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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클래식으로 세상읽기 ⑦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비발디의 ‘사계’ 대중음악인가, 클래식음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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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게 완벽하게 지켜야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음악의 성격이 달라진 만큼 음악을 즐기는 대상도 나뉘었다. 일반사람들 사이에서는 부르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들이 빠르게 퍼져갔지만, 궁정이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세속적인 음악이라고 구분해 철저하게 배척했다.

결국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어려운 ‘대위법’에 대한 연구가 최고조에 달해서 바흐와 헨델 같은 거장들 손에서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반면 이들의 음악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국왕과 귀족들은 겉으로는 이러한 음악을 추구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도 사람이라 이해하기 쉬운 음악이 연주될 때 더 환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음악의 역사는 여러 개의 선율을 동시에 듣는 것보다 좀 더 쉬운 쪽으로 진행했다. 하나의 선율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멜로디와 반주’와 같이 연주하는 스타일, 즉 고전파 음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8세기의 고전파 음악은 이전 음악보다 더 ‘대중적’인 음악이다. 물론 그렇게 쉽게만 바뀐 것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이전에 없었던 규칙들도 생겨났지만 대중에게 그렇게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19세기의 낭만파 음악은 어떨까? 고전파 시대의 많은 규칙을 더 자유롭게 변형시킨 반면 사람들의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바로크에서 고전, 고전에서 낭만파의 음악은 확실히 사람들이 더 빠르게 이해하고 반응하도록 그렇게 진행되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다시 모호해진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런 음악이 바로크 시대에 퇴화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위적인 음악과 기술의 발전

하지만 이제 작곡가들은 궁정과 교회에 의존할 필요도 없어졌다. 낭만음악은 누구나 듣기에 좋고 화려한 음악이었고 관객들은 돈을 내고 음악을 듣는 연주회에 열광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작곡가’라는 직업이 이제야 만들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곡가들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았다. 기존의 규칙들에서 더 해방되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음악은 이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바그너의 극장에서는 너무나 커져버린 규모의 음악 때문에 관객은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클래식음악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그 밖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민족적인 선율을 소재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갔다.

국민주의 음악은 친숙한 리듬과 선율 때문에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했다. 이처럼 클래식음악 안에서도 더 대중적인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 구분되기도 했다.

미술과 문학 쪽 예술가들의 실험은 더 앞서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괴하고 전위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교회와 궁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대중도 이해하기 힘들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

19세기 후반에 이런 예술가들이 모여든 도시는 프랑스의 파리다. 그곳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음악은 모호한 화성과 음향, 새로운 작곡법과 연주법 등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청중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연주자나 학자들 중에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논란이 일어났다.

반면 이해하기 쉬운 대중의 음악은 축음기와 마이크로폰, 라디오의 발명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음악문화를 바꾸어놓았다. 마이크와 스피커의 발명으로 더 큰 장소에서 적은 숫자의 인원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청중의 입장에서는 연주회를 듣기위해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되었으며, 작곡가와 연주자는 악보 출판사가 아닌 음반사와 계약했다.

전자악기도 발명되었다. 전위음악가들은 그것의 음향을 실험적으로 사용해서 외계의 소리를 만들어놓고 음악이라고 주장했지만, 대중음악가들은 다른 방식의 기회를 잡았다. 음향이 완벽한 콘서트홀에서 공연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기에 모든 소리를 전기로 확성하기 시작했으며, 때문에 기존의 악기 음색을 변화시키기도 쉬웠다. 또 어떤 전자악기들은 여러 가지 음색의 음원을 동시에 출력할 수 있었기에 악단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신시사이저의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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