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1호 사진’에 나타난 ‘북한 경제’ 오해와 진실

‘노동신문’이 ‘웃는 김정일’을 ‘미친 듯’ 싣는 까닭은?

  •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 송홍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입력2010-04-02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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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12일자 ‘노동신문’ 2면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 수영장을 둘러보는 사진이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같은 사진이 전송돼 전세계 사람이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현지 지도 때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파란색 헝겊 커버를 씌운 철제 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걸까?

    라코스테 신발

    ‘1호 사진’에 나타난 ‘북한 경제’ 오해와 진실

    Lacoste Shua S WM SKU 스니커즈 신발

    수영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파안대소하는 김 위원장의 바지 아래로 스니커즈 신발이 보인다. 발등에 신발 끈 대신 이른바 ‘찍찍이’가 달린 가죽 신발. 앞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돼 있다. 이 신발은 2008년 건강이상설이 나돈 뒤 김 위원장이 즐겨 싣는 신발이다.

    이 신발은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 ‘라코스테’가 생산한 것. 신발의 윗부분에는 흰색실로 상표가 새겨져 있으며 신발 목둘레엔 흰색 선이 둘러졌다. 이 모델은 현재 한국에선 판매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면 110달러. 인터넷 ‘유튜브’에 올라온 홍보 동영상(Lacoste Shua S WM SKU #7595515)은 김 위원장이 신은 스니커즈가 남성용이 아닌 여성용이란 걸 알려준다. 김 위원장은 발이 작다.



    2008년 가을 이후 김 위원장이 굽이 높고 앞이 뾰족한 구두를 벗고 단화 스타일의 낮은 신발을 즐겨 신는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예전 사진에 비해 키가 작아 보이는 단점이 있지만 불편한 몸에 무리가 덜 가게끔 하려는 조처일 것이다.

    이 사진으로 북한 경제의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김 위원장 신발이 110달러짜리 프랑스제 스니커즈라는 사실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이 그런 신발을 아직 생산해낼 능력이 없다는 걸 드러낸다. ‘라코스테 스니커즈’는 북한 경공업 수준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경제 자립을 강조하면서도 최고지도자에게 국산 기능성 신발을 제공할 수 없을 만큼 낙후한 북한 경제의 한 단면인 것이다.

    북한 언론은 지난해 10월부터 ‘1호 사진’을 ‘미친 듯’ 쏟아내고 있다. ‘사진 정치’다. 신문에 실린 김 위원장의 표정은 대부분 밝다. 경제 시설을 ‘현지지도’ 하면서 웃는다. 1호 사진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찍은 사진을 가리키는 말.

    3월6일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대형 사진이 함경북도 함흥시에서 열린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대회장’에 등장했다. ‘수령’과 ‘지도자’의 1호 사진을 통해 선동전에 나선 것이다. 1호 사진은 프로파간다 도구다. 사진엔 북한의 정책 방향, 경제 현실도 담겨 있다.

    1면 독점하는 1호 사진

    1호 사진, 즉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은 북한 신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만 대중에게 전하는 것은 모든 권력자의 꿈일 것이다. 북한에선 이러한 백일몽이 현실로 이뤄진다.

    ‘김일성 유일체제’가 확립한 1967년 이후 신문 1면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김일성-김정일 부자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2003년 2월23일자 ‘노동신문’ 1면 좌측하단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김영남 위원장의 전신사진이 가로 6㎝ 세로 10㎝ 크기로 실린 적이 있다.

    1966년까지 ‘노동신문’ 1면에는 김일성 이외 정치인의 모습도 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워 블록(Power Block) 안에 제한적이나마 다원성이 존재한 덕분이다.

    북한 신문에서 김 위원장 관련 기사와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당연히 높다. 날마다 김 위원장 관련 기사 혹은 사진이 실린다. 사진은 한 달에 5~10일가량 지면에 등장하며 하루치 신문에 복수의 1호 사진을 게재하기도 한다. 500명 넘는 인원과 함께 찍은 김 위원장 사진이 1면에 실린 적도 있다(‘노동신문’ 1989년 6월22일자).

    ‘1호 사진’에 나타난 ‘북한 경제’ 오해와 진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009년 11월30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석정돼지공장과 대동강과수종합농장 현지 시찰 사실을 보도하면서 총 59장의 사진을 신문에 게재했는데 이 중 김 위원장의 얼굴이 보이는 사진이 28장에 달한다.

    1호 사진은 북한의 역사다. 김 위원장과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도 북한 내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08년 언론과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제기한 것도 북한 신문에서 1호 사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노동신문’ 8월15일자부터 1호 사진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고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1호 사진의 누락이 한동안 이어지자 세계 각국 언론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기정사실화했다.

    1호 사진은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활용된다. 사진 한 장을 TV 화면에 10초 정도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노동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다. 1~2분짜리 동정 보도에 10여 장의 사진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김정일의 동정을 담은 동영상은 촬영 직후 방송을 통해 국내외에 소개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공개한다. 동영상은 뉴스보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주로 보도한다. 서울에서 익히 봐온 김 위원장을 촬영한 동영상은 북측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 송출한 화면이다.

    ‘노동신문’이 미쳤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1호 사진과 1호 영상의 내용 및 공개 방법이 달라졌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 위원장이 2010년 3월6일 함경남도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대회장에 참석해 박수를 치는 동영상을 행사 당일 저녁에 공개했다. 북한 당국이 낮에 찍은 동영상을 당일 편집해서 신속하게 보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왜 그랬을까?

    지난해 10월까지 북한은 김 위원장의 동선, 동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최대한 절제해서 보도했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정보를 불필요하게 노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1호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호’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동영상보다는 덜하지만 사진도 행보를 노출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행보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는 사진에 드러내지 않는다.

    TV와 영화를 선전, 선동의 중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통해 보도한 까닭도 통제의 편이성 때문이다. 동영상에 비해 사진은 구체 정보가 덜 포함된다. 그런데 이번엔 동영상을 당일에 공개했다. 그만큼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은 북한에서 ‘일대 사건’인 것이다.

    이례적인 일은 또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김 위원장의 이미지가 ‘노동신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비상식적으로 급증했다. 신문에 실리는 사진 수가 기형적으로 증가한 것. 특히 화폐개혁 직전인 10월, 11월엔 1호 사진이 전례 없이 많이 게재됐다. 하루 지면에 김 위원장의 얼굴사진이 40장 넘게 등장한 날도 있다.

    화폐개혁 단행일인 11월30일자 ‘노동신문’이 압권이다. 김 위원장이 대동강 과수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찍은 사진이 59장 실렸고, 이 중 28장에 김 위원장 얼굴이 보인다. 노동신문은 이 사진들을 싣고자 발행 지면을 10개면으로 늘리고 기사가 전혀 없는 ‘전면 화보’ 형식을 취했다. 이 또한 전례 없는 일. 이날 단행할 화폐개혁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굳건함을 주민에게 알리려는 선전술로 풀이된다.

    11월24일자 ‘노동신문’은 ‘김정일 앨범’을 연상케 한다. 노동신문은 이날 발행한 6개면 중 1∼5면에 걸쳐 김 위원장이 평북 운산공구공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이 들어간 사진 23장을 게재했다.

    하루치 신문에 김 위원장 얼굴이 4번 이상 등장한 달은 2009년 10월엔 6일, 11월엔 10일, 12월엔 5일, 2010년 1월엔 11일, 2010년 2월엔 한국에 배달된 21일치 신문까지 모두 4일이다

    하루치 신문에 47장 싣기도

    ‘1호 사진’에 나타난 ‘북한 경제’ 오해와 진실

    ‘김정일 앨범’ 같은 ‘노동신문’. ‘노동신문’이 2009년 11월24일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북 운산공구공장 현지지도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지면. 노동신문은 이날 발행한 6개 면 중 1∼5면에 걸쳐 김 위원장의 모습이 들어간 사진 23장을 게재했다.

    올 1월24일자 신문에는 평양밀가루공장과 룡성식료공장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하루에 47장의 ‘김정일 사진’이 실렸으며, 지난해 12월11일자 신문에는 강계시내 공장을 현지지도 하는 모습이 30번 등장한다.

    김 위원장을 옆에서 수행하는 인물들의 얼굴도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경우는 건강이상설 이전 사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신문’에서 ‘김정일 사진’이 급증한 까닭은 경제 현장 현지지도와 관련이 있다.

    ‘김정일 사진’이 급증한 2009년 10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으로 배달된 신문에서 4장 이상의 사진이 실린 날짜가 총 36회인데, 이 중 35회가 경제 현장 방문 관련 내용이다. 군부대를 방문하거나 외빈을 만나는 김 위원장 사진은 예전과 똑같이 1장 또는 2~3장으로 처리한다.

    이렇듯 경제 현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 사진을 ‘미친 듯’ 게재하는 것은 경제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주민들에게 강조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선군(先軍)정치를 표방했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도 군부대 중심으로 짜여졌다. 경제난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돼 현지지도할 경제 현장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협동농장, 공장, 건설현장 등을 돌며 현지지도를 했고, 여기서 찍은 사진을 ‘노동신문’에 내보냈다.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의 성과를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군부대 기념사진 촬영은 간소화했다. 그동안 군부대 시찰 집체사진에는 김 위원장 오른쪽과 바로 뒤에 선 병사가 각각 쌍안경과 은빛 소총을 들고 있었지만, 2009년 8월11일 이후 공개한 사진에선 총과 쌍안경이 사라졌다. 김 위원장 몸 상태 탓에 무거운 총을 선물로 전달하는 의식을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다.

    군부대 사진은 간소화

    주목할 점은 화폐개혁 직전부터 최근까지 ‘노동신문’에 등장한 김 위원장 얼굴 표정이 대부분 밝다는 것이다. 1호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에도 약간의 변화가 보이는데, 대형 조명을 사용해 얼굴을 좀 더 환하게 처리하고 있다.

    2009년 12월12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김 위원장 얼굴을 보자. 이렇듯 요즘 ‘노동신문’엔 웃고 있는 김 위원장 얼굴이 실린다. 과거 북한 언론은 ‘1호 사진기자’가 틀에 맞춰 촬영한 ‘정중한 표정’의 사진을 게재했다. 과연 웃을 일이 생기긴 한 걸까?

    북한의 프로파간다는 현장 사진에 등장하는 구호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을 다시 보자. 김 위원장 머리 위로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다!’라는 구호가 보인다. 북한식 계획경제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다.

    선전 효과를 높이고자 사진 합성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과거엔 사진 조작이 거의 없었다. 지난해 11월12일자 ‘노동신문’ 2면에 실린 사진 속 구호판 ‘우리나라 사회주의 만세’와 ‘장군님 따라 천만리’는 각각 다른 거리에 있지만 포커스 상태가 똑같아 포토샵 기능을 활용한 합성일 가능성이 높다. 11월15일자 1면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와 11월17일자 3면 ‘폭풍 쳐 달리자 희천속도로’ 구호판도 비슷한 위치의 다른 사물과 선명도가 달라 합성일 확률이 높다.

    ‘김정일 사진’에 ‘김일성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법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노동신문’ 10월24일자, 11월24,25,28일자엔 김 위원장이 방문한 곳에 걸려 있는 김일성의 액자 사진을 별도로 실었다.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대회장에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대형 사진이 등장했다.

    홍보 정책 변화

    북한은 지난해 화폐개혁과 올해 공동사설(신년사)을 통해 ‘인민 경제 향상’을 강조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 얼굴을 ‘절제’해서 보여주던 관행에서 벗어나 ‘연속 촬영해’ 보여주는 데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가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알려보려는 홍보 정책의 변화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정했다. 사상적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강국’을 이뤘으니 ‘먹는 문제’를 해결해 강성대국을 완성하겠다는 게 북한 주장의 요지다. 2012년은 북한에서 유난스러운 해다. ‘김일성 출생 100주년’ ‘김정일 출생 70주년’이 겹친다.

    ‘인민 생활’이란 단어가 지난해 공동사설에선 딱 1번 등장했으나 올해는 19번이나 나온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당 창건 65돌을 맞는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밝혔다. 도대체 ‘웃음’ ‘자신감’의 근거는 뭘까?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경제학)의 설명이다.

    “다소 과장된 것이겠지만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 단계에 들어섰다’는 공동사설의 주장이 아주 근거 없는 과시만은 아니다. 북한이 발표하는 통계와 통일부 자료를 보면 경제가 상당히 개선됐다. 식량 생산이 회복됐고, 공업 생산도 크게 늘었다. ‘노력 동원’인 100일 전투, 150일 전투도 성과를 거뒀다. 공장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는 건 에너지와 원료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도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화폐개혁도 나름의 자신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원자탄 쏜 것 같은 특대형 사변”

    ‘1호 사진’에 나타난 ‘북한 경제’ 오해와 진실

    3월6일 함흥광장에서 열린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재가동 축하 군중행사. A가 ‘김일성 사진’, B가 ‘김정일 사진’이다.

    1호 사진엔 북한이 현재 추구하는 ‘경제 발전 전략’도 드러나 있다. 1호 사진의 배경으로 쓰인 구호판은 북한식 ‘계획 경제’의 상징 격인 ‘노력 동원’을 촉구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계획 경제는 ‘시장’에 의존해 버텨왔다. 계획과 시장이 공존했는데, 주민의 ‘먹는 문제’를 시장에 방임하고 국가의 역량은 국영기업소를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지난해 화폐개혁은 시장을 옥죄고 ‘국가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이뤄졌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국영기업의 일터로 되돌아오라”는 것이다. 산업현장을 시찰하는 김 위원장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체제에 부담을 주는 시장화, 자본주의화 대신 개선·재건을 통해 실리를 확보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1호 사진은 ‘주체’ ‘우리식 사회주의’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은 김 위원장이 3월5일 김책제철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찍은 것이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김책제철소는 ‘우리식 용광로’에서 ‘주체철’을 생산하는 곳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과 2월에도 이 기업소를 찾아 1호 사진을 찍음으로써 철강 생산 능력을 회복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을 촬영한 을 보자. 군중 사이로 보이는 입간판 2개는 김일성-김정일 사진이다. ‘김일성 사진’(A)은 1961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군중대회 때 찍은 것이고 ‘김정일 사진’(B)은 김 위원장이 2월 2·8 비날론연합기업소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만진 것이다.

    석회석 무연탄에서 얻은 원료로 만드는 합성섬유인 비날론은 북한에서 ‘주체섬유’로 불린다. 김일성 생존시엔 ‘입는 문제’ 해결의 상징이었다. 북한이 비날론을 다시 생산한 건 16년 만의 일.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이 시작된 뒤 지금껏 공장을 돌리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이 기업소를 현지 지도 하면서 “2·8 비날론의 현대화는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 처지에선 웃을 만한 일인 셈이다.

    북한 언론에 기형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1호 사진이 웅변하듯, 북한 국영기업소의 상황은 최악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주목하는 전문가가 많다.

    시장을 옥죈 화폐개혁은 ‘계획 부문’이 일부 회복되면서 나온 북한식 자신감의 산물이다. ‘조선신보’는 지난해 12월4일자에서 “국가 능력이 강화됨에 따라 보조적 공간의 기능을 수행하던 시장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약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나름의 길

    그러나 북한이 1호 사진을 통해 주민에게 보여주는 공장은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물’일 가능성이 크다. 2·8 비날론 공장에서 찍은 1호 사진은 노동신문에 62장이나 실렸다. 지난해 11월7일 12장, 올해 2월8일, 9일 각각 19장, 31장이 게재됐다.

    북한 당국이 ‘인민 경제’를 향상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과시할 ‘선전장’이 많다면 1호 사진의 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울 것이다.

    영상은 인간이 의도를 갖고 제작한 것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1호 사진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돼왔다. 북한의 정치 지도자와 권력은 이미지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면서 현실과 유리된 현실을 북한 인민과 외부세계에 전해왔다.

    1호 사진을 보고 장마당을 떠나 기업소로 되돌아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도자가 인민 생활을 위해 헌신한다고 느낀 주민은 또 얼마나 될까? 1호 사진을 통해 들여다본 북한 경제는 ‘나름의 길’이란 표현으로 요약된다. 시장화, 자본주의화가 아닌 ‘나름의 길’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다.

    조동호 교수는 “가시적 성과를 낸 뒤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면서 후계문제를 마무리하겠다는 게 북한 정권의 의도일 것이다. 시장을 통제하고 계획을 강조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에 해가 되겠지만, 단기적으로, 즉 2012년까지는 그러한 접근이 어떤 성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외부와 격리된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의 동물은 지구의 다른 곳과 달리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동물은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한 정권이 선택한 길의 성공 여부를 예단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북한 경제가 갈라파고스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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