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신중한 MB氏, 무리한 검찰氏

  • 입력2010-04-28 1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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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봄이 왔다고 누구나 봄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봄이 찾아들지 못하면 봄은 그저 풍경일 뿐. 천안함 사고로 수몰된 장병들의 가족 친지 연인 동료들의 마음에도 봄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애인, 내 전우를 잃은 이들의 마음에 봄이 들어앉을 자리가 있겠는가. 또 그들을 구하려다 희생된 이들 가족에게 화사한 봄날은 외려 잔인하지 않겠는가.

    천안함의 꼬리와 머리 부분이 인양되고 한국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 5개국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사가 이뤄지면 천안함이 왜 두 동강이 나 침몰했는지 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물론 밝혀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일 것이고, 끝내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익명의 정부 고위관계자도, 군 관계자도 더는 설(說)을 흘려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 역시 책임질 수 없는 발언을 중지해야 한다. 언론도 특종이랍시고 ‘소설’을 쓰면 안 된다. 더 이상의 혼란은 나라꼴만 우습게 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와 다르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게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과학적이고 아주 치밀한, 객관적 조사결과를 내야 한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선진국 전문가와 유엔까지 합심해서 조사를 철저하게 하되, 어느 누구도 조사결과를 부인할 수 없도록 조사하고, 정부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죄지은 사람들이 인정 안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죄지은 사람들’이 북한을 상정한 표현인가? 청와대 측은 “사고발생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심증을 갖고 한 말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이 북한의 어뢰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비치자 ‘VIP 메모’로 북한 연계설에 제동을 건 것(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했든, 청와대비서관이 대통령 뜻을 헤아려 메모를 보냈든)을 보면 청와대의 해명을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런 이 대통령을 두고 보수우파 측은 못마땅한 기색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에 해외전문가를 참여시키고 민간 인사를 합동조사단 책임자로 앉히라고 지시하자 성명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는)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더욱 큰 혼선을 빚을 수 있고, 우리 군의 사기를 저하시킴은 물론 군사기밀을 무차별적으로 노출시켜 안보에 심각한 위해(危害)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갖가지 루머와 국민의 불신은 군의 조사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부기관 간의 시각차가 근본원인”이라며 “침몰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익명으로 어떤 예단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북의 연계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고 예단하는 자가당착적 입장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한 우익인사는 “(북한 개입설에 신중한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진보 쪽의 누군가는 “MB가 이상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상하긴 뭐가 이상 하냐”고 했다. ‘이상하다’는 쪽은 당연히 보수우파 쪽에 설 대통령이 북한 연계설에 신중한 것이 그렇다는 것이고, ‘뭐가 이상하냐’고 하는 쪽은 대통령 말 다르고, 국방장관 말 다르니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것이다. 나쁘진 않지만 석연찮다는 얘기다.

    사고 이후 보수 쪽은 모든 정황을 북한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데 맞춰 해석하고, 진보 쪽은 북한은 관계없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는 이 대통령 말대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사결과’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따라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가능성은 열어놓되 한쪽으로 몰아가는 건 위험하다. 그 점에서 현재로서는 이 대통령의 신중한 자세가 옳다고 본다. 그를 지지하든, 지지 안 하든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가지도자의 합리적 자세는 존중되어야 한다. 모처럼 중심을 잡은 대통령에게 ‘이상하다’고 돌려 말하는 것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며 목청을 높이는 것도 옳지 않다. 사고원인이 밝혀진 이후의 조치와 그것에 대한 평가는 다음 문제다.

    1971년 ‘뉴욕타임스’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 국방부의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입수해 연재기사로 게재했다. 이에 미국 법무부는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하는 임시명령을 받아내 기사연재를 중지시켰다. 국가기밀에 대한 폭로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포스트’(이 신문도 보고서를 입수하고 있었다)와 함께 연합해 법원의 보도금지명령에 대항했고, 결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의 판결로 두 신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민의 알 권리가 국가기밀에 우선한다”는 게 판결의 핵심이었다.

    물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한반도에서 39년 전 미국의 사례를 판단의 잣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군사기밀의 공개는 ‘보다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전문인력을 포함하는 민군합동조사가 군사기밀을 노출할 것이라는 우려에는 일리가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지도 단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이번 천안함 사고 직후 군 당국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손상시켰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는 기밀주의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가위기대응에 난맥상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받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 자체의 조사만으로 결과를 내놓을 경우 불신의 논란을 빚을 수 있다. 그것은 나라와 군 전체에 치명적 손실을 끼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G20 회원국과 6자회담 회원국 등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며, 철저하고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간에서 합동조사 책임을 맡고 해외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은 그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모두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군사기밀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를 조율하고 국제사회의 공인(公認)까지 얻어내느냐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어느 수준의 나라인지, 국격(國格)에 대한 시험은 이제부터다.

    봄이 왔어도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처지는 대한민국 검찰도 매한가지일 터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서울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가 ‘완전한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은 ‘완벽한 패배’에 몰릴 처지가 됐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5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조서의 임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의 강압수사를 노골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신사다운 수사’를 강조했던 김준규 검찰총장의 체면을 무색하게 했다. 이 부분에 대한 판결문을 인용해보자.

    “다음은 곽영욱 진술의 임의성을 밝혀보겠다. 검찰은 강압 회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곽영욱의 건강상태를 보면, 그는 70세 고령에 당뇨 고혈압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평생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곽영욱은 사망한 후에나 구치소를 벗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은 곽영욱이 횡령혐의로 기소된 후 구치소에 나온 시각을 보면 상당한 의문이 든다. 곽영욱이 구속 후 뇌물공여사실 시인을 했다가 곧바로 부인을 하는데, 이 기간 동안 곽영욱은 밤늦은 시간까지 조사를 받았다. 이때 곽영욱은 살려달라고 하며, 여기서 죽어가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11월24일 5만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날은 오후 6시30분에 조사가 끝났다. 이는 진술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더욱이 검찰은 1심 선고공판을 하루 앞두고 한 전 총리가 한 건설사로부터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고 했다. 검찰은 새로운 제보에 따른 신건(新件) 수사라고 하지만 변호인과 야당 쪽에서는 1심 재판에서 질 것을 예측한 검찰이 한 전 총리에게 다른 혐의를 갖다 붙여 계속 발목을 잡으려는 별건(別件) 수사라고 비난한다. 대법관 출신의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선고를 앞두고 검찰이 별건 수사를 발표한 것은 법관의 심증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라고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왜 검찰은 이렇게 졸렬한 짓을 하는가”라고 질책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검찰을 비판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검찰이 신뢰를 벌어도 모자랄 판에 매를 버는 일을 해서야 되겠는가”(김성식 의원), “검찰이 판결 하루 전날 별건 수사를 하면 어떡하자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의도적으로 한 전 총리를 죽인다는 인상을 주면 어떡하자는 것이냐”(남경필 의원), “정치적 판단으로 수사를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좀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관련 증거수집과 참고인 조사는 진행하되 한 전 총리에 대해선 지방선거가 끝나고 소환이나 직접수사를 하는 게 옳다”(홍준표 의원), “한 전 총리 사건에서 검찰의 의도나 수사의 충실성 등을 봤을 때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원희룡 의원).

    신중한 MB氏, 무리한 검찰氏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검찰로서야 새로운 혐의가 있어 수사하는 것이 뭐가 어떠냐는 것이지만 하필이면 1심 공판 전날 이를 밝힌 것은 아무래도 속 보이는 짓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당 쪽이 주장하는 ‘한명숙 죽이기’만 돋보이게 할 뿐이다. 일부 여당의원들이 지방선거에서의 역풍(逆風)을 우려하며 검찰을 비난하는 이유다. 하지만 검찰로서는 쫓기면서 빼든 칼을 접을 수도 없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 이유로 수사를 뒤로 미룰 수는 없다” 고 했다. 참으로 곤혹스러운 대한민국 검찰의 봄날이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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