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바닷가에서 사막을 만난다

신두리 해안사구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10-04-30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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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개 해수욕장과 갯벌, 100여 개의 섬 등 천혜의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충남 태안군은 녹색 생태관광지 조성에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이자 천연기념물 431호인 신두사구는 태안의 자랑거리로 생태관광의 최적지 중 하나다. 정부와 태안군은 신두사구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 보존하는 한편 에코빌리지 등 다채로운 시설을 설치해 대표적인 해안 녹색관광지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바닷가에서 사막을 만난다
    해안을 따라 발달한 모래 둔덕을 뜻하는 해안사구는 해류나 파도에 밀려온 모래가 바람에 날려 낮은 내륙 쪽으로 이동하면서 구릉 모양으로 쌓여 이루어진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 해안사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4월7일. 취재진이 신두사구를 찾았을 때 누런 풀이 사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약 100만㎡ 면적에 펼쳐진 높고 낮은 구릉이 사구였음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사구 하면 모래언덕인데, 어떻게 풀이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 있나요?”

    “관리를 안 하니까 그렇지. 예전에는 소도 먹이고 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에는 출입 자체를 못하게 하고 내버려두니까 이 모양이 된 게지.”

    ‘푸른태안21추진협의회’ 임효상 회장은 혀를 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에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갯버들만 무성해졌다는 설명이었다.



    신두사구 지킴이를 자임하는 임 회장은 사구에 자생하는 식물과 동물 이름을 줄줄이 읊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해안사구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도통 ‘사구가 이런 모습인가?’하는 의구심만 일어 직접 사구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다.

    해안가로 다가서자 고운 모래가 쌓여 있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래 둔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경계지점에 쇠말뚝을 박고 그물로 해안선과 구분해놓은 게 눈에 거슬렸다.

    기름 유출 피해의 흔적

    “이건 뭐 하러 설치한 거예요?”

    “기름이 못 올라오게 하려고 설치했지. 또 모래가 흘러 내려가는 것도 막고….”

    그랬다. 신두사구는 2007년 12월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로 백사장이 기름범벅이 됐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쇠말뚝과 그물은 당시 처참했던 상황의 산물인 셈이다.

    “올해 안에 이것도 철거해야지. 그래도 이 펜스 덕분에 기름 피해도 막았고, 모래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임 회장은 아픈 기억 속에서도 애써 희망을 찾아냈다.

    드넓게 펼쳐진 사구를 가로질러 한가운데로 향했다. 사구가 워낙 넓어 걸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릴 것 같았다. 신두사구 내방객들에게 안내와 해설을 해준다는 임 회장은 “찬찬히 둘러봐야 사구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며 “여기서 자생하는 해당화 군락지도 둘러보고, 갯그령이나 통보리사초를 눈으로 봐야 진짜 사구를 체험한 것”이라고 했다. 갯그령이나 통보리사초는 사구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다.

    동물의 천국

    사구 중간쯤 들어가자, 내륙 쪽으로 드넓은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른바 ‘동물의 천국’이란다. 과거에는 높은 모래언덕이었는데 몇 해 전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해 대형 트럭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지금은 분지처럼 내려앉았다고 했다. 인적이 뜸한 지금은 고라니나 토끼 등 야생동물들의 천국이 됐다. ‘훠이훠이’ 소리를 질러보고, 박수도 쳐봤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그런지 야생동물을 만나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놈들이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나? 이른 아침에 와보면 서너 마리씩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임 회장은 서울에서 해안사구 취재차 내려온 취재진에게 야생동물이 맘껏 뛰노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지 연신 혼잣말을 하더니, 이내 사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사막을 만난다

    사구 중간에는 분지가 펼쳐져 있다. 이른바 ‘동물의 천국’이다.

    임 회장에 따르면 천연기념물인 신두사구 해안가에는 갑각류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농게와 민꽃게, 칠게 등이 그것으로 참갯지렁이와 낙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펄 바닥에 꼬리를 박고 머리의 반 정도만 밖으로 내놓는 개맛도 적지 않고 드넓은 개펄에 먹잇감이 많아서 그런지 바다새도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긴 목이 인상적인 중대백로를 비롯해 왜가리와 흰뺨검둥오리, 개개비, 괭이갈매기 등도 볼 수 있다.

    임 회장의 얘기를 듣자니 다음에 신두사구를 찾을 때는 조류도감을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구를 둘러보는 동안 만나게 되는 새가 어느 종인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알고 보면 더 반갑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동물의 천국을 지나 사구를 감싸고 있는 수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해안가 쪽으로 돌아 나왔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높고 낮은 구릉이 연이어 나타났다. 정말 사구에 풀만 없었더라면 ‘사막’에 와 있는 느낌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신두사구는 넓고 컸다. 걸어서 사구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서재청 태안군 문화관광과장은 “신두사구를 걸어서 둘러볼 수 있도록 생태 탐방로도 만들겠지만, 시간 여유가 없는 관광객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돌아볼 수 있도록 자전거데크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선은 사구가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잡풀부터 제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사구가 방치된 탓에 사구 곳곳에는 칡덩굴도 자라났던 모양이다. 사구 군데군데에 칡덩굴 더미가 쌓여 있었다.

    5월 해당화, 10월 낙조

    4월 초순 날씨치고는 제법 쌀쌀했는데도 사구 곳곳에는 해당화가 꽃봉오리를 맺어 봄이 왔음을 실감케 했다. 사구를 둘러볼 때에는 특히 발을 조심해서 디뎌야 한다. 잘못 디뎠다가는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는 여린 해당화를 밟기 십상이다. 그만큼 해당화가 즐비했다.

    “여기, 해당화가 올라오고 있네. 지금은 조금 일러. 5월쯤 돼야 해당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트려 장관을 이룰 텐데….”

    임 회장은 “5월 중순께가 신두사구의 참맛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라고 했다.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사구 식물들이 초록빛으로 뒤덮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단다. 또 10월 하순경에는 한 해 중 가장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서해안 어딜 가나 낙조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지. 그렇지만 해가 어디로 떨어지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 신두사구는 10월말이 가장 멋진 때야. 그때 와서 보면 너무 아름다워. 입이 떡 벌어질 정도라니까. 사진작가들도 그때에 맞춰서 많이들 찾아오곤 해.”

    사구를 크게 돌아 다시 해안가로 나왔다. 모래언덕의 참맛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사구에서만 자생한다는 식물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해안가 가까이에 다가가자 갯그령이 여기저기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기, 여기 좀 봐. 갯그령 사이로 통보리사초가 올라오네. 이게 일품이야.”

    갯그령과 통보리사초가 어우러진 모습은 해안사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란다.

    ‘휴양, 태안’의 명소

    잠시 갯그령의 키 높이에 맞춰 바라본 바다 풍경은 평화 그 자체였다. 바람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움이란 이런 걸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야트막한 모래둔덕, 그 위에 솟은 갯그령과 통보리사초,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한적하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선사했다.

    바닷가에서 사막을 만난다

    갯그령과 통보리사초가 어우러진 모습은 해안사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백사장으로 내려오자 끝없이 펼쳐진 모래 물결이 감탄사를 자아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래 물결의 골마다 조그마한 모래 알갱이들이 뭉쳐져 있었다. 게들이 집을 지으려고 모래를 뭉쳐 위로 올려 보낸 것들이라고 한다. 언뜻 봐서는 작은 토끼 똥처럼 느껴졌다.

    “이 모래 알갱이들이 바람을 받아 물기가 마르고 가벼워지면 다시 바람에 실려 해안가로 날아가 모래 언덕을 이루는 게지.”

    해안사구가 만들어지는 원리가 그랬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모래들이 모여 언덕을 이룬 것이 사구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사구는 모래를 소재로 게와 바람이 역할을 나눠 만들어낸 합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태안군은 관내 주요 관광명소 가운데 대표적인 명소 8곳을 선정해 ‘태안8경’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8경 가운데 제5경에 해당한다. 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신두사구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구지대로 태안군 신두리 해수욕장에 위치하며 그곳은 사막처럼 펼쳐진 넓은 모래벌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500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강한 바람에 모래가 파랑에 의해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모래언덕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북서 계절풍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받는 지역으로 북서 계절풍에 의해 주변 산지의 운모편암이 깎여 바다로 들어간 뒤, 파랑을 타고 다시 바닷가로 밀려들거나 파랑의 침식으로 깎여나간 침식물들이 해안가로 밀려와 쌓여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해안 사구 특유의 생태계가 조성되어 식물군으로는 전국 최대의 해당화 군락지,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을 비롯해 갯방풍과 같이 희귀식물들이 분포해 있으며, 동물군으로는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사구의 웅덩이에 산란을 하는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사구는 육지와 바다의 완충지대로 해안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농토를 보호하고 바닷물의 유입을 자연스럽게 막는 역할을 한다.

    신두사구를 뒤로하고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자 두웅습지가 나왔다. 모래 둔덕으로 흘러든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습지다. 산으로 둘러싸인 두웅습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늑한 느낌을 줬다. 조용히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두웅습지에서 차를 타고 산길을 돌아 언덕길로 향했다. 5분쯤 차를 달려 산 정상에 도착하자 오래전 주막으로 쓰였다는 허름한 집 한 채가 나왔다. 제법 고도가 높아 여기에서는 신두리 해안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드넓은 사구와 바다가 멋지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기름유출 사고도 생태관광자원화

    신두사구와 두웅습지는 2013년까지 녹색관광지로 조성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는 지난 2월 해양자원으로서 신두리 해안사구를 국내의 대표적 녹색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고, 태안군 역시 신두사구와 두웅습지를 복원해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신두사구와 두웅습지 복원은 우선 신두리 지역의 희귀 동식물을 복원하고 외래식물을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신두사구 주변에는 생태 관찰로가 설치되고, 생태해설사를 육성해 관광객들에게 관람 편의를 제공할 계획이다.

    태안의 잊을 수 없는 기억인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 역시 다크투어리즘 도입을 통해 생태관광화할 방침이다. 기름시계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면 그 부피만큼 없어지는 원리를 이용한 ‘희망을 먹는 기름시계’를 해안가에 설치하는 한편 신두사구 인근에는 생태교육과 생태복원을 테마로 한 에코 빌리지도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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