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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③

수업도 없이 3년간 혼자서 논문만 쓰라고?

한국·미국과 다른 영국의 대학원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수업도 없이 3년간 혼자서 논문만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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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튜토리얼에서 교수가 가끔 얘기하던 “그건 박사과정에 가서 해라” 하는 말이 박사과정 진학을 권유하는 영국인 특유의 ‘간접 화법’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별생각 없이 교수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네, 그럼 이 주제는 나중에 할게요”라며 넘어갔는데, 교수는 내 말을 박사과정에 진학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튼 당시에는 영어로 시험 치고 논문 쓰는 일에 질려 있었던 데다, 계속 학교를 다닐 경제적 여유도 없었던 터라 교수의 제안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논문 준비 확실해야 입학 가능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키우는 바쁜 와중에도 가끔 교수의 제안이 흐린 밤하늘에 슬쩍 드러나는 초승달처럼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러고는 ‘교수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나한테 공부를 계속할 소질이 조금은 있는 것 아닐까’하는, 가당찮은 망상도 불쑥불쑥 들곤 했다. 그러다 어영부영 나이 마흔에 이르고, 더 이상 허튼 일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교수의 제안은 점점 더 자주 내 귓가를 맴돌았다. 결국 나는 ‘그래, 까짓거 한번 저질러나 보자’하는 심정으로 영국 대학 세 곳의 박사과정에 지원했고, 그중 두 군데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가 만약 미국에서 석사를 마쳤다면, 그리고 다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감히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길에 오를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석사를 마친 지 10년 만에 새삼 박사학위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과는 조금 다른 영국의 독특한 대학원학제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영국의 대학원 박사과정에는 ‘수업’이 없다. 우리는 흔히 박사과정을 ‘코스 2년, 논문 2년’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영국 박사과정은 ‘코스 없이 논문만 3년’이다. 수업이 없으니 중간에 시험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교수와의 튜토리얼, 그리고 연 1회 제출하는 연구진행 보고서가 전부다. 그리고 박사 논문을 제출하면 논문 제출 후 3개월 안에 ‘바이바(Viva Voci)’라고 하는 구두시험을 치른다. 구두시험을 통과한 학생은 그해 6월이나 11월에 열리는 졸업식에서 학위를 받는다.



그러니 영국 대학원의 박사과정은 미국이나 한국의 대학원보다 원칙적으로 1년 빠르고, 시간을 구속하는 수업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내 주위 사람들은 “대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수업은 어떻게 들으려고?” 하면서 날 뜯어말렸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시작해 보니 ‘한번 해볼 만하지 않나’하고 생각했던 내가 참으로 어리석다는 게 금세 드러났다. 문제는 영국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은 학생이기보다 한 사람의 연구 인력으로 취급받는 데 있었다. 영국의 박사과정 커리큘럼에 수업이 없는 것도 이런 전제 때문이다. 이미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한 사람은 굳이 교수의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게 박사과정에 대한 영국 대학의 시각이다.

영국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박사과정에 지원할 때 학생들은 연구계획서(Research Proposal)를 내야 하는데, 연구계획서는 논문 주제와 내용, 연구 방법론 등을 간략하게 담고 있어야 한다. 이 연구계획서를 희망하는 대학원의 입학담당 교수나 학과장, 아니면 자신의 논문 주제와 가장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에게 보내는 것이 영국 대학원에 지원하는 방법이다. 물론 외국인 학생은 영어 시험 점수를 내야 하지만 이 연구계획서와 석사과정 지도 교수의 추천서 외에 박사과정 지원에 필요한 서류는 거의 없다. 거꾸로 말하면, 영국의 대학원은 자신의 논문에 대해 확실한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만 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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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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