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미국의 우파 풀뿌리 조직 티파티

미국 뒤엎는 ‘우파 반란’을 꿈꾼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10-04-05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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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적으로 혁명, 반체제 시위는 좌파의 몫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사회에선 극단적인 우파 시각을 가지고 반정부, 기존체제 부정을 표방하는 풀뿌리 운동이 급부상하고 있다. 티파티(Tea Party) 운동이다. 기존 정치권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티파티는 올해 말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 판도까지 뒤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2월18일 오전 10시 텍사스주 오스틴 상공을 경비행기 한 대가 낮게 날고 있었다. 건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저공비행하던 이 비행기는 미 연방국세청(IRS) 7층짜리 청사 2층으로 돌진했다. 화염이 순식간에 건물을 뒤덮었고 검은 연기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9·11테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 사고로 경비행기를 조종했던 조지프 앤드루 스택(53)과 건물에서 일하던 직원 2명이 사망했다.

    ‘가미카제’ 식으로 비행기를 몬 스택은 그 직전에 미리 인터넷에 “IRS와의 분쟁으로 4만달러와 10년 세월을 날렸다. 빅 브러더(Big Brother) 국세청 인간들아. 이제 다른 걸 시도해보자. 내 살점을 가져가라. 그리고 잘 자라”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했지만 과세 당국과의 마찰로 2000년과 2004년 영업을 정지당했고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다.

    그가 티파티 활동에 직접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그가 거론한 조세 저항은 요즘 상당수 미국인이 느끼고 있는 반정부 정서 중 하나다. 티파티(Tea Party)는 1773년 보스턴 항구에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과도한 세금 징수에 항의해 차(茶) 상자를 바다에 버린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에 불을 댕긴 사건이다. ‘Tea’는 ‘Taxed Enough Already(이미 세금을 충분히 냈다)’의 약자이기도 하다.

    티파티는 첫 전국 총회에서 연방 상·하원 선거에서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 공약을 내거는 후보의 당선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보스턴 차사건이 발생한 지 226년이 지난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티파티 운동이 활기를 띠게 된 데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자금을 투입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 운동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료보험 개혁 등 정부의 역할 강화에 반대하는 움직임과 결합되면서 이제는 조세저항 차원을 넘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해체, 연방정부 역할 규제 등으로 어젠다를 계속 확장하면서 ‘과격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제위기로 직장을 잃는 등 피해를 당한 계층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되고 연방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성향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이제는 위험스러운 주장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오바마는 실제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다” “정부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들 중 일부는 ‘9·11테러 배후에는 미국 정부가 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믿기도 한다.

    풀뿌리 조직을 통해 세를 확산시키고 있는 티파티는 연방 세금신고 마감일을 기해 전국 500여 개 도시 및 타운에서 동시 다발적 집회를 갖고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으며, 수도인 워싱턴에서 대규모 시위를 개최하면서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미국판 낙천 낙선운동

    이들은 기존 공화당에 대해서도 불신을 감추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취임 후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비난하는 한편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에 대해선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 가짜 보수”라며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민주 공화 양당체제하에서는 희망이 없는 만큼 ‘제3의 정당’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티파티는 정치행동위원회를 구성해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최소 20명의 지지후보를 당선시키기로 방침을 정하는 등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돌입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10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방안을 현재 추진 중이다. 이들은 또 어떻게 하면 많은 참여자를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해 세미나를 하는 등 전략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올해 초 민주당 텃밭이었던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티파티가 공화당의 스콧 브라운 후보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하면서 새 정치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선거는 미국 상원에서 민주당이 누리고 있던 ‘슈퍼다수당’(100석 중 60석)을 깨면서 미 정치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티파티가 새로운 점은 그동안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계층을 적극적인 참여자로 ‘포섭’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2월 ‘뉴욕타임스’의 티파티 심층보도 기사에 소개됐던 팜 스타우트씨가 대표적인 사례. 아이다호주에 살고 있는 스타우트씨는 은퇴자이며, 지금까지는 전혀 정치활동에 참여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주부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아들이 직장을 잃고 소유하던 집마저 압류당하게 되자 스타우트씨는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를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스타우트씨는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월스트리트의 탐욕으로 경제위기가 왔고, 이들을 살찌우게 하기 위해 미국 건국이념인 ‘작은 정부’의 원칙이 훼손됐으며 막대한 재정적자가 불가피해졌다고 믿는다. 특히 경기부양법안 등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돼 재정적자가 커진 점을 ‘작은 정부’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고 간주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2008년 본격화된 초대형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경기회복을 위해 다걸기(올인)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우트씨는 폭스TV 진행자인 글렌 벡 등의 논리에 빠져들면서 더욱 극단적인 성향의 이데올로기에 심취했고 티파티 지역본부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스타우트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으며, 제2의 내전 가능성이 있다”며 “나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당한 위험수위의 발언이지만 스타우트씨는 그게 미국을 진짜로 위한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스타우트씨처럼 평범한 주부이던 미국인이 어떻게 해서 ‘우파 혁명군’으로 변했을까. 여기에는 경기침체에 따른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소외계층이 사회, 특히 정치 및 경제엘리트 계층에 대해 갖는 불만과 함께 이 같은 정서를 이용해 의식화를 부추기는 선동세력의 역할도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유튜브 등을 검색해보면 ‘Tea Party’를 선전하는 영상물이 넘쳐난다.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도 티파티를 선전하는 자료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티파티 그리고 뉴레프트

    지난해 미 국토안보부는 보고서를 내고 “사상 유례가 없는 불황이 닥친 가운데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극우파 세력의 과격화 가능성이 커졌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가 추락할 때 과격 극우파세력이 활동영역을 넓혀왔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토안보부는 보고서에서 “일부 극단적인 세력은 무기와 식량을 비축하고, 준(準) 군사훈련을 재개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아이다호주 등 과거 극우과격세력이 활동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이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온 뒤 티파티 모임이 열릴 때면 ‘자랑스러운 우파극단주의자(Proud Right-Wing Extremist)’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 회원이 많아졌다. 연방 정부를 조롱하는 것이다.

    티파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백인인 점을 지적하면서 인종주의적인 색채가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티파니는 또 이민자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티파티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운동이 미 전역에 들불처럼 급속히 번졌지만 전국 단위의 공식적인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딕 아미 전 하원 원내대표(공화당) 등이 기수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아직 통일된 전국 조직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테네시주에서 처음 열렸던 전국 대회의 규모에선 참가비(549달러)가 비싸다는 점이 논란이 되면서 일부 조직이 참여를 거부하는 등 내분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또 티파티 참여자들의 이념적 지향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지향을 보이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합리적인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 ‘월마트 히피’라는 칼럼을 통해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르지만 40년 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뉴레프트(신좌파)와 현재 미국 사회를 달구는 티파티는 똑같이 기존 체제의 전복을 통해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는 혁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민에 의한 자발적인 참여민주주의를 믿는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티파티가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정치인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그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티파티 전국 총회 마지막 날에 참석해 오바마 행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공화당 후보경선에 나섰던 론 폴 연방하원의원도 티파티 운동의 핵심논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새롭게 부상한 정치인이다. 그는 최근 의회에서 FRB에 대한 규제강화안을 제기해 주목받기도 했다. 티파티는 FRB가 구제금융안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FRB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공화당 주류는 현재로선 티파티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티파티가 ‘오바마 때리기’에 나서는 것은 고마워할 일이지만 극우성향을 보이는 티파티와 함께 갈 경우 중도성향 유권자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

    티파티 그리고 커피파티

    티파티가 ‘무늬만 보수주의자’인 공화당 정치인을 상대로 당내 예비경선 과정에서 낙천운동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의료보험개혁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 간 타협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 정치인으로 민주당에 협력했다가 찍히면 미 전역에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티파티의 낙선운동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파티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시 행정부 시절 부시 전 대통령의 브레인을 역할을 했던 칼 로브 전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은 티파티 운동이 제3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설 경우 공화당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티파티가 공화당 후보의 지지표를 분산시키는 제3당 후보를 지원할 경우 공화당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 뒤 티파티 운동이 선거에 개입해 악용하려는 세력에 의해 조종되면 특히 그럴 위험이 높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파 성향의 풀뿌리운동인 티파티의 대안으로 중도좌파적 풀뿌리운동인 ‘커피 파티’(Coffee Party)도 뜨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티파티가 연방 정부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보이고 있다면 커피파티는 “연방정부는 국민의 적이 아니라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커피파티는 9세 때 부모를 따라 이민 온 한인인 애너벨 박씨가 주도했다. 박씨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거대정부와 정부지출에 대한 티파티의 과도한 반대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페이스북에 ‘커피파티를 시작해보자’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전국 30개주 45개 도시에 커피파티 지부가 결성됐고, 참가자 수도 6만명을 넘어섰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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