하필이면 하기스를 선택한 데는 짧지 않은 사연이 있다.

    1521년에 지어진 글래스고대학 본관에 있는 내 연구실에는 두 명의 동료가 있다. 박사과정 3년차인 아일랜드 아가씨 에이미, 그리고 나와 같은 해에 박사과정을 시작한 글래스고 토박이 앤디다. 둘 다 전공이 영화학이다.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남학생은 후드 티셔츠(여기서는 후디(Hoodie)라고 한다)에 청바지, 여학생은 후드 티셔츠에 미니 청치마’를 마치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글래스고대학 학생들 사이에서 앤디와 에이미는 단연 눈에 띄는 멋쟁이다.

    글래스고 지역신문에 영화비평을 쓰는 앤디는 내 전공인 문화정책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문화정책연구센터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도 가끔 나를 따라 참석하는데, 금발 구레나룻에 까만 비니(beanie)를 쓴 앤디가 세미나실에 등장하면 우리 과 여학생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휘둥그레진다. 아니, 저 아줌마가 어디서 저런 킹카를 물고 왔지? 이런 눈초리다. 아쉽게도 앤디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약혼녀가 있는 ‘품절남’이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아니다



    내 연구실이 있는 글래스고대학 본관은 500년 된 건물이니만큼 ‘호그와트 마법학교’ 뺨치는 운치와 분위기로 가득하다. 문제는 오래된 건물이라 겨울이면 무척이나 춥다는 것이다.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에 있는 에이미는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느라 연구실에 잘 나타나지 않고, 대개 박사 1년차인 앤디와 나 둘이서 연구실을 지킬 때가 많다. 손이 곱아서 책장을 넘기기 어려울 만큼 추운 날이면 전기포트에 커피를 끓여 마시며 앤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앤디는 글래스고 토박이답게 억센 글래스고 사투리를 쓰지만 나와 이야기할 때는 표준 영어를 쓰려고 나름 신경을 쓴다. 사실 글래스고에 오기 전까지 나는 주변 영국 사람들로부터 ‘글래스고에 가면 사투리 때문에 엄청 고생할 걸…’ 하는 얘기를 적잖이 들었다. 그래서 대체 글래스고 말이 어떻기에 그러나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여기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리나 상점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억양도 런던 영어와 판이하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r’ 발음을 ‘르-’ 하고 길게 끄는데, 예를 들어 ‘girl’은 ‘갸-를’로, ‘smart’는 ‘스마르-트’로 발음한다. 설상가상으로 항구도시답게 이곳 사람들의 말하는 속도는 영국 평균보다 상당히 빠른 편이다. 상점 점원이나 은행 직원들, 또 지하철역 매표원들은 100% 글래스고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말이 안 통해 낭패를 보는 일이 적지 않다.

    앤디 역시 글래스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곳 사투리를 쓴다. 하지만 마음먹으면 ‘BBC 영어’ 혹은 ‘옥스퍼드 영어’라고 하는 표준 영어도 얼마든지 구사한다. 그래서 친절한 영국신사답게 나와 이야기할 때면 표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앤디가 갑자기 흥분해서 글래스고 사투리를 마구 쏟아낼 때가 있다. 바로 스코틀랜드 정치 문제가 화제에 오를 때다. 앤디는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을 지지하는 동시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찬성한다. 그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하면 노르웨이같이 작지만 강력한 부국이 될 거야” 하며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가 우리나라의 경상도나 충청도처럼 영국의 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코틀랜드는 절대 영국이 아니다. 흔히 우리는 ‘영국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할 때 ‘English’라는 표현을 쓰는데, 스코틀랜드에서 무심결에 “English people tend to(영국 사람들은 말야)…”라고 말을 꺼내면 상대방의 시선이 금세 싸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티시(Scottish)’나 ‘브리티시(British)’라는 표현을 써야만 한다. 실제로 BBC 뉴스를 보면 앵커들이 영국 사람들을 지칭할 때 반드시 ‘브리티시’라고 하며, 영국은 꼭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영국의 정식 국가명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문제는 이런 단순한 표현 차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내가 겪어본 글래스고 사람들은 대부분 정말로 자신들이 ‘영국인’이 아닌 ‘스코트인’이며, 자기들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국 사람들이 지적하는 스코틀랜드 사투리, 즉 스코티시를 굳이 고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스코티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창피해 하기는커녕, 바른 말을 사용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말은 영어가 아니라 스코티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BBC스코틀랜드에서 제작한 TV 프로그램의 해설자는 BBC 영어가 아니라 스코티시를 사용한다.

    세인트 앤드루스 기

    하기스를 건넨 스코티시 청년의 자부심

    지난 연말 에든버러에서 열린 호그마니 축제는 스코틀랜드의 새해 맞이 축제다. 스코트인들이 바이킹 복장을 하고 횃불행진에 나섰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영국,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은 언어 외에도 도처에서 발견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차에도, 관공서에도 유니온 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깃발인 세인트 앤드루스 기(旗)- 파란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가 X자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가 걸려 있다. 유니온 잭과 세인트 앤드루스 기를 나란히 걸어놓지 않고, 세인트 앤드루스 기만 걸어놓는다.

    신문만 해도 그렇다. 에든버러나 글래스고에서는 영국의 정론지로 일컫는 ‘더 타임스’나 ‘가디언’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더 헤럴드(The Herald)’나 ‘더 스코츠맨(The Scotsman)’을 본다. 각기 1783년과 1817년에 창간된 두 스코틀랜드 전국지는 스코틀랜드에서 ‘더 타임스’나 ‘가디언’ 등 런던 5대 정론지의 점유율을 합한 것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더 타임스’나 ‘가디언’이 도리어 지방지 취급을 받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사용하는 돈도 다르다. 스코틀랜드 역시 잉글랜드와 같은 파운드를 사용하지만, 스코틀랜드 은행에서 발행하는 스코틀랜드 파운드 지폐에는 월터 스콧, 로버트 더 브루스 등 스코틀랜드 위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반면, 잉글랜드의 모든 파운드 지폐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잉글랜드의 파운드는 스코틀랜드에서 통용되지만,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잉글랜드에서 쓰기 어렵다. 한번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택시를 탄 후, 스코틀랜드 파운드로 요금을 냈는데,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는 내가 낸 지폐를 힐끗 보더니 “잉글랜드 파운드는 없으십니까?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받기가 좀 곤란합니다” 라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의회를 가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행정, 교육, 보건 정책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결정되지 않고,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결정된다. 1997년 스코틀랜드 의회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스코틀랜드에서 치러졌을 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74.3%의 찬성표를 던졌고 노동당 정부는 선거 공약이던 스코틀랜드 의회독립을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교육이나 행정, 교통 등은 잉글랜드와 다른 점이 많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초등학교 교육이 만 4세부터 시작되지만 스코틀랜드의 초등학교는 만 5세에 시작된다. 잉글랜드의 대학들은 대부분 3년제인 반면, 스코틀랜드 대학은 4년제다. 이렇게 세세하게 따져보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차이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코틀랜드는 영국이라는 연방 국가의 한 연방체인 동시에 ‘비공식적인 국가’인 것이다. 스코틀랜드만의 총리(The First Minister)도 따로 있다. 재미있게도 영국의 현직 총리인 고든 브라운과 그 전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 둘 다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에 ‘열 받은’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대표를 참석시키려 했다. 1999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를 통해 체결된 ‘자치권 이양(Devolution)’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의회는 외교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의회는 코펜하겐 의회에 자신들만의 대표를 참석시키기를 원했고, 알렉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총리의 이름으로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서한을 보냈다. 브라운 총리의 답장은 간결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이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의 대표 자격으로 의회에 참석할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대답이었으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에 대해 몹시 발끈했다.

    2010년 국민투표 실시?

    사실 스코틀랜드 의회의 다수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내정 자치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스코틀랜드 독립’의 골자는 스코틀랜드에서 걷히는 세금을 런던으로 보내지 않고, 스코틀랜드만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단, 독립을 하더라도 스코틀랜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국가 원수로 계속 모시겠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오랜 공약이다.

    그러나 실제로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이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일단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의회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찬성할 리 없다. 스코틀랜드 의회 내부에서도 국민당을 제외한 노동당과 보수당은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자체에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투표 참가 연령을 만 16세로 낮추고, 소수당 중 하나인 자유당과 연정을 모색하는 등 갖가지 묘안을 짜내고 있지만 별 효력은 없어 보인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2년 전부터 ‘2010년에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막상 2010년이 된 현재까지 국민투표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국민투표가 성사된다고 해도 스코틀랜드 사람의 과반수가 독립을 지지할 것 같지는 않다. 스코틀랜드 의회 구성에는 찬성했던 사람들도, 막상 독립이라는 문제에 이르면 신중해지는 게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투표를 할 경우 독립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응답자는 30%를 밑돌았다. 앤디 역시 원칙적으로는 독립을 원하지만, 막상 국민투표를 하면 찬성할 지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시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이나 잉글랜드에 가서 직업을 갖는 젊은이가 적지 않은데, 만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별개의 국가가 되면, 그 같은 이동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앤디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핵 기지 중 하나가 스코틀랜드에 있다는 점도 스코틀랜드 독립의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굳이 강대국 영국의 한 부분으로 머무르지 않고, 조그만 나라가 되더라도 독립하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잉글랜드 인구가 5000만에 육박하는 데 비해 스코틀랜드 인구는 600만에 불과하다. 도시 규모만으로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상대가 안 된다. 영국의 수도 런던의 인구는 1000만에 가까운 데 비해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인구는 100만이 채 안 된다. 스코틀랜드라는 이름으로 독립한다면, 스코틀랜드가 노르웨이 같은 부국이 될지, 아일랜드처럼 유럽의 약소국가로 쪼그라들지는 미지수다.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심정적으로나마 독립을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였다. 다시 말하면, 3000년에 이르는 스코틀랜드의 긴 역사 중에 스코틀랜드가 영국이라는 나라의 한 부분으로 속했던 것은 최근 300년 정도뿐이다.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603년에 한 나라가 되었다. 이해에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가 후사 없이 타계하며 자신의 7촌 조카뻘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나라는 하나가 된 것이다. 그 후에도 스코틀랜드는 계속 자신들의 독립 의회를 가지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의회가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단일 의회로 통합된 것은 1707년의 일이다. 이후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 모든 권한을 빼앗긴 스코틀랜드인들은 300년 만인 1999년, 마침내 자신들의 의회를 부활시켰다.

    잉글랜드보다 양질?

    하기스를 건넨 스코티시 청년의 자부심

    스코트랜드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글래스고대 동창 앤디.

    통합의 역사는 짧은 데 비해, 스코틀랜드의 나머지 역사는 대부분 영국과의 전쟁과 갈등, 독립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스코틀랜드의 20파운드 지폐에 초상이 박혀 있는 로버트 더 브루스 역시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와 함께 잉글랜드에 대항했던 스코틀랜드 독립영웅이다. 잉글랜드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든 인물을 화폐에 새겨 넣은 것만 봐도 스코틀랜드인들의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을 짐작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가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에서는 거의 순교자처럼 떠받들어진다. 메리 여왕은 신하들의 반란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잉글랜드로 망명한 무능한 군주였는데도 말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영화배우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망명생활(현재 코너리는 바하마에 살고 있다)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정도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자의식과 반감이 이렇게 강하다보니 지금처럼 네 개 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말고 더욱 강한 ‘영국 통합 축구팀’을 만들어 출전하자는 주장은 스코틀랜드에서 씨도 안 먹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영국으로 유학 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영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잖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앤디의 설명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나는 스코트인이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는 데는 대략 이런 이유가 있다. 첫째, 원론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이기 때문에 현재 한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둘째, 스코틀랜드는 북해에서 나오는 브렌트산 원유가 있기 때문에 독립하고 나면 경제적으로 더 부강해질 가능성이 높다(실제로는 미지수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셋째, 잉글랜드에 비해 스코틀랜드에 훌륭한 인물이 훨씬 더 많다.한마디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나은 민족’이다. “그래도 인구수로 따지면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10분의 1밖에 안 되잖아?” 하는 내 반론에 앤디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그래, 인구 수로만 따지면 그렇지. 하지만 스코틀랜드 쪽이 훨씬 양질이잖아.” 그런 대화가 오고간 뒤에 앤디가 내게 ‘스코틀랜드 맛을 한번 느껴보라’면서 하기스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하기스를 건넨 스코티시 청년의 자부심
    전원경

    1970년 출생

    연세대, 런던 시티대 대학원(석사) 졸업

    월간 ‘객석’, ‘주간동아’ 기자

    저서 :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역사가 된 남자’ 등

    現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난 뒤 연구실에서 만난 앤디에게 나는 “음, 하기스 맛이 말이야. 양고기 같기도 하고, 쇠고기 같기도 하고…”하면서 먹어보지도 못한 하기스 맛에 대한 감상을 꾸며서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연구실에 놀러오는 아들 희찬이에게 액션 피겨 장난감도 챙겨주는 착한 앤디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미안해, 앤디. 다가오는 번스 나이트(1월25일,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 기념일)에는 꼭 냉동고의 하기스를 꺼내서 보글보글 삶아 먹어볼게, 한국 아줌마가 세상에 못 먹을 게 어디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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