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이건희 회장 복귀와 삼성의 사회학

대인의 풍모로 비판에 귀 기울이고 사회와 상생 공존하는 길 찾아야

  •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장 yepok@hanmail.net |

    입력2010-04-28 1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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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세의 10%를 부담하는 삼성은 대한민국의 절대권력이다. 한국 사회의 곳곳을 지배하며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위반해온 제어되지 않는 권력집단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상당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특이한 집단이다. 이건희 회장 복귀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는 환영의 환호성에 묻혀버렸다. 삼성의 사회학은 이 야누스적인 면모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서 출발한다.
    이건희 회장 복귀와 삼성의 사회학

    23개월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건희 삼성 회장.

    삼성은 권력이다. 삼성의 힘은 정부기관의 권력처럼 공인되지는 않았으나 실질적인 위력에서는 대한민국의 어떤 권력도 당해낼 수 없는 절대권력이다. 흔히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에 이어 언론을 제4부라고 일컫지만 삼성은 기존의 3부는 물론 언론조차 쉽게 압도하는 권력이다.

    삼성이 슈퍼파워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또한 도처에서 쉽게 발견된다. 삼성이 어떤 권력보다 큰 힘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 중에서 백미는 삼성이 우리 사회 곳곳에 떨치는 무소불위의 영향력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여타 권력기관에 비해 국민의 심정적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기관이 국민의 지탄이 아닌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통상 있는 일은 아닌데도 삼성은 그 조직의 부정적인 측면을 잘 아는 상당수의 국민으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최근 경영복귀를 단행한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사건 이후 배임 및 조세포탈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공식 퇴진한 지 2년이 채 안되었고, 형이 확정된 지 불과 7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 총수의 자리로 복귀하는 이건희 회장을 대한민국의 조야는 난세의 영웅처럼 반겼다.

    생활을 지배하는 삼성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발표한 시점에 겸손하게도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며 출사표를 던진 그에게 기립박수까지 보내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자신이 직접 발표한 경영쇄신안을 번복하고 지배구조를 과거로 되돌려버리는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는 일부의 비판은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고 환영의 환호성에 휩쓸려 묻혀버리고 말았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이러한 야누스적 면모는 삼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이들이 시발점에서부터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이다.

    삼성이 권력이라는 주장은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통용된다. 우선 삼성이 갖는 힘의 긍정적인 측면을 한번 살펴보자.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집단이며 우리 기업 중에서 글로벌 수준에 가장 근접해 있는 대표 재벌이다. 2009년 삼성그룹은 200조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했고 순이익 12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핵심기업인 삼성전자는 2009년에 매출 136조원과 영업이익 10조9000억원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등극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한국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웃도는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순익 100억달러 클럽의 멤버로 당당히 입성한 바 있다.

    삼성전자 앞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인 엑슨모빌, 씨티그룹, GE, 도요타 등의 면모를 보면 그 실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올린 수익이 일본 9개 주요 전자회사 수익 전체의 2배에 달했다는 보도는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 우리 국민에게는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나라와 비교하자면 헝가리의 GDP와 비슷한 규모다. 일개 기업의 매출규모가 한 나라, 그것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국가의 국내총생산 규모와 맞먹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국세의 10%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으며 한국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에서 삼성의 계열회사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20%를 넘어서고 있다. 삼성은 20여만명의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취업선호도에서 항상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브랜드 가치에서도 삼성은 175억달러로 세계 19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2009년 미국 10대 히트상품에 LED TV와 듀얼뷰 카메라, 블루레이 플레이어 등 무려 3개 제품을 올려놓을 정도다.

    삼성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이 삼성이 만든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며 삼성의 TV로 드라마를 보고, 삼성의 DVD플레이어로 영화를 감상하며 삼성노트북으로 업무를 본다. 삼성세탁기로 빨래를 하거나 삼성냉장고에 음식을 보존하면서 삼성에어컨으로 여름을 나고 심지어는 삼성이 만든 옷을 입고 외출을 한다. 이쯤 되면 삼성이 한국 경제의 상징이자 성장의 견인차라는 평가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만다.

    삼성전자 효과

    심지어 삼성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대한민국 스포츠의 성장에도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한 예로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 빙상선수들이 올린 쾌거는 삼성이 지난 13년간 121억원의 경비를 뒷받침하면서 묵묵히 지원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한다. 평소 비인기 종목의 육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건희 회장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면 겨울스포츠의 기본인 빙상 종목을 육성해야 한다며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3대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계획인 ‘밴쿠버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피겨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 선수는 물론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선수 등이 모두 삼성이 후원한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스타들이다.

    삼성은 빙상스포츠 외에도 이전부터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승마 등 비인기 종목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레슬링의 경우에는 이 회장 자신이 19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직접 협회장을 맡아 한국을 아마추어레슬링 강국으로 키워놓았을 정도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이제 비즈니스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전설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삼성전자가 투자하거나 삼성과 협력관계를 맺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뜻하는 ‘삼성전자 효과’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다. 삼성전자 효과는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을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목소리도 크지만 삼성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삼성이 당면한 현안 중에서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끌어왔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은 이른바 ‘경영권 편법승계’ 문제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시작된 삼성의 편법승계 문제는 13년 만에 특별검사의 수사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치는 곡절 끝에 법적으로는 마무리되는 모양을 갖추었다. 2009년 5월29일 대법원은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확정짓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건은 파기환송 조치했다. 이어 서울고법 형사4부는 2009년 8월14일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삼성SDS 배임 혐의와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혐의가 추가됐는데도 원심 형량이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함으로써 길고도 길었던 법적공방을 일단락지었다.

    법원은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승계가 무죄라고 판단한 근거로 기존 주주들에게도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한다. 기존주주들이 대부분 이건희 회장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삼성의 계열사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법원은 “이사회 결의 및 주주통지 절차 등 흠결이 일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실질적인 인수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고 인정된다”라고 밝혔는데 절차에 흠결이 있는데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정이라는 견해도 많다.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법원이 인정한 이건희 회장의 조세포탈 규모가 무려 456억원에 달하는 만큼 탈루 규모가 연간 10억원이 넘을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을 적용하면 당연히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5년 이상의 징역형은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므로 이 회장이 징역형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경영권 편법승계라는 숙제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자면 법원의 판결을 납득할 수 없고 법이 여전히 힘 있는 자에게만 너그럽고 약한 자에게는 엄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다른 기업들이 승계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냈다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복귀와 삼성의 사회학

    2월17일 겨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삼성전자 홍보관을 방문한 자크 로케 IOC위원장과 환담하는 이재용 부사장.

    이 일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 시비를 걸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이 법이 아니라 국민정서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1995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1억원을 증여받아 세금 16억원 내고 남은 45억원으로 삼성계열사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수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산을 확보하고 거대한 삼성그룹의 실질적 후계자가 된 이재용 부사장의 승계과정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국민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삼성의 미래나 이재용 부사장 개인의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편법승계 문제에 이어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안은 소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불거진 정치권과 경제관료 및 법조계 등에 대한 로비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검찰 고위간부들에게 이른바 ‘떡값’을 줬다고 대화하는 내용을 당시의 국가안전기획부가 불법 도청한 사건이다.

    그런데 지저분한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이 사건이 시간이 흐르면서 본질은 묻혀버리고 불법도청에 초점이 맞춰진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삼성은 또한 2002년 여야 대선캠프에 385억원에 달하는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그룹의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때도 이건희 회장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삼성이 유망한 정치인과 경제관료 및 검찰간부에 대해 특별관리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렇게 관리한 사람들이 고위직에 오르면 그 사람들을 통해 주요 정보나 사업 편의를 제공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그런 관리 중 한 사람이 1993년에 실시된 금융실명제를 삼성에 사전 통보했다고 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정도다. 심지어 정부기구 내에는 평소 삼성에 도움을 주고는 반대급부로 삼성의 도움을 받아 조직 내에서 승진을 도모하는 ‘진학반’과 현직에 있을 때 삼성에 조력한 뒤 퇴직 후 삼성에 취업을 기대하는 ‘취업반’이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이러한 풍문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폭로과정에서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으며 실제로 삼성 내에는 정부에 몸담고 있다가 ‘취업’한 인사가 상당수 존재한다. 정치권력에 미치는 삼성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신현확 전 삼성물산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찍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라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퇴임 후 사기업인 삼성의 계열사 회장으로 변신해 이병철 회장 밑에서 또 한번 2인자로서 병풍 노릇을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노후의 생계를 위해 취업한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행정부의 2인자가 삼성의 2인자로 수평이동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적은 결과적으로 삼성의 위세를 과시하고 정부의 체면을 깎는 데 일조한 셈이다.

    최근 이루어진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명분을 내걸기는 했으나 현직 도지사가 제안하고 여당의 고위간부가 재청한 뒤에 법무부 장관이 화답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삼성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세 번째 사안은 ‘무노조’ 경영이다. 노동조합의 설립이 기업경영의 필수조건이고 절대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법으로 허용되어 있는 노조의 설립을 삼성은 그동안 꾸준히 제지해왔다. 노동조합이 없는 것을 삼성은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설명하지만 노동계는 삼성이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는 불법행위를 통해 노조설립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 삼성은 노조 추진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회유와 위협을 하고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악용한 유령노조의 결성을 통해 노조의 설립을 차단한다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노조의 힘이 큰 것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에서 그 설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삼성의 파워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고 삼성이 언제까지 무노조 경영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에 대한 네 번째 비판의 목소리는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로 이어진다. 삼성이 언론에 대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실제 힘의 행사는 물밑에서 이루어지므로 그것이 문제가 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시사저널’ 제870호에 게재될 예정이었던 삼성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기사를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이 편집국장의 삭제거부 의사를 무시한 채 무단 소거하면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 사건을 ‘삼성의 로비와 압력에 자사의 경영진이 굴복한 편집권 유린 사태’로 규정짓고 6개월여의 파업과 1년여의 분쟁 끝에 새로운 잡지 ‘시사IN’을 창간하며 독립하게 된다.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는 삼성에 막대한 광고물량이 있기에 가능하다. 삼성은 자사에 부정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매체에 광고의 위력으로 압박을 가하고 그래도 안 들을 때에는 광고를 끊는 것으로 응징한다. 이렇게 서글픈 현실은 우리나라 주요 언론의 수입구조가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며 그중에서도 삼성의 광고에 의존하는 비율이 평균 8%에 달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매체는 삼성 광고에 대한 의존도가 15%에 달한다고 한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폭로사건 이후 2년여 동안 삼성 광고를 게재하지 못했다. 역시 비자금 관련 보도로 삼성의 눈 밖에 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화면에서도 삼성 광고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광고를 실을 매체의 선택권이 광고주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위력을 이용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 광고를 무기로 언론의 예봉을 꺾는 것은 사회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할 비판기능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자동차 실패를 잊지 말라

    이건희 회장 복귀와 삼성의 사회학

    4월7일 삼성전자는 중국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부근 국가회의센터에서 ‘삼성포럼 2010’행사를 열었다.

    언론뿐 아니라 인터넷 세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려는 삼성의 노력은 부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삼성은 ‘안티삼성’과 ‘안티삼성생명’ ‘안티삼성카드’ 등 안티그룹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한글키워드 도메인 10여 개를 모두 사들였고 ‘antisamsung.com’을 비롯해 ‘antisamsung.net’ ‘antisamsung.org’ 등 영문 안티사이트들도 계열사인 삼성네트웍스가 점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시도를 보면서 삼성이 아예 입에는 쓰지만 보약이 될 수도 있는 비판의 통로조차 봉쇄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다섯 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삼성 후계구도의 효율성 문제다. 삼성은 그동안 승계문제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전력투구해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토록 어렵게 완성해가고 있는 후계체제가 과연 최적의 선택인가 하는 데 있다. 후계구도의 적정성은 조직의 미래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짚어봐야 할 것은 총수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경영권의 세습이 삼성의 앞날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인가 하는 문제다. 권한의 집중현상은 경영이 잘될 때에는 그 폐단이 드러나지 않지만 의사결정이 실패해서 경영에 문제가 생길 때는 큰 폐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을 물려받은 뒤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금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 재계에는 요즘 “일본에는 왜 이건희 회장 같은 경영자가 없나?”라며 이건희식 경영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지금은 삼성의 화려한 실적에 묻혀서 많이 잊혔고 삼성 내부 사람들은 거론조차 꺼리는 사안이지만 삼성자동차의 실패가 바로 그것이다. 삼성자동차의 좌초는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한이 저지를 수 있는 오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의 약진이 없었더라면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삼성그룹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는 법이다. 실제로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의 실패로 그룹이 해체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했다. 경영체제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개인의 능력에 전적으로 삼성의 운명을 의탁하기엔 부담해야 할 위험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들이 소유와 경영을 오래전부터 분리해온 것은 대주주의 역량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단 한 번의 실패로도 위협받을 수 있는 기업의 존속을 더 우선했기 때문이다. 최종결론에 도달하자면 많은 논의를 거쳐야겠지만 현재의 경영체제에 비해 보다 많은 견제장치와 권한의 분산을 기대할 수 있는 집단경영체제나 미국식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도 고려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만약 이재용 부사장의 후계체제가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하더라도 견제와 분산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해봐야 할 사안이다. 그의 자질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도 하는 실수를 그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공백기가 왔을 때 이재용 부사장이 최고의사결정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다면 삼성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작은 예지만 이 부사장도 과거 e-삼성 등의 경영을 주도해서 실패한 전력을 갖고 있고 그 부담을 삼성이 고스란히 떠안은 바 있다. 향후에도 이 부사장이 많은 2세경영자가 시도하는 것처럼 자신의 역량 증명을 위해 무리한 투자결정을 혹시라도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은 재난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부담이 많은 게임을 굳이 대물림까지 해가며 계속한다는 것은 삼성은 물론 이 부사장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삼성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삼성이 권력이라는 사실은 더욱 자명해진다. 정치나 관료는 물론 검찰과 사법부, 나아가서 언론으로도 제어가 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며 오히려 그들이 삼성으로부터 통제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될 정도로 힘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이제 삼성이 사회까지도 경영하려 한다는 주장이 다 나왔겠는가. 서글픈 현실이지만 삼성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대항세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분간은 등장하기도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의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 노동조합은 아예 탄생조차 하지 못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진보성향의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단말마의 비명 수준에 가까우며 그나마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을 감시하고 삼성을 견제할 새로운 세력을 육성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현실성이 없는 처방인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것은 삼성 자신의 변화밖에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나아가서 좌절을 겪게 된다는 진리를 깨우치고 자진해 자정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결코 주체할 수 없는 큰 권력에 함몰되어 자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삼성은 이미 삼성이나 대주주만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와 있을 뿐 아니라 삼성이 잘못되면 나라까지 잘못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부자와 나눔의 미덕

    이럴 때 삼성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요타가 아니라 GM의 사례다. GM은 지난 100년 동안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군림해왔다. 알프레드 슬로언은 초창기의 GM에서 무려 33년간 최고경영자로 일하면서 모범적 경영을 통해 선두였던 포드를 누르고 GM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그의 후계자들은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도 좋다”라며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 무모한 경영을 일삼다가 결국 초우량 기업을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삼성이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이제 삼성은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권한의 집중으로 경직된 조직문화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굳어 있는 조직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작금의 경영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수가 지금이 위기라고 일갈해야 겨우 위기를 깨닫는 조직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일찍이 슘페터가 설파한 것처럼 혁신은 자본주의는 물론 모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의지와 열망에 불타는 모험가’의 정신으로 변화의 선두에 서야 한다. 그리고 삼성은 이제 대인의 풍모로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사회와 실제로 상생, 번영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교훈이 된다. 발렌베리는 스웨덴 상장기업 시가 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기업집단이다. 그들은 경영권을 세습 하면서도 긴밀한 노사협력과 애국심 및 진정성이 엿보이는 사회공헌의 실천을 통해 스웨덴 국민으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삼성의 문제를 논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발렌베리에게서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세습경영의 노하우가 아니라 막강한 재벌이면서도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과 존경을 듬뿍 받으며 장수해온 비결이다.

    그러한 사례는 우리에게도 있다. 유명한 경주의 최부자 가문은 무려 10대, 300년에 걸쳐 만석꾼의 재산을 유지하며 대대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삼성과는 5·16 직후 대구대학교(지금의 영남대학교)를 주고받은 인연이 있기도 한 최부자 집안이 칭송을 받은 것도 그들이 부를 많이 축적했고 그것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철저하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복귀와 삼성의 사회학
    예 종 석

    1953년 부산 출생

    미국 세리토스대 경제학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석사), 인디애나대 경영학(석·박사)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한국마케팅학회 위원장

    現 한양대 경영대학장, 아름다운재단 이사

    저서: ‘뉴마케팅’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 ‘희망경영’


    그들은 평소 집안의 유훈을 지켜 과객에게 후하게 대하고, 흉년기에 재산을 늘리지 않았으며,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꾸준히 음덕을 베풀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소작인에게 나누어주고, 시집온 며느리에게 3년간 무명옷만 입게 하면서도 독립운동에는 재산을 쾌척했다. 그러한 나눔의 미덕이 오히려 최부자 가문으로 하여금 많은 재산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하고 존경도 받게 했던 것이다. 삼성은 이러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사회와 공존하며 발전하는 방안을 모색해가야 한다.

    삼성은 우리 사회의 빛과 그림자다. 이제 삼성은 ‘삼성에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좋은 것은 삼성에 좋은 것’이라는 자세로 매진해 그림자는 지우고 빛은 더해나가야 한다. 삼성은 결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따뜻한 국민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럴 때 삼성은 명실 공히 세계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기업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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