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불시 소지품 검사 해보니 여학생 가방에서 피임약이 우수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입력2010-04-02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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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남한에 견주어 연애, 결혼, 성윤리 등이 훨씬 보수적인 편이다. 이런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성에 대해 점점 대담해지고 있는 남한에 비하면 아직도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평양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젊은층의 성풍속도와 결혼시장의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지난해 여름 평양 금성1고등중학교에 검열을 나간 북한 간부들은 뜻밖의 광경에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예술반 5~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지품 불시 검열을 실시했는데 뜻밖에 많은 여학생의 가방에서 피임약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당초 검열을 실시한 이유는 불법 녹화물을 단속하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이 불법 드라마 CD를 교환해 보는 일이 많아지자 당국에서 실태조사를 위해 불시 검열을 진행한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평양 중구역과 만경대구역에 각각 위치한 금성1고등과 2고등은 북한에서 가장 좋은 예술고다. 이곳에 다니는 여학생들 중에는 북한 전국에서 고르고 골라 뽑아온 미인이 많다. 또 전공이 예술인 까닭에 자유분방하다. 금성고등은 ‘북한판 오렌지족’의 온상 또는 목표물이다. 이곳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가장 일찍 ‘깬’ 학생들로 취급받는다.

    간부들이 녹화물 단속 대상으로 이 학교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만 15~16세 여학생 가방에서 피임약이 쏟아져 나올 줄은 이들도 미처 상상을 못했다.

    깜짝 놀란 당국은 이번에는 김일성대 경제학부와 외국어문학부 여학생들을 상대로 재차 검열을 했다. 두 학부는 김일성대에서도 알짜 노른자위 학부로 꼽힌다.



    김일성대에서 경제학부는 노동당 중앙급 간부 자녀가 많아 ‘힘학부’로, 외국어문학부는 외국에 다니며 외화를 펑펑 벌어오는 외교관 자녀가 많아 ‘돈학부’로 불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금성1고등만큼은 아니지만 여학생 소지품에서 피임약이 발견됐다.

    이 일은 특히 북한 간부들에게 충격이었다. 이 학교들은 다름 아닌 간부 자녀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문이 바깥으로까지 퍼지는 것이 두려워 쉬쉬하다가 검열 결과를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다.

    북한 간부들도 놀라 충격을 받을 정도로 최근 북한의 연애문화는 급속히 바뀌고 있다. 30대 이상의 세대는 20대를 이해 못하며 20대는 또 10대를 이해 못하는 풍경이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사랑관, 연애관, 결혼관이 빠른 속도로 바뀌는 배경에는 한국 드라마가 자리 잡고 있다.

    연애관 바꾸는 한국드라마

    사실 사랑과 연애라는 주제는 딱히 이렇다 저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랑의 방식이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지역마다, 환경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사랑과 연애를 일반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이 글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연애, 결혼의 실상에 대해 기자 개인의 경험과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 그리고 북한 현지 소식통들의 증언에 기초한 단편적 현상들임을 먼저 밝힌다. 북한의 연애와 결혼은 이렇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북한에선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식으로 읽는 것이 맞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삼각관계다. 그런데 북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삼각관계를 묘사하면 절대로 안 된다. 삼각관계가 아닌 단지 ‘삼각관계로 비칠 수도 있는’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유로 모 유명 작가가 영화를 한편만 찍고 ‘혁명화’로 지방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북한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은 바로 그 영화의 주제곡이다.

    그런데 이런 북한 영화에서도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렇다면 북한 영화에 묘사되는 사랑이야기는 어떨까. 흔히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선 중매결혼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자에게 “북한 사람들도 연애를 하는가”라는 초보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도 꽤 된다. 물론 북한에서 중매결혼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중매결혼은 더 많았다.

    중매라 해봤자 한국에서처럼 결혼정보회사가 서울 총각과 부산 아가씨를 맺어주는 식의 전국적 범위의 중매가 아니라 걸어서 하루 내로 이동할 수 있는 좁은 지역 내에서의 중매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중매가 북한 영화에서는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북한 영화에 나오는 처녀 총각의 연애는 노동당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 서로 무한한 충성심이라는 공통분모를 확인하고 결국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식의 뻔한 시나리오다. 영화 백이면 백 다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아 매우 식상하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중매하는 모습도 상당히 많이 묘사되지만 이는 영화의 갈등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주인공은 결혼하라는 부모나 형제의 중매 강요를 뿌리치며 이 과정에 상대방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더욱 굳힌다는 설정이다. 결국 북한 영화는 자유연애가 좋다는 무언의 인식을 주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 북한 사회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이런 자유연애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북한 가족법 9조에 는 “공민은 남자는 18세, 여자는 17세부터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1~2년 뒤에는 결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대체로 남자는 28~32세, 여자는 23~27세에 결혼을 많이 한다. 북한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한국보다 5년 정도 더 빠른 것 같다.

    27살 넘어 미혼이면 노처녀

    27세가 지나서도 결혼을 하지 못하면 노처녀라는 시선을 받는다. 한국의 30대 초반 여성들이 받는 시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북한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나이는 한국보다 훨씬 늦다. 특히 과거에는 연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았다. 연애를 하면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기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20여 년 전에도 졸업학년이 가까워지면 몰래 연애를 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참고로 북한에서 중학교 졸업 나이는 만 16~17세다. 하지만 연애는 학급반장이나 초급단체(20~30명으로 구성된 청년동맹의 말단 조직) 비서와 같은, 소위 공부도 좀 하고 주먹깨나 쓰는 학생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이런 학생들은 괜찮다 싶은 여학생이 있으면 슬슬 호의를 보이면서 접근하지만 그것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유치했다.

    주변 학생들이 아무개가 아무개 여학생을 찍었다고 소문을 내면 당사자끼리는 서로 어색한 눈빛이나 주고받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한국 기준으로 아무리 잘 봐줘야 호의에 그칠 것이 그때는 사랑의 표현방식이었다.

    이랬던 학교에 기자가 5학년 즉, 만 16세 때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체육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칠판에 쪽지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아직도 대략적인 내용이 기억에 생생하다.

    “명실아, 매일 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설레고 너의 웃음은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넌 왜 나에게 그리도 쌀쌀하게 대하니. 앞으로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그리고 내가 빌려준 원주필(볼펜)은 네가 가져.”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반 초급단체 비서를 하던 남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몰래 주었는데 누군가가 체육시간에 여학생의 가방을 뒤져 그 편지를 칠판에 붙여놓은 것이다. 이 쪽지 편지 사건은 즉시 온 학교에 퍼졌고 당사자들은 어린 나이에 ‘발그라진’ 바람둥이로 낙인찍혔다. 편지를 받은 여학생은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몇 달 동안 부끄러워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끝내는 다른 학교에 전학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연애편지를 보냈다는 것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학교별로 이런 식의 유치한 몇 쌍의 커플은 나왔지만 30여 년 전에는 이런 식의 연애도 거의 없었다.

    평양의 오렌지족

    그런데 이런 연애도 지역과 학교마다 좀 다르다. 연애에 대한 생각은 평양 등 대도시와 농촌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특히 대도시에 있는 예능계 학교에선 수십 년 전부터 자유연애가 성행했다. 기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도 예술학원 학생들이 지나다니면 ‘바람둥이들’이라면서 손가락질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 학교는 지금은 더 심할 것이다.

    북한에서 남자는 대학에 가지 않으면 10년씩 군에서 청춘을 보낸다. 중학교 시절 커플이 10년 뒤에 다시 만나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면 우리 나이로 27세 정도가 된다. 결혼적령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에 쫓기듯 허겁지겁 결혼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군에서 10년씩 있다보면 웬만한 여자는 다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결혼에 이르기까지 곡절이 그다지 많지도 않다.

    제대군인들은 연애결혼보다는 중매결혼을 많이 한다. 최근에는 군인들이 아예 주둔지 인근에서 여성을 사귄 뒤 제대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리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군에서 연애는 금지됐기 때문에 주둔지 인근 여성들과 연애를 할 수 있는 병사들은 대개 제대를 눈앞에 둔 최고참들이다.

    이러한 군인들의 연애문제도 북한 당국의 골치를 썩게 하는 일임이 틀림없지만 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의 풍기문란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는 연애 풍속도를 주도하는 평양의 오렌지족 중학생과 대학생이 서 있다.

    기자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학교뿐 아니라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는 상당히 ‘건전’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남한처럼 대학 캠퍼스에서 남녀가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에 다닐 때 기자의 학급에도 결혼할 여성을 고르느라 선보러 다니는 30세 전후의 제대군인들을 제외하고는 연애를 하는 ‘직통생’은 거의 없었다. 직통생은 군에 안 가고 곧바로 대학에 온 학생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만 22~23세 때 대학을 졸업했다. 일부 부유한 직통생들이 졸업학년이 돼서야 사회 처녀들과 연애를 시작했지, 대다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일탈은 있었으니 이따금씩 임신으로 퇴학당하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기억나는 사례 중에는 이런 일도 있다. 방학이 돼 고향으로 갈 때면 남학생 몇 명과 여학생 몇 명이 보통 함께 기차를 탄다. 서로 보호해주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번을 같이 다니게 되면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된다.

    1990년대 북한의 열차는 전깃불이 없어 밤이면 한치 앞도 가려보기 힘들 정도로 늘 캄캄했다. 한번은 기자가 한밤중에 자다가 깨났는데 인근에서 언뜻 번뜩이는 라이터 불빛을 통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 녀석이 역시 우리와 같은 일행인 여학생을 안고 더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가슴이 후두두 떨렸다.

    “둘이 언제 눈을 맞추었지.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저 녀석이 실은 저런 바람둥이였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진한 모습에 내가 속고 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20대 초반이었지만 기자는 당시까진 서로 손잡고 다닐 정도만 돼도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이후부터 그 친구가 이상한 변태로 보이면서 자연히 마음이 멀어지기까지 했다.

    그때는 기자처럼 생각하는 대학생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금은 캠퍼스 분위기가 급속히 바뀌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됐다고 한다.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 변화는 그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중학교 시절부터 외부의 문물에 노출돼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요즘 학생들은 부모들마저 자식들의 변화에 매일 놀랄 정도로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학생들 사이에는 사랑과 연애, 결혼은 별개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금 평양의 중학교에서는 짝이 없는 학생들은 모자라는 아이처럼 인식돼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징표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학생들은 사랑이 아닌 연애를 위한 연애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세대는 중학교 때에 좀 좋아했다고 소문난 커플들은 연인이 군대 나갈 때에 바래다주는 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커플들이 생일에도 함께하고 평소에도 붙어 다니는 등 예전에 비해 훨씬 과감해졌다고 한다. 특히 평양에선 일부 중학생들은 좋아하는 연인 사이라면 성관계까지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 뜬 ‘겨울연가’

    이 같은 변화에는 최근 중국을 통해 피임용품이 급속히 유입된 것과 무관치 않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피임도구는 ‘고리(루프)’였다. 이것도 결혼한 뒤 애를 여럿 낳아서 더 이상 임신을 원치 않는 여성에 한해 병원에서 제한적으로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만 있으면 장마당에서 콘돔이나 피임약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들의 일탈을 조장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성교육이 전무한 북한의 학교 교육과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 없이 금기시하는 북한의 사회 분위기도 일탈을 방치하고 있다.

    참고로 한 가지 덧붙일 점은 북한의 성문화가 문란해진다고 해도 이는 과거와 비교해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평양 같은 대도시가 아닌 농촌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전국적으로 일반화해보면 북한은 여전히 남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건전하고 보수적이다. 최근 북한의 대학가에서 눈여겨볼 점은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의 결혼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몇 달 전 탈북한 평양 출신의 한 남성은 최근 북한 대학가의 풍속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요즘은 학생들이 서로 ‘아무개 동무’라고 부르지 않고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남한 영화나 드라마가 남긴 영향입니다. 그 영향이 참 치명적입니다. 남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학생들 속에서 인기가 높아 사랑과 연애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창끼리 연애는 많아도 결혼까진 거의 가지 않습니다. 물론 선배 중에는 대학 때부터 박사원(대학원)까지 같이 다니고 10년 동안 연애한 끝에 결혼한 커플도 있긴 합니다.

    요즘엔 동창보다는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가 결혼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의 대학 학급처녀들 중 2명이 선배와 결혼했습니다. 요즘 10년씩 군에서 복무하고 대학에 온 제대군인들은 그동안 급격히 변한 직통생들의 세계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학생들과의 연애는 물론 직통생 남자들에게도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제대군인들은 3학년이나 4학년이 되면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고 여자를 보는 눈도 생길 뿐 아니라 몸값도 상당히 높아집니다. 그러나 졸업하면 가치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졸업 전에 간부집 딸을 잡느라 정신이 없지요. 결혼할 때가 되면 아무리 이전에 가까웠던 여자가 있어도 순식간에 차버리고 힘 있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마지막 대목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북한에선 자녀가 대학에 가면 집에서 상당히 많은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명목상 북한은 무료교육을 표방하지만 이는 허울뿐이다. 학교에서 대주는 것이 없고 걷어들이는 것들뿐이라 먹고 입고 사는 것 외에도 학교에 내는 것이 많아 상당한 돈이 든다.

    1990년대에도 기자가 대학에서 한 달 쓰는 돈이면 남은 가족 3명이 두 달은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심각하다고 한다. 집에서 뒷바라지해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직통생은 대학 다니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장가갈 나이의 제대군인들은 집에서 대주지 못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기에는 결혼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가정형편은 좋지 않지만 운이 좋아서 또는 실력이 있어서 대학에 추천을 받은 제대군인들은 가장 먼저 자신의 대학생활을 후원해줄 수 있는 여성과 결혼하려 한다. 그래서 북에선 남자의 대학 뒷바라지를 해주고 졸업시킨 뒤 결혼식을 올리고 사는 여성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여성들도 바보는 아니다. 1~2학년 제대군인은 기피대상이다. 이왕이면 3~4학년에서 골라야 4년을 뒷바라지할 필요 없이 1~2년만 하면 된다. 이런 까닭에 북한에서 3~4학년 제대군인의 몸값이 가장 높다고 하는 것이다.

    졸업하면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학 다닐 때 높은 간부의 사위가 되면 좋은 직장에 배치받아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치부터 잘 받지 못한다. 물론 제대군인의 집 자체가 권세와 돈이 있는 집안일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학 때 결혼할 여자를 찾느라 애를 쓰지 않고 다만 연애 상대를 찾을 뿐이다. 졸업한 뒤 가치가 떨어지는 제대군인은 집안이 가난해 장가로 팔자를 고쳐보려다 실패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의 꿈은 남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앞에서 증언한 탈북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공주병에 걸린 여자도 많습니다. 제 처지는 생각도 안 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다가 좋은 대상을 다 놓치고 결국 한심한 대상자와 결혼하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제 후배 중엔 이런 사람도 있어요. 남자가 집안이 꽤 좋은데 모 외국 문화원 정보센터에서 하는 강습에 참가했다가 거기에서 여성 한 명과 연애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여자 부모들이 빨리 결혼하라고 강박하는 바람에 자기 부모들이 차려주는 잔칫상도 못 받고 23세에 졸지에 장가를 가 애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냥 여자 집에 당한 거죠. 실제로 제가 아는 여자 한 명도 시집을 못 가다가 1년 동안 그 정보센터를 다니더니 끝내 한 명을 붙잡아 28세에 시집을 갔지요.”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북한이라고 크게 다른 것은 없지만 요즘 북한 젊은이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한다. 보는 것은 남한 드라마지만 사는 곳은 북한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남한 드라마와 같은 로맨틱한 연애를 하고 싶은데 북에서야 춤추러 갈 데도 없지, 개별 식사칸이나 노래방도 다 없애버렸지, 온전히 둘이 사이좋게 영화 볼 데도 없지, 드라이브는 꿈도 못 꾸지, 제 땅에 있는 명승지들도 마음대로 돌아볼 수 없고 신혼여행이라는 말조차 없으니 북의 연인들은 참 불쌍합니다. 한창 연애할 때는 꼭 붙어 다니고 싶은데 조용히 이야기 나눌 장소도 별로 없지요. 특히 겨울에는 식당들도 다 추우니 사람이 많은 지하철역에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거나 밖에서 벌벌 떨다 헤어져야 합니다. 여름에는 낮엔 덥지, 날은 천천히 어두워지니 키스조차 하기 힘들지요. 봄가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요.”

    평양에서의 연애도 이렇게 힘드니 지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키스 문화는 남한 드라마가 유입되면서 연인임을 확인하는 의례처럼 돼버렸다고 한다.

    연인의 징표, 키스

    요즘엔 북한도 결혼 상대자를 찾는 기준이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한 제대군인 당원이 가장 으뜸가는 신랑감이었다. 즉 군복무 경력과 노동당원 자격증, 대학졸업증이 남자의 결혼 준비물인 셈이다. 거기에 남자 집안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이제는 군복무 경력이나 노동당원 자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성들에게는 남자의 재력이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북한이 뇌물이면 뭐든지 다 통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노동당원이 되기도 식은 죽 먹기이고 심지어 대학졸업장도 음성적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남자들도 여성을 보는 기준이 재력으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여성의 미모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재력에 대한 요구는 날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결국 종합하면 남녀 모두 집안의 재력이 가장 중요한 셈인데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보다 돈에 대한 집착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재력이 중요시되면서 간부들 사이에 누가 호화롭게 결혼식을 하는지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평양의 고위 간부들은 자식들의 결혼식을 청류관 같은 고급식당이나 외화 식당 또는 봉사소에서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집에서 간단히 치른다.

    일반적으로 부유층의 호화결혼식은 고급식당에서 3000~5000달러를 쓰며, 중산층의 결혼식은 결혼식전문식당에서 300~500달러를 쓴다고 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평양에는 결혼식전문식당이 없었지만 최근에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것 역시 남한 드라마를 포함해 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예식 문화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 살다온 부유층의 결혼식에는 간혹 웨딩드레스도 등장한다. 물론 이는 실내에서만 입는다. 당국의 눈에 띄어 처벌을 받을까봐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잘사는 집안의 결혼식에 가면 신부들이 남한처럼 결혼식 도중에 옷을 여러번 갈아입는다. 이것 역시 기자가 평양에 있던 10여 년 전에는 없던 일이다. 요즘은 웬만큼 살아도 2벌 정도는 기본이라고 한다. 신랑신부가 흰 장갑을 끼는 것도 유행이다. 2010년 현재 북한 신부의 한복 유행은 흰색 바탕의 치마저고리를 입는 것이다.

    결혼식 비디오 촬영

    또 결혼식 촬영도 과거에는 사진 촬영에 그쳤지만 최근 들어서는 비디오 촬영이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다. 비디오 촬영은 평양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이미 널리 퍼져 있는데 결혼은 물론 돌잔치와 환갑, 생일, 졸업식 등도 다 대상이다.

    최근에는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면서 비디오 촬영에 그치지 않는다. 동영상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서(동영상 편집을 북한 사람들은 다매체편집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화려한 결혼식 비디오영상물이 만들어진다.

    과거 북한에선 사진사가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면서 돈을 벌었다면 이제는 사진사를 대신해 촬영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비디오 촬영을 해준다. 촬영카메라 1대는 북한에서 대체로 1500~2000달러에 거래되며 결혼식 비디오 촬영은 한 편에 10~20달러씩 받는다.

    호화 결혼식

    하지만 북한의 호화 결혼식 경쟁에 제동을 건 사건이 몇 년 전에 발생해 최근에는 간부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고 한다.

    그 사건인즉 이렇다. 중앙당 조직부의 중앙기관 당생활지도담당 부부장이 딸의 재혼식을 청류관에서 열었는데 이때 식당 밖에 고급 승용차들이 꼬리를 물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평양 시내의 고급 승용차는 죄다 몰려온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당 조직부면 북한의 최고 핵심 부서라고 할 수 있는데다 거기에 중앙기관 당생활지도담당 부부장이면 모든 중앙급 간부의 목줄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첫 결혼식도 아닌 재혼식에 간부들이 몰려든 이 사건은 평양시 민심을 술렁이게 했고 결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까지 이 일이 보고됐다.

    그 부부장은 결국 “노동당 시대의 ‘변학도’”라는 김 위원장의 민심수습용 발언 한마디에 해임돼 지방으로 혁명화를 나가게 됐다. 북한 전역에 크고 작은 변학도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그 부부장은 자신이 운도 나쁘다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최근 결혼식 문화의 변화 중에 눈여겨 볼 것은 혼수의 공평분담이다. 북한의 결혼풍습은 지역마다 다른데 북한 안에서도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이 다르다. 남쪽은 예전에도 남자는 가구, 여자는 세간 살림용품을 준비하는 식으로 결혼비용을 거의 절반씩 분담했지만 함경도와 같은 북쪽 지방은 여자가 모든 신혼살림 준비를 해가고 남자는 거의 빈손으로 장가간다. 결혼 뒤에도 남쪽 지역에는 가사를 도와주는 남자가 많지만 북쪽 지역에는 남자가 부엌일을 거들어주면 약간 모자란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많은 남한 드라마가 유입되면서 북한 남성과 여성의 의식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북쪽 지역에서 여자에게만 들씌워지던 혼수 부담도 이제는 점차 남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식을 하면서 ‘손 없는 날’을 고르는 등의 미신행위는 20여 년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신행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평양시내의 경우 어떤 날에는 결혼식이 몇 건밖에 진행되지 않지만 손 없는 날에는 많은 경우 300여 건이 진행된다고 한다. 아무리 교육을 하고 단속을 해도 띠별 궁합을 보는 등의 미신행위는 더 심각해지면 해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런 문제를 주제로 강연회도 자주 진행하고 있고 TV에서 재담(만담)을 통한 교양도 계속 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말을 듣지 않고 있다.

    결혼을 앞둔 북한의 남녀에게 가장 큰 고민은 집 문제다. 북한은 주택난이 상당히 심각하다. 최근 20년간 살림집이 거의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결혼하면 대체로 여성이 남성의 집에 들어가 산다. 그러나 북한 도시의 살림집 면적이 대개 30~40㎡에 불과하기 때문에 형제가 많으면 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엔 두 쌍의 부부가 같은 방에서 커튼으로 경계를 가르고 함께 사는 풍경을 대도시에서, 특히 평양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재력 있는 상대를 찾기 위해 애쓰고, 결혼을 앞두고 집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모습은 남이나 북이나 비슷하다. 물론 객관적 상황으로는 결혼하고 능력껏 작은 전월세집이라도 구할 수 있는 남쪽이 훨씬 낫긴 하다. 북한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연하남을 만나는 친구에게 “능력이 좋다”고 농담을 던질 날이 오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세월이 더 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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