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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⑤

유별난 백양사 봄 숲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유별난 백양사 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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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백양사 봄 숲

백양사에서 약사암으로 오르는 길 주변의 비자림.

쌍계루 주변의 아름다움은 예부터 유명했다. 쌍계루 풍광은 포은 정몽주가 칠언율시로 남긴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선팔도의 비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쌍계루에는 지금도 삼봉, 목은, 포은 선생의 시문과 함께 많은 문사의 시문이 전시되어 있다. 오늘날도 쌍계루에 정몽주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지금 시를 써달라 청하는 백암사 스님을 만나니/ 붓을 잡고 생각에 잠겨도 능히 읊지 못해 재주 없음 부끄럽구나/ 청수 스님이 누각을 세우니 이름이 더욱 중후하고/ 목은 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빛나도다./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이 맑구나/ 오래도록 인간 세상에서 시달렸는데/ 어느 날 옷을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올라보리.

求詩今見白巖僧 把筆沈吟愧不能

淸?起樓名始重 牧翁作記價還增

烟光?暮山紫 月影徘徊秋水澄



久向人間煩熱惱 拂衣何日共君登 (奇題雙溪樓 圃隱 鄭夢周)

현대에 이르러 노산 이은상도 쌍계루에서 바라본 백암산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백암산 황매화(黃梅花)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 학(鶴)바위 기묘(奇妙)한 경(景) 보지 않고서 조화(造化)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백암산’, 노산 이은상)

어느 계절인들 영지에 비친 쌍계루와 백학봉의 풍광이 아름답지 않으랴만, 지난해 5월 초, 쌍계루 연못가에 꽃을 피운 이팝나무를 보면서 나는 행복했다. 수만 송이가 어우러져 핀 순백의 이팝나무 꽃들에 정신이 맑아졌고, 그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한 없이 고마웠다. 이팝나무는 나무 전체에 하얗게 피운 꽃이 마치 소담스럽게 담아놓은 하얀 쌀밥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 나무에는 각진 국사(고려 말 13대 왕사)의 지팡이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절집에 전해오는 지팡이 설화

유서 깊은 절집에는 지팡이 설화가 얽힌 나무들이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 수타사의 주목(몇 해 전에 고사했다), 송광사 고향수와 쌍향수, 쌍계사 국사암의 느릅나무, 오대산 사자암의 단풍나무, 정암사의 주목 등은 백양사의 이팝나무처럼 고승대덕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온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유독 우리나라에만 전해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세계의 나무’(토머스 파켄엠, 넥서스북스)란 책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했는데, 일본 도쿄의 절집이나 이탈리아 베루치오 수도원의 나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쿄의 젬푸쿠 절집의 은행나무는 신난 쇼닌 스님이 1232년경 사용하던 지팡이를 심어서 자란 나무이며, 베루치오 수도원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성 프란시스가 1200년경 사이프러스 가지의 지팡이를 꽂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무에 얽힌 지팡이 설화는 종교와 어떤 관련이 있기에 이처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답을 찾으려면 우선 나무가 가진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구한 수명과 거대한 몸체다. 마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절집이나 수도원의 장구한 역사를 수백 년 동안 지켜본 살아 있는 증인은 나무말고는 없다. 손에 들고 다니던 나무 지팡이를 꽂아도 거대한 덩치로 자랄 수 있는 특성 역시 다른 생명체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나무 고유의 특성이다.

두 번째 특성으로는 해마다 봄이면 새로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리는 영속성을 들 수 있다. 영속성은 다른 말로, 우주의 리듬이다. 우주의 리듬이란 태양계의 순환주기에 따라 하루(日)와 달(月)과 절기가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절집의 나무를 마을의 당산나무와 마찬가지로 우주수(宇宙樹)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옛 조상들에게는 수백 년 동안 절기에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나무의 속성이 태양이나 달이 보여주는 우주적 리듬처럼 신비로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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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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