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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는 행복, 그리고 인생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더없는 행복, 그리고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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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삶

캐서린 맨스필드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자수성가한 은행가의 딸로 자랐다. 열여섯 살에 영국 런던의 사립 명문 퀸스칼리지에 유학했고, 열아홉 살에 학업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가지만, 곧 영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유학 시절 문학예술에 심취한 그녀는 예전의 뉴질랜드 소녀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후 영국에도, 그렇다고 뉴질랜드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맨스필드는 여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부터 자아와 세계에 대한 범상치 않은 감수성을 표출했고, 그러한 기질은 단편 ‘가든파티’의 주인공 로라에 투영되어 있다.

앞에서 묘사한 대로 가든파티는 날씨마저 주문한 것처럼 완벽하게 좋아 예정대로 저녁이 되면 손님을 맞을 것이었다. 로라는 파티를 위해 정원을 꾸미는 인부들 사이를 친밀하게 오가며 노동의 신선한 에너지를 느끼는가 하면,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기적인 부르주아적 태도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가든파티가 열리기 직전 인부들을 통해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저택이 서 있는 언덕 입구 빈촌에서 젊은 남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로라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남자의 죽음이지만, 가든파티를 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그 뜻을 전한다. 그러나 오빠 로리만 제외하고, 모두 가든파티와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며 예정대로 파티를 연다.

파티는 성대하게 열렸고, 음식은 넘쳐 났다. 로라를 의식한 어머니가 남은 음식을 바구니에 챙겨 초상집에 위로 차 가져다주라고 한다. 평소 병균이라도 옮을까 자식들에게 빈촌에는 얼씬도 못하게 한 어머니이다. 로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어머니가 안겨준 음식 바구니를 들고 죽은 남자의 집을 방문해 죽은 남자의 아내를 만나고, 죽은 남자의 시신을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모퉁이에서 오빠 로리와 마주치는데, 작가는 이 마지막 남매의 대사를 위해 소설을 쓴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무서웠어?”

“아니.”

로라가 흐느꼈다.

(중략)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

-캐서린 맨스필드, ‘가든파티’

깨닫고 싶지 않은 진실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이름을 현대소설사에 각인시킨 그녀의 대표작은 1921년 출간한 ‘행복과 그밖의 소설들’에 수록된 ‘행복’이라는 단편이다. 1917년 폐결핵에 걸린 뒤 유럽의 각지를 전전하며 소설을 써온 그녀에게 1921년과 1922년은 마치 ‘행복’에서 신비롭게 형상화한 달빛이 흐르는 정원에 만개한 배꽃처럼 단편들이 폭발한 시기이다.

‘행복’의 여주인공 버더 영은 부유하고 성실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기, 그리고 멋진 배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사는 서른 살 즈음의 여자.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는, 더할 수 없는 행복감에 들떠 있는 그녀는 행복감 뒤에 따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치며 저녁 파티를 준비한다. 그녀가 초대한 사람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시인과 노부부, 그리고 동성이지만 왠지 끌리는 펄 훨튼 양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은발의 매력적인 훨튼 양에 대한 남편의 냉소적이고 신랄한 태도이다. 그녀는 차차 남편이 훨튼 양의 매력을 알게 되리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신비로운 정원, 달빛이 만개한 배나무를 비추고, 파티는 끝이 난다. 초대자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마지막으로 시인과 펄 훨튼이 떠날 차례. 평소와 달리 남편이 훨튼을 배웅하겠다고 나서고, 그녀는 시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거실로 돌아오면서 무심코 현관에서 휠튼을 배웅하는 남편을 바라본다. 그런데 둘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와 몸짓에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남편이 그토록 경멸했던 훨튼 양을 뜨겁게 포옹하고 있었고, 그녀의 입술은 내일의 사랑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맨스필드가 자신의 짧은 생을 바쳐 쓴 소설들을 통해 우리에게 내놓은 ‘행복’이란, 만개한 꽃은 시드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꽉 찬 보름달은 이울어지는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깨닫고 싶지 않은 진실의 역설적 표현이다. 그것은 인생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신동아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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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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