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호

교수들이 읽으면 가슴이 뜨끔해질 책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입력2010-05-03 2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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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들이 읽으면 가슴이 뜨끔해질 책

    ‘잘 가르치는 교수’<br>이의용 지음/ 쌤앤파커스/ 328쪽/ 2만원

    그런대로 이름난 사립대학교의 경영학과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매 학기말에 수강생들이 학교 사이트에 올리는 강의평가를 거의 보지 않는단다. 제자들에게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으면 기분만 나빠지기 때문이란다. “어차피 학부생 가르치기는 교수 평가 항목 가운데 미미한 부분이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게 급선무”라고 털어놓았다.

    교수는 강의와 연구를 하는 전문인이다. 양쪽에 모두 비중을 둬야 하지만 강의를 등한시하는 교수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농땡이’ 교수를 압박할 별다른 방법도 없다. 이 때문에 특히 학부생들은 품질이 낮은 강의를 듣고 비싼 등록금을 내는 억울함을 당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를 자주 요구하지만 ‘강의 품질 향상’을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내지 않는다. 학부모는 더욱이 대학 사정을 잘 모른다. 그러니 개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미국에서 최우수 강의상(賞)을 여러 번 받은 조벽 교수라는 분이 서울대 교수들에게 강의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언론 보도를 본 적이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조벽 교수의 저서 몇 권을 읽었고 그의 강의를 담은 동영상도 보았다. 수강생들의 학습 열정을 이끌어내는 명강의였다. 그가 강조하는 핵심은 교수가 학생들을 제대로 파악해 그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교수와 학생의 ‘소통’이 중요한 셈이다.

    신간을 살피다가 ‘잘 가르치는 교수’라는 책이 눈에 띄어 조벽 교수의 얼굴을 떠올리며 집어 들었다. ‘최고의 강의를 위한 교수법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훑어보니 단지 강의 기법만 담은 책이 아니다. 교수와 수강생의 원활한 의사소통법을 강조했다. 조벽 교수의 저서와 비슷하다.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자. 대기업에서 27년간 몸담으며 주로 연수원 업무를 맡았다. 그때도 틈틈이 대학에 출강했다. 대기업을 떠난 후에는 중앙대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강의기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각 대학의 교수학습센터에서 마련하는 교수법 강좌에 자주 초청된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압축한 것이다.

    대학의 1차 고객은 학생

    저자는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적지 않은 교수가 스승의 역할에는 관심이 없고 논문 쓰는 데 골몰한다고 한다. 학부생들의 항의는 “연구 논문을 써서 강의에는 얼마나 활용하느냐?” “왜 학부생들의 학비로 월급을 받으면서 대학원생 지도와 논문 쓰는 데에만 힘을 쏟느냐?”로 요약된다.

    학생들이 다시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은 어떤 것일까. 툭하면 바쁜 일이 있다며 휴강이나 대강(代講)이 많은 수업, 발표나 팀플레이가 너무 많은 수업,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는 수업, 교수가 수업 시작 전에 앞자리 학생에게 “지난 시간 어디까지 했지?” 하고 묻는 수업, 교수의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는 수업 등이다.

    다시 듣고 싶은 수업 유형을 분류해보자. 한 편의 드라마처럼 치밀하게 짜여 박진감 있게 진행되는 수업, 졸업 후에도 사회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업, 과제가 재미있고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창조적인 수업, 강의를 녹음이라도 해서 다시 듣고 싶은 수업 등이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교수는 다음과 같이 조사됐다. 권위주의자, 처음 보는데도 반말로 학생을 막 대하는 교수, 시계만 바라보며 시간만 때우려는 교수, 자기 자랑만 하고 수업은 안 하는 교수, 자신이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해서 학생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교수, 당일 수업 시작 직전에야 휴강 소식을 알려주는 교수 등이다.

    존경하는 교수 유형도 눈길을 끈다. 학생들 돈 들까봐 염려해주는 교수, 인생에 대한 깊은 경험으로 조언을 해주는 교수, 세계를 보는 눈을 넓혀주고 사고를 터주는 교수, 과제를 일일이 피드백해주는 교수, 오픈북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교수, 쉬는 시간에 매점에 함께 가서 간식도 함께 먹는 교수, 매학기 교안을 업그레이드하는 교수 등이다.

    2004년 서울 어느 대학에서의 일이다. 수강신청 전날까지도 강의계획서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은 교수가 260명이나 됐다. 총학생회 간부들은 이들 무성의한 교수의 명단을 적은 대자보를 붙였다.

    저자는 기업 상황을 빗대어 설명한다. 기업이 고객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듯 교수는 학생의 필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수업은 대학이 학생에게 등록금을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대학당국은 수업에 대한 ‘품질 관리’를 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대부분의 대학은 ‘고객’이나 ‘품질’에 관심이 부족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 너무 오래 안주해왔다. 그러다 입학할 학생이 줄어들면서 대학에 위기감이 감돌자 강의평가제 등 수요자를 위한 제도가 시작됐다. 그러나 강의평가제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상당수 교수는 평가 절차나 결과에 대해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제도가 강의 품질 향상에 기여한다기보다는 대학당국이 전임교수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2006년 1학기 말에 실시한 기초교양과정 강의평가 결과가 눈길을 끈다. 수강생들은 전임교수, 기금교수, 초빙교수, 명예교수, 전임강사, 시간강사 가운데 “시간강사 강의가 가장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2위는 전임강사, 3위는 명예교수와 초빙교수가, 그 다음은 기금교수가 차지했다. 꼴찌는 학과 전임교수였다. 좋은 대우를 받는 역순으로 평가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무얼 뜻할까. 성의 부족 아닐까.

    즐거운 마음으로 강단에 서야

    강의를 잘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저자는 “학생들 앞에 서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신이 나는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면서 “가르치는 일이 즐겁지 않은 사람이 강단에 서면 비극이고 시간 낭비”라 강조한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최고의 교수’라 불리는 골드스타인 교수는 훌륭한 교수가 되는 비결로 “가르치는 것을 즐겨라”고 조언한다.

    내키지 않은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단다. 더 효과적인 강의에 대해 관심이 없다, 과거 스승의 교수법을 답습한다, 어두운 표정으로 강단에 선다…. 가르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사명감으로라도 무장해야 한다. 요즘 사립대학의 한 학기 수업료는 1학점에 대체로 15만원꼴이다. 3학점짜리, 100명 수강생 과목이면 4500만원짜리 수업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설학원 강사가 그런 강좌를 맡았으면 행복해하거나, 아니면 바짝 긴장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교수는)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학 개강 수업 때마다 퍼포먼스를 벌인단다. 3학점 수업에서는 현금 45만원을 준비해 간다. 한 학생을 나오게 해 현금 뭉치를 교수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수업의 현금 가치와 부모님의 수고를 일깨우기 위한 행위다.

    수강생들을 잘 파악해야 강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저자는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수가 본 요즘 대학생’을 조사,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먼저 수업태도를 보자. 앞자리는 비우고 뒷자리나 벽에 가까운 자리에만 앉으려 한다, 입을 손으로 가리지 않고 하품을 한다, 수업 중 교실을 들락거린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한다, 이성친구와 스킨십을 한다, 질문도 없고 반응도 없다, 교재도 없이 수업에 참석한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성적에만 목숨을 건다, 과제 제출시 마감을 어기기 일쑤다….

    라이프 스타일은 이렇다. 주침야겜(낮에는 자고 밤에는 게임), 대학교재 외에는 독서를 거의 안 한다, 화제 내용 대부분이 연예인에 관한 것, 운동을 하지 않는다, 알바에는 열심인데 취업 준비엔 소홀, 커닝이나 표절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성형수술을 한 적이 있거나 하고 싶어한다….

    요즘 대학생들의 은어는 어른들에게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아래 신조어 가운데 몇 개나 알 수 있을지? ①므흣 ②지못미 ③우엉남 ④오나전 ⑤마봉춘 ⑥스크트 ⑦반모 ⑧영자 ⑨혐짤 ⑩쌍수…. 정답을 보자. ①흐뭇해하거나 수상쩍은 미소 ②‘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줄임말 ③‘김밥 속 우엉’처럼 비실거리거나 가늘고 속 좁은 남자 ④‘완전’의 오타 표기 ⑤MBC ⑥SKT ⑦‘반말 모드’의 줄임말로 ‘반말 쓰자’는 뜻 ⑧웹사이트 운영자 ⑨혐오스러운 사진 ⑩‘쌍꺼풀 수술’의 줄임말….

    개강 수업은 신상품 설명회처럼

    강의계획서를 상품 설명서처럼 만들라고 저자는 권유한다. 수강생들의 궁금증을 낱낱이 풀어주도록 상세하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원에서 수십만원짜리 강의를 개설하면서 엉성한 소개 자료를 만들면 손님이 모이겠는가. 대학은 너무도 안일하다. 어떤 교수는 16주간 수업계획 내용 대부분을 ‘수업시간에 설명하겠음’이라 적는다.

    적잖은 수의 교수가 개강 수업을 자기 자랑이나 교재 소개로 대충 때우고 일찍 마친다. 저자는 개강 수업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신상품 설명회처럼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 자신은 개강 수업 때 교수 소개, 영상으로 보는 지난 학기 수업, 수업계획 설명, 지난 학기 수강생의 소감, 맛보기 강의 등에 이어 수업목표와 관련 있는 10~20문항의 설문조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수강의 필요성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개강수업 만족도는 90% 이상으로 나타난단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앞두고 저자는 수강생들에게 답안 작성요령을 가르친다. 정확하고, 쉽고, 간결하게 쓰도록 지도한다. 채점할 때는 채점기준표를 미리 만들어 이에 따른다.

    과제를 요구할 때는 학생들의 구미에 당기는 주제를 내준다.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과제가 좋은 과제다. 과제물에 대한 피드백은 교수가 성의 있게 해줘야 한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학생 79.3%가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단 한번도 피드백을 받지 못한 과목이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교수들이 이 책을 읽으면 가슴이 뜨끔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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