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④

공자의 인생에서 배우는 경영의 원리

  •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공자의 인생에서 배우는 경영의 원리

2/6
공자의 인생에서 배우는 경영의 원리

성균관대에서 열린 추계석전대제 장면.

한편 옛사람들은 공자가 10대에 세웠다는 지우학(志于學) 가운데 배움뿐만 아니라 ‘뜻을 세운다’라는 ‘지’자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예컨대 율곡 이이 선생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뜻을 세움’, 즉 입지(立志)임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그가 편찬한 ‘격몽요결’과 ‘성학집요’의 첫째 장이 모두 ‘입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러나 ‘뜻을 세운다’는 것이 우리가 새해에 품는 바람들, 가령 ‘담배를 끊어야지’라거나 ‘살을 빼야겠다’는 등의 결심과는 다르다. 달성하면 좋지만 또 이루지 못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꿈 ·설계’와는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이다.

여기 ‘지’자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린다. ‘志’를 부수면 ‘士’와 ‘心’으로 쪼개진다. 그중에 ‘士’는 우리말로는 선비를 뜻하지만, 일본에선 똑같은 글자를 두고 사무라이라고 읽는다. 갑골문에서 ‘士’는 도끼를 형상화한 것인 데서도 (짧은 밑변은 도끼날을, 가운데 세로획은 도끼몸통을, 그리고 가로로 난 긴 획은 도끼자루다.) 이 글자에 무사·사무라이라는 뜻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志’자 속에는 ‘무사의 마음가짐’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그러니까 ‘선비’ 또한 제 목을 칠 도끼를 들고 군주가 거처하는 궁궐 앞에서 상소했던 것이다.

끝내 나라가 망할 때엔 선비가, 주군이 패망할 적엔 사무라이가 목숨을 바치는 데서는 다 같은 마음인 것이다. 그 서슬 퍼런 결기, 두 마음을 갖지 않는 지조 같은 마음가짐은 선비에게나 사무라이에게나 공통된다(성삼문을 위시한 사육신의 행동을 연상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뜻을 세운다’는 말 속에는 ‘배움에 거는 내 뜻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 배를 가르겠노라’, 또는 ‘내 학문이 끝을 맺지 못하면 내 목을 치겠노라’는 절박한 의지가 깃들인다. 그러니 참 무서운 말이다, ‘뜻’이라는 글자는.

그러니까 공자가 열다섯에 배움에 둔 ‘뜻’이란 목숨을 바칠 각오하고 배움에 투신했다는 것이지, 되다 말고 하다가 안 되면 그만두는 따위의 ‘한낱 희망사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렇게 공자의 “배움에 뜻을 세움”이란 온몸과 마음을 다 배움에 던진다는 것이었으니, 그 10대의 투신이 등에 땀을 나게 만든다.

그러나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사회단체나 학교, 나아가 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의 원리도 마찬가지리라. ‘뜻을 세운다’는 것은 그 조직의 방향을 수립하는 초심, 첫 마음가짐이니 그 단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뜻 세우기’의 여부에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음을, 현대 경영학자 짐 콜린스(J. Collins)는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모든 회사들이 제각기 최고가 되기를 바랄 테지만, 자기들이 어떤 분야에서 정말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고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는지를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파악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과 비교 기업들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짐 콜린스,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167쪽)

즉 기업 스스로 처음 ‘세운 뜻’을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명쾌하게 파악하는 경우가 드물다”라는 지적은, 공자가 강조하고 율곡이 주의했듯 ‘뜻 세우기’와 그 뜻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지적한 것과 같다.

그런데 짐 콜린스는 여기 ‘뜻을 세운다’는 것이 단순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아니라 자기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또 처한 환경의 객관적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단지 강점이나 역량이 있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당신의 조직이 진정으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기도 하다.”(짐 콜린스)

실로 공자가 세운 뜻이 얼마나 강렬하고 본질적이었던 것인지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논어, 4:8)라는 장렬한 표현 속에 자옥하다. 열다섯 젊은 나이에 세운 뜻에다 삶과 인생 전체를 걸고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지는 투신의 열정이 있었음을 이 절규 속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공자는 자기 인생의 두 번째 단계를 이립(而立), 곧 “서른 살에 섰다”고 했다. 여기 ‘섰다’란 자립했다는 뜻이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또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열다섯 살에 뜻을 세워서 ‘서른 살에 섰다’는 것은 곧 한 분야에 전문가로서 자립하는 데 1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2/6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baebs@ysu.ac.kr│
연재

공자에게 경영을 묻다

더보기
목록 닫기

공자의 인생에서 배우는 경영의 원리

댓글 창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