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해외에서 밀반입되는 히로뽕 100g 작업하면 검찰이 풀어준대요”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0-03-02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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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약사범이 보낸 편지…“인간사냥 두(頭)당 300만원”
    • 검찰에 기생하는 대한민국 대표 ‘야당’ 3인방
    • 검사실 드나드는 마약 판매책, 검찰에서 선물도?
    • 만기복 이용해 교도소에 마약 들여와 투약
    • 마약사범 동생 구하려다 마약쟁이 된 대기업 사장
    • 중국에서 사형당한 대한민국 최고 히로뽕 제조책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공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을 찾고 있는 탐지견.

    아마도, 여기에 등장하는 마약(히로뽕)의 세계는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다. 단정하건대 경찰도,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히로뽕의 유통과 소비의 실체를 모두 알지는 못한다. 지난해 한 언론은 히로뽕 투약자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산술적으로 따져도 우리나라에는 히로뽕 판매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최소 1만명(히로뽕 공급책 한 사람당 투약자 100명 기준)은 넘을 것이다. 한 명의 제조책이 10명의 판매책을 거느리고 있다고 가정하면, 히로뽕을 만들거나 외국에서 들여오는 사람만 100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가장 대중적인 마약으로 자리 잡은 히로뽕은 이미 사회 깊숙이 뿌리박고 있고 또 가까운 곳에 있다. 주부, 사업가, 연예인에게까지 히로뽕의 손길이 뻗쳤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지난 1월말, ‘신동아’ 편집실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수도권의 한 구치소에 수감돼 2심 재판을 기다리는 한 마약(히로뽕)사범이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쓴 40대의 S씨는 마약 투약, 교부 등의 사실이 인정되어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고 했다. 판사는 “여러 번의 히로뽕 투약, 판매 전과가 있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며 방망이를 쳤지만 S씨는 편지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히로뽕을 보관해준 죄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편지 속 사건은 그저 그런 사건이다.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은 있는 법이니까.

    정작 S씨의 편지가 눈길을 끈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S씨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40쪽 분량 편지의 상당 부분을 검찰의 마약사범 수사 방식의 문제점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검찰이 어떤 식으로 마약수사(속칭 ‘작업’)를 하는지를 시작, 과정, 결말로 나누어 설명한 대목은 기자가 느끼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S씨는 자신이 구속된 사건도 검찰의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과 ‘야당’의 한집살이



    S씨의 편지를 받은 며칠 뒤 S씨의 동거녀라는 여성 K씨가 ‘신동아’ 편집실을 찾아왔다. K씨는 자신을 “마약전과(투약, 판매) 6범의 전과자”라고 소개했다. 10년 넘게 히로뽕을 투약했고 마약을 하면서 S씨를 만났다고 했다.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의 부인이었다는 그는 강남에 집도 여러 채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하게 된 이혼, 이로 인한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우연찮게 히로뽕에 손을 댔고 10년 정도 히로뽕을 끼고 살았다.

    “10여 년 전에 우울증이 심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어요. 그런데 같은 방을 쓰던 20대 여성이 매일 밤마다 커피에 뭘 타 먹는 거예요. 그래서 뭐냐고 물으니 신경안정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먹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때는 그게 히로뽕이라는 걸 몰랐어요. 퇴원한 후에도 답답하면 약을 먹곤 했는데, 당시 약을 대주던 판매책이 구속되면서 덩달아 붙잡혔죠. 경찰서에 가서야 내가 먹어온 것이 히로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교도소를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마약사범들을 만났고 이 바닥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서울 세관에서 열린 마약밀수전시회. 2007년 5월1일.

    기자는 K씨를 3번 만났고 K씨의 소개를 받아 여러 명의 마약중독자, 판매자들을 접촉했다. K씨가 소개한 사람들 중에는 20년 넘게 히로뽕을 투약했으며 출소한 지 10여 일이 됐다는 남성도 있었다. 40대인 이 남성은 마약중독의 후유증으로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마약판매를 업으로 한다는 또 다른 남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마약세계를 친절히 설명했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사람들 중 일부는 종종 약(히로뽕)에 취해 있는 듯 보였다.

    이들은 기자를 ‘대한민국 마약시장’으로 친절히 안내했다. 마약이 어떻게 만들어져 유통되는지, 얼마에 팔리는지, 사람들은 왜 마약에 손을 대는지, 누가 얼마에 파는지, 검찰은 어떻게 마약사범을 수사하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이 취재 대상이 됐다. 이들은 오랜 경험과 인맥으로 우리나라 마약세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마약사범들의 계보도 그려줬다.

    대가리 작업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마약사범에게서 압수한 증거물들.

    S씨와 K씨의 주장처럼, 검찰이나 경찰이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선 흔히 함정수사가 사용된다. 마약 제조, 유통, 투약의 세계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흔히 검찰은 마약세계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제보를 받아 마약사범을 검거한다. 마약세계에서 이들은 흔히 ‘야당’이라고 불린다. 몇 해 전 개봉됐던 영화 ‘사생결단’에도 수사기관과 야당의 관계가 잘 그려져 있다. 영화에서 황정민(형사)은 ‘야당’역인 류승범(마약 판매책)의 사업(마약판매)을 보장해주고 그 대가로 다른 지역의 마약판매·투약자들에 관한 정보를 넘겨받아 실적을 낸다.

    검찰이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해 ‘야당’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활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검찰과 야당은 어떤 식으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S씨는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보통 야당이 하는 행동으로는 각 검찰청 및 수사기관에 드나들며 자기 주변에 있는 다른 투약자 또는 범죄에 대해 제보하고, 금품을 주며 부탁한 피의자 앞으로 공적서(검찰에서 수사협조를 했다고 판사에게 올리는 수사 협조 공문)를 써주는 것입니다. 보통 건(범죄인 1명)당 300만~500만원씩 받는데 이것을 일명 ‘대가리 작업’이라고 부릅니다. 야당은 검찰이 자체적으로 투약자 및 판매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검거하기가 힘이 든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검찰 및 수사기관에 제보해주고 자신들은 그 대가로 비호를 받기도 합니다. 야당은 때로는 마약 투약자나 판매자를 검거하는 현장에도 수사관들과 함께 나가서 검거를 하며, 수사관들과 함께 나갔던 야당들의 인원에 따라 돈을 챙기기도 합니다. (성동구치소 피의자 OOO의 경우) ‘오늘은 셋(야당)이라 80만원밖에 못 벌었다’라는 등의 말을 공공연히 하기도 합니다.”

    S씨에 따르면 야당은 실적을 내기 위해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컨대 마약에서 손을 뗀 전과자에게 히로뽕을 탄 커피 등을 마시게 한 뒤 마약단속반이 덮치도록 하거나 친분을 이용해 마약을 보관케 한 뒤 검찰에 마약 보유 사실을 제보한다는 것이다.

    S씨는 자신이 구속된 사건도 수도권 OO지방검찰청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야당인 이OO(62)씨와 30대 야당 박OO씨를 끌어들여 만든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박OO씨가 부산에서 받아온 히로뽕 10g을 S씨에게 보관케 하고 그중 일부를 자신에게 전해주도록 시킨 뒤 그것을 검찰에 알려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S씨는 “소변검사에서 히로뽕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검찰은 나를 히로뽕 투약(2~3회)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체포되는 현장에 검찰 직원들과 함께 야당인 이OO씨가 나타났다는 점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여러 번의 마약전과가 있는 S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S씨 사건에 참여했던 검찰 관계자는 S씨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로 소설이다”라고 일축했다.

    검찰과 흥정

    S씨와 K씨는, S씨가 체포된 뒤 검찰 관계자로부터 흥정을 제의받았다고 주장했다. “약(히로뽕)을 받은 것과 2~3번 맞은 것을 불고, 외국에서 밀반입되는 물건 100g만 작업하자. 성공하면 벌금형으로 끝내거나 무죄로 풀어주겠다”고 검찰이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 S씨는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일(제보)은 외국에서 밀반입 100g을 해주는 것으로 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재미교포 OOO(멕시코 거주)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하고 가능하다는 말에 멕시코 현지에서 들여오는 히로뽕 100g의 제보를 해주기로 하고 저는 최하형(구형)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관계자로는 국정원의 박OO부장, 멕시코의 OOO, 검사실 등이며 그때부터 주 2회 정도 검찰에 출정을 다니며 제 소유의 핸드폰으로 멕시코와 통화를 하였고 밀반입자의 개인사정으로 12월에서 1월 중순경으로 미뤄지는 과정에서 야당인 박OO과 함께 다니는 야당 최OO는 자신도 도움을 준다며… 야당 이OO은 2010년 1월8일 금요일에 북부지검 계장실에 출입한 사실까지 있습니다.”

    K씨는 “S씨가 이 작업을 하느라 한 달 국제전화비가 200만원 넘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S씨와 검찰의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S씨와 K씨 그리고 취재 도중 만난 마약 투약자, 판매책 등은 “야당이 작업의 대가로 받는 돈은 한 사람당 300만~500만원, 히로뽕의 경우 10g 정도면 약 2000만~30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단순 투약으로 구속됐을 경우에는 보통 3~5명, 판매로 잡혔을 경우에는 3000만원 정도를 야당에 주고 작업을 하면 최하형(주로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국정원, 검찰 등 마약과 관련된 정보,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이 일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들의 진술과 관련, 검찰의 한 마약관련 부서 관계자는 “야당이 검찰의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사주해 함정수사를 벌이거나 이들을 수사에 참여시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마약사범들이 검찰청을 제집처럼 드나든다는 것도 허무맹랑한 얘기다. 마약사범들이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경우 일정부분 정상을 참작해 구형량을 조절하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한 작대기에 100만원

    히로뽕 투약 및 판매 혐의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최근 출소한 최O영(50)씨는 20여 년 전 당구장을 운영하다 히로뽕을 처음 경험했다고 한다. 아는 동생이 피로회복제라고 준 흰색 가루를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히로뽕이었다는 것. 물에도 타 마시고 커피에도 섞어 먹었는데 그 약만 먹고 나면 2~3일씩 잠도 안 오고 힘이 펄펄 넘쳐 좋았다고 했다. 그 약을 먹고 여자와 섹스를 하면 12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흥분할 수 있었는데 그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씨는 히로뽕을 오래 하다보니 자연스레 유통구조를 알게 됐다. 중간 판매책, 투약자도 여러 명 소개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판매에도 나섰다. 처음 판매책으로 나섰을 때 최씨는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상선(上線)을 잘 만난 덕에 물건도 싸게 받았고 무엇보다 판로가 좋았다. 1994~95년 히로뽕 가격이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10g을 100만~120만원에 사서 주사기 한 개(속칭 ‘한 작대기’, 히로뽕 0.8~1g)당 100만원씩에 팔았다고 했다. 10g은 주사기 14개 분량을 만들 수 있는 양이며 주사기 1개로는 10~14번 투약할 수 있다.

    가루인 마약을 주사제로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사기에 마약을 넣고 증류수나 식염수를 넣어 희석시킨 뒤 한 눈금씩 맞는다. 초보자들은 한 눈금을 2~3차례에 걸쳐 나눠 맞기도 한다. 중독이 심해질수록 투약량은 점점 늘어난다. 약 기운을 느끼는 데는 주사를 쓸 경우 보통 2~3초, 물이나 커피에 타서 마실 경우 2~3분이 걸린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경찰에 검거된 히로뽕 투약자들. 1992년.

    최씨에게 물건을 주는 판매책은 매매가 될 때마다 그 대가로 일명 ‘도시락’(2~3g 의 히로뽕)을 챙겨줬는데 최씨는 이것을 받아와 본인이 직접 투약하거나 여자들에게 선물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많이 팔 때는 하루에 100g도 팔아봤다. 하루 종일 팔고 나면 수백만원이 현금으로 떨어졌고 종종 1000만~2000만원의 거금을 쥐는 날도 생겼다. 최씨는 이 돈을 주로 쇼핑이나 여자에게 썼다.

    “약에 취해서 길을 가죠, 그러다 백화점 같은 데를 지나면 갑자기 쇼핑에 꽂히는 거예요. 그럼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사요.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1000만원짜리 무스탕도 샀고 100만원 넘는 발리 구두도 여러 켤레 샀어요. 당장 돈이 없으면 계약금 걸어놓고 다음 날 가서 사기도 하고, 그때는 항상 약에 취해 있었으니까. 여자에 꽂히면 하루고 이틀이고 섹스만 했어요. 돈도 많을 때니까 여자도 많았죠.”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마약사범들

    마약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고있는 히로뽕 투약자들.

    그에게 히로뽕을 대주던 사람은 1990년대 후반까지 부산에서 마약 판매 1번으로 불리던 정OO씨라는 50대 남성이었다. 남자답고 배포가 두둑했으며 ‘관작업’(경찰, 검찰 관리)을 잘해서 그와 일할 때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최씨는 “오히려 검찰의 보호를 받았다. 아주 공격적으로 약을 팔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종종 최씨에게 검찰에 넘길 약쟁이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는데 최씨는 그럴 때면 돈 없고 전과가 적은 고객을 몇 명씩 넘겨주곤 했다. 약을 팔아 투약케 하고 그들의 위치를 정씨를 통해 검찰에 알려주면 됐다. 그 다음부터는 검찰이 알아서 했다.

    최씨는 역시 부산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김OO씨라는 판매책의 물건도 받아오곤 했는데 한번은 그와 함께 부산 모처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히로뽕 1kg을 4000만원에 공동구매하기도 했다. 김씨와 최씨가 1kg을 모두 파는 데는 1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1000개 이상의 작대기를 만들 수 있고 3000명 이상이 한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었다. 당시 시가로 따지면 8억~10억원 정도였다.

    북한산 크리스탈

    순도가 100%에 가까운 히로뽕을 업계에서는 흔히 ‘크리스탈’이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 약을 해온 약쟁이들은 먹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탈은 만나기가 매우 힘들다. 취재 중 만난 한 40대 마약 투약자 유OO씨는 “예전엔 술(히로뽕)이 아주 독했다. 그런데 요즘 도는 술은 너무 약해서 양을 예전보다 2배 가까이 늘려야 한다. 요즘 도는 술 중에는 북한산이 가장 질이 좋은데 순도가 보통 75% 이상이다. 75% 정도면 크리스탈로 인정해 준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산은 주로 일본으로 들어가고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다고 한다. 나도 몇 번밖에 못 봤다”고 말했다.

    유씨와 최씨 등에 따르면 마약은 교도소에도 밀반입되고 있다. 이들은 본인들이 직접 교도소에서 히로뽕을 받아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마약사범들이 출소 한 달 전에 사회로부터 받는 만기복(출소 때 입고 나갈 옷)을 통해 들여오는 식이다. 주로 판매책이나 선배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넣어줬다. 작은 종이에 싸서 옷 속에 넣어둔 히로뽕은 쉽게 발각되지 않는다.

    “만기복이 들어오면 한번 입어보자고 교도관에게 그래요. 그 사이 몸이 불었나 한번 봐야 한다고. 옷 속에 약이 있다는 걸 알고 입는 거죠. 슬쩍 빼놓고 밤이 되면 먹는 겁니다.”

    K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K씨는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새로 들어온 마약사범이 몰래 숨겨 들여온 마약을 같은 방 재소자들과 나눠 먹은 일도 있다고 했다. 3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해봤는데 그 안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더라고요. 잠도 안 오죠. 그렇다고 남자가 있나. 몸만 힘들어요. 어떤 애는 약을 먹고 취해서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나오더라고요. 정말 할 짓이 못 돼요.”

    최씨는 “교도관들도 만기복에 약이 숨겨져 들어오는 걸 안다. 하지만 괜히 문제가 커질 수 있어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해본 뒤로는 선배들에게 더는 술(히로뽕)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다. 할 일도 없고 힘만 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마약 계보

    기자는 취재 중 만난 마약판매책들을 통해 대한민국을 움직여온 마약세계의 큰손들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다만 이들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정OO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히로뽕 제조책이었다. 1970년대부터 부산, 대구 등지에서 주로 히로뽕을 제조했는데 한때 수제자만 10여 명을 거느릴 정도였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해 온 속칭 ‘5대 제조책’ 중 그 규모가 가장 컸다는 게 마약 판매상과 마약수사를 해온 검찰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 그러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전후해 그는 홀연히 중국으로 떠났다. 그가 중국에서 만들어 우리나라 곳곳에 뿌린 히로뽕은 순도가 높아 인기가 좋았고 양도 많았다. 정씨는 1996년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사형을 당했다.

    2004년 부산에서 붙잡힌 신OO(50대)씨는 ‘메이드 인 코리아’ 히로뽕을 만든 마지막 제조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5대 제조책’들이 하나 둘 일선을 떠나거나 외국으로 나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한국을 지켰다. 5대 제조책 시대가 종말을 고한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신씨는 지금도 마약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존재로 불린다. 1980년대 초, 달리는 화물차에서 히로뽕을 제조하는 방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 바로 신씨였다. 이 방법은 지금도 한국과 중국 등에서 감기약 등을 이용해 히로뽕을 제조할 때 사용되고 있다. 마약 제조 시설을 갖춘 화물차가 부산을 출발해 서울을 찍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대략 10시간 동안 히로뽕이 완성되는 식이다. 히로뽕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역한 냄새로 인해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던 문제를 완벽히 극복한 것. 신씨의 제조기술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신씨는 보통 3~4일이 걸렸던 제조공정을 10시간대로 줄이는 기술도 고안해냈다. 신씨를 기억하는 한 전직 히로뽕 판매상의 얘기다.

    “세 사람이 세 시간 정도씩 돌아가며 13종류의 염산류 화학약품을 고아서 (히로뽕을) 만들거든요. 문제는 최종산물인 고체염산 속에 박힌 히로뽕을 추출해내는 것인데, 원래는 이 과정에 기름을 썼다고 해요. 냉각부터 추출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죠. 그런데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나온 겁니다. 또 급랭시킨 결정체를 한지에다가 쏟아 깨서 기름을 빼는 기술도 나왔고요. 이 모든 기술이 신씨의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신씨는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신씨가 만든 술(히로뽕)에는 종종 한지조각이 묻어 있곤 했답니다.”

    2000년대 초반 신씨가 검찰에 구속된 이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히로뽕은 자취를 감췄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신씨가 사라진 이후 전통적인 방식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히로뽕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 요즘 국내에 유통되는 히로뽕의 대부분은 중국, 필리핀, 괌에서 수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물차에 만든 공장

    앞서 설명한, 검찰과 작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야당’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겠지만 흔히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3대 야당’의 활약은 그중 돋보인다고 마약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3대 야당’ 중에서도 대표 격인 이OO씨는 S씨가 ‘신동아’에 보내온 편지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씨는 머리와 처세가 좋고 따르는 동생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전해진다. 현재 활동 중인 큰 판매책의 상당수가 이씨에게서 일을 배웠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씨는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 동생들을 움직여 작업과 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에는 유명 스포츠의류 기업 대표인 P씨로부터 “마약중독으로 구속된 동생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도 오히려 P씨를 마약중독자로 만들어 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씨에 의해 마약중독자가 된 P씨는 지금도 성남 등지의 모텔과 스포츠 마사지업소 등을 전전하며 히로뽕을 맞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때 이씨와 내연 관계였다고 밝힌 50대 초반의 한 여성은 기자에게 “2000년대 초반 검찰에서 이씨에게 연말 선물로 인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국정원 직원, 검사, 수사관들과도 아주 친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1980년대 최고 인기를 끈 가수 A씨의 전 처형인 60대 여성과도 오랫동안 교류하며 투약, 판매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OOO씨, 수년전 히로뽕 투약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유명 여성 탤런트 H, 함께 구속됐던 남자친구도 한때 이씨의 오른팔인 김OO씨와 박OO씨를 통해 히로뽕을 공급받았다.

    트라이앵글의 한 사람인 서OO(48)씨는 충청도 출신으로 현재 경기도 분당에 15억원대 빌라를 가지고 있다. 서씨 또한 검찰에 발이 넓어 한때 “서씨가 못 빼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마약을 판매해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투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이 뜸하다는 후문이다.

    ‘O반장’이라 불리는 50대 초반의 Q씨는 검찰의 마약수사 현장에 자주 출동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반장이란 별명도 자신이 작업한 사건에는 꼭 야구방망이와 수갑을 들고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것. 서울 이태원과 부산 등에서 주로 활동해왔는데, 마약 판매 혐의로 지난해 초 구속됐다. 일각에서는 트라이앵글 중 한 사람인 이OO씨의 측근인 36세 여성 이정자(가명)씨가 작업을 한 것이라는 소문도 자자하다. 이정자씨는 15세 때부터 히로뽕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뛰어난 미모를 앞세워 남자들에게 접근, 작업을 하는 데 주로 국정원, 검찰 관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마약을 투약하거나 판매하는 큰손들 중에는 유명인사이거나 유명인사와 이래저래 관련된 사람도 많다. 위에서 언급한 19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가수의 전 처형인 박씨도 마약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만 아는 인물이다.

    ‘야당’ 트라이앵글

    건달 출신인 구OO(40대 중반)씨는 서울 강남에서 OO건설이란 회사를 운영, 2005년에는 대통령상도 받았고 한때 정치권에도 얼굴을 내밀었던 젊은 기업인이다. 트라이앵글 중 한 명인 이OO씨와 손을 잡고 마약을 투약, 판매했다. 그러나 현재 구씨는 중국에서 마약 유통 혐의로 구속돼 1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몇 해 전 대구에서 발생한, 경찰이 낀 마약사건 당시 경찰 수사관 여러 명에게 수천만원의 뒷돈을 건넨 것이 드러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는 6개월간 구금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나왔다.

    가수 J씨의 전 남편 이OO씨는 마약 전과는 별로 없으나 10년 넘게 히로뽕을 투약하고 있다고 한다. 1980~90년대 초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유영식(가명·40)씨는 마약과 도박에 손을 대다 야구를 그만 둔 뒤 지금은 대전 등지를 중심으로 마약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지역에서 검찰을 도와 작업조로도 맹활약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인 유태파의 보스를 지낸 김OO씨는 조직원들을 이용해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한때 부산 크라운호텔에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마약 투약 및 판매를 해왔다. 중국, 홍콩 등에서 마약을 들여오는 일에도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유명 종교 지도자의 아들인 박명수(가명·40대 중반)씨는 한때 중국과 한국에서 농산물 무역을 크게 했던 마약 투약자다. 부산에서 건설회사도 운영한 바 있는 그는 부친이 운영하는 종교시설이 들어서 있는 경기도 남양주 인근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 연예인들이 대거 연루된 마약 사건의 주범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는 요즘도 재벌 2·3세, 유명 연예인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마약계에서는 거물로 통하는 인사는 이 외에도 많다. 한때 서울에서 유통되는 히로뽕의 대부분을 공급했다는 최OO(54)씨는 현재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히로뽕을 들여오던 마약상 중 가장 규모가 컸다고 알려진 김OO(54)씨는 2008년 중국 현지에서 국정원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돼 구속됐다. 1990년대 중반 경상도 최대 마약 공급책으로 불리던 박OO(60대)씨는 현재 간경화로 투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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