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북한 교육현실 집중 분석

가난한 집 자녀들은 공부보단 생업현장 당 간부 등 부잣집 자녀들은 치열한 입시전쟁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입력2010-03-03 09: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북한이 ‘사회주의 우월성’을 자랑할 때 빠뜨리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료의무교육제도이며 다른 하나는 무상치료제도다. 이번 호에서는 무료교육제도에 대해 조명하려고 한다. 생동감을 높이기 위해 글의 주인공으로 도시 외곽에 있는 가상의 농촌 학교 ‘행복중학교’의 교사‘황 선생’을 모셔왔다. 황 선생의 눈으로 본 교육 현실은 최근 탈북한 교사 3명과의 인터뷰를 종합해 구성했다.
    교단에 선 지 벌써 20년이 넘은 황 선생이 학교 업무 중에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학생들에게서 거의 매일같이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일이다.

    오늘도 황 선생은 화가 나서 교실에 들어섰다. 방금 전 교장과 다투고 오는 길이다. 40대 후반의 교장은 황 선생이 담임을 맡고 있는 4학년이 돈을 제일 적게 냈다고 언짢은 소리로 추궁하다 나중에 사정까지 한다.

    “힘드신 것은 알지만 제 입장에 한번 서보십시오. 저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럽니까. 다 학교를 위한 것이니 선생님이 도와주십시오.”

    오늘 오전 시 노동당 교육부에서 학교 검열을 명목으로 간부 3명이 내려왔다. 말이 검열이지 다 먹자고 내려온 수작임이 뻔하다. 손바닥만한 학교를 모두 돌아보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뒷짐을 지고 학교를 돌아보는 흉내를 내던 간부들은 어느 새 교장의 안내에 따라 사라졌다. 아마 지금쯤 어느 학부형의 집에 들어가 술상을 펴놓고 있을 것이다.

    ‘수금원’으로 나선 황 선생



    교장은 검열 사흘 전부터 학급 담임들을 불러놓고 학교 평가에서 어느 선까지 받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학급당 500원씩(현재 북한 교사 월급의 15%에 해당하는 액수) 내라고 했다. 하지만 황 선생은 100원 걷는 데 그쳤다. 그런데 교장이 딱 집어서 말하는 이상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황 선생은 교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의 반에는 32명의 학생이 있지만 보통 20명 정도가 나온다. 이 중에서도 돈을 낼 수 있는 학생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철호는 저번에 구역에서 검열 내려왔을 때 냈으니 미안하고, 명애는 화목 동원 때 학급 과제 절반이나 했으니 그렇고….”

    한참을 둘러봐도 마땅한 얼굴이 없다. 결국엔 또 학급반장인 정국이를 교무실로 불러냈다. “정국아 오늘 교육부에서 검열 내려와서 그러는데 아버지께 술 2병만 좀 달라고 전해라.” 술 1병에 100원 정도니 2병만 내도 교장의 입은 막을 것 같다.

    아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하고 나간다.

    학급반장은 집안이 경제력이 없으면 못한다. 정국이 아버지는 농장 간부는 아니지만 뙈기밭을 많이 일구어 먹을 걱정이 없이 산다. 더구나 정국이네 집은 밀주를 만들어 팔기 때문에 돈도 어느 정도 있다. 필요할 때마다 정국이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정국이네 집이 열심히 아들 뒷바라지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농민의 자식은 농민이 돼야 하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있다. 군대에서 제대해도 대개 고향의 농민으로 배치받는다. 제대 후 남이 기피하는 탄광이나 염전에 집단 배치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집에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이 낫다.

    농촌 학교는 ‘수탈현장’

    북한에서 이런 신분제도가 남아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제도가 없으면 농민들이 다 빠져 달아나 농사를 지을 인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에 가면 농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해 졸업생 중 1~2명이 대학에 간다. 행복중학교에서 가장 많이 가는 대학은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다시 행복중학교 교사로 배치돼 올 확률이 거의 100%다. 하지만 모두 어떤 구실을 내세워서라도 도시에 나가려 한다. 교사를 그만두기도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농민의 신분을 벗어나기보다는 쉽다. ‘농민 탈출’은 하늘의 별따기다.

    의학대학에 가끔 진학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도 졸업과 동시에 당에서 대개 고향 농촌의 의사로 배치한다. 이래저래 농민의 자식이 농촌을 벗어나기는 너무나 어렵다.

    황 선생의 학교일은 절반이 ‘수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금 항목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검열 나올 때마다 거나하게 접대한 뒤 올라갈 때는 뭔가 주머니에 찔러주어야 한다. 구역당, 시당, 도당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검열이요 판정이요 하면서 내려올 뿐 아니라 내려오는 부서도 교육부, 청년동맹, 소년단, 여맹, 조직부 등으로 다양하다.

    또 인민군대 지원, 노병 지원, 영예군인 지원, 각종 건설장 지원 등 각종 지원 명목으로 걷어 들이는 돈의 종류를 세려고 해도 힘들다. 지원항목도 시멘트, 돌, 소금, 마대, 옥수수, 장갑, 휘발유 등 가지각색이다. 또 좋은 일하기 운동, 꼬마 계획 운동을 한다면서 토끼털이나 폐지를 내라고 하는가 하면 인민군대에 ‘꼬마탱크’나 ‘소년호 비행기’를 헌납한다면서 폐철이나 폐동을 헌납하라고도 한다.

    충성의 당자금을 마련한다며 학생들로부터 고사리, 콩, 깨도 걷어 들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16일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에 중학교 3학년 이하 학생들에게 당과류 1㎏씩을 선물로 주는데, 어느 때인가는 심지어 이 선물을 만든다면서 옥수수와 달걀을 내라고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가 원자재를 내서 만든 당과류를 받으면서도 김 부자 초상화에 인사를 하면서 선물이라고 받아야 하는가하며 술렁이자 이런 일은 이제 없어졌다.

    위에다 내는 것뿐 아니라 학교도 자체적으로 겨울 난방용 화목비, 학교꾸리기 비용 등으로도 걷는다. 각종 행사를 위한 포스터 준비나 송년회 같은 것을 치르느라 학생들끼리 자체로 걷는 것도 꽤 된다. 이렇게 각종 명색을 내대고 걷어 들이는 것을 다 합치면 한 해에 100가지가 넘어갈 것 같다.

    그 모든 항목의 물품들이 집에 다 있을 리는 만무하다. 시멘트니 장갑이니 폐철이니 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결국은 다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이 돈의 상당수는 간부들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 사람들은 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갑자기 심해진 것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국가 공급과 지원이 없어지니 필요한 모든 것은 걷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사람들이 월사금을 내면서 학교에 다니던 일제 강점기가 오히려 그립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황 선생도 늘 자신이 교사인지 수탈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행복중학교에는 내라는 것이 무서워 학교에 못 나오는 학생이 많다. 황 선생 반에도 하루 평균 10명이 넘는 결석생의 태반은 돈 내는 것이 무서워 못 오는 학생이다. 다 집안이 가난한 학생들이다.

    결석생이 있으면 온 학급을 그 학생의 집에 보내 데리고 오게 한다. 이건 북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된 전통이다. 하지만 이미 포기한 학생도 7~8명이 된다.

    공부 포기한 농촌학생

    가봤자 그 학생들은 산에 나무하러 갔거나, 뙈기밭에 일하러 갔거나, 혹은 부모 장사를 도와주느라 집에 없다. 부모들을 만나봤자 대답은 뻔하다. 이렇게 대충 나이 먹게 해서 군대에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에 간다 해도 뒤를 대줄 수 없으니 그럴 바에는 군에 보냈다가 농민을 시키는 것이 편하다는 것, 농민이 될 신세에 공부는 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그들은 되묻는다.

    황 선생은 그들의 말에 반박할 논리가 없다. 어차피 이 세상이 그런 것이다.

    행복중학교는 농촌학교여서 중학교와 소학교가 같은 건물에 붙어있다. 원래 북한에서는 소학교를 인민학교로, 중학교는 고등중학교로 불렀다. 그러나 2002년 고등이란 말은 중학교 다음 단계에 붙이는 것이 올바르다는 김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고등중학교가 중학교로, 인민학교는 소학교로 됐다.

    소학교는 4년, 중학교는 6년이다. 여기에 학전 교육이라고 지칭하는 유치원교육 1년을 덧붙이면 북한이 자랑하는 11년제 의무교육이 된다.

    북한은 원래 7월1일생부터 다음해 6월30일생까지 같은 학년이 됐는데, 2004년부터 같은 연도에 태어난 학생들이 같은 학년이 돼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지시가 하달되면서 하루아침에 제도가 바뀌었다.

    북한 교육현실 집중 분석

    2007년에 촬영한 신의주의 한 농촌.

    새 제도에선 만 7세에 학교에 입학해 17세에 졸업한 뒤 군대에 간다. 행복중학교는 각 학년이 1개 반씩 이뤄졌다. 소학교와 중학교 합해서 모두 10개 반이다. 각 반 학생수는 25명부터 34명 사이다. 교사는 모두 19명이다. 이 중 4명이 소학교 교원이고 또 10명은 학급 담임이다. 소학교는 행복중학교 소학반으로 불리며 중학교 교장이 소학교까지 책임진다.

    간부로는 교장과 부교장, 청년동맹 비서, 당 비서 등이 있는데 행복중학교는 교장과 당 비서를 한 사람이 겸한다. 그러나 교장의 권한은 거의 없다. 부교장은 음악과목을 가르치는데 학급 담임도 맡는다.

    이왕 교원을 할 바에는 담임교원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학부형들에게서 얼마간이라도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담임이 아닌 교원은 주로 남자들이다. 이들에게는 4월15일이나 소년단 명절인 6월6일, 청년절인 8월28일 등이 가장 기다려지는 명절이다. 이날에는 보통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던가 또는 인근 산에 놀러가는데, 학생들이 선생을 위해 싸온 푸짐한 도시락을 얻어먹고 술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명절이 곧 선생의 명절이다.

    행복중학교에는 체육대회나 놀러갈 때 담임선생 몫의 도시락까지 보내는 ‘개념 있는’ 학부형은 반마다 예닐곱 명밖에 되지 않는다.

    행복중학교 선생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을 나왔다. 사범대학은 4년제로 중학교 교사를 양성하며 교원대학은 3년제로 소학교 교사를 양성한다. 그러다보니 교원대학은 여자대학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각 도에는 사범대학이 2개 있으며 교원대학은 1개 또는 2개가 있다.

    대학을 못 나온 교사 2명 중 1명인 물리선생은 스무 살짜리 청년이다. 이 마을에서 자란 그는 학교 다닐 때 수재로 불리며 공부를 잘했다. 공부를 너무 잘하다보니 어떻게 사범대학까지는 갔는데, 집에서 뒤를 대줄 형편이 못돼서 1년을 다니고 중퇴하고 말았다. 그러면 농장원이 됐어야 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