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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⑤

내 인생의 봄날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내 인생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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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봄날

외국인 특별학교 학예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료증을 받은 필자의 아들 희찬군(가운데).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상대를 이름으로 호칭한다. 예를 들어, BBC 10시 뉴스에서 현장에 나가있는 기자가 리포트를 마칠 때면 늘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 BBC 뉴스 제레미 본이었습니다. 피오나 나와주세요.” 그러면 앵커인 피오나 브루스가 이렇게 말한다. “네, 제레미, 여기는 스튜디오입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준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 생각해보면 가족이나 친구 외에는 거의 없었다. 나는 늘 이름 대신 특정한 지위나 역할로 불렸고, 그럼으로써 그 역할과 지위에 어울리는 행동을 강요당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내가 그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나이가 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위니’라는 한 명의 사람이다.

나는 여기서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나이나 지위가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기 때문에 마음이 맞으면 나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60세를 넘긴 내 지도교수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슐레징어 교수님”이라고 부르자 의자에서 펄쩍 뛰어오를 듯 놀라면서 ‘필립’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처음엔 어떻게 나이 많은 교수님을 이름으로 부르나 싶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교수님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하이, 필립!” 하고 인사한다. 그러면 파파 스머프 같은 인상의 교수님은 상냥하게 웃으시면서 “하이, 위니”하고 대답하신다.

깊이 들어가보면 영국 사회에도 계급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 사회가 평온하고 안정적인 것은 오히려 상류층-중간층-노동자층이라는 계급상의 차이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차기 선거에서 집권이 유력시되는 보수당의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나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재무부총리인 조지 오스본 같은 경우가 그렇다. 각기 44세, 39세에 불과한 이들은 척 보기에도 이튼, 옥스퍼드 같은 최상류층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가도를 밟아온 상류층 자제들이다(특히 조지 오스본은 인물까지 얼마나 잘났는지, 정치인이 아니라 영화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좋은 집안 태생-‘퍼블릭 스쿨’이라고 불리는 유서 깊은 사립학교-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진학-졸업 후 변호사나 금융인, 정치인으로 성장. 이런 식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계급의 차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자면 한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타고난 계급 차이를 뛰어넘기 어렵다. 그래서 영국 사회가 더 안정되고 기복이 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번도 안 울었거든!”

내 인생의  봄날

봄을 반기며 글래스고대 캠퍼스 곳곳에 피어난 들꽃들.

그러나 외국인인 나로서는 이런 속사정과 별개로, 나이나 직위를 따지지 않고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받아들여주는 영국 사회의 평등함이 기껍다. 이것저것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려줘서 내가 장난 삼아 ‘구루(guru)’라고 부르는 연구실 동료 앤디는 올해 스물아홉 살이다. 한국 사회라면 나와 그는 열한 살이라는 나이 차 때문에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나는 앤디와도, 그리고 앤디의 장모님인 캐시와도 친구다. 캐시가 내 영어작문을 교정해주는 영어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앤디에게 “너, 지도교수님 이름 부르는 거 좀 이상하지 않니? 프로페서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냐?” 하고 물었더니 앤디는 “요즘이 빅토리아 시대도 아니고, 같은 연구자끼리 대등하게 부르는 게 당연한 거지”라고 대답했다. ‘같은 연구자라고? 필립 교수님은 문화정책 분야에서 국제적인 석학인데, 그런 교수님과 내가 대등하다고 하면 교수님이 자존심 상하지 않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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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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