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연재 | 신나는 막걸리 교실

내가 수확한 곡물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짜릿함

이 남자들 뒤늦게 막걸리에 흠뻑 빠진 까닭은?

  •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내가 수확한 곡물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짜릿함

2/4
막걸리 DOC

내가 수확한 곡물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짜릿함

황성현씨가 술을 거르고 있다.

성현씨의 집에 들어서자, 우리 일행을 반긴 것은 나폴리 피자였다. 그가 직접 빚은 막걸리로 반죽한 나폴레타나 피자(Napoletana pizza)다. 그는 나폴리 사람들이 나폴리 정통 피자를 다른 패스트푸드 피자와 차별화하고자 피자 DOC(농산품과 식료품 분야에서 법규로 통제하는 원산지 명칭으로 이탈리아에서는 DOC, 프랑스에서는 AOC, 유럽연합은 PDO로 표시한다)를 만든 얘기를 풀어놓았다. DOC에는 피자를 반드시 손으로 반죽할 것, 피자의 두께가 두껍지 않아서 손으로 쉽게 접을 수 있을 것, 반드시 장작 화덕을 사용해 4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바삭하면서 쫄깃하며 부드럽게 만들 것 등이 명시돼 있다. 그의 이야기는 피자와 막걸리를 넘나들었다. 한국에 많은 막걸리가 있지만, 막걸리 품질 등급 표시는 없다. 낯선 동네에서 막걸리를 접하면 어떤 게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영국 위스키, 프랑스 와인, 일본 청주는 △자국산 원료 사용 △엄격한 품질 관리 △제조 공정 표준화 △품질 등급제 △고급화를 위한 연구 개발 △홍보 마케팅 등이 효과적으로 이뤄져 세계적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단다. “막걸리도 그 같은 길을 가야 한다. 나폴리 사람들이 나폴리 피자를 지켰던 것처럼, 막걸리도 DOC를 만들어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성현씨는 묘한 이력을 지녔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지만, 영상 자료와 책을 통해서 요리를 독학했다. 그리고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되자, 무림의 고수를 찾아다니듯 음식의 고수와 고장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배웠다.

중국음식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을 따라 만들면서 배웠다. 서울의 이름난 중국요리 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호텔 조리사들과 베이징(北京) 음식기행, 쓰촨(四川)성 음식기행 등도 다녀왔다.

터키음식은 서울 터키문화원에서 진행하는 터키 음식 강좌를 아내와 함께 수강하면서 배웠다. 문화원에서 만난 터키인이 고향으로 돌아간다기에, “당신 집에 놀러가도 되겠느냐”고 물어 방문 허락을 받았다. 마침 그 터키인의 고향 마을이 터키 대표 음식인 케밥의 본고장인 부르사(Bursa)였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르사로 날아가, 원조 케밥 식당, 케밥 재료를 파는 상점 등을 둘러보고, 그 터키인의 어머니에게 케밥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음식으로 세계와 소통하고자 했다.



유럽음식도 여행을 다니면서 배웠다. 1994년, 1999년, 2000년, 2004년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그때마다 친구 혹은 현지인 소개로 가정집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문화권의 음식을 익혔다. 특히 2004년 가족과 함께 떠난 6개월간의 음식기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동서양의 음식을 혼합한 작은 식당을 유럽에서 열어볼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영국 맨체스터에서 한 한식당 주인을 만나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식당 주인은 성현씨의 말을 듣더니 단번에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왜냐고 묻자, 한국음식을 앞세우면 손님이 안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현씨가 “맛있으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음식은 유럽인에게 생소해서 호기심 많은 사람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음식 장사는 문화 장사여서 한국음식을 앞세우려면 10년 넘게 버틸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오래 버티다보면 뭐하는 곳인가 궁금해서라도 손님이 찾아온다. 버틸 힘이 없다면 타이 레스토랑이나 베트남 음식점을 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성현씨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현씨는 스페인의 음식점에서 3개월 정도 일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배우고자 중국집과 일식집에서 일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귀촌해 집을 지을 때 주방을 중심으로 한 건물을 지었다. 일자형 2층 건물인데, 1층에 아내와 동시에 일할 수 있는 넓은 조리대와 두 개의 개수대, 두 개의 화덕을 갖춰놓았다. 넓은 주방 공간은 거실을 겸하고 있으며, 2층에 서재와 침실이 있다. 손님이 찾아오면 1층 주방 탁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음식을 함께 해서 먹는다.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운 뒤로는 막걸리독도 주방에 마련해두었다.

2/4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목록 닫기

내가 수확한 곡물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짜릿함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