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오바마의 대규모 핵 폐기, 한반도 핵우산 철수하나

북한이 화학탄 쏴도 핵 응징 못해… 핵 작계서 북한 삭제될 수도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04-02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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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마호크 핵미사일 퇴역으로 난리 난 일본… 한국은?
    • 백악관의 새로운 ‘핵정책보고서’, 핵무기 30~40% 감축 확정
    • 기존 핵 작계 8044와 8022 통합한 新작계 8010
    • 美 전략사령부 기밀문서의 6대 공격목표, 북한은 계속 남을까
    • 정상회담서 약속한 ‘확장억제’ 흔들려… “어떤 식으로든 약화 불가피”
    • 한반도 핵우산 변화, 북한 핵 포기 압박카드로 사용될 듯
    • “2005년 ‘핵우산 변경 요구’의 실수 반복 말아야”
    오바마의 대규모 핵 폐기, 한반도 핵우산 철수하나

    2009년 2월 완성된 미국의 핵 사용 작전계획 8010-08 표지.

    2월 하순 일본 언론은 미국이 핵탄두 장착 크루즈미사일 토마호크의 퇴역을 최종 결정해 일본에 비공식 통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토마호크는 태평양 심해에서 운용되는 미군 핵잠수함에 유사시 탑재·운용되는 미사일로, 일본에 제공되는 핵우산의 핵심 무기체계 가운데 하나다. 쉽게 말해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일본에 대량살상무기(WMD) 공격을 가할 경우 핵탄두를 싣고 날아가 보복하게 될 미사일이었다.

    이어 3월2일 열린 미일 안보실무협의에서 일본 측이 미국의 핵 억제력 감축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당국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는 핵우산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자리였다. 북한의 핵개발에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기된 것으로 확인되자, 일본 국내 여론도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다. 토마호크 핵탄두 퇴역을 양해한 것으로 알려진 하토야마 내각에 대해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악화된 미일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핵 없는 세계’를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의 핵무기 감축 정책이 속도를 냄에 따라 일본 전체가 이른바 ‘핵우산 논란’에 휩싸여 있는 데 비해, 같은 핵우산 아래에 있는 서울은 전혀 기류가 다르다. 토마호크 문제만 해도 3월5일 ‘중앙일보’가 “일본에는 퇴역 사실이 통보됐지만 한국 정부에는 언급이 없었다”며 “이는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약속돼온 ‘확장된 억제력(extended deterrence)’의 약화를 의미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반향은 거의 없었다. 한 일본 외교관은 “한국 정부나 국민이 미국의 핵 감축이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무신경한 게 놀랍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핵우산이 사실상 같은 무기체계와 작전개념에 의해 운용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꿈

    최근 미국이 차근차근 구체화하고 있는 이러한 변화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월 중 의회에 제출하기로 돼 있는 ‘핵정책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핵정책보고서는 향후 5~10년간 진행될 미국의 핵무기 관련 예산 배정과 운용 배치의 큰 뼈대가 되는 문서로,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핵정책보고서는 북한을 사실상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한반도 안보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초 지난해 말 발표하기로 했다가 이미 세 차례 연기된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보고서는, 냉전 종식 이후에도 지속돼온 기존의 핵무기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나 동맹국은 물론 전세계의 안보지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존 핵탄두를 30~ 40%가량 감축하는 대규모 핵 폐기 조치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후속안에 합의한 뒤 4월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와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를 통해 명실 공히 핵군축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NPR을 통해 공식화될 핵무기의 대량 감축이 핵무기의 ‘역할 재조정’이라는 기본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월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그라운드제로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안보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이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나 대상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이 과연 미국의 유사시 핵 사용 타깃에 계속 포함될 것인지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다.

    미국의 핵무기 운용과 배치는 우선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의 자문을 받아 작성하는 핵정책보고서를 통해 큰 그림이 그려지고, 그에 따라 국방부와 전략핵무기 운용을 담당하는 전략사령부(STRATCOM)에 관련 전략지침이 하달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에 따라 전략사령부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때의 교리와 작전계획을 작성하고, 그에 알맞은 핵무기 배치와 적정수량을 도출하게 된다. 이에 맞춰 핵무기가 부족하면 추가로 생산·배치하고, 특정목표를 위해 새로운 핵탄두가 필요하면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식이다.

    그러나 과도한 핵무기 숫자가 오히려 안보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핵무기의 수량을 대폭 줄인다는 원칙을 먼저 세워두고 그 줄어든 수량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배치와 역할을 새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핵 정책을 수립하는 중이다. 기존의 방식이 냉전 종식 이후에도 핵무기의 역할은 오히려 증가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구(舊) 소련 등 주요 핵 보유 국가로 한정됐던 핵 사용 대상이 지금은 이른바 ‘불량국가’나 테러집단까지 확대된 것이 적절한지 재검토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공언이 한반도 핵우산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못 명확해진다. 그 구체적인 파장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핵우산을 위해 준비된 미군의 작전계획과 그에 동원되는 무기체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그 특성상 엄중한 군사기밀에 묶여있지만, 미 국방부 등은 상당량의 간접자료를 공개하고 있고 특히 미국의 많은 전문연구기관은 FOIA(정보공개법)에 의해 관련 자료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비밀 해제된 공식문서와 전미과학자연합(FAS)의 한스 크리스텐슨 연구원,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토머스 코크란 박사 등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의 핵 정책 변경으로 한반도 핵우산이 어떻게 변화할지 추적해보기로 하자.

    새로운 통합 핵 작전계획

    냉전시대 미국이 작성, 운용했던 전략핵 작전계획 SIOP(Single Operation Plan)는 2003년 3월 전략사령부 ‘작계(OPLAN) 8044’로 대체된다. 2002년 10월 전략사령부가 작계8044 작성을 위해 백악관 보고용으로 만든 1급 기밀문서는 러시아 등 기존 핵 강국에 대한 보복 핵 공격 시나리오와 함께 ‘지역국가(regional state)’에 대한 핵 사용을 설정하고 있다. 비밀이 해제되면서 상당부분이 삭제됐지만, 이 문서는 지역국가를 예시하면서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장면을 포착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작계8044의 잠정 타깃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문서는 구체적인 전략핵 투사 방식으로 장거리 폭격기와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대륙간탄도탄을 모두 열거하고 있다. 이들 세 종류의 무기체계는 냉전 시기 미국이 소련에 대항해 구축해놓은 이른바 ‘3원체제(Triad)’의 구성요소다. 이는 북한에 대한 전략핵 공격의 범주가 이른바 ‘새로운 3원체제’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은 핵우산 차원에서 평양을 단번에 초토화할 수 있는 전략핵탄두를 장거리 폭격기나 대륙간탄도탄, 잠수함탑재탄도탄에 실어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한반도 핵우산’의 군사적 실체다(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2008년 11월호 ‘미 기밀문서로 본 핵우산의 실체’ 참조).

    전략사령부가 검토한 또 다른 핵사용 계획으로는 2003년 11월부터 검토된 ‘개념계획(CONPLAN) 8022’가 있다. 8044가 적이 핵을 사용한 뒤에 이를 보복하는 경우를 다루는 데 비해, 이 계획은 적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징후가 확인됐을 때 이를 조기에 격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이 같은 징후가 발견되면 전략사령부가 해당 대량살상무기 기지를 신속히 파괴한다는 이른바 ‘전 지구적 타격(Global Strike)’이 그 핵심이었다. 이 계획 역시 북한 등 이른바 ‘우려국가’들을 타깃으로 설정해 국방부와 의회 보고를 마쳤지만 선제공격의 정당성에 대한 국제법적 논란을 의식해 2007년 7월 철회된다.

    그러나 ‘전 지구적 타격’이라는 개념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2009년 2월 작계8044와 통합되어 작계8010이라는 단일한 작전계획으로 탈바꿈한다. 전술핵과 전략핵은 물론 정밀타격체계 등 일부 재래식 전력까지 한 계획에 포함함으로써 대상국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선제공격으로 차단하거나 유사시 대량 보복할 수 있게 한 ‘종합 버전’인 셈이다. 2008년 비밀 해제된 전략사령부의 브리핑 자료는 이 새로운 작계가 모두 6개의 타깃을 설정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확한 공격대상은 기밀로 묶여 있지만 러시아, 중국, 이란, 시리아, 국제 테러조직과 함께 북한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핵우산과 핵 개발의 상승작용

    오바마의 대규모 핵 폐기, 한반도 핵우산 철수하나

    비밀 해제된 전략사령부의 작계8010 관련 브리핑 자료. 새 작계가 모두 6개의 타깃을 설정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여겨볼 것은 이들 6개의 공격대상 가운데 두 나라만이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 국가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경우 이미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했지만, 미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핵 능력이 미 본토나 동맹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공식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의 핵 능력은 북한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핵 공격을 가할 수 없는 나라에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일까.

    이는 클린턴 행정부 시기였던 1993년, 미국의 보복 개념이 ‘핵에는 핵으로’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에는 대량살상무기로’라는 형태로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핵무기가 아닌 대량살상무기, 즉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의 대규모 사용에 대해서도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해 보복하겠다는 뜻이다. 종류가 무엇이든 적국이 갖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쓰면 미국도 미국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인 핵으로 보복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대로, 부시 행정부 시기였던 2003년 무렵부터 ‘적국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징후가 확인되면 공격을 받지 않아도 사전에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작계8010이 상정하고 있는 핵 사용 교리가 완성됐다. 이는 오로지 ‘적이 핵을 쓰면 우리도 핵으로 보복한다’는 원칙만으로 구성돼 있던 냉전시기 미국의 핵 사용 교리에 비하면 그 쓰임새나 폭이 엄청나게 확장된 것이 사실이다.

    이를 한국의 입장에서 다시 풀이해보자.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은 주로 구(舊) 소련이나 중국이 한국에 핵을 사용할 경우 대신 보복해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1993년 미국의 핵 보복 원칙 변경 이후 핵우산은 북한이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핵으로 보복해주겠다는 의미로 확장됐고, 이를 전후해 북한의 NPT 탈퇴로 이른바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으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에 즈음해 핵우산은 다시 유사시 핵 선제공격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발전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 개념 확장과 북한의 핵개발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온 것은 아닌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4개의 시나리오

    2010년의 현실로 돌아와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천명한 ‘핵 역할의 축소’는 앞서 작계8010이 설정하고 있는 6개 잠정 공격대상 가운데 일부가 삭제되는 방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렇게 삭제되는 잠정목표 가운데 북한이 포함될지 여부다. 북한에 핵 능력이 없었던 1990년대 이전과 달리 현재는 ‘북한을 대상에서 뺀 핵우산’은 남한이나 일본에 모두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FAS와 NRDC 등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보고서 작성방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미국의 전문가 집단은 백악관이 검토하고 있는 ‘핵 역할의 축소’를 3~4개의 시나리오로 구분해 예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파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으로 대표되는 현실중시파가 이 중 어떤 시나리오를 택할지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핵정책보고서의 발표 일정이 계속 연기되는 것 역시 논쟁이 마무리되지 못한 탓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들 시나리오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시나리오가 채택돼도 다른 시나리오가 병합될 가능성이 있다.

    거론되는 첫 번째 시나리오는 ‘핵에는 핵으로’라는 1993년 이전의 원칙으로 되돌아가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작계8010의 6개 타깃 가운데 시리아와 이란, 국제테러집단은 삭제가 불가피하다. 북한의 경우에는 핵무기를 쓰지 않고 생화학무기만 사용하는 동안에는 미국의 전략핵우산이 가동되지 않는 셈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서울에 화학탄 탑재 미사일을 쏴도 미국은 이에 핵으로 보복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사뭇 충격적이지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방안의 채택이 확정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한 핵 능력을 ‘군사적 위협’이 못 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작계8010에서 북한이 완전히 삭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작전계획을 작성하는 전략사령부는 군의 속성상 삭제에 반대할 공산이 크고, 이에 대해 백악관 검토과정에서 논란이 재발할 여지도 있을 듯하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아예 2차 타격능력을 갖추고 있어 미국의 안보를 결정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핵 강국만 대상으로 삼는 방안이다. 미국의 핵 보복을 받은 후에도 다시 미 본토나 동맹국에 2차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는 러시아와 중국만이 핵 작계의 공격목표에 남게 된다. 이 경우 북한은 작계8010에서 삭제될 것이 확실시되고,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은 북한에 관한 한 사실상 해체 혹은 철수하게 되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탄 개발 등에 성공하면 다시 타깃에 오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의 일이다.

    어떤 경우든 ‘핵우산 약화’ 불가피

    오바마의 대규모 핵 폐기, 한반도 핵우산 철수하나

    북한 핵실험 직후 개최된 2006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확장된 억제’와 관련해 발표하고 있는 윤광웅 국방장관(왼쪽)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

    세 번째 시나리오는 선제 핵 사용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안이다. 적국의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기 전에 파괴하는 개념은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용징후가 포착되면 1시간 내에 이를 격파하겠다는 ‘전 지구적 타격’에서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가장 급진적인 것에 속하는 이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상시적으로 최고수준의 전투태세를 유지해온 미군의 핵 배치는 크게 완화될 가능성이 높고 필요한 핵탄두의 수량 역시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거론되는 마지막 방안은 재래식 전력과 핵 능력을 완전히 분리하는 시나리오다. 앞서 말했듯 작계8010은 전략핵과 전술핵, 재래식 전력을 모두 한 바구니에 넣은 작전계획이다. 상대방이 대량살상무기를 썼거나 준비를 마칠 경우 미국이 이를 어떤 수준으로 타격할지 모호하게 만들어 ‘공포’를 극대화한다는 것이 그 노림수였다. JDAM(통합정밀직격탄) 같은 재래식 고폭탄으로 발사시설만을 타격할지, 전술핵으로 해당 기지 주변만을 초토화할지, 전략핵미사일로 아예 전쟁지휘부가 있는 수도 전체를 격파할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감히 대량살상무기를 쓸 생각도 못하게 만든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이러한 모호성이 오히려 핵무기 경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거나 유사시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핵정책보고서 작성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엘렌 터셔 미 국방부 군축차관보는 최근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사이의 장벽은 모호해선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바마 행정부가 핵정책보고서를 통해 두 번째 방안을 채택하는 경우 그간 한미 정상회담이나 연례안보협의회(SCM) 등에서 약속됐던 핵우산 혹은 ‘확장된 억제력’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채택이 확정됐다는 첫 번째 방안의 경우에도, 그 추이를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핵우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상황을 가정해 풀어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북한이 화학탄이나 핵을 쉽게 사용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그간의 지배적인 관측이었다. 미국의 핵우산 보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현재 논의대로 첫 번째 방안이 확정된다면 북한이 화학탄 공격을 훨씬 쉽게 선택할 수도 있게 되고, 만에 하나 두 번째 방안이 채택된다면 유사시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북한이 핵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남한에 던지는 심리적 무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북한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무력도발을 감행한다 해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공격을 우려해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남과 북의 군사적 균형 혹은 세력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북한이 전략사령부의 관련 작계에서 삭제되지는 않겠지만, 이전에 비해 북한이 핵우산에 대해 느낄 ‘공포’의 강도는 줄어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느 경우든 핵무기의 수량과 역할을 줄이겠다는 미국의 원칙이 관철되면 한반도 핵우산의 위력이나 강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2005년의 실수

    그러나 거꾸로 보면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미국과 북한이 핵 사용과 관련해 상승작용을 벌이며 위기가 극대화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이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고, 전세계적인 핵 공포 역시 경감된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큰 틀에서 보자면 오바마 대통령의 ‘핵 없는 세계’라는 모토는 이를 통해 잠재적국에도 상응하는 핵 감축이나 정책변경을 요구하겠다는 복안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북한에 대입해보면 지금까지 살펴본 핵우산의 변화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할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 미국의 핵우산 원칙 확대와 북한의 핵개발이 서로 상승작용을 벌여온 그간의 역사는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북한이 그간 핵 개발의 이유로 ‘미국의 핵 위협’을 내세워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이 6자회담이나 북미 협상과정에서 핵 정책 변경을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006년 10월17일자 ‘동아일보’는 “2005년 10월 열린 37차 SCM에서 한국 측이 미국에 핵우산 제공을 언급한 공동성명 조항의 용어를 삭제 혹은 변경하자고 요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용어 변경을 통해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지대화’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 핵 포기의 명분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용어 변경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측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이를 완강히 거절했고 한국이 요구를 철회해 핵우산 조항은 유지될 수 있었지만, 이때의 일은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 사이에 큰 상처로 남았다(‘신동아’ 2007년 7월호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총괄 리처드 롤리스가 밝힌 한미동맹의 진실’ 참조).

    현재 시점에서 당시의 시도를 돌이켜보면, 미국의 핵 정책이 단순히 개별국가와의 외교관계가 아니라 세계전략 차원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거시적인 흐름을 고려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할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군사적 위협을 하나의 기준 안에서 평가해 핵정책보고서부터 작전계획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원칙을 설정하고자 하는 미국의 핵무기 운용 메커니즘을 꿰뚫어보지 못한 탓이었다. 가치판단을 떠나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두 개의 남은 길

    미국이 먼저 핵 사용과 관련해 획기적인 원칙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2010년의 상황은 당시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사뭇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백악관이 추진하는 독트린 차원의 정책 변화가 핵우산의 약화나 철수로 연결된다면 과연 한국이 요구한다고 해서 이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는지 암울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한국의 외교역량이나 비중이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차지하는 몫은 2005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고, 오바마 행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쏟고 있는 에너지를 감안하면 무조건 변화를 거부하려는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 안보 관련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해 초 미국이 토마호크 폐기 방안을 전달한 뒤 일본 자민당 정권이 철회 로비를 펼쳤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 반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미국 핵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이제 기정사실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고 보면 남은 길은 이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핵정책보고서가 전략지침이나 작전계획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한반도 핵우산의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실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오바마 행정부와 발맞춰 북한의 핵 포기 압박 카드로 최대한 활용하는 일이다. 닥쳐온 변화를 무시하고 앉아서 기다리거나 실익 없이 거부하는 자세는 2005년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파도치는 국제정치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가늠해내는 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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