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호

아파트 모델하우스

욕망의 전시장, 간절한 꿈의 신기루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10-03-04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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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목표’를 확인하러 들어가서는 마치 금방이라도 살 것처럼 허세를 부릴 수 있는 곳. 가질 수 없는데도 만져보고 앉아보고 누워보며 마음속 꿈의 공간과 저울질해보는 곳. 인생을 걸고 매달려도 손에 넣기 어려운 대형 아파트를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놓고 주인인 양 행세할 수 있는 모델하우스는 화려한 연극무대와 닮았다. 길어야 6개월 공연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자동차들은 전진하지 않는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은 채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아무래도 신호 교대를 두 번쯤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출근 시간대의 사거리는 사방의 골목에서 기어나온 차들로 꽉 차 있다. 신도시의 사거리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간선도로를 찾아 헤매는 차륜의 행렬은 마치 숙영지를 떠나가는 지친 군사들처럼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담배 한 모금을 위해 차창을 연다. 담배 연기는 비좁은 실내를 벗어나 영하의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일순간 매서운 바람이 답답한 차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차창을 올리다가 문득 건너편 건물을 바라본다. 마침내 저 인공의 가설물이 단장을 끝냈다.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공사 중이었다. 개관을 하지 않아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필경 바깥의 단장만큼이나 내부도 섬세하게 다듬어냈을 것이다. 저 가설물은 연말과 연초의 숨가쁜 시간대에 걸쳐 꾸준히 치장을 했다.

    예전에는 다른 형상이었다. 다른 건설사의 다른 아파트 브랜드 모델하우스가 오랫동안 서 있었는데, 그 자리를 새 건설사의 새 브랜드가 꿰찬 것이다. 신도시 중심가의 텅 빈 부지는 꽤나 오랫동안 여러 건설사의 브랜드로 자주 옷을 갈아입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혹은 교통체증 때문에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한참이나 사거리 한복판에 서있을 때면 수시로 변하는 저 가설물의 외양을 바라보곤 했다. 그 외양에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욕망이 함축되어 있다.

    가설무대 위의 연극배우

    이 비루하고 헛헛한 삶을 일거에 해방시켜줄 것만 같은 욕망! 이 곤고한 한반도의 삶을 지탱케 하는 거의 유일한 목표! 생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 부어야만 하는 간절한 신기루! 비록 20년 장기 상환의 기나긴 멍에를 짊어질지라도 우선 그 공간 안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애를 밀어넣어야 하는 생활의 전체, 곧 아파트라는 이 시대의 화두가 바로 저 가설물의 화려한 외장과 근사한 인테리어에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에 가보셨는가? 그렇다면 그 행렬의 팽팽했던 긴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인파 때문에 번호표를 받고서야 입장이 가능했던 모델하우스도 적지 않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모델하우스 부지에 들어서면 우선 감색 작업복 차림의 안내원 수신호에 따라 임시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마음속엔 두 가지 무늬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번잡한 도로를 정면으로 한 모델하우스 전면은 이국적이며 화려하게 치장돼 있는데, 그 주차장은 대체로 비포장의 공사 현장이다. 전면의 근사한 화장과 대조적으로 모델하우스의 뒷모습은 임시 가건물 특유의 골조를 덩그러니 드러내놓고 있다. 전 생애를 바쳐야만 이룰 수 있는 중형 아파트를 향한 꿈은 비포장의 임시 주차장만큼이나 공허하게 다가온다.

    이윽고 입구에 들어선다. 널찍하게 마련된 전시 로비와 안내 데스크와 급하게 가져다 놓은 듯한 화환과 총천연색으로 큼직하게 써놓은 문구들이 마중을 한다. 평형별로 구획된 곳으로 들어가면 텔레비전 광고에서 자주 보았던 최신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두리번거린다. 당신도 두리번거린다. 가공의 거실을 걸어보고 주방의 장식장이나 식탁을 손으로 만져보고, 간혹 물이 나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싱크대 수도꼭지를 돌려보기도 한다. 하나의 연극적인 행위가 벌어지는 것이다. 가설무대 위의 연극배우처럼 임시로 설치된 소도구들을 만져보고 적당한 자리에 배치된 소파나 장식 의자에 앉아보는 것이다.

    동시에, 당신처럼 그 공간을 찾아온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다. 애들 방이 조금 작지 않으냐는 어느 부인의 뒤를 따라 서재라는 임시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 부부는 시공사에서 서재라고 명명한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없을까 잠깐 상의하면서도 그들 마음속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야, 이 정도면 바깥에 나갈 이유가 없겠어.” 남편이 말을 한다. 그는, 당신처럼, 정말로 근사한 서재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노부모의 거처나 직장 다니는 큰아들 방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이 모델하우스에서만큼은 그 서재가 바로 그 남편, 곧 당신의 몫인 것이다. 시공사 측이 서재에 배치해놓은, 저 19세기 말엽 스코틀랜드 디자이너 찰스 매킨토시풍의 중후한 책상과 의자 앞에서 당신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옵션 상품’ ‘가져가지 마시오’

    아파트 모델하우스

    일산 백석동 모델하우스단지.

    신혼의 부부가 서재에 들어섰다가 금세 맞은편 안방으로 이동한다. 아직 그들에게 서재는 과욕인 셈. 사실 이 중형 아파트 자체가 그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랬듯이, 그들은 조금 전에 들렀던 작은 크기의 아파트보다 이 널찍한 중형 모델에서 더 많은 꿈을 꾼다. 갓 돌이 지났을 아이를 업은 신혼의 부인에게 안방은 비현실적인, 그로테스크한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이 널찍한 안방의 깊숙한 곳에 딸려 있는 드레스룸만한 곳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들 어떠랴. 모델하우스는 꿈을 저장한 곳이고 그 꿈을 어루만져보는 연극무대인 것을. 빠듯한 살림을 절약하며 살아가는 신혼부부일지라도 이 가설무대에 입장하면 미래의 어떤 배역을 선(先)체험하는 권리를 갖는다.

    거실이나 안방이나 서재나 욕실에 들어서면 공통적으로 ‘장식용입니다’ 혹은 ‘옵션 상품입니다’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정중히 인사한다. 어떤 모델하우스에는 ‘만지지 마시오’나 ‘가져가지 마시오’란 문구도 적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투박한 경고가 드물다. 아무튼 모델하우스에 세팅된 인상 깊은 소도구들은 대개 ‘장식용’이거나 ‘옵션 상품’인데, 이는 모델하우스 전체가 미래로 한없이 유보된 꿈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모델하우스 자체가 장식용이며 수많은 옵션으로 구성된 기계장치인 것이다.

    아파트. 이제는 이 한반도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이 되었다. 산하 도처에 아파트 아닌 곳이 없으며, 지금은 비록 공터이거나 야트막한 산이라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 모조리 아파트로 뒤바뀔 것이다. 높은 산을 깎고 너른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짓는 시대가 아닌가.

    1970년 이 한반도의 아파트는 겨우 4만2000가구로 전체의 0.7%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30년 만인 지난 2000년에는 523만8000가구로 36.8%까지 증가했다. 2000년 이후 해마다 40만~60만가구가 공급되어 2009년 12월 현재 총 628만5201가구로 급증했다. 이 거대한 물량의 생산과 구매와 소비의 정점에 모델하우스가 있다.

    국내에 모델하우스가 처음 들어선 것은 1969년 서울 한강변의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 때 일이다. 1957년 중앙산업이 고려대 부근에 종암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아파트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모델하우스는 10년쯤 지나서 등장한 것이다.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1964년의 마포아파트(현 도화동 삼성아파트 자리)나 최초의 고층아파트로 불리는 1967년의 한남동 힐탑아파트까지만 해도 모델하우스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파트=중산층 주거지’ 인식의 확산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 차원에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정책적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아파트 역사 초기의 10년 동안 아파트는 시민들의 전통적인 주거 개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자기가 사는 거실 위에 다른 가족의 화장실이 있다는 데 대한 거부감은 물론 수도, 위생, 엘리베이터, 쓰레기 처리 등의 시설 문제가 완벽하게 선결되지 않았던 탓에 주택 공급 물량을 확대하고 이로써 구도심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동부이촌동의 한강아파트 모델하우스다. 1969년의 일이다. 공무원아파트, 한강맨션, 한강외인, 한강민영아파트 등 4단계 개발과정을 통해 형성된 이 단지는 총 3220가구로 서민형 크기에서 최대 55평형까지 갖춘 복합 단지였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들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정부는 이 개념을 불식하고 ‘중산층 주거단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학교, 상가, 공공시설까지 적절히 배치했으며 고위직 공무원을 입주시키는 전략까지 추진했다. 이와 같은 단지 배치와 중산층 거주라는 개념은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단지 조성’의 개념적 원형이 되었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모델하우스를 설치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분양 현황판, 지역 안내도, 모형 등을 보여주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 내부.

    이렇게 출발한 모델하우스는 1970년대 강남권 개발과 1980년대 상계동, 목동, 과천 개발을 거치면서 ‘견본주택’을 통한 조기 분양의 고리로 변화했다. 이는 1990년대 초의 일산, 분당, 평촌 같은 신도시 건설 시기까지 관철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모델하우스는 ‘견본주택’이었다. 게다가 아파트에 대한 현실적이거나 심미적인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시기였기 때문에 특별히 모델하우스를 근사하게 치장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짓기만 하면 팔리던 때였다.

    모델하우스가 하나의 ‘심미적 전략 포인트’로 작용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부동산 침체를 돌파하려던 시점이다. 때마침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파트 브랜드 대전’이 달아올랐다. 이전만 해도 아파트는 행정구역상 동네 이름 뒤에 ‘1차’ ‘2차’ ‘3차’를 달거나 ‘진달래’ ‘개나리’ ‘달빛’ ‘옥빛’ 같은 수식어를 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2000년 3월 삼성물산이 경기도 용인에 구성1차 ‘래미안’을 론칭하면서 모델하우스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돌파하려는 건설사의 브랜드 전략은 삼성물산의 래미안을 시작으로, 한번 듣고는 그 뜻을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실은 그 어휘의 사전적인 정확한 뜻보다 그 낱말이 연상시키는 뿌연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순식간에 번져갔다. ‘하이페리온’ ‘푸르지오’ ‘자이’ ‘리첸시아’ ‘힐스테이트’ 같은 말들이 흐린 하늘에 띄워 올린 애드벌룬처럼 이 한반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최고 지성 상류 능력 탁월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마저 부족했는지 ‘래미안 하이어스’처럼 원래의 의도를 더욱 강조하는 수식어까지 덧붙인다. 익숙했던 전통의 공간을 말끔히 밀어낸 자리에 키치적인 이름을 앞세운 고층 브랜드의 행렬이 이어졌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얼굴이다’

    이러한 ‘명품 브랜드’ 전략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식의 강력한 정서적 위화감을 전면에 내세우는 광고전으로 확산되어 톱스타 모델 기용, 압도적인 광고비 지출, 인테리어 및 마감재의 고급화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분양가 상승과 해당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각 건설사는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중세풍의 유럽이나 도회적인 미국의 고루한 이미지를 누더기처럼 이어붙인 브랜드 이미지를 집 한 채 장만하려는 서민의 심연에 낙인처럼 남겨놓았다. 멀쩡히 잘살고 있던 아파트 이름을 지우고 최신 브랜드로 새롭게 페인트칠 하는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렇게 페인트칠만 새로 했을 뿐인데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 한복판에 모델하우스가 있다. 아파트 브랜드 대전 이후 모델하우스는 단순한 ‘견본주택’이 아니라 주택 경기의 심리적 지표이자 대형 건설사의 전쟁터가 되었다. 최근의 사례만 해도 분당 파크뷰, 자양동 포스코더샤ㅍ, 용산 시티파크, 여의도 자이, 인천 청라와 송도 지구 등 인기 지역의 모델하우스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인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두고 해당 지역이나 브랜드의 홍보 및 분양 실적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수동 계수기에 의한 방문객 수, 카탈로그 배포량, 분양 문의전화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청약률이나 초기 계약률을 예측하는 한편 이를 다시 분양대전의 광고 전략으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모델하우스는 두 달 안팎의 공기(工期)를 거쳐 완공된다. 3개 평형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대략 10억원대의 공사비를 들이고 보다 큰 부지에 이벤트 시설까지 부가할 경우 20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작업을 한다. ‘청약’을 목표로 하는 임시 건물이기 때문에 수명이 대략 6개월 안팎인 경우가 많고 길어도 1년을 넘지 않는다. 그 이상 운영된다고 하면 그 아파트 분양은 실패한 경우다. 운영이 끝난 모델하우스는 대략 2000만~4000만원의 비용으로 철거하고 임시 가건물의 특성상 구조체와 합판이나 목재 등은 다른 부지로 이동해 재활용되는 수가 많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은 100억원이 넘는 대대적인 투자로 주택전시관을 짓고 있다. 이런 모델하우스나 주택전시관에서는 단순히 어떤 모형을 둘러보는 정도가 아니라 클래식이나 서양 미술 강좌, 수지침이나 요가, 부동산 공개 강좌나 입시설명회까지 열린다.

    현대건설의 도곡동 힐스테이트 갤러리는 연면적 2750평(9000여m2)의 국내 최대 규모로, 주거 전시뿐만 아니라 공연장, 카페테리아, 놀이터 등이 마련되어 있다. 분양 예정인 ‘견본주택’을 보려면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인테리어 비용만 100억원이 들었고 5년간의 부지 임차료 90억여 원과 연간 운영비 10억여 원이 소요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일원동 래미안갤러리도 2001년 개관 이후 음악 공연이나 전시회를 열고 있다.

    문화를 앞세운 마케팅 공세

    이런 대대적인 공세에 첨단의 건축가들이 참여한다. 일원동의 래미안갤러리는 설치미술가 한젬마가 참여했고 GS건설의 서울 서교동 자이 주택문화관은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했다. 두산건설의 두산 아트스퀘어는 ‘iF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어워드 2009’ 커뮤니케이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수원 아이파크시티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는 세계적인 건축가 벤 판 베르켈이 설계했다.

    대형 건설사들이 이렇게 모델하우스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그곳의 방문자들에게 나눠주는 안내장에 적혀 있는 것처럼 ‘도심 속 문화 공간’ 역할을 자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습도 피상적으로 드러나긴 하지만 숨은 의도는 자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공세적인 마케팅이다. 그곳에서 클래식 공연이 진행되고 미술 강좌가 열린다는 것은, 그 공간의 은밀하면서도 압도적인 문화 전략에 서로 비적대적으로 공모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일반적인 문화 강좌 프로그램과 별도로 ‘VIP를 위한 문화 강좌’를 은밀하게 진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시간은 문화를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라 상류사회에 진입했음을 확인하는 욕망의 시간인 것이다.

    부동산 포털사이트 ‘닥터아파트’ 홈페이지에 보면, 실수요자가 모델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꼭 확인해야 할 사항이 나와 있다. 거실의 경우 ‘각 침실과 주방으로 움직이는 동선이 편리한가’ ‘에어컨용 전원이 적당한 위치에 마련되어 있는가’ ‘걸레받이와 마루판의 색상이 조화로운가’ 등이며, 침실은 ‘문이 부드럽게 잘 열리고 닫히며 소음이 없는가’ ‘전화, 콘센트, TV 전원 등의 수량과 위치가 적정한가’ 등이고, 주방은 ‘조리시 냄새가 잘 빠질 수 있는 구조인가’ ‘싱크대 상판 및 벽은 청소하기 쉬운 자재인가’ 등이다. 이렇게 거실, 침실, 주방, 욕실, 베란다마다 10개 이상의 확인사항이 있다.

    그러나 당장의 실수요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일일이 확인하며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일은 드물다. 당신은 욕망의 전시장이자 꿈의 오아시스인 모델하우스에서 ‘구둣주걱을 걸어놓기에 적당한가’ 같은 자잘한 현실의 기능을 확인할 마음이 별로 없다.

    담배 한 모금을 위해 그 공간을 빠져나온다. 출입구로 가서 신발을 갈아 신는다. 실내화를 벗어놓고 상냥한 안내원이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신발들 속에서 당신의 낡은 운동화를 찾아 신는다. 다양한 모양의 신발들이 저마다의 연륜으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데, 그것은 흡사 은행이나 병원 수납 창구 앞에서 대기번호표를 손에 쥐고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의 형상을 닮았다. 당신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모금 피우면서 단락 없이 들고나는 승용차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모두 모델하우스를 보기 위해 주말의 귀한 시간을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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