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영화 속 술 이야기 ⑮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수수와 여러 곡물을 발효한 바이지우(白酒)의 매력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2/4
가마꾼이 술독 안에서 비몽사몽 사흘이나 머무는 동안 인근의 악명 높은 도적떼가 양조장을 습격해 지우얼을 납치해간다. 고참 일꾼 루오한이 도적떼의 요구대로 돈을 마련해 주고 지우얼을 구해온다. 이를 안 가마꾼은 도적 두목 산포가 지우얼을 겁탈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복수를 위해 산포가 있는 술집으로 찾아간다. 술집에서 옥신각신한 끝에 지우얼이 문둥병 남편과 동침했다고 하기에 문둥병이 옮을까 겁이 나서 차마 겁탈을 못했다는 산포의 얘기를 듣고 양조장으로 돌아온다.

오줌 눈 술 맛이 최고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한편 기운을 차린 지우얼은 루오한의 권유로 새 술을 증류하는 작업현장을 구경한다. 지우얼이 일꾼들과 새 술을 시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도적 소굴에서 막 빠져나온 가마꾼이 나타난다. 그는 새 술을 한번 맛보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난데없이 바지를 내리고 술독에 오줌을 누는 기행을 보인다. 그러고는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로 지금부터 자기가 술을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지우얼을 덥석 안고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지우얼은 못 이기는 척하지만 아주 싫은 기색은 아니다.

그날 저녁 가마꾼이 오줌을 눈 술을 맛본 루오한은 술맛이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느낀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지우얼에게 달려간 루오한은 지우얼로부터 ‘십팔리홍(十八里紅)’이라는 술 이름을 받아낸다. 루오한은 그러나 그녀 곁에서 자고 있는 가마꾼을 보고는 양조장에서 자기가 할 일은 없다고 여기고 그날 밤 양조장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화자의 아버지, 그러니까 지우얼의 아들이 아홉 살이 된다. 그 무렵 십팔리홍 술이 크게 이름을 떨쳐 양조장이 번성하고 가족들도 화목하다. 그러나 이때 중일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친다. 산둥지방에 진출한 일본군이 군용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양조장 인근 청살구의 붉은 수수밭을 모두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일본군은 지우얼과 양조장 식구 등 인근 마을 주민을 총동원해 수수 제거 작업을 한다. 그러던 중 앞으로 일본군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며 두 명의 중국인을 끌고 나온다. 한명은 도적 두목 산포였고 나머지 한명은 루오한이었다. 루오한은 양조장을 떠나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항일게릴라로 활동하다 포로로 붙잡힌 것이다.



일본군 장교는 한때 산포의 부하였던 소 도살꾼에게 이들의 가죽을 벗기라고 명령한다. 차마 그 명령을 따를 수 없는 도살꾼은 산포를 흉기로 찔러 죽인 뒤 일본군에 달려들다 총에 맞아 죽는다. 일본군 장교는 다시 도살꾼의 조수에게 루오한의 가죽을 벗기라고 명령하고,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마지못해 명령에 따른 조수는 끝내 실성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온 지우얼은 오래된 술독을 꺼내 루오한을 추모하며 양조장 식구들에게 일본군에 대한 복수를 당부한다. 화자의 할아버지도 양조장 일꾼들과 함께 술을 들며 복수를 다짐한다. 이윽고 양조장 식구들이 일본군 군용차가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수수밭 도로에 새벽에 몰래 고량주와 화약을 이용한 폭탄을 매설한다. 그날 아침 일본군 트럭이 그 도로를 지나가고, 마침내 폭파된다.

병균 없애고, 액땜도 하고

그러나 이것은 목숨을 건 작전이었다. 이 일로 화자의 어린 아버지와 할아버지만 남고 지우얼과 양조장 일꾼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도로와 수수밭이 삽시간에 피와 고량주로 붉게 물들고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부자(父子)의 머리 위로 붉은 해를 뒤덮는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영화는 지우얼의 명복을 비는 어린 아들의 노래로 끝을 맺는다.

제목 자체가 ‘붉은 수수밭(紅高粱)’이고 영화의 주 무대 역시 수수(高粱)를 원료로 고량주를 만드는 양조장이기 때문에 술 관련 장면이 영화 전편에 걸쳐 비중 있게 등장한다. 영화에서 고량주가 등장하는 것은, 남편이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난 뒤 문둥병이 옮을까봐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우얼이 집 마당에서 누워 자고 있을 때다. 최고참 일꾼 루오한이 지우얼에게 다가가 그녀 주위에 고량주를 뿌리며 “고량주가 병균의 접근을 막아준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2/4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목록 닫기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