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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⑮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수수와 여러 곡물을 발효한 바이지우(白酒)의 매력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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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양조장 주인에게 시집 온 지우얼은 남편이 죽자 일꾼들을 설득해 양조장을 다시 일으킨다.

남편이 죽자 양조장을 떠나려는 일꾼들을 지우얼이 붙잡아 함께 일하기로 한 뒤 새 마음으로 양조장을 청소할 때도 고량주가 쓰인다. 지우얼이 남편이 쓰던 물건을 모두 없애고 양조장에 고량주를 세 번 뿌려달라고 루오한에게 부탁한다. 그러면서 “병균만 없애는 게 아니라 액땜도 할지 아느냐”고 운을 뗀다. 이때 뿌려지는 고량주는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고량주와 관련해 결정적인 장면은 고량주가 세 번째로 등장할 때다. 지우얼이 도적떼에게 납치됐다가 간신히 풀려난 다음이다. 루오한의 권유로 고량주를 만드는 작업장에 구경 나온 지우얼이 고량주가 증류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그때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일 수 있는, 가마꾼이 나타나 고량주가 든 항아리에 오줌을 누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후 이 고량주는 양조장 고참 루오한에 의해 최고의 고량주로 평가된다.

루오한이 일본군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되자 양조장 식구들이 그를 추모하며 복수를 맹세할 때도 고량주가 등장한다. 복수를 다짐하는 술을 마시기 전에 가마꾼이 술잔 중 하나에 불을 붙여 이른바 ‘화주(火酒)’를 만들고, 일행이 이를 바라보며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오한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일본군 트럭을 폭파시키는 작전에 고량주가 사용된다.

백주, 황주, 약주

그러면 이 영화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량주는 과연 어떤 술일까? 고량주는 글자 그대로 고량(高粱), 수수를 원료로 한 술이다. 고량은 중국 중부와 동북부를 중심으로 자라는 외떡잎식물로 잎은 붉은 갈색을 띤다. 영화의 제목인 ‘홍고량’은 붉은 색을 띠는 특별한 종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량의 일반적인 색깔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재래품종이 있으나 재배량이 적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술을 대부분 ‘고량주’로 표현하는데,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중국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먼저 중국 전통술의 종류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 술에는 크게 ①수수(고량)를 중심으로 곡물을 누룩으로 발효한 후 이를 증류시킨 백주 ②찹쌀이나 수수 등을 원료로 누룩을 띄워 발효시킨 황주 ③고량주에 약재를 첨가해 만든 약주 혹은 보건주가 있다. 이 중 중국 술이라고 하면 기름진 중국 요리에 어울리는 강한 향과 높은 도수의 백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수를 주원료로 하여 증류한 백주(白酒·바이지우)는 맑고 투명한 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고량주라고 하는데, 백주의 주재료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백주 중엔 고량만 써서 만든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고량 외에 여러 곡물을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급 백주인 오량액(五粮液·우량예)의 경우 고량과 밀, 멥쌀, 찹쌀, 옥수수 등 모두 5가지 곡식을 원료로 한다. 백주 중엔 고량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주를 일컫는 용어 중 잘못된 것 또 하나는 ‘배갈’이란 표현이다. 배갈은 중국 백주 상표 중 하나인 백간(白干· 북방식 발음으로 바이갈)을 가리키는데, 상당히 저렴한 제품으로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다. 아마도 백주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을 당시 저렴한 바이갈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연유로 이 상표가 백주와 동일시된 게 아닌가 추정해본다.

백주도 증류 후에는 일정 기간 숙성과정을 거친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고급 제품을 선호하는 사회분위기에 맞춰 수년 이상 장기 숙성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다만 백주는 나무통에서 숙성과정을 거치는 위스키나 코냑과 달리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기 때문에 숙성기간이 길어져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영화 ‘붉은 수수밭’에 등장하는 고량주는 매우 선명한 붉은색을 띠는데, 이는 증류할 때 또는 증류 후에 술에 붉은 색깔의 잎을 함께 두면 그렇게 된다. 그러나 색채 미학을 추구하는 장이머우 감독의 취향으로 볼 때 술 제조기법에 관계없이 강렬한 색감을 원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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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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