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SBS는 정당했고 KBS와 MBC는 옹졸했다

  • 김동률│KDI 연구위원·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매체경영학) yule21@kdi.re.kr│

    입력2010-04-01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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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는 정당했고 KBS와 MBC는 옹졸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SBS 사옥.

    “SBS가 신나게 동계올림픽을 독점중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울분을 삼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KBS 사원이 아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최근 공사 창사 37주년 기념식장에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를 하지 못한 KBS 직원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며 내뱉은 말이다. 그는 “민영방송 SBS가 동계올림픽 중계권을 독점으로 따내면서 우리 국민은 우리 선수들이 값진 메달을 목에 걸 때마다 KBS가 아닌 다른 방송을 보며 환호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며 자못 비분강개한 어조로 말했다고 한다. 김재철 신임 MBC 사장도 “국민의 세금으로 양성한 국가대표들이 출전한 경기를 특정 방송이 독점 중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거들었다.

    올림픽 독점중계는 부도덕하다?

    올림픽 독점중계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KBS-MBC는 SBS와 치열하게 다퉜다. KBS와 MBC는 SBS 비난 뉴스를 여러 차례 보도하기도 했다. 김인규 사장은 “SBS의 단독 중계는 지상파 방송 3사의 합의를 깬 부도덕한 행위”라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행태를 거듭해온 KBS가 그런 비판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중계방송 진행상의 서투름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를 빌미로 흠집 내려는 태도는 비겁하다. 이번 올림픽 독점중계 논란은 한 마디로 SBS의 완승이나 다름 없다.

    SBS는 상업방송답게 기만하게 움직여 유무형의 실익을 챙겼다. 단독중계로 회사 인지도와 이미지를 엄청나게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시청률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는 광고 판매의 증대로 이어졌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SBS는 올림픽 기간 17일 동안 142억원어치의 광고를 팔았다.



    SBS는 정당했고 KBS와 MBC는 옹졸했다

    SBS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팀 일원인 박은경 아나운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 독점 중계 논란을 둘러싼 핵심 개념은 보편적 접근권(universal access)이었다. 보편적 접근권이란 누구든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스포츠 경기나 문화 행사 등을 볼 수 있는 권리다. 보편적 접근권은 보편적 서비스에 근거를 두는데 보편적 서비스는 무료나 싼 가격으로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정책적 기능을 말한다. 상업적 논리에 의해 시청자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쉽게 말해 돈이 없어 국민적인 경기를 못 보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편적 접근권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른바 지식기반사회(knowledge-based society)에선 새로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심각하게 커진다. 보편적 접근권은 이를 줄여주는 시청자 복지 차원에서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에서 처음 대두됐다. 여기엔 인터넷 언어의 80%가 전세계 인구의 20~30%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되어 있는 문제(English divide)까지 포함됐다.

    미국 정부는 2000년 2월2일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제안서’를 발표했다. 모든 국민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전화와 같은 보편적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정부도 지식의 습득이 용이한 고소득층과 열악한 저소득층 사이의 정보격차가 소득격차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고 10년 전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보편적 접근권의 확대와 디지털 평등사회의 구축이 목적이었다.

    빅2의 이해부족과 구태의연함

    SBS는 정당했고 KBS와 MBC는 옹졸했다

    SBS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방송 장면.

    보편적 접근권은 이번 SBS의 올림픽 독점방송을 비판하는 데 동원된 대표적인 이론적 근거였다. 비판자 측은 방송법 제76조(방송프로그램의 공급 및 보편적 시청권 등)를 위반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법은 ‘국민관심행사’에 대해 일반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시행령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중계방송권의 판매 또는 구매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행위를 금지토록 했다. 이를 근거로 KBS와 MBC는 방송분쟁조정신청을 냈다. 그러나 공정경쟁, 시장주의를 견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는 분쟁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방통위가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자명하다. 기본적으로 SBS의 단독중계에 대해 보편적 접근권의 보장과 관련해 큰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SBS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대다수 시청자는 손쉽게 SBS TV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또한 IT의 급속한 발달로 최근 들어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즉, 방송계에서는 지상파만이 보편적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전통적 개념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시청자는 SBS TV뿐만 아니라 위성DMB,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서도 올림픽 중계방송에 접근할 수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SBS가 방송3사 간 합의서를 작성하는 시점에 이미 IB스포츠와의 이면합의를 통해 단독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시시콜콜한 진행사항에까지 싸잡아 칼날을 들이대는 것으로 지나친 감정배출에 불과하다. SBS의 독점계약을 두고 ‘국부 유출’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시장 논리를 간과한 억지라고 하겠다. 이는 광고수익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민영방송의 부담을 국민의 부담과 동일시하는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중계권 확보에 실패한 국가기간방송인 KBS와 공영방송을 주창하는 MBC의 구태의연함이 더 큰 문제다. 이들 방송사는 옹졸하게도 금메달을 목에 건 감격의 순간조차 정지화면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여론의 질타를 받자 서둘러 보완했다. KBS와 MBC는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현실에 안주해오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최고의 재료로 만든 초라한 요리

    그러나 SBS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서는 패배했다. 전쟁의 승리를 마냥 기뻐할 수 없을 만큼 상처도 컸다. 최고의 재료가 덩굴째 굴러들어왔지만 서투른 요리사는 보잘것없는 초라한 결과물을 식탁에 내놓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이 떨어지는 해설자를 기용한 데 있었다. 대중 스포츠인 야구나 축구와 달리 빙상경기처럼 시청자에게 낯선 종목에서 해설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똑같은 경기라도 어떻게 해설하느냐에 따라 경기를 시청하는 깊이와 재미가 달라진다.

    방송 선진국에선 해설자가 미리 흥분하거나 실수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해설자는 고함을 치는 서포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아나운서 트레이닝을 받지 않으면 마이크 앞에 설 수 없다. 중요한 경기에선 늘 전문 해설자를 기용한다. 반면 SBS는 검증되지 않은 해설자를 기용하는 바람에 “역시 SBS는 이게 한계야”라는 불명예를 자초했다. 해설자는 관전 포인트를 시청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전문성과 식견이 잘 배어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특히 해설자의 종교적 발언은 단순 실수라고 받아넘기기엔 그 파장이 너무 컸다.

    이번 동계올림픽 중계는 방송의 공익주의와 시장주의가 충돌한 전형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대체로 공공서비스 전통이 강하고 유료 TV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보편적 접근권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경향이다. 미국과 같은 시장주의에 충실한 국가는 입법화보다는 자율적 공정경쟁에 맡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독점중계권에 이어 남아공월드컵 독점중계권까지 움켜쥔 SBS의 발빠른 행보는 보편적 접근권의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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