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입력2010-03-04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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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구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르의 구분은 우리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위) 고전파음악의 거장 바흐 (아래) 대중적인 클래식음악의 길을 연 비발디

    누군가 “나는 클래식음악만을 듣습니다”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말 그대로 “난 고전음악(Classical Music)만을 들어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니면, 특정한 음악시대사조인 ‘고전파 음악’을 직접 가리킬 수도 있다. 그 유명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고전파 작곡가들이다. “나는 다른 시대음악이 아닌 고전파 음악만을 듣습니다”로 풀이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다음처럼 이해한다. “전 대중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음악을 이렇게 나누면서 여러 가지 경험적인 느낌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순수음악과 상업음악, 오케스트라음악과 전자밴드의 음악, 귀족 음악과 평민의 음악, 졸린 음악과 흥분되는 음악, 어려운 음악과 쉬운 음악, ‘그들의 음악’과 ‘우리의 음악’처럼 말이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된 표현은 없지만,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음악이 양분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또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을 나누는 진짜 잣대는 무엇일까? 중세시대 이전에는 ‘작곡가’라는 직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때에도 음악은 존재했고,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게 하기 위해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이 여흥을 즐기거나 의식(儀式)을 하면서 흥얼거리던 가락과 리듬이 있었다. 어찌 보면 음악이란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들은 점점 발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악보라는 것으로 기록할 생각을 했다.

    음악의 악보화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간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과정보다도 더 오래 걸렸으니까. 음악을 기록할 줄 아는 사람은 그 곡의 창작자가 되었다. 이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직업’의 개념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당연히 전문적인 작곡가와 아마추어 작곡가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자신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니는 음유시인들은 특별히 악보를 만들 이유가 없었기에 입으로 전달했지만,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은 예식용 음악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반드시 악보화해야 했다.

    7세기부터 불려지던 ‘그레고리안 성가’는 상당히 발전된 기보법으로 만든 악보들로 남아있지만, 처음에는 역시 구전으로 내려오던 노래였다. 원래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은 수도사들이었고, 그것이 9~10세기에 악보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안 성가라는 이름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름을 땄을 뿐, 그도 역시 작곡가는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도 원래 직업은 신부님이었다.

    궁정, 교회의 음악과 세속음악

    그렇다. 음악을 꾸준히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기록해서 보존해야 하는 곳이 존재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궁정과 교회다. 언제나 제사나 의식이 행해졌고 거기에는 음악이 필요했다. 전문적인 작곡가라는 직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음유시인들, 즉 세속음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았고 또 높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천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순수음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수음악은 순수한 예술을 위한 음악이지 ‘천하지 않은 음악’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벌써 구분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작곡으로만 먹고사는 프로페셔널 작곡가들이 등장하면서 음악은 훨씬 복잡해졌다.

    그러니 음악을 정식으로 오랫동안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음악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대위법’이라는 고난도 기교는 쉽게 만들어내기 힘든 것이었다. 건반악기를 두드려서 여러 가지 화음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그것들이 진행할 때 지켜야 할 세부적인 규칙들, 즉 ‘화성학’역시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 완벽하게 지켜야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음악의 성격이 달라진 만큼 음악을 즐기는 대상도 나뉘었다. 일반사람들 사이에서는 부르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들이 빠르게 퍼져갔지만, 궁정이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세속적인 음악이라고 구분해 철저하게 배척했다.

    결국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어려운 ‘대위법’에 대한 연구가 최고조에 달해서 바흐와 헨델 같은 거장들 손에서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반면 이들의 음악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국왕과 귀족들은 겉으로는 이러한 음악을 추구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도 사람이라 이해하기 쉬운 음악이 연주될 때 더 환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음악의 역사는 여러 개의 선율을 동시에 듣는 것보다 좀 더 쉬운 쪽으로 진행했다. 하나의 선율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멜로디와 반주’와 같이 연주하는 스타일, 즉 고전파 음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8세기의 고전파 음악은 이전 음악보다 더 ‘대중적’인 음악이다. 물론 그렇게 쉽게만 바뀐 것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이전에 없었던 규칙들도 생겨났지만 대중에게 그렇게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19세기의 낭만파 음악은 어떨까? 고전파 시대의 많은 규칙을 더 자유롭게 변형시킨 반면 사람들의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바로크에서 고전, 고전에서 낭만파의 음악은 확실히 사람들이 더 빠르게 이해하고 반응하도록 그렇게 진행되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다시 모호해진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런 음악이 바로크 시대에 퇴화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위적인 음악과 기술의 발전

    하지만 이제 작곡가들은 궁정과 교회에 의존할 필요도 없어졌다. 낭만음악은 누구나 듣기에 좋고 화려한 음악이었고 관객들은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 연주회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작곡가’라는 직업이 이제야 만들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곡가들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았다. 기존의 규칙들에서 더 해방되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음악은 이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바그너의 극장에서는 너무나 커져버린 규모의 음악 때문에 관객은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클래식음악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그 밖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민족적인 선율을 소재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갔다.

    국민주의 음악은 친숙한 리듬과 선율 때문에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했다. 이처럼 클래식음악 안에서도 더 대중적인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구분되기도 했다.

    미술과 문학 쪽 예술가들의 실험은 더 앞서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괴하고 전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교회와 궁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대중도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

    19세기 후반에 이런 예술가들이 모여든 도시는 프랑스의 파리다. 그곳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음악은 모호한 화성과 음향, 새로운 작곡법과 연주법 등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청중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연주자나 학자들 중에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논란이 일어났다.

    반면 이해하기 쉬운 대중의 음악은 축음기와 마이크로폰, 라디오의 발명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음악문화를 바꾸어놓았다. 마이크와 스피커의 발명으로 더 큰 장소에서 적은 숫자의 인원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청중의 입장에서는 연주회를 듣기위해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되었으며, 작곡가와 연주자는 악보 출판사가 아닌 음반사와 계약했다.

    전자악기도 발명되었다. 전위음악가들은 그것의 음향을 실험적으로 사용해서 외계의 소리를 만들어놓고 음악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중음악가들은 다른 방식의 기회를 잡았다. 음향이 완벽한 콘서트홀에서 공연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 모든 소리를 전기로 확성하기 시작했으며, 때문에 기존의 악기 음색을 변화시키기도 쉬웠다. 또 어떤 전자악기들은 여러 가지 음색의 음원을 동시에 출력할 수 있었기에 악단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신시사이저의 시대가 온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오페라와 팝이 결합된 팝페라 가수 카이.

    하지만 클래식음악이 전자악기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일반인이 아닌 연주자들에게나 이해받을 수 있는 음악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들이 연주할 수 없는 전자악기를 위해 작곡한다면 그나마 남은 토양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전통은 계속해서 변이를 거쳐서 아주 다른 것이 되었지만 하나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악기다. 그래서 클래식음악을 ‘클래식악기를 사용하는 음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도 오케스트라나 다른 악기들이 흔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의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드디어 컴퓨터가 개발되었다. 전자적인 음색을 내는 악기는 이제 직접 연주하지 않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대중음악은 이제 그나마 있던 소규모 밴드도 없이 혼자서 작곡과 연주를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오케스트라와 연주자 없이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해서 큰 비용 없이 발표할 수 있고, 또 연주자를 필요로 하는 음악도 완벽하게 미리 듣고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음악이 모두 CD라는 완벽한 음질의 매체로 공급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며 즐기는 시대다.

    오해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은 오래전부터 분리되어 인식되어왔지만 그것이 언제나 평행선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서로 경계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강하게 어긋나기도 했다. 그것은 대중에 의해서 정의되기도 하고, 또 작곡을 하는 주체들에 의해 정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들이 서로 간에 불필요한 벽을 만들어서 경쟁하기도 하는데, 현대에 올수록 더 심화된다. 너무나 달라진 음악들이 서로 만나며 일종의 문화적 쇼크를 일으키기도 한다. ‘크로스오버’의 대표적인 결합이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이다. 이것은 서로 다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두 분야의 음악을 정의 내리는 수많은 말을 풀이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인식하는 두 음악의 차이를 정리해보면 여러 가지 풀어야 할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_우선 가장 일반적인 구분이다. 대중음악은 말 그대로 대중의 음악이고, 클래식음악은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대중적인 클래식음악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발디의 ‘사계’는 대중음악인가? 따라 부를 수 없는 음악이라 클래식으로 본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든 대중음악이 보컬이 들어가는 곡은 아니기 때문에 그 주장도 무리는 있다. 그래서 만들어낸 용어가 ‘세미 클래식’이지만 이 역시 모호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다.

    순수음악과 상업음악_일단 클래식음악, 대중음악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더 문제가 된다. 클래식 작곡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작곡하지 않는가? 쇼스타코비치가 행사용으로 작곡한 ‘페스티벌 서곡’은 순수음악이 아닌가? 또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작곡하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 이것을 우리는 순수예술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대중을 위한 예술의 반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려운 음악과 쉬운 음악_좋다. 이것은 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클래식음악은 어렵고 대중음악은 쉽다. 과연 그럴까?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비틀스의 음악이나 재즈, 서태지의 곡들이 쉬운 곡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 멜로디들이 듣기에 편하다고 느껴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방송을 통해 많이 접했고 그들의 이미지가 수많은 대중적 마케팅으로 편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 음악들 중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화음과 멜로디, 리듬을 사용한 것도 많다. 클래식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 새로운 틀 안에서 놀라운 발전을 한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대중음악에서도 그 수준이 다른 음악이 탄생했다.

    대중음악이 쉬운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클래식을 무조건 어려운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잘못된 것이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나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대중음악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애매한 단어 ‘세미 클래식’을 사용하면 되지만, 그러면 ‘세미 대중음악’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건 본 적이 없다.

    악기의 차이_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즉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음악이 모두 클래식일까? 현악사중주로 연주할 수 있다면?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음악이 모두 클래식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고전 악기나 전자악기, 결국 그것은 악기일 뿐이고 어떠한 장르에서도 사용된다.

    또 그것은 아주 자유롭다. 색소폰이나 만돌린 같은 악기들은 아주 유명한 클래식음악에서 자주 필요로 한다. 현악사중주나 오케스트라가 대중가수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도 아주 흔하다. 잠깐, 대중가수라고? 목소리도 악기라고 볼 수 있으니 이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성악가의 창법과 대중가수의 창법은 분명히 다르다. 성악가들은 벨칸토창법이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대중가수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그들은 훨씬 더 다양한 음색으로 노래한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클래식 작곡가라고 해서 반드시 벨칸토창법에 맞는 음악을 작곡하라는 법은 없다.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을 경우에 그렇게 하는 전통이 있을 뿐이다.

    클래식음악에서도 다양한 목소리와 음색을 요구한다. 대중가수 중에는 성악가와 비슷한 창법을 구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굳이 팝페라 가수를 예로 들지 않겠다. 1980년대에 인기 끌었던 가수 릭 에슬리를 기억하다면 독특한 창법의 예로 충분할 것이다.

    다른 매체를 위한 음악들

    이 칼럼에서도 다룬 바 있는 영화음악이나 게임음악은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 가장 애매한 것이 바로 이 분야이고, 또 오늘날 수요와 공급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음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이 바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을 가장 많이 허물고 있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스타워즈’같은 곡들이 클래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물음엔 누구나 답하지 못한다. 프로코피예프나 월튼 같은 클래식음악사에 등장하는 작곡가들이 만든 영화음악이 클래식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답할 수 없다. 음악이 그것의 사용처에 따라서 구분될 수 없다는 대표적인 예다.

    스타크래프트의 웅장한 사운드트랙은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무한회랑’이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현악사중주곡은 실제로 연주될 수 있는 음악이다. 영화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많다. 이런 게임음악들이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기도 한다.

    영화가 발달한 미국이나 게임의 나라 일본에서만이 그 마니아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영화음악과 게임음악의 가치는 그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음악계와 대중음악계 양쪽에서 모두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장르 구분의 편견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 구분을 피할 수도 없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고 특정한 대상에 이름을 붙여서 인지한다. 당연히 무언가로는 부르고 구분할 수 있다.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이 글에서도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단어를 피해갈 수 없다. 단어는 단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단어에서 오는 여러 가지 오해는 곧 우리가 음악을 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음악에 거리를 두는 사람들은 이러한 영향 안에서 받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다른 장르음악에 대한 편견은 그것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그 구분이 옳지 못해서 클래식음악을 항상 접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클래식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조 윤 범

    1975년 서울 출생

    선화예고, 연세대학교 기악과 졸업

    서울필하모닉 단원 및 다수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역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겸 제1바이올린 주자

    예당아트TV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진행

    ‘조윤범의 파워클래식’(2008)


    대중음악가들이 클래식음악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결정에 항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여러 입장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음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고, 공연장의 설립목적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서로 장르를 깎아내리며 싸움으로 번져가기도 한다. 장르의 구분은 우리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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