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유별난 백양사 봄 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입력2010-05-03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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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면 하루에도 수만 명을 끌어안는 백양사인데도, 호남에선 ‘봄 백양, 가을 내장’이란 말이 회자된다. 들머리 숲의 아기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선보이는 신록의 향연을 감상하고 쌍계루 주변에 소담스럽게 꽃피운 이팝나무에 눈을 돌려보라. 나무와 숲이 발산하는 색과 향에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니 이게 바로 열락(悅樂)이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된 백양사 진입로의 아기단풍나무 길.

    봄백양, 가을 내장’과 함께 ‘산은 내장산이요, 절은 백양사’라는 말이 오늘날도 호남지방에서 회자된다. 백양사의 사격(寺格)과 풍광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이 구절은 아마도 백양사가 한때 내장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절집이 아닌 내장산을 내세우는 이유는 1971년 11월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을 한데 묶어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내장산이 호남지방의 명산으로 자연스럽게 각인된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봄 백양을 내세우는 것이 상식 밖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가을철 단풍 절정기면 하루에만도 3만여 명의 탐방객이 백양사로 몰려드는 현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봄 백양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백양사의 봄 풍광이 가을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의미일 터. 봄 백양의 아름다움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고자 지난해 4월과 5월에 이어 올해도 백양사를 찾아 봄 백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봄 백양의 의미는 풋풋한 신록의 아름다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절집 숲과 달리 백양사의 들머리 숲길은 물론이고 백암산 곳곳에서 자라는 아기단풍나무와 다양한 종류의 활엽수가 짧은 봄철에 시시각각 연출하는 풍광은 유별나고 멋지다. 특히 아기단풍나무는 단풍나무 속(屬)의 한 종류로 고로쇠, 신나무, 복장나무, 당단풍 같은 상대적으로 큰 잎을 가진 단풍나무들과 달리, 잎의 크기가 어른 엄지손톱만한 것부터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앙증맞게 작은데, 이들이 내뿜는 신록의 풋풋함은 다른 곳에서 쉬 경험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아기단풍의 들머리 숲

    유별난 백양사 봄 숲

    우화루 모퉁이에 핀 고불매(천연기념물 486호).

    봄 백양의 아름다움은 먼저 아기단풍 가로수가 늘어선 들머리 숲길에서 찾을 수 있다. 백양사의 들머리 숲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과 ‘가장 걷고 싶은 길’로 선정된 이력만큼이나 멋지다. 4월 하순쯤 이 숲길을 찾으면, 걸음을 멈추고 아기단풍나무의 어린 잎에 눈길을 돌려보자. 2~3㎜ 크기의 작은 눈들이 아기 손같이 앙증맞은 이파리를 하루가 다르게 키워내는 생명의 기운과 신록이 내뿜는 에너지를 온몸에 담을 수 있다. 여유를 가지면 누구라도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그 역동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눈앞에 보이는 풍광을 건성으로 쳐다볼 뿐이다. 길어야 고작 20일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만 개 수십만 개의 잎눈과 꽃눈이 계절의 운행 속도에 맞춰 일시에 꽃을 피우고 잎을 키워내는 생명력을 잠시라도 환기하면, 나무라는 생명체의 에너지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꽃과 잎을 피워내는 생명현상은 경이롭기조차 하다.



    눈여겨볼 또 한 가지는 어느 하나 똑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어느 하나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 잎도 없다는 점이다. 이게 화이부동(和而不同) 아니겠는가! 하나하나의 잎이 다른 잎과 화목(和睦)하게 지내지만 자연의 질서에 따라 자기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 아기단풍 잎의 당당함. 아기단풍이 풍기는 경이로움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으면, 당신은 봄 숲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의 진수를 만끽하기 위한 첫 단계에 무난히 진입했다고 자부해도 좋다.

    아기단풍나무의 잎눈이 벌어질 때 이 들머리 숲길을 걸으면 수많은 꽃눈과 잎눈이 외치는 함성이 들린다. 바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마음의 귀를 열어보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꽃눈과 잎눈의 합창을 들어보자. 만일 당신이 이들의 우렁찬 함성을 들을 수 있다면 자연을 향한 당신의 소통 안테나는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함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생태맹(生態盲)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생태맹이란 생태적 지식이 결여된 상태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 지식은 물론이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나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감성이 결여된 상태를 뜻한다. 생태맹은 생명 현상에 대한 호기심, 경외심, 직관력은 물론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상실한 상태다. 우리는 문맹이나 컴맹이라고 치부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생태맹의 상태에는 무덤덤하거나 무신경하다. 자연과 유리된 삶을 정상인 양 치부하는 오늘의 물질문명이 우리를 생태맹으로 내몰고 있는지 모른다. 현대문명을 발전시키고자 글자를 익히고 컴퓨터를 깨쳤듯이 현대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자연에 대한 감성을 불러내는 일이 시급하다.

    갈참나무 숲길을 걷는 복

    유별난 백양사 봄 숲

    반월교 주변의 700년생 갈참나무.

    많은 이가 이때의 숲을 ‘신록’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 신록에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의 자연색이 찬연히 발색되고 있다. 우리 눈앞에는 연두색에서 녹색에 이르는 수많은 종류의 색의 향연이 펼쳐지며, 생각지도 못한 울긋불긋한 또 다른 색들이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느라 꽃눈과 잎눈을 겹겹이 감쌌던 인편(鱗片)과 잎자루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깔이 녹색의 바다에 점점이 박혀서 전혀 예상치 못한 파스텔 톤의 여리고도 순수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양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봄 백양이 품고 있는 생명의 경이, 자연의 질서, 수많은 녹색의 조화를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다. 가을 단풍이 적어도 2~3주 이상 현란함을 연출하는 데 반해, 겨울을 이겨낸 잎눈과 꽃눈이 펼쳐지는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봄 숲의 변화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쉬 감상할 수 없을 만큼 어떻게 보면 밋밋하게 진행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제때, 제 장소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봄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

    아기단풍나무의 들머리 숲길을 1㎞ 정도 걸어들어오면 새로운 숲이 방문객을 맞는다. 바로 반월교 주변부터 시작되는 갈참나무 숲이다. 들머리 숲길의 아기단풍나무들이 대부분 수령이 낮은 데 반해 이들 갈참나무는 나이를 수백 년 먹은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600여 년 묵은 나무를 비롯해 여러 그루의 거목이 서 있는 모습이 새롭다. 잎이 돋기 전의 갈참나무 노거수들은 마치 바오밥나무처럼 그 형태도 유별나다. 이런 노거수들이 서 있는 숲길을 거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백양사처럼 역사가 오래된 절집에서나 누릴 수 있는 복이다.

    백양사는 632년(백제 무왕 33년) 여환(如幻)선사가 세운 백암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034년(고려 덕종 3년)에는 정토사로 개명했으며, 오늘날의 백양사란 사명은 1574년(선조 7년) 대중 앞에 설법을 했던 환양(喚羊)선사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절 이름을 고쳐 부른 것에서 비롯됐다. 백양사를 흔히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부르는데,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을 가르치는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백양사와 함께 총림으로 불리는 사찰은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뿐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명부전·칠성각·진영각(眞影閣)·보선각·설선당(說禪堂)·선실(禪室)·요사채·범종각 등이 있다.

    쌍계루 연못에 비친 풍광

    들머리 숲에서 경험한 아기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연출하는 신록의 향연은 봄 백양의 서곡일지 모른다. 봄 백양의 정수는 쌍계루(雙溪樓) 앞 영지(影池)에서 만끽할 수 있다. 쌍계루는 극락교를 건너 절집에 들어서기 전 연못 곁에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은 백암산의 흰 절벽이 병풍 모양으로 뒤에서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누각 좌우의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고, 그 주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쌍계루란 이름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누각을 고려 말 청수스님이 새롭게 중건하면서 목은 이색에게 작명을 부탁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봄 백양의 풍광을 즐기고자 하면 쌍계루보다는 인공적으로 물을 막은 보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좋다. 영지 주변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갖가지 활엽수 잎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신록에 먼저 눈길을 준 다음, 영지에 비친 환상적인 풍광을 가슴에 담아보자. 깎아지른 백학봉의 흰 절벽과 그 주변 신록, 날렵한 쌍계루의 모습과 연못 주변의 나무들이 비친 풍광을 감상하면, ‘봄 백양’이라는 말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큰 숨을 들이쉬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마음으로 녹색의 바다에 몸을 풍덩 빠뜨리는 상상을 해보자. 이 순간만은 도회에서 지고 온 스트레스와 온갖 책무를 잊어도 좋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젖히며 육신에 켜켜이 쌓인 긴장을 떨쳐내고, 생명과 풍요의 녹색 기운을 가슴에 가득 담아보자. 어느 틈에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을 갖게 되리라.

    유별난 백양사 봄 숲

    백양사에서 약사암으로 오르는 길 주변의 비자림.

    쌍계루 주변의 아름다움은 예부터 유명했다. 쌍계루 풍광은 포은 정몽주가 칠언율시로 남긴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선팔도의 비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쌍계루에는 지금도 삼봉, 목은, 포은 선생의 시문과 함께 많은 문사의 시문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도 쌍계루에 정몽주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지금 시를 써달라 청하는 백암사 스님을 만나니/ 붓을 잡고 생각에 잠겨도 능히 읊지 못해 재주 없음 부끄럽구나/ 청수 스님이 누각을 세우니 이름이 더욱 중후하고/ 목은 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빛나도다./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이 맑구나/ 오래도록 인간 세상에서 시달렸는데/ 어느 날 옷을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올라보리.

    求詩今見白巖僧 把筆沈吟愧不能

    淸?起樓名始重 牧翁作記價還增

    烟光?暮山紫 月影徘徊秋水澄

    久向人間煩熱惱 拂衣何日共君登 (奇題雙溪樓 圃隱 鄭夢周)

    현대에 이르러 노산 이은상도 쌍계루에서 바라본 백암산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백암산 황매화(黃梅花)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 학(鶴)바위 기묘(奇妙)한 경(景) 보지 않고서 조화(造化)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백암산’, 노산 이은상)

    어느 계절인들 영지에 비친 쌍계루와 백학봉의 풍광이 아름답지 않으랴만, 지난해 5월 초, 쌍계루 연못가에 꽃을 피운 이팝나무를 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수만 송이가 어우러져 핀 순백의 이팝나무 꽃들에 정신이 맑아졌고, 그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한 없이 고마웠다. 이팝나무는 나무 전체에 하얗게 피운 꽃이 마치 소담스럽게 담아놓은 하얀 쌀밥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 나무에는 각진 국사(고려 말 13대 왕사)의 지팡이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절집에 전해오는 지팡이 설화

    유서 깊은 절집에는 지팡이 설화가 얽힌 나무들이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 수타사의 주목(몇 해 전에 고사했다), 송광사 고향수와 쌍향수, 쌍계사 국사암의 느릅나무, 오대산 사자암의 단풍나무, 정암사의 주목 등은 백양사의 이팝나무처럼 고승대덕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온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유독 우리나라에만 전해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세계의 나무’(토머스 파켄엠, 넥서스북스)란 책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했는데, 일본 도쿄의 절집이나 이탈리아 베루치오 수도원의 나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쿄의 젬푸쿠 절집의 은행나무는 신난 쇼닌 스님이 1232년경 사용하던 지팡이를 심어서 자란 나무이며, 베루치오 수도원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성 프란시스가 1200년경 사이프러스 가지의 지팡이를 꽂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무에 얽힌 지팡이 설화는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기에 이처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답을 찾으려면 우선 나무가 가진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구한 수명과 거대한 몸체다. 마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절집이나 수도원의 장구한 역사를 수백 년 동안 지켜본 살아 있는 증인은 나무말고는 없다. 손에 들고 다니던 나무 지팡이를 꽂아도 거대한 덩치로 자랄 수 있는 특성 역시 다른 생명체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나무 고유의 특성이다.

    두 번째 특성으로는 해마다 봄이면 새로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리는 영속성을 들 수 있다. 영속성은 다른 말로, 우주의 리듬이다. 우주의 리듬이란 태양계의 순환주기에 따라 하루(日)와 달(月)과 절기가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절집의 나무를 마을의 당산나무와 마찬가지로 우주수(宇宙樹)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조상들에게는 수백 년 동안 절기에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무의 속성이 태양이나 달이 보여주는 우주적 리듬처럼 신비로웠으리라.

    세 번째 특성으로 매년 수많은 열매를 맺는 다산성(多産性)을 생각할 수 있다. 농경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활동은 식량생산이었다. 옛사람들은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의 생산력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의 재생성(再生性)도 무시할 수 없다. 나무는 예부터 무성번식(無性繁殖)을 통해 줄기나 뿌리나 가지의 조각에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를 재생해낼 수 있는 생명체로 인식됐다.

    장구한 수명, 거대한 덩치, 우주의 리듬 재현, 다산성, 재생성 등은 다른 생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나무 고유의 특성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무숭배 의식이나 풍습이 전해오는 것도 나무의 이런 특성 때문일 것이다. 부처가 룸비니 숲의 사라수 아래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치고,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을 한 사연도 나무를 신성하게 여긴 고대 인류의 나무숭배 의식을 종교에 접목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승대덕의 지팡이 설화에서 유래한 절집의 나무 역시 외래 종교인 불교가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던 이 땅의 토착 신앙을 포용한 흔적인 셈이다.

    애민(愛民)의 정성으로 키운 비자나무 숲

    백양사의 자랑거리 중 비자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아기단풍, 고불매(古佛梅), 이팝나무, 갈참나무 등이 이어질 수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한두 그루씩 단목으로 존재하지 않고, 5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이채롭다. 들머리 입구에서도 제법 큰 비자나무들이 모여 있는 작은 숲을 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비자나무 숲의 형태는 천진암 부근이나 약사암(금강암)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천진암 부근의 비자나무 숲에는 목책으로 산책로와 함께 멋진 휴식공간도 마련해놓아 비자나무 숲의 향취를 느긋하게 즐기기 좋다.

    비자나무는 원래 추위에 약해서 제주도나 온난한 해안지방에서만 생육한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내륙 쪽에서 그리고 위도상으로 가장 북쪽(북한계)에서 자라는 생육 특성 때문에 천연기념물(153호)로 지정되었지만, 오늘날은 더 북쪽인 내장산에서도 비자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백양사의 비자나무는 백양사의 3창에 공헌한 각진 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내장산이나 백양사 일대는 비자나무의 천연 자생지라기보다는 사람의 힘으로 전래된 생육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자나무는 호남지방 해안가의 여러 사찰에서도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239호로 지정된 고흥 금탑사의 비자림, 100년생 이상의 비자나무 230여 그루로 산림욕장을 운영하고 있는 장흥 보림사의 비자림, 고창 선운사의 비자나무, 영광 불갑사의 비자나무, 진도 구암사 터의 비자나무, 강진 백련사의 비자나무 등이 그 예다.

    절집과 비자나무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절집과 비자나무의 관계는 먼저 비자나무의 효용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 비자나무 열매(榧子라 부른다)는 오래전부터 구충제로 널리 쓰였다. 백양사의 경우, 1970년대만 해도 주변 농민들에게 비자 채취를 개방했고, 농민들은 비자 구충제 판매로 농가소득에 보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온다. 고려사에는 문종 7년에 탐라국에서 조정에 비자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고,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는 경상도 동래현과 전라도 나주목, 진도(해진군), 제주목의 토공(土貢)으로 비자나무의 열매와 판재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한시(漢詩)에는 비자를 채취해 관가에 공납해야 했던 강진 백련사의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조선 조정에서는 구충제를 확보하고자 각 사찰에 비자나무를 키우게 하고, 그 흔적들이 호남 해안가 사찰의 비자나무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절집에서 키워낸 비자가 기생충으로 횟배를 앓던 민초들의 고통을 구제해준 셈이다.

    ‘동의보감’에는 비자 열매의 약성(藥性)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비실(榧實)은 3시충을 없애고 촌백충증도 치료한다. 늘 7개씩 껍질을 버리고 먹는데 오랫동안 먹으면 충이 저절로 나온다. 600g만 먹으면 충이 완전히 없어진다. 비자(榧子)의 성질은 평(平)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5가지 치질을 치료하고 3충과 귀주를 없애며 음식을 소화시킨다. 일명 옥비(玉榧)라고도 하며 지방 사람들은 적과(赤果)라고 부른다. 껍질을 까 버리고 알을 먹는다. 촌백충증 환자에게 하루에 7개씩 7일 동안 먹이면 촌백충은 녹아서 물이 된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백학봉에서 바라본 백양사.

    비자 열매는 음식의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비자의 독특한 향과 쌉싸래한 맛을 강정의 달달한 풍미와 섞어 만든 비자강정이 대표적이다. 해남의 녹우당(고산 윤선도 종가)에서 대물림되어오던 ‘가문 음식’인 비자강정을 고흥 금탑사에서 전수받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약사암 주변의 비자나무 숲을 즐길 참이면, 상왕봉의 신록도 빼놓을 수 없다. 약수동 계곡을 따라 운문암을 오르는 방법이 있지만 약사암을 오른 후 영천굴, 학바위, 백학봉을 거쳐 능선을 타고 상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깎아지른 백학봉 주변의 신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백학봉은 백양사와 함께 명승 38호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아름답다. 약사암과 영천굴을 거쳐서 백학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2㎞ 정도의 급경사지만, 신록 속에 파묻힌 백양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 약병을 든 아름다운 약사불도 볼 수 있어 많은 이가 찾는다.

    절집 나무와 부처의 가르침

    ‘봄 백양’의 유별난 풍광을 즐기고자 고불매(古佛梅)가 한창이던 4월 초에 다시 백양사를 찾았다. 고불매는 2007년 10월에 천연기념물 486호로 지정된 300여 년 묵은 홍매(紅梅)다. 꽃 색깔이 아름답고 향기가 은은해 예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원래는 지금 자라는 곳에서 북쪽으로 100m쯤 떨어진 옛 절터의 앞뜰에 있던 것을 1863년 절집을 옮겨 지을 때 함께 옮겨 심었다고 한다. 탐매광(探梅狂)처럼 꼭두새벽부터 이 나무 그늘에서 암향(暗香)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부처님이 설법을 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우화루(雨花樓) 곁에서 반나절을 늙은 매화 주변을 맴돌면서 맡은 은은한 향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매화 향기 하나로 마음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

    절집의 품격은 진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거나, 유명한 고승대덕의 주석 못지않게 절집에 터 잡아 살고 있는 자연유산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절집의 식물들은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 못지않게 꽃과 잎의 향기와 색깔로 절기의 완급과 풍미를 알리는 한편, 우리네 심성을 보듬고 치유하기에 말 그대로 생명문화재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생명문화유산의 가치와 소중함을 선인들만큼 품을 수 있는 안목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박한 오늘의 세태라 할 수 있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全 瑛 宇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임학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석사, 박사

    現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저서: ‘숲과 한국문화’ ‘나무와 숲이 있었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숲 보기 읽기 담기’ ‘한국의 명품 소나무’ 외 다수


    그런 관점에서 백양사의 고불매와 이팝나무와 갈참나무는 더할 수 없는 보물이자 셈할 수 없는 자산이다. 전쟁의 참화로 소중한 문화재가 대부분 소실된 백양사로서는 비자나무 숲과 함께 백양사의 품격을 전하는 귀중한 생명문화유산이다.

    나무와 숲이 내뿜는 향기와 색으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경험했으니, 이게 바로 우리가 찾는 열락(悅樂)의 세상 아니겠는가? 절집이 품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숲 한 자락도 우리의 삶을 맑고 향기롭게 이끄는 부처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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