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UAE 원전 수주와 군사협력 MOU 논란

한국 , 중동분쟁에 ‘자동개입’? 수주 견제 나선 미 의회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입력2010-04-02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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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AE 참모장의 특전사 방문과 국방협력TF 설치
    • ‘유사시 군사적 지원’과 ‘동맹에 버금가는 관계’
    • 국회 국방위 관계자, “헌법 절차 위반했다”
    • “핵우산 제공하는 프랑스와 균형 맞추기 위한 조항”
    • 주한미군사령관이 불편한 심기 내비친 까닭
    • 당국자 해명 “모호한 총론뿐…UAE도 구색 맞추기로 생각”
    2월23일 오전 국방부에서는 방한한 아랍에미리트(UAE)의 총참모장 알 루마이틴(56) 중장을 위한 의장대 사열행사가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날 루마이틴 총참모장을 영접한 당사자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었다는 사실. 통상 외국군 합참의장이나 총참모장이 방한할 경우 우리도 합참의장이 안내를 맡은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의전이다. UAE 군사대표단은 방한 기간 특수전사령부 소속 707부대 대(對)테러 훈련장,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 공군 제3훈련비행장도 시찰했다. 사흘을 꽉 채운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렇듯 이례적인 환대는 한국이 지난 연말 수주에 성공한 UAE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관련이 깊다. 김태영 장관을 필두로 국방부가 수주 경쟁에서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UAE에 제공될 ‘비(非)경제적 인센티브’를 협의하기 위해 김 장관은 수주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UAE를 비공개 방문해 양국 간 군사교류협력 협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국방부는 UAE 측의 요청을 감안해 MOU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대략의 윤곽은 흘러나온 상태다.

    우선 국방부 측은 “2006년 체결한 군사협력협정을 확대해 방산기술 교류와 군 교육훈련 협력, 군 고위인사 교환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UAE는 김 장관과의 협의 과정에서 육군 교육훈련시스템 구축, 항만방어체계, 공군 조종사 양성훈련 등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방한한 군사대표단이 시찰한 부대는 모두 이들 프로그램과 관계가 깊다.

    MOU 체결 직후 국방부는 국방협력TF를 새로 설치하고 청사 안에 사무실을 배정했다. 사실상 UAE와의 협력 문제를 진행하기 위한 TF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이 어떤 방향으로 논의되는지 철저한 보안에 부쳐진 이 TF의 팀장은, 김 장관이 유학했던 독일 육군사관학교 후배로 지난해 UAE 방문에도 동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MOU의 내용과 관련해 특히 눈길이 가는 대목은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에 관한 보도다. 지난해 12월28일 ‘동아일보’는 “정부의 한 관계자는 ‘UAE가 자국 안보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한국이 군사 분야에서 지원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한국군이 도울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적극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같은 날 ‘조선일보’ 역시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두 나라가) 동맹에 다음가는 군사협력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은 주로 원전 건설현장에 우리 군 병력이 파병될 가능성에 한정해 설명해왔다. 치안이 불안정한 중동의 특성상 벌어질 수 있는 테러 대비나 안전사고 관리 등의 책임을 맡고, 필요한 경우 이를 도울 병력 파견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취지다. UAE가 주요시설 대테러 업무 담당 요원들을 양성하는 과정에 대한 한국 측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상태다.

    6월15일 ‘르피가로’의 보도

    그러나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훨씬 심도 깊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 치안이나 안전관리를 넘어 이란 등 UAE와 긴장관계에 있는 외국과의 분쟁에 한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중동에서 UAE가 연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자동적으로 혹은 UAE의 요청에 따라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의혹을 낳는다는 문제제기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원전 수주 과정에 정통한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들으면 이러한 우려가 배가된다는 사실이다. 해당 조항이 “수주 경쟁국이었던 프랑스가 UAE와 맺고 있는 군사협력 관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급히 마련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수주전이 최고조에 올랐을 무렵 프랑스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군사협력 격상’을 꺼내놓는 바람에 한국도 그에 대응하는 카드가 필요했다는 배경설명이다.

    프랑스와 UAE의 군사협력 관계는 연원이 깊다. 1990년대 프랑스제 전차와 전투기를 대량으로 도입한 UAE는 1995년 프랑스와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육해공군이 모두 참여하는 합동군사훈련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5월부터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해·공군 기지가 포함된 500명 규모의 주둔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15일 ‘르피가로’지는 프랑스가 UAE에 핵우산을 제공키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개정되는 양국간 군사협정 비밀조항에 ‘UAE가 공격받을 경우 프랑스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UAE를 보호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여기에는 핵무기 사용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UAE와 프랑스의 관계가 한미동맹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뜻이다.

    군 주둔이나 핵우산 제공이 모두 원전 수주 경쟁이 한창일 당시 이뤄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전하는 프랑스의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군사협력 격상’제의는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호해주겠다’는 프랑스 측 카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MOU를 체결했다면 그 역시 군사동맹에 준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는 유추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UAE가 ‘유사시 군사적 지원’을 자국 연루 분쟁에 대한 파병 및 자동개입 공약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30억달러 내외의 국방예산과 5만명 규모의 병력을 운용하고 있는 UAE는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나라와의 조약이나 협력을 통해 안보 강화를 추구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변국, 특히 잠재적국(潛在敵國)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란에 비해 취약한 군사력을 동맹 맺기로 극복한다는 취지다. 물론 실제로 UAE와 주변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한국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격상된 군사협력협정이 갖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사뭇 다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란 등에 한국이 새 잠재적국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UAE와의 협정 격상 과정에서 “이란과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최전선에 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 발간한 안보정책 백서를 통해 UAE가 위치하는 페르시아만 인근의 안보문제를 자국의 ‘사활적 이해’로 간주해 적극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란과 잠재적 적대관계를 감수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UAE와의 협정 개정을 추진했다는 뜻이다. 중동 정세에 직접적인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과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면 이는 당연히 국민 혹은 그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게 국회 주변의 시각이다. 국방위원회 일각에서는 “문제의 MOU가 분쟁개입 공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이는 상호원조 혹은 안전보장에 관한 것이고,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필요한 헌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탄핵사유도 될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는 것. 한 국방위 소속 의원은 “MOU 체결 직후 곧 보고하겠다던 국방부는 석 달이 다돼가는 지금까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이란과 이스라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의 시선이다. 이란과의 긴장관계와 함께 UAE는 아랍 국가의 특성상 이스라엘과도 적대적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여행자의 경우 입국이 제한되고 이스라엘제 상품의 통관이 금지돼 있을 정도. 특히 양국의 관계는 1월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고위 간부 암살사건 이후 급격히 악화된 상태다. 불안정한 중동 정세의 특성상 두 나라가 분쟁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우호관계를 감안하면, 이 경우 문제의 MOU 조항이 한미동맹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번 사안에 접근했던 정부는 MOU 체결 과정에서 미국과의 사전협의나 의견청취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UAE가 미국과도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한 상태이고 군사협력 논의는 개별국가의 주권에 관한 사항이지만, 미국 측에서 의회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견해가 흘러나오는 것을 이와 관련해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상자기사 참조).

    최근 주한미군 관계자들 사이에서 UAE 경비병력 파견 검토 보도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절차 지연을 연결짓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쉽게 말해 “우리는 한국의 방위력을 보충해주기 위해 주둔하는데, 정작 한국은 돈을 벌러 군대를 보내겠다는 걸 보면 병력이 남는 모양”이라는 식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김태영 장관의 UAE 방문과 관련해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는 소식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방문단에는 이라크 자이툰 사단장을 역임한 황의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동행했는데, 직속상관인 샤프 사령관에게 출장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극비리에 추진된 일이었기 때문이라지만 안보적으로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사안임에도 언질조차 없었다는 건 반갑지 않은 일이라는 게 일부 미군 측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렇듯 군사협력협정과 관련해 제기되는 다양한 비판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정식 조약이 아닌 MOU에 불과하므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현재까지 합의된 내용은 모호한 총론뿐이며 국방협력TF에서 세부사항을 논의, 조정하고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국회 보고나 중동 정세를 포함한 안보적 함의에 대해서도 검토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혹시 UAE 측에서 이를 조약 등 더 구속력 있는 문서로 발전시키자고 하지 않을까 염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런 제의는 없었고 앞으로도 논의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UAE도 ‘유사시 군사적 지원’은 말 그대로 구색 맞추기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쪽이라고 한국의 중동분쟁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겠나. 오히려 방위산업이나 경비병력·조종사 양성 같은 실질적인 사업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말이 갖는 힘

    그러나 조약이든 협정이든 MOU든 문서행위이기는 마찬가지이고, 그 형식에 관계없이 내용에 중대한 안보상의 함의가 있다면 헌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어떤 형태로든 체결된 문서는 이후 논의에서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다. 1990년 한미 양국의 국장급 당국자 명의로 체결된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MOU가 국내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14년 뒤 갈등의 진원지가 됐던 일이 대표적이다. 문제의 양해각서는 2004년 이후 진행된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았고, 이 때문에 청와대와 안보부처, 국회를 넘나들며 격론이 벌어졌다.

    사상 최대의 수주액을 자랑하는 UAE 원전수출 성공은 분명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인 쾌거였다. 국가 간의 초대형 계약에는 반드시 ‘다른 옵션’이 따라붙는 게 국제 비즈니스의 현실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민이 알지 못하는 안보상의 부담을 지게 된다면 이는 투명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실제로 중동분쟁에 개입할 의지가 있는지와는 별개로 다른 국가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적지 않은 유·무형의 부담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기본 원리는 ‘관계 맺기’이고 그 가장 중요한 척도는 ‘유사시 누가 누구의 편에 서기로 했는가’에 관한 약속의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공약의 존재 자체가 오히려 더 중요한 현실 변수로 작동하는 게 안보의 기본 메커니즘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UAE 군사협력 MOU에 관한 일련의 논란은, 프랑스와는 다른 한국의 입지를 미처 가늠하지 못한 관련부처와 사상 최대의 성과에만 주목했던 정부의 업무처리 방식과 관련해 두고두고 의구심을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가 한국 원전 수주 견제하는 까닭은?

    한국의 UAE 원전 수주에 관한 미국 일각의 ‘불편한 시선’에 눈길이 가는 것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이에 대한 승인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출되는 원자로 APR1400 모델은 그 원천기술에 관한 권리 일부를 미국업체 웨스팅하우스가 갖고 있고, 웨스팅하우스는 이번 수주에 하도급 형식으로 참여한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 UAE 원전에 활용되려면 미 연방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 미국 원자력에너지법 810조는 기술 수출은 물론 인력의 컨소시엄 참여도 허가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1월21일 미 의회조사국(CRS)이 한국의 UAE 원전 수주가 가진 파급효과에 대해 분석한 보고서는, 이 심의과정에서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한국의 원전 수출을 견제하고 있다. 국제 원자력시장에서 한국이 미국의 경쟁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보고서는 최근 한국에서 제기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주장도 같은 취지에서 의회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미국 원전시장 진출이나 핵 주권론 같은 담론이 미국을 자극해 기술 수출 심의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렇듯 미 의회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견제 목소리는 한-UAE 군사협력 문제에 관해서도 시사점이 있다. 이 사안이 미국의 중동정책이나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와 배치될 수 있다는 구실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원전기술 수출 허가를 심의하는 과정에는 에너지부나 상무부뿐 아니라 국무부와 국방부도 참여한다. CRS의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UAE 건에 대한) 허가 심의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국익과 관련한 각 부처 간의 꼼꼼한 검토를 통해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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