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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4

미첼 바첼레트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증오를 거꾸로 돌리는 데 바친 삶… “고마웠어요, 대통령”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미첼 바첼레트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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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쿠데타와 그의 통치는 칠레 현대사에서 가장 큰 갈등의 진원지로 아직까지 칠레를 분열시키고 있다. ‘세계의 과거사 청산’(푸른역사)이란 책에서 칠레 편을 쓴 이성헌씨는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칠레는 양분됐다”고 소개했다. 한편에서는 가혹한 군부독재를 ‘마르크스주의의 암’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고 통합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선거를 통해 집권한 민주정부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하고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야만적인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의 운명을 바꾼 아버지

많은 칠레인이 피노체트 집권 시기를 상처로 기억하는 것은 가혹한 고문통치 때문이다. 피노체트는 우리의 옛 안기부에 해당하는 국가정보국을 통해 반대세력을 통제하고 불법체포, 구금, 고문, 처형, 추방 등을 서슴지 않았다. 정치범들을 대형 축구장에 가두고 휘발유를 뿌린 후 불태우기도 했으며 고문 살해 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여성 수감자들에 대해서는 성 고문까지 자행했다. 피노체트 통치 기간에 일어난 인권침해는 정부의 공식적인 보고서에서 확인된 것만도 사망, 연행, 실종이 3000여 건, 구금·고문 피해가 3만5000여 건에 달한다. 1990년 민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이 끈질기게 이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2006년 대통령 취임 첫 연설에서 1974년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헌사를 했다.

“이 순간, 의심할 여지없이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할 분, 그분이 살아계신다면 오늘밤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나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Alberto Bachelet)입니다.”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고위 직업군인이었다. 인류학자를 아내로 맞아 둘째딸로 바첼레트를 얻는다. 바첼레트는 1951년 9월29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산티아고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칠레 국토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1818년 4월5일 칠레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야고보의 스페인 이름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산티아고’가 그대로 수도 이름으로 정해졌다. 산티아고는 19세기에 발견된 구리 광산 덕분에 빠르게 성장했다.

바첼레트는 호방하면서도 애국심이 깊었던 아버지의 유전자와 부드러우면서도 사물을 깊이 보는 지혜의 눈을 가진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부모는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상황에서 드물게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를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방식의 양육을 했다.

바첼레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칠레의 여러 군 기지를 돌아다니며 보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칠레와 칠레 국민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키웠다. 1962년엔 아버지가 미국 워싱턴 DC의 칠레대사관으로 파견되는 바람에 미국으로 건너간다. 당시 메릴랜드에서 2년 동안 중학교를 다녔는데, 미국 사람들이 칠레란 나라를 거의 모르고 있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바첼레트는 이때 처음 칠레를 세계무대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다. 이밖에도 선진국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은 그녀의 내면을 여러모로 살찌웠다.

1963년 말 다시 칠레로 돌아온 바첼레트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70년 칠레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본래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칠레의 보건의료 증진과 질병 완화를 돕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공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아옌데 정부에서 물가조절위원회라는 정부 요직을 총괄하고 있던 아버지가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감된 것이다. 반역죄라는 혐의가 씌워졌지만, 실상 피노체트 정권이 아옌데의 측근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부하들에게 집중적인 고문을 당한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이듬해 심장마비로 죽는다. 당시 딸 바첼레트는 히피 같은 모습으로 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던 22세의 대학교 4학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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