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호

최선을 다한 이혼소송 승리 ‘슬픈 승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입력2010-07-06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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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이혼율에 대해 2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나중에 이 보도가 통계에 관한 오류로 인한 오보(誤報)임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급증하는 이혼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 기사였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이혼건수는 12만4000건이었는데 이것은 매일 340쌍이 이혼을 한 셈이 되고 일년 내내 하루 680명의 ‘돌싱’이 새로 탄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이혼율이 급증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니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가 이혼에 대해 부담감이 없어 자유롭게 이혼하는 나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0~20년 전 우리가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상처럼 말이다.

    이렇게 폭증하는 이혼율을 반영하듯이 서울가정법원이 위치한 서초동 법조타운에도 이혼전문 변호사를 표방하는 변호사수가 늘고 있다. 이혼소송은 100% 패소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얼마라도 꼬박꼬박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법률사무소의 안정적인 운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호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나는 이혼전문변호사가 아니고 이혼소송은 최대한 가려서 수임하는 편이다. 이혼소송 과정에서 변호사로서 겪어야 하는 감정소모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혼소송이 주된 수임사건이라면 사건을 맡기겠다고 찾아온 의뢰인을 돌려보내기 쉽지 않겠으나 이혼이 주업무가 아닌 나는 내 기준으로 볼 때 별것 아닌 일로 이혼소송을 하겠다면서 찾아오는 의뢰인들에게 진짜 심각한 사례를 들려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며 돌려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 결과 합의이혼을 하기로 하거나 다시 살아보겠다며 소송을 포기한 사례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해야겠다는 분들에게 필자가 들려주는 주의사항이 있는데 이혼소송을 고려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하기로 한다. 이혼소송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글의 내용을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1. 이혼소송은 기분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혼상담을 해보면 ‘남편에게 한두 차례 얻어맞았다’거나 ‘아내가 시아버지 병원 수발을 소홀히 했다’ 등의 사유로 이혼소송을 해달라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사유로는 상대 배우자가 합의하지 않는 한 이혼소송을 해봤자 승산이 없다.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혼도 엄연한 계약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도 없는 계약을 하며 살지만 결혼만큼 중요한 계약은 없을 것이다. 혼인계약의 성립(결혼) 사실을 국가에 신고하도록 하고 혼인계약의 해지(이혼) 과정에는 법원이 직접 개입하는 것도 결혼이 비단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계약은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쪽에서 위약금을 내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면 해지가 가능하지만 결혼계약은 법에서 정한 혼인계약 해지사유가 아니면 해지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물론 당사자 간에 이혼에 합의한 경우라면 사유가 무엇이든 관계없겠다.

    민법 제840조가 바로 재판상 이혼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민법 제840조는 부부의 일방 당사자에게 다음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1. 배우자가 부정한 행위를 한 때

    2. 배우자가 고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위 1~5호까지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소송이 가능한데, 2~5호에 해당하는 사례는 흔치 않고 1호 사유인 부정행위로 인한 이혼청구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부부가 살다보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과 갈등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법 제840조는 제6호를 따로 두어서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도 이혼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남편의 무능력, 아내의 낭비벽, 일방의 장기간에 걸친 성관계 거부 등이 대표적으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

    위 제6호가 이혼사유의 범위를 넓히는 구실을 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중대한 사유’일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두 번의 경미한 폭행이나 시부모에 대한 부실한 봉양 정도로는 이혼을 청구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이혼소송은 화가 나고 부아가 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혼인계약이라는 중요한 계약을 물려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꼭 이혼해야겠다면 합의이혼으로 하라.

    이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부부가 이혼하기로 합의해 하는 합의이혼(협의이혼이라고도 한다)과 법원의 판결에 의해 이혼하는 재판상 이혼이 있다. 두 가지 이혼방식 모두 부부관계의 청산이라는 같은 효과를 낳지만 그 과정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소요시간에 큰 차이가 있다. 합의이혼의 경우 최근 홧김이혼이나 경솔이혼을 막기 위해 1~3개월의 이혼숙려기간을 도입했기 때문에 다소 길어지기는 했지만 길어봐야 3개월이면 이혼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상 이혼은 당사자 간에 이혼 여부 또는 재산분할이나 양육권에 관한 이견이 있기 때문에 부부는 각자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2년의 재판기간을 거쳐야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일방이 1심 판결에 불복해서 항소를 하게 되면 그 기간은 하세월(何歲月)이 된다. 그 긴 시간 당사자가 받을 압박과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다.

    다음으로 비용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합의이혼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반면 재판상 이혼의 경우에는 일단 법원에 내야 하는 송달료와 인지대만 10만원가량 들고 여기에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면 최소한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의 수임료가 추가된다. 당사자 간에 합의만 할 수 있다면 아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합의이혼의 경우는 부부 간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정을 지킬 수 있지만 재판상 이혼은 그렇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항에서 설명하기로 하자.

    3. 소송을 하기로 했다면 진흙탕 싸움을 각오하라.

    이혼소송은 이혼조건에 합의하지 못한 부부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소송절차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보니 법원이나 재판절차에 익숙하지 않고 소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소송의 전문가인 변호사를 선임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혼소송을 하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부부가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라면 그래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정도가 덜하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부부가 모두 법정에 나와 소송을 진행하는 사례는 보지 못했다. 부부 한쪽만 법정에 출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한쪽은 소송을 포기한 것이다.

    부부가 서로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펴기 위해서는 변호사 선임이 불가피한데 싸움의 기술에 능한 변호사로서는 자신의 의뢰인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은 상대방 배우자는 아주 몹쓸 인간의 캐릭터로, 자신의 의뢰인은 너무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의 캐릭터로 만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가 가공할 무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아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다른 남자 직장 동료와 회사 내의 분리된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아내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침소봉대(針小棒大)도 이만저만 아니지 않은가.

    또 특정한 행위가 본래의 의도와 정반대로 왜곡되는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면 남편이 태국에 있는 어떤 여학생의 경제적 어려움을 동정해 학비를 지원한 것이 남편의 불륜 증거로 둔갑해 법원에 제출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사실을 부풀리고 뒤틀린 주장과 증거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지만 상대방 배우자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 가능성은 100%다. 별로 효과도 없으면서 부작용만 큰 것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해 싸우는 과정은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옛 배우자에 대한 잔정마저 소진시켜버린다.

    돌이켜보면 그 최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최선’이며 그 최선의 결과 얻어진 승리는 ‘슬픈 승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소송이 종료한 이후에도 부모의 지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 때문에라도 서로 얼굴 볼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인데 그 상처와 앙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최선을 다한 이혼소송 승리 ‘슬픈 승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는 소송의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 이후의 회복과정까지 염두에 두기는 어렵다. 결국 변호사들이 벌려놓은 간격을 옛 부부가 자신들만의 힘으로 회복해야 하는데 잠깐만 생각해보더라도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한때 함께 살던 남편이나 아내와 진흙탕 싸움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싸움 과정에서 입을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혼소송은 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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