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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⑥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 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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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닉 클렉 자유민주당 당수.

영국의 정론지들 중 ‘더 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전통적으로 보수당을, 그리고 ‘가디언’은 노동당을 지지한다. 반면 ‘인디펜던트’는 이름 그대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BBC TV 역시 중도적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유독 ‘가디언’을 제외한 주요 언론이 일제히 보수당과 캐머런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노동당의 정책 실패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언론이 보수당을 지지한 근본적인 이유는 영국인의 뿌리 깊은 균형감각 때문인 듯싶다.

노동당 내각의 실정(失政)도 여론몰이에 한몫을 한 게 사실이다. 2008년 이래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시작되면서 영국인들은 새삼 고든 브라운 총리에게 기대감을 가졌다. 고든 브라운은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10년 이상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영국의 경기를 줄기차게 호황으로 이끈 유능한 재정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경제전문가라고 해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을 되돌릴 능력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점을 이해 못하는 영국인도 아니었다. 영국인이 분통을 터뜨린 것은 세계적 불황 중에서도 영국의 경기 침체가 유독 심각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영국 경기는 지난 6분기 연속 침체를 기록했고 이젠 정부의 재정적자 폭까지 늘어나는 등, 영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파운드화 환율도 최근 1년 사이 30% 가까이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참을성 많은 영국인들도 “브라운이 한 게 뭐냐”며 총리를 탓하게 됐다. 더욱이 고든 브라운은 선거를 통해 총리가 된 게 아니라 노동당수가 되면서 총리 자리를 계승한 경우라 대중적 지지 기반도 약했다.

‘엄친아’냐 ‘제3의 선택’이냐

사실 고든 브라운은 뚱한 표정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전형적인 중산층 영국 남자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그야말로 ‘잘생긴 훈남’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 데다가 훤칠한 미남이고 연설도 잘한다(영국에서 연설 솜씨는 정치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튼스쿨-옥스퍼드로 이어지는 최고의 학벌에, 윌리엄 4세 왕의 핏줄을 이어받은 명문가 출신이다. 가문, 학벌, 인물 등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심지어 옥스퍼드 대학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서민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처음 의회에 입성한 지 불과 4년 만인 2005년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일약 보수당 당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만큼 흠을 찾기 어려운 신예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캐머런은 2001년 옥스퍼드셔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영국정치의 저력 보여준 6일간의 총선

보수당의 2인자 조지 오스본.

보수당의 ‘뉴 페이스’는 캐머런뿐만이 아니다. 내각제인 영국에서 야당은 집권할 미래를 대비해서 미리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해둔다. 이 그림자 내각에서 정권의 2인자 역할인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조지 오스본은 1971년생이니 영국 나이로 따지면 이제 겨우 서른여덟이다. 역시 옥스퍼드대학 출신인 오스본은 14대 오스본 준남작의 장남이니 진짜 귀족에다 억만장자이고, 부인 역시 남작집안의 딸이다. 한마디로 보수당 내각의 핵심인물들은 최고의 가문에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준수한 남자들이다.



사실 나는 이들의 너무나 말끔하고 미끈한 모습에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물론 능력 있고 잘생긴 게 흠이 될 수는 없지만, 저렇게 귀하게 자란 부잣집 자제들이 총리와 재무장관이 되면 노동자 계급의 어려움을 헤아려주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계급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영국사회에는 ‘정치는 상류층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보수당 내각의 핵심인물들이 대부분 가문과 학벌이 빼어났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글래스고의 목사님 댁 장남으로 공립학교를 나와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고든 브라운은 서민적이기는 하지만, 캐머런에 비해 개인적 매력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아무튼 영국의 여론은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확연히 보수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노동당, 보수당에 이은 제3당인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의 당수 닉 클렉의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영국은 사상 최초로 TV 토론을 실시했는데, 이 토론을 구성할 때만 해도 제3당인 자유민주당의 당수가 포함되느냐 마느냐 하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닉 클렉은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막상 TV 토론에 나선 닉 클렉의 모습은 단연 발군이었다. 너무도 완벽하고 미끈해서 약간의 거부감을 주는 캐머런이나, 뚱한 모습에 지나치게 낮은 음성인 브라운에 비하면 산뜻하고도 신선한 외모에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클렉의 모습은 영국인들에게 양당제 외에 다른 선택의 길도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사실 영국인 중에는 ‘노동당도 싫고 보수당도 싫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동당은 13년이나 집권을 했으니 이제 내각을 물려줄 때가 됐고, 보수당은 런던이나 잉글랜드 남부의 중상류층 위주의 정책을 펼 테니 싫다는 것이다(정말로 선거 결과를 보면 영국도 지역색이 확연하다. 런던과 잉글랜드 남부는 보수당,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는 노동당이 꽉 잡고 있다). 이런 유권자들에게 닉 클렉은 ‘제3의 선택’이 있음을 호소했고, 그 호소는 확연하게 먹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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