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전한 북한 근황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4-30 13: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17년간 168회 방북한 민간 최고 북한통
    • 화폐개혁 실패 보도는 오보
    • 퍼준 돈으로 핵 만들었다고 물으면 DJ가 답을 잘 못하지만…
    • 데일리NK 손광주 대표 “화폐개혁 실패한 게 사실”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박상권(60) 평화자동차 사장은 말본새가 거침없었다.

    “북한을 17년간 들락거렸는데 뭘 모르겠소. 화폐개혁을 모르겠소, 사람 사는 걸 모르겠소. 마음껏 돌아다니는데 뭘 모르겠소.”

    박 사장은 ‘답답해서’ 인터뷰에 응한다고 했다. 북한 화폐개혁 관련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거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데 이것 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게 그게 아닌데 가만히 입 다무는 건 양심적으로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는 “북한 화폐개혁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통설(通說)과 다르게 말했다.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요. 아닌 데 맞다고 말하는 건 안 되잖아요. 금방 드러날 텐데. 일본 NHK에서 찾아와 누구 말도 못 믿겠다면서 말해달라고 그럽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박 사장 말이 가장 정확하다면서.”

    그는 북한에서 자동차조립공장, 주유소, 호텔을 경영한다.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Fiat) 모델을 조립해 ‘휘파람’ ‘뻐꾸기’ ‘삼천리’란 브랜드로 판다. 지난해 1300대를 팔았고, 올해는 1800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다.

    눈으로 본 실상

    그는 평양에 가장 자주 드나든 남북경협인. 방문 횟수, 체류 기간이 으뜸이다. 17년 동안 168회 다녀왔다. 미국 국적을 가져 방북이 자유롭다. 매달 한두 차례 평양을 찾아 1주일가량씩 머문다.

    ▼ 평양에 체류할 때도 한국 언론을 보나요?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볼 시간은 없어요. 서울에서 뉴스를 갈무리해서 e메일로 보내줍니다. 보통강호텔 직원이 그걸 출력해 오전 오후 한 보따리씩 가져다줘요. 아침저녁으로 한국 기사를 읽습니다.”

    ▼ 눈으로 본 화폐개혁 실상은 어떻습니까?

    “천안함 사건을 먼저 말하고 싶어요. 초기 대응이 도움된 게 있나요. 사람만 죽었습니다. 어선도 침몰했고요. 화폐개혁도 똑같아요. 급변사태 오기를 바라고 북한을 들여다보니, 북한이 안되길 바라니 그런 식 보도가 이어지는 거죠. 김정일 국방위원장 와병설 보도는 또 어떠했나요.”

    ▼ 입이 돌아갔다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만….

    “제가 가까이서 직접 본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런 일 없어요. 북한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이 투석을 한다, 3년밖에 못 산다고 전하던데, 지난해 7월 김 위원장을 가까이서 봤거든요. 다리도 절지 않는다, 얼굴도 안 돌아갔다, 말도 잘한다고 전해도 엉뚱한 얘기가 나돌아요. 제가 본 다음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만나고 나서야 아, 괜찮더라 하는 겁니다. 그로부터 9개월 지났는데 이젠 신장 투석을 한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제가 눈으로 직접 봤는데 엉뚱한 얘기가 사실처럼 전해지니 답답하죠.”

    ▼ 건강에 이상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성욱 소장은 최근 “김 위원장이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으며 손톱이 흰색을 띠는 건 만성신부전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이 TV에 나오는 흰 손톱을 보고 무슨 병이다, 이렇게 판단하는데 손톱이란 게 TV에서 보면 하얗게 보일 수도 있고 노랗게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본질에 충실해야 해요.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이냐? 결국 아파 죽길 바라고, 화폐개혁으로 사고가 나서 망하길 바라고, 폭동이 일어나길 바라고, 어떤 바라는 게 있잖아요. 긴급사태 같은 것 말입니다.”

    ▼ 전문가 집단에선 ‘급변사태’라고 칭합니다만….

    “제가 직접 상점을 둘러보고 사진도 다 찍어왔습니다. 평양에서 그런 사진 찍는 남쪽 사람 별로 없어요. 사과도 있고, 돼지고기도 있고, 다 잘 돌아가요. 주민들이 호주머니에서 북한 돈을 꺼내 물건을 구입합니다. 저는 북한 돈이 없지 않습니까? 북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 돼지고기, 사과, 소시지를 한아름 샀습니다. 백화점에도 생필품이 넉넉하게 진열돼 있고요.”

    “모르는 걸 안다 한 적 없다”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그가 평양에서 촬영한 사진 10장을 꺼내 보여준다. 그러면서 “평양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 ‘2010.03.17’이라고 적혀 있다.

    “화폐개혁으로 손해 본 일부 사람은 불만이 있겠지요.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화폐개혁 덕분에 구매력이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좋아하죠.”

    ▼ 한국 일부 학자들도 화폐개혁을 북한식 자신감의 산물로 보기는 합니다. 물건을 댈 수 있다, 국영공장 돌아간다, 뭐 이런 자신감이 없다면 화폐개혁에 나서지 못했으리라는 주장인데요.

    “그 말이 맞아요. 수입품이 아니라 전부 자기네가 생산한 걸 파는 거예요.”

    ▼ 그런데 평양만 들여다보고 화폐개혁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거 아닌가요? 지방에서 소요가 발생했다는 첩보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서울이 중요하듯 북한에선 평양이 중요합니다. 우리랑 똑같이 모든 게 중앙에 집중해 있어요. 지방 일부에서 휴대전화로 알려준 사실을 바탕으로 평양이 망한다, 북한이 망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건 지극히 옳지 않아요. 평양이 돌아간다는 건 지방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따라온다는 겁니다.”

    ▼ 현금을 다량 보유한 이들은 피해가 컸을 텐데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일반 주민은 봉급은 똑같은데 돈의 가치가 올라가 좋다는 겁니다.”

    ▼ 국영 기업소에서 받는 월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늘었다는 거군요.

    “예. 살 수 있는 게 더 많아졌다는 거죠. 모든 정책이 그렇듯 초기엔 혼란이 다소 있을 수 있겠죠. 잘 돌아가고 있어요.”

    그는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가 현실을 호도한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로 중국을 거쳐 남쪽과 통화하는 이가 많습니다. 지방에서 별소리가 다 나오죠. 그걸 거르지 않고 보도하는 예가 많아요. 정보원 노릇하면서 돈을 받고자 한국사람 입맛에 맞게 허위 조작 과장해서 말하는 걸 검증하지 않고 보도하고 있어요. 좀 더 깊이 확인하고 써야 하는데 흘러나오는 대로 보도하니 북한을 약화하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에만 악영향을 주는 겁니다.”

    북한이 지난해 11월30일 단행한 화폐개혁은 데일리NK가 최초 보도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이후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들이 북한 거주 소식통 전언을 근거로 ‘화폐개혁 이후 경제 난맥’을 전했다. 이를 중앙 언론이 인용보도하면서 화폐개혁으로 인한 북한의 경제 난맥은 한국에서 기정사실화했다.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박상권 사장이 3월17일 촬영한 평양 상점 내부.

    손광주 데일리NK 대표는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면서 화폐개혁이 실패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박상권 사장이 북한 인사들의 의견만 듣고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방 드러날 텐데”라는 박 사장 언급처럼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지켜보면 알 일이다.

    박 사장은 “혹자는 저더러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본다고 말합니다. 17년간 들락거렸는데 나무를 못 보겠습니까? 숲을 못 보겠습니까? 수많은 간부를 만나면서 북한을 느끼고 배웠는데 뭘 모르겠습니까. 그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적은 있지만 모르는 걸 안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민족끼리→세계를 향하여

    박 사장이 또 다른 사진 1장을 꺼낸다. ‘세계를 향하여’란 구호를 적은 간판을 촬영한 거란다. 평양 요지에 이 구호판이 걸렸다고 한다.

    “‘세계를 향하여’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구호예요. 평양에 내걸린 구호판을 보면 북한 당국이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지 알 수 있어요.”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평양에 새로 내걸린 구호판.

    ▼ 17년 동안 관찰한 결과 그렇다는 거군요.

    “그렇죠. 표어를 보면 예전 게 줄어들면서 새로운 게 늘어납니다. 얼마 전까지 핵을 보유한 나라로서 자부심을 안고, 뭐라더라,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구호가 내걸렸어요. ‘핵보유국의 자랑찬 긍지를 안고 경제발전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자’는 구호는 핵을 가졌다는 걸 주민에게 알린 겁니다. 한동안 북쪽 사람들이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했습니다. ‘세계를 향하여’를 보면서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라고 북측이 부르짖는데 우리가 호응하지 않으니 세계로 눈을 돌리자는 겁니다. 우리 민족끼리란 말을 10년 넘게 했는데, 그게 안 된다는 걸 눈치 챈 것 같아요. 그래서 ‘세계로 나아가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먹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북한이 언급한 ‘세계’는 어디라고 보나요.

    “북한이 지금 말하는 세계는 첫째 중국입니다. 그 다음이 미국, 유럽입니다. 유럽도 굉장히 중시하더군요. 중국 미국 유럽과 관계를 개선하자, 더 이상 우리 민족끼리란 생각에 매달리지 말자는 겁니다.”

    구호판을 찍은 사진엔 ‘세계를 향하여’라는 글자 위에 ‘CNC’라는 영어가 적혀 있다. 오른쪽엔 대륙간탄도탄(ICBM)으로 전용 가능한 우주로켓(대포동2호)을 그려 넣었다.

    ▼ CNC가 무슨 뜻입니까.

    “선반이나 기계들을 제어하는 컴퓨터 기술이에요.”

    ▼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주체기계가 되겠군요.

    “그렇죠. 우리와 비교할 때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볼 때는 굉장한 신기술이죠. 지금까지 구호판에 영어가 등장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CNC가 처음이에요. 구호판에 영어로 글을 썼다는 것도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아요.”

    ▼ 북한이 요즘 외자에 목말라 있습니다. ‘세계를 향하여’란 구호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북한이 외자유치 창구로 지정한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은 실체가 있는 겁니까?

    “북한 사람들이 대풍그룹에 열성적이더군요. 굉장히 기대를 걸어요.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냅니다. 중국과 협의를 마친 뒤 등장했다는 느낌입니다. 중국과 합의 없이 지금처럼 활동하긴 어렵죠. 북한이 2002년 신의주 특구 장관으로 양빈을 임명하자마자 중국이 체포한 일 기억하죠? 대풍그룹은 여러 나라에 손 벌리자는 것이 아니고 중국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입니다.”

    ▼ 대풍그룹 박철수 총재가 북한 국가개발은행 부이사장을 맡았습니다. 국가개발은행 이사진에 중국인이 들어가리란 관측이 적지 않았는데 알려진 대로라면 중국인을 임명하진 않았더군요. 조선족인 박 총재가 중국 국적이긴 하지만요.

    “이사진에 중국 인사가 들어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박철수 총재가 중국 쪽이죠. 사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증을 서면 대풍그룹 같은 건 필요가 없어요. 우리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마음먹으면….”

    ▼ 북미관계에 훈풍이 불어야 남북관계 경색도 풀리지 않을까요.

    “예. 그렇죠. 자본 없는 나라가 경제를 키우려면 외자가 들어와야 합니다. 대북 차관 제공 문제를 6자회담, 그러니까 핵 문제와 연결 지어 풀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풍그룹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실제로 외자유치에 성공하긴 어려울 거란 부정적 보도만 한국 언론에 나옵니다. 북한이 왜 대풍그룹을 앞세웠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해요. 그렇게라도 투자를 받아보겠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처럼은 안 되겠다,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의지가 상당한 거죠. 대풍그룹을 통해 북한이 이루고자 하는 게 양빈을 앞세운 신의주 특구 때보다 더 큰 계획일 수 있어요. 이번엔 신의주 같은 변방이 아닌 평양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이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걸로 보이고요. 양빈 때 경험이 있는데, 과거처럼 바보짓 할 소지도 적고요. 북한이 경제 살리기에 나선 건 대단히 좋은 신호 아닌가요. 한국 정부가 우리도 동의한다, 돕겠다, 계획보다 몇 배 더 잘되게끔 도와주겠다, 그 대신 이런저런 걸 해달라고 제안할 기회가 온 겁니다.”

    위협론 vs 기회론

    북한의 대(對)중국 의존 확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위협론과 기회론으로 나뉜다. 일부에선 신(新)식민지적 접근이라거나 북한이 동북4성이 될 것이란 우려를 제기한다. 반면 북중경협 확대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촉매제로 구실하리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북한이 중국 주도로 자본주의화하는 것도 한국엔 득이라는 거다.

    위협론은 대북 포용정책 근거로도 활용된다. 북한 지원과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이 중국에 예속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북한 자원을 싹쓸이한다” “중국 해군이 함경도를 통해 동해로 진출한다”면서 더 늦기 전에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논리다. 박 사장은 위협론 진영에 서 있다.

    “우리가 어떤 여자하고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물질적으로 여자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요. 여자는 가난한데 우리가 뭔가를 해줄 수 없으면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남자가 그 여자를 데려갈 겁니다. 조금 거친 비유지만 물질로라도 환심을 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돈 많고 힘센 사람과 사귀는 겁니다.”

    ▼ 중국을 빗대 말하는군요.

    “중국이 우리보다 돈이 많아요. 외환보유고 세계 1위이자 G2 국가입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북한은 중국과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맙니다. 많은 사람이 중국 염려할 필요 없다, 중국조차 북한을 싫어한다고 주장하는데, 천만의 말씀. 중국은 60년 동안 북한에 퍼줬어요. 지금도 퍼주고 있고요. 내놓으라는 말도 안 해요. 우리는 10년밖에 안 퍼줬습니다. 중국과 비교하면 퍼준 것도 없는데 이젠 내놓으라고 윽박지릅니다. 북한과 결혼하려면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게 뭡니까? 마음이란 말이에요, 마음.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끌어대서라도 마음을 얻으면 통일할 수 있습니다. 민심을 받아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흥미로운 비유이긴 합니다만, 퍼준 만큼 돌아오는 게 없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른 얘기는 다 답하는데 ‘퍼주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습니다’라고 물으면 대답을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퍼줘서 우리가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히곤 했다는 거죠. 그래서 내가 편지를 썼어요. ‘햇볕정책이란 건 외투를 벗기는 게 아니라 어두운 걸 밝혀주는 정책이라고 말씀하는 게 옳습니다. 어둠을 밝혀서 밝은 데로 나오는 걸 도와주는 게 햇볕이라고 말씀해야 합니다’라고. 세상 어떤 나라에도 어두운 부분은 있으니까요. 북한이 먼저 달라고 해서 준 게 아닙니다. 대부분 우리가 먼저 자청해서 줬어요.”

    ▼ 그렇긴 하죠.

    “우리한테 믿음을 갖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주라고 해서 준 것도 아니고 미끼로 준 것도 아니에요. 낚시하고 달라요. 그렇지요?”

    ▼ 그런 측면이 있죠.

    “보시한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미끼로 던진 것으로 이해하고 그 돈이 결국 핵무기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퍼주고 뭔가를 받았습니다. 뭘 받았을까요?”

    ▼ 뭘 받았나요.

    “그걸 우리 국민이 잘 몰라요. 그게 문제죠. 민심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1994년 내가 처음 북한 갔을 때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민심이 뭡니까?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신뢰하는 마음. 그런데 지금 그게 다시 바뀌고 있어요. 확실히 옷을 벗어야 주겠다는 건데 북쪽에서는 옷을 벗느니 죽겠다는 거 아닙니까. 이젠 너희하곤 상관 안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관리를 이렇게 했으니 군함이 가라앉아도 북한을 먼저 의심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올림픽에서도 많은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스포츠 강국이고, 국제연합(UN) 사무총장도 우리 사람이 가 있습니다. G20 의장국도 됐고요. 경제도 이젠 엄청나게 커졌어요. 세계의 한국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용서하자는 거예요. 우리는 모든 면에서 혜택을 받았어요. 하늘이 남한 사람만 잘살라고 이런 축복을 준 게 아니에요.”

    “주체사상은 일종의 종교”

    그는 비즈니스맨이라기보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자로 보였다.

    ▼ 북한에서 사업은 왜 시작했나요.

    “회사가 이익만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철학이 있어요. 적어도 남북통일 운동만은 한번 해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 덕분에 대북사업을 오랫동안 하는 거요. 남북통일 운동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1인당 국민소득 4만~5만달러 시대로 갈 수도 없거니와 일본과 중국에 치여서 우리가 설 자리가 좁아질 수도 있어요. 남북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런 간절한 소망이 있어요.”

    ▼ 그런데 미국 국적은 왜 얻은 겁니까?

    “처음엔 미국 국적 아니었어요. 2003년에 취득했어요. 왜 국적을 바꿨냐면 북한에 투자했으니까, 자유롭게 갈 수 있어야 사업다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평양 주민은 화폐개혁 잘했다고 여긴다”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

    ▼ 국적을 바꾸니 편해지던가요.

    “그때부터는 쉽게 오갈 수 있으니까. 평양 가서도 편해요. 한국 국적이면 생각해야 할 게 많아요. 지금은 지방에 내려가기도 쉽고.”

    ▼ 통일부가 요즘 남북경협과 관련해선 방북 승인을 잘 안 내주지요.

    “지금은 못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만, 앞으로 상황이 좋아지면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할까 생각 중입니다.”

    ▼ 17년간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1994년 일을 시작해 1998년 공장을 짓는 데 합의했습니다. 2002년 첫 제품이 나왔고요. 처음엔 힘들었죠. 공장을 정말 지을 수 있습네까? 이렇게 묻는단 말이에요. 믿지를 않아요. ‘안 될 것 같으면 우리 바보 만들지 말고, 안 된다고 말씀하십시오, 괜찮습네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공장을 지었더니 ‘여기서 차 정말 나옵네까?’라고 묻고, 차가 나와서 굴러가니까 ‘이게 팔리겠습네까?’라고 묻는 겁니다.”

    ▼ 마지막 질문은 일리가 있네요.

    “처음엔 안 팔렸죠. 4~5년 동안 1년에 300대, 400대밖에 못 팔았어요. ‘팔리겠습네까’라는 질문에 내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공화국이 정상적인 나라일진대 발로만 뛰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겠느냐? 자동차 없이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전세계에 전례가 없다. 공화국도 발전하게 돼 있고 너희도 그걸 바라는 마음이니, 그렇다면 자동차가 왜 안 팔리겠느냐?’라고. 갑갑하던 시절이에요. 사람들이 뭘 해보려고 고민하기보다 문책받는 걸 더 걱정했습니다.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안 된다는 말 절대 안 합니다. 오히려 막 하라고 그래요.”

    ▼ 자동차는 누가 삽니까.

    “북한에는 개인 소유 기업이 없어요. 다 국영 기업이죠. 기업체에서 많이 사가요. 외화벌이 무역회사 같은 곳. 자동차가 있어야 돈 벌러 다니죠. 공무원에게도 팝니다. 대사관에서도 사가고요.”

    ▼ 평화자동차, 보통강호텔은 여건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조건에서 남북경협을 하는 셈이죠. 반면 남북경협에 발을 담근 다른 분들은 힘들어 합니다.

    “좋은 여건을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닙니다. 그런 여건을 만들고자 그동안 노력한 거죠. 노력하면 누구든지 저처럼 할 수 있어요. 노하우를 익히지 못했거나 인내심이 부족해서 좋은 여건을 만들지 못한 거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일하던 성공하고 싶으면 먼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고 그 나라에서 죽을 각오로 일해야만 길이 열립니다. 적당히 일하다가 적당하게 돈 벌고 나오겠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 있어요. 북한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지, 정부의 지원이나 도움에 의지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진다면 시간만 낭비하고 손들고 나올 겁니다. 북한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통일에 대한 철학, 인내심, 사상문제에 대한 신념이 필요합니다.”

    ▼ 사상문제에 대한 신념이라는 게 뭔가요?

    “사상문제는 남북의 사상 차이를 말합니다. 통일과 관련해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상입니다. 김일성 주석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이 나왔잖아요. 주체사상을 근거로 김 주석이 어버이가 된 겁니다. 다른 어떤 주의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자본주의가 자기네에게 아무리 큰 선물을 안겨주더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상의 문제가 무엇과 같으냐면, 60년 동안 기독교를 믿어온, 하나님과 예수만 믿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예수를 버리고 불교신자가 된다든지 유교신자가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이 일종의 종교 성격을 갖고 있고, 그걸 바꾼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람들의 개종과 같죠. 하나님을 믿은 우리의 역사도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체사상으로 개종하라면 누가 하겠어요. 죽었으면 죽었지 못 한다고 발 뻗고 드러누울 겁니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저쪽이 주체사상을 간단히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

    ▼ 사상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내가 그거 연구하려고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사상문제가 미래 남북통일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걸 연구하고 싶어요.”

    손깍지 통일

    그는 3월 고려대 북한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김일성 전집(현재 발간된 85권)을 모두 읽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흡수통일, 북한의 무력통일은 한쪽 손바닥이 다른 쪽 주먹을 감싸는 것이라며 손깍지를 만들어 보여줬다.

    “흡수통일, 무력통일은 둘 다 잘못입니다. 흡수도 무력도 아닌 게 손깍지예요. 일본말 중국말엔 손깍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없습니다. 영어로는 locked hands, 잠겨버린 손. 부부관계도 선후배관계도 회사 간관계도 손깍지 형태가 가장 좋습니다. 손깍지 통일이야말로 사상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통일이 어느 쪽으로 될 것 같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북한을 더 사랑하고 더 도와주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됩니다. 북한이 우리를 더 사랑하고 더 많이 베풀면 반대 형태가 되고요.”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우리 정부가 무슨 정책을 세워놓고 강하게 하는 건 좋아요. 그러나 종착역은….”

    ▼ 강온(强穩) 양면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죠. 이쯤 했으니까 바꿀 때가 됐죠. 시간을 너무 끌면 북한이 눈을 돌리게 되니까요.”

    ▼ 보수, 진보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스스로 평가합니까.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에요. 둘 다 맞는 측면이 있다면 둘 다 틀린 면도 있어요. 보수 편에도 서면 안 되고 진보 편에도 서서는 안 되죠. 이데올로기의 파도에 밀려 넘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파도의 한가운데를 걸어가야 한다고 여겨요. 그래야만 대북사업도 잘할 수 있습니다. 남남갈등이 통일방해 요소로서 우리 남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남남갈등이 통일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민족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어요. 남남갈등을 풀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다고 봐요. 보수 쪽에 선 분들이 남북문제 해결에 앞장서면 길이 더 빨리 열릴 수 있습니다.”

    ▼ 남북 정상회담 논의는 어떻게 됐는지 들은 게 있습니까?

    “나는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얘기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 평양에서 회자되는 후일담 같은 거 없나요.

    “서울, 평양 오다가다 들은 건 있죠. 지금은 아무 일도 안 되고 있어요. 어디에서 끝났느냐면 국군포로 문제, 또 한 가지는 납북자 문제. 그런데 정상회담 논의가 복구돼서 다시 나가기가 지금은 어렵습니다. 양쪽 정부 모두 바뀔 생각이 없어요.”

    ▼ 평양에서 비즈니스로도 성공하고 싶죠.

    “당연하죠. 비즈니스로도 성공할 겁니다. 평화자동차는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남북통일 운동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고요. 그러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겁니다.”

    ▼ 미래 북한 경제를 어떻게 보나요.

    “지금도 북한 측의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돈 벌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지금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화자동차가 돈을 벌고 있습니다. 보통강호텔도 그렇고요.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개발연대에 이룬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들이 나타날 겁니다.”

    ▼ 베트남에서도 공장을 운영하던데, 베트남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베트남은 초기조건에서 북한의 상대가 안 돼요. 경제 발전엔 기후와 지정학적 요소도 중요합니다. 북한은 지하자원도 좋고, 교육 수준도 높습니다. 또한 중국이란 경제대국과 국경을 맞댔습니다. 남쪽도 발전해 있고요. 지금은 베트남이 앞서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북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

    3월20일 평양에서 서울로 돌아온 박 사장은 4월13일 다시 평양으로 떠났다. ‘신동아’는 4월1일, 3일 그를 만났다. 그는 북한 체류 경험이 남측 인사 중 가장 많으며 지금도 수시로 북한을 드나든다는 점에서 민간 인사 중 최고의 북한통이다. 다만 비즈니스 이해가 남북관계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행간을 읽어야 할 대목도 있을 것이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