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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유별난 백양사 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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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참나무 숲길을 걷는 복

유별난 백양사 봄 숲

반월교 주변의 700년생 갈참나무.

많은 이가 이때의 숲을 ‘신록’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 신록에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의 자연색이 찬연히 발색되고 있다. 우리 눈앞에는 연두색에서 녹색에 이르는 수많은 종류의 색의 향연이 펼쳐지며, 생각지도 못한 울긋불긋한 또 다른 색들이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느라 꽃눈과 잎눈을 겹겹이 감쌌던 인편(鱗片)과 잎자루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깔이 녹색의 바다에 점점이 박혀서 전혀 예상치 못한 파스텔 톤의 여리고도 순수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양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봄 백양이 품고 있는 생명의 경이, 자연의 질서, 수많은 녹색의 조화를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다. 가을 단풍이 적어도 2~3주 이상 현란함을 연출하는 데 반해, 겨울을 이겨낸 잎눈과 꽃눈이 펼쳐지는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봄 숲의 변화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쉬 감상할 수 없을 만큼 어떻게 보면 밋밋하게 진행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제때, 제 장소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봄 숲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

아기단풍나무의 들머리 숲길을 1㎞ 정도 걸어들어오면 새로운 숲이 방문객을 맞는다. 바로 반월교 주변부터 시작되는 갈참나무 숲이다. 들머리 숲길의 아기단풍나무들이 대부분 수령이 낮은 데 반해 이들 갈참나무는 나이를 수백 년 먹은 아름드리 나무들이다. 600여 년 묵은 나무를 비롯해 여러 그루의 거목이 서 있는 모습이 새롭다. 잎이 돋기 전의 갈참나무 노거수들은 마치 바오밥나무처럼 그 형태도 유별나다. 이런 노거수들이 서 있는 숲길을 거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백양사처럼 역사가 오래된 절집에서나 누릴 수 있는 복이다.

백양사는 632년(백제 무왕 33년) 여환(如幻)선사가 세운 백암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034년(고려 덕종 3년)에는 정토사로 개명했으며, 오늘날의 백양사란 사명은 1574년(선조 7년) 대중 앞에 설법을 했던 환양(喚羊)선사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절 이름을 고쳐 부른 것에서 비롯됐다. 백양사를 흔히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부르는데, 참선수행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을 가르치는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백양사와 함께 총림으로 불리는 사찰은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뿐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명부전·칠성각·진영각(眞影閣)·보선각·설선당(說禪堂)·선실(禪室)·요사채·범종각 등이 있다.



쌍계루 연못에 비친 풍광

들머리 숲에서 경험한 아기단풍나무와 갈참나무가 연출하는 신록의 향연은 봄 백양의 서곡일지 모른다. 봄 백양의 정수는 쌍계루(雙溪樓) 앞 영지(影池)에서 만끽할 수 있다. 쌍계루는 극락교를 건너 절집에 들어서기 전 연못 곁에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은 백암산의 흰 절벽이 병풍 모양으로 뒤에서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누각 좌우의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고, 그 주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쌍계루란 이름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누각을 고려 말 청수스님이 새롭게 중건하면서 목은 이색에게 작명을 부탁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봄 백양의 풍광을 즐기고자 하면 쌍계루보다는 인공적으로 물을 막은 보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좋다. 영지 주변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갖가지 활엽수 잎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신록에 먼저 눈길을 준 다음, 영지에 비친 환상적인 풍광을 가슴에 담아보자. 깎아지른 백학봉의 흰 절벽과 그 주변 신록, 날렵한 쌍계루의 모습과 연못 주변의 나무들이 비친 풍광을 감상하면, ‘봄 백양’이라는 말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큰 숨을 들이쉬고,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마음으로 녹색의 바다에 몸을 풍덩 빠뜨리는 상상을 해보자. 이 순간만은 도회에서 지고 온 스트레스와 온갖 책무를 잊어도 좋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젖히며 육신에 켜켜이 쌓인 긴장을 떨쳐내고, 생명과 풍요의 녹색 기운을 가슴에 가득 담아보자. 어느 틈에 풍요와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을 갖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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