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완벽하고 싶은 욕심쟁이 소녀 한성주

미스코리아, 원예치료사, 재테크전문가… “노인 위한 요양원 설립이 인생의 목표”

  • 글·최영일│문화평론가 vicnet2013@gmail.com│정호재│동아일보 통합뉴스룸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10-04-29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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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에 순간 눈이 부셨다. 눈에 꽂혔던 시선은 천천히 내려가며 시원스럽고 커다란 입, 웃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얗고 고른 치아에 머물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 곳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성주는 정말 예뻤다.

    어느새 30대 중반이 된 그녀는 1994년 미스코리아 ‘진’이었다. 화려한 드레스에 왕관을 쓰고 권위의 상징인 홀을 들고 행진곡에 맞춰 대관식을 했더랬다. 1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에게선 여전히 ‘여왕’의 기품이 풍겨져 나왔다.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족쇄로 느끼는 듯한 표정도 문득 읽혔다. 일종의 외로움 같았다.

    고려대 시절의 한성주

    완벽하고 싶은 욕심쟁이 소녀 한성주
    ▼ 최근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모교인 고려대를 방문했지요. 사실 학생이 학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엄청난 인파가 모였어요. 혹시 1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진 않나요?

    “글쎄요. 굳이 비교하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엄격하신 부모님 영향으로 전 대학시절엔 연예인처럼 살지 않았어요. 외부 활동은 활동이고, 학생으로서 해야 할 학업, 본분, 예의범절과 태도까지 다 지키며 살았죠. 학우들과의 우정과 의리까지 다 챙겼었거든요. 무슨 특권층처럼 굴지 않았어요.”



    ▼ 그래도 2학년 때 미스코리아 진이 되고 나서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요, 미스코리아가 되기 전부터 학교에서 유명했거든요.(웃음) 제가 들어가는 수업마다 강의실 안팎에 사람들이 넘쳤어요. 그래서 강의 시작 전 교수님께서 “한성주 보러 온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죠. 당시 다른 대학에서도 저 구경하러 많이들 원정 온 걸로 알고 있어요. 하하. 그러니 뭐 미스코리아 타이틀이 생긴 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한성주였답니다.”

    한성주의 자기계발

    ▼ 대학 졸업하고 일하면서도 계속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여러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 하셨고요. 지난해엔 책도 내셨죠?

    “맞아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국제관계대학원을 나왔죠. 그리고 단국대에서 원예치료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요즘 또 숭실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제가 방송에 나오지 않을 때 뭐하나 다들 궁금해 하시던데 그럴 때 전 늘 뭔가를 배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논 적은 없어요.”

    ▼ 정치외교학은 적성에 맞았나요? 그리고 복지에 대한 관심은 또 뭡니까?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학부 전공은 저에게 잘 맞았어요. 한때 유명했지만 구설수가 있었죠. 제가 승마 특기생이어서. ‘쟤 승마야.’ 뭐 이런 수군거림? 하지만 전 모든 학과목을 열심히 잘 따라갔고, 정외과 전공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창 방송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사회사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시간 있을 때 해두자 하고 또 파는 거죠.”

    ▼ 사회복지는 그렇다 치고 원예치료학은 참 특이한데요?

    “제가 자연을 너무 좋아해요. 꽃과 나무, 풀을 좋아해서 꽃꽂이도 열심히 배웠고요. 그런데 사람을 치유하는 다양한 테라피가 있는데 자연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미래비전도 여기에 있고, 또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여러 봉사단체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한국의 나이팅게일?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뭐, 사랑의 열매, 다일공동체(현재 이름은 ‘밥퍼 복지재단’) 정도였고, 사랑의 장기기증에도 개인적으로 참여했어요. 저는 단순해요. 나중에 알고보니 홍보대사는 얼굴마담처럼 여기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단 참여하면 몸을 아끼지 않고 날려요.(웃음) 제가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좀 있으면 마흔을 넘길 텐데 아직 힘이 있을 때 열심히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아이들 돌보고, 의료 지원하고, 집도 짓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까 리더이신 목사님께서 오래 봉사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너무 진 빼지 말라고 말리시더라고요.(웃음) 이젠 요령이 생긴 것도 같아요. 얼마 전에도 다일공동체 밥 퍼주는 활동으로 네팔에 다녀왔지요. 다닐 때마다 제가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아요.”

    경제전문가 한성주?

    ▼ 그런데 봉사활동과 현재 전공 공부는 그런 방향인데 지난해 가을 출간한 책은 재테크 경제서적 아니던가요? 그건 또 어떤 연유에서….

    “‘한성주, 꿈에 투자하라’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판매 수익금은 모두 기부되도록 법적 조치를 한 책이지요. 사셨어요? 꼭 사셔야 해요.(웃음) 나이가 들면서 돈의 필요성이 와 닿더군요. 한창 어릴 땐 선배들에게 늘 얻어먹어 잘 몰랐는데 이젠 후배들 챙기면서 내가 벌어서 이들을 거둬 먹여야지 결심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소소한 생활문제가 아니어도 아까 잠깐 말한 미래비전을 위해서도 돈은 꼭 필요해요. 예전엔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돈이 없으면 능력이나 시간을 내는 봉사가 가능했는데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니까 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시드머니를 낼 능력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테크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 재테크 책을 쓴다는 것이 관심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닐 텐데요. 세상에 돈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사실 오래된 배경이 있어요. 제가 방송앵커로 들어가 초년 시절에 ‘출발. 모닝 와이드쇼’ 프로그램을 맡아 했는데요. 매일 첫 꼭지가 그날의 경제동향으로 시작하는 거였죠. 경제부 차장님이 1~2분 동안 뭐라 뭐라 멘트를 빠르게 내뱉는데 제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거예요. 저 완벽주의자거든요. 그래서 그 경제부 차장님을 찾아가서 제가 진행자인데 내용을 못 알아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차장님이 절 학습시켜 주십사 요청했죠. 처음엔 귀찮으셨는지 ‘뭘 다 알려고 그래, 몰라도 돼’라고 하시더니 결국 매일 짬을 내서 과외를 해주셨어요. 친해지고나선 궁금한 게 있으면 차장님 회식하고 있는데 전화로 물어보기도 하고요.(웃음)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샌가 경제뉴스 하고 있을 때 제가 애드리브를 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중엔 그분께서 절 예쁘게 보셨는지 경제부로 불러서 일반기자들처럼 파견근무도 했어요. 그 결과 나중에 ‘머니센스’라는 프로그램과 ‘생활경제’까지 담당했었죠. 저 이래봬도 경제통이랍니다.”(웃음)

    ▼ 이제 이해가 되네요. 그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결심도 있겠다, 앞으로 사업에 성공해서 여성 CEO의 길을 가시는 것 아닌가요.

    “그런 제안은 많았어요. 제가 학업을 결심할 때마다 너는 경영대학원을 가면 좋겠다. 해외 어느 대학원이 좋으니 적극 추천해주마, 무조건 가봐라, 조언해주시는 교수님도 많으세요. 그런데 제가 구상하는 사업은 그런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커다란 미래비전

    ▼ 현재는 방송도 적극적으로 안 하는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 것인가요? 복지와 경제 관련 저자로 활동하거나 교수나 강연자가 되시는 건가요?

    “아뇨. 저는 필요해서 불러주는 일이라면 그 일이 봉사든 강연이든, 또 책을 쓰는 작가 역할이든 다 할 거예요. 하지만 궁극적인 꿈은 따로 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죠? 전 완벽주의자라서 제 안에서 다 정리되고,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최근엔 좀 마음이 열렸어요. 혼자서 다 할 수 없다면 주변에 입소문을 내서 나의 꿈이 현실로 다가갈 수 있도록 공유해야 되겠구나라고 느낀 거죠. 처음 말하는 거예요. ‘공원 속에 지어 노인을 특별하게 모시는 요양원’을 꼭 설립할 거예요.”

    완벽하고 싶은 욕심쟁이 소녀 한성주
    ▼ 공원 속에 지어 노인을 특별히 모시는 요양원? 그럼 실버타운이나 양로원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사업가가 꿈인 건가요?

    “제가 말씀드린 것은 ‘시설’이 아니에요. 좀 더 철학적이고 심층적으로 인간을 생각해보세요. 지난해 제 이모님께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돌아가셨는데 이전에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오셨을 때 병원마다 입원을 거부했어요. 저와 어머니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야 병실을 잡고 치료가 시작됐죠. 그때 병원 원장님께서 어느 과 의사를 담당으로 해줄까 물어오셨는데 제 대답은 ‘무슨 과라도 상관없으니 이모님을 자주 보러 와줄 의사 분을 지정해주세요’였어요. 원장님이 잠시 당혹해 하셨는데 나중에 보니 여러 과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이모님 병상을 찾더라고요. 사형선고 받으셨던 이모님은 그때부터 살판이 나셨죠. ‘성주야, 나 살고 싶다. 힘든 치료도 이제 열심히 받을게’ 하시면서, 긍정적이 되고 희망을 보셨어요. 전 이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의학적 가능성이나 치료의 포기를 떠나서 살아갈 시간 동안 행복해야죠. 제가 만들고 싶은 공원 속 요양원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든 노인이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답게 자연 속에서 살며 상호 교감하는, 말 그대로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행복생태계’가 될 겁니다.”

    ▼ 정말로 큰 꿈인데요. 이미 봉사와 사회복지 관련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언제 이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어떤 계기로 노인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우리는 어린이에게 관심이 많죠. 부모는 다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어린이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들 가져요. 아이가 불쌍한 꼴은 못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다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아직 늙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노인의 삶, 그들의 어려움, 고독 이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제 평생 저를 가장 사랑해주셨던 외할머니나 지금 늙어가는 부모님께서 예전과 다르게 약해지시는 걸 보면서 저도 서서히 깨닫게 되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어요.”

    ▼ 저도 한 30년 있다가 한성주씨가 하는 그 요양원에 들어가면 좋겠어요.(웃음) 늘 행복할 것 같네요. 혼자 되시고 그런 결심이 더 강해지셨겠네요.

    “그런 오해가 많죠. 제가 화려하게 살아오다 한때 무너진 지점을 인정해요. 하지만 사람이 어떤 상처 때문에 바뀐다는 가설을 전 인정하지 않아요. 나쁜 점, 좋은 점, 선함과 악함 모두 본래 내 마음속에 있던 거겠죠. 외부의 충격요인 때문에 인성과 삶이 갑자기 확 선회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의 여러 본성이 상황에 따라 드러날 뿐이죠. 저의 미래계획은 아주 오래전부터였어요. 성장기에 부모님께서 하시는 사회복지 관련 사업들을 보면서 컸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전 복지행정 노하우를 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20대 초반부터 장학사업, 불우하지만 재능 있는 청소년과 관련된 사업을 생각했어요. 그랬던 것이 철들고 나이 들면서 노인을 인간으로 배려하는 공동체로 좀 바뀐 것뿐이죠. 20대에는 어린 것이 거창한 얘기하면 비난이나 들을까봐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것인데 이제 표현하니 이혼 때문이다, 방송 분야에서 밀려나니까 허황된 꿈을 꾸는구나 등등 안티 시각의 비난이 많네요(이 대목에서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한성주씨 이야기에 믿음이 갑니다. 꼭 이루시길 빕니다. 그리고 분명히 잘되어 성취하실 겁니다.(순간 병 주고 약 주는 인터뷰어 역할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 한성주의 진심에 동화됐기 때문임에 분명했다)

    한성주는 나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밀한 처세의 전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미스코리아로 알기 시작해 방송 아나운서로, 또 지난 몇 년 예능에 나와 직설화법을 날리며 풀어진 모습을 보인 연예인으로, 또 책과 강연으로, 온갖 봉사활동의 현장을 누비며 보인 그 모든 모습이 그녀의 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두 가지 취미로 ‘저축과 인생설계’를 꼽았고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오고 있다는 한성주는 믿음과 의리로 함께할 수 있는 벗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소녀’의 순수한 인간상이 고스란히 엿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독일식 소시지와 맥주를 곁들여 한참 동안 대화하며 ‘성주네 가자’라는 벗 동인회를 발족시켰다. 앞으로도 그녀의 성장기와 성취기를 계속 지켜보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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