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2014

3장 기선 제압

  • 입력2010-09-17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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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진반도 남해시로 진격한 한국군. 서해상 제해·제공권을 뺏긴 김정일은 박성훈 대통령에게 휴전을 제안한다.
    • 하지만 양측 군부의 계산은 다르다. 그 사이 헬기에서 하강한 한국 해병은 해·공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을 받으며 전진을 계속한다.
    • 그 최전방에 이동일 대위가 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이 대위의 휴대전화를 뒤흔든 송아현 기자의 외침.
    • “사랑해! 살아서 돌아오라고! ”. <편집자>
    2014
    2014년 7월25일 10시50분. 개전(開戰) 10분25초 경과. 제55 호위대 벙커 안.

    상황실 안으로 무력부 부부장 심철 상장이 들어섰다. 뒤를 따르는 호위대 군관 두 명의 표정이 굳다.

    “총참모장 동무.”

    심철이 김형기를 부른 순간 벙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상황판 주변에 앉은 군관들도 머리를 돌려 그들을 본다.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받아 동무를 체포합니다.”



    차갑게 말한 심철이 옆으로 비켜섰을 때 두 명의 군관이 다가와 김형기의 양쪽 어깨를 누른다. 제압. 체포하려는 기본 동작이다.

    “이봐. 지금이 어떤 때라고!”

    눈을 부릅뜬 김형기가 버럭 소리쳤다.

    “적이 상륙했단 말이다!”

    “동무는 반동이야!”

    따라 소리친 심철의 목소리가 벙커 안을 울렸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항하면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지도자 동지의 명령이야!”

    김형기가 입을 다물었을 때 상황판 앞의 군관 하나가 소리쳤다.

    “사곳에서 통신이 끊겼습니다!”

    사곳은 옹진반도 끝 쪽에 위치한 해군 기지 중 하나다.

    한국형 구축함 안양함의 함장 오태근 중령이 번쩍 머리를 들고 소리쳤다.

    “발사!”

    그 순간 왼쪽 함교에 부착된 대함미사일 2기가 흰 가스를 품으며 발사되었다. 그러고는 3초가 지났을 때 다시 2기가 발사되었고 20초 후에는 한국형 함대함미사일 KAS-28형 12기가 4개의 목표를 향해 해상 3m의 고도를 유지해 마하 2의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KAS-28형은 대함미사일로 전장은 4.5m, 중량이 1.5t이며 사정거리는 50㎞이니 15㎞ 거리에 있는 북한 함정은 사정거리 안이다.

    “여수함과 인천함에서도 KAS를 발사했습니다.”

    관측장교 이을용 대위가 소리치듯 보고했다. 옹진반도의 사곳 기지에서 빠져나온 북한의 잔존 함대는 구축함 청진호와 사리원급 대형 경비정 1척, 그리고 미사일을 4~8기씩 장착한 오사급과 황홍급 유도탄정 4척, 그보다 작은 코마급 4척과 어뢰정 7척이었다.

    이것이 옹진반도 근처에 남아 있는 북한의 해상 전력이다. 거리는 18㎞에서 20㎞.

    “급속 전진!”

    짧게 지시한 오태근은 눈이 피로했기 때문에 망원경을 눈에서 떼었다.

    “속도 35노트.”

    부함장이 보고했지만 오태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지스 순양함 광주호는 구축함 속초호와 초계함 4척을 이끌고 서쪽으로 비껴나 있다. 강령군 남쪽 반도의 해안포와 미사일 기지를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옹진반도로 상륙하는 해병대의 지원은 안양함을 기함으로 하는 3척의 구축함과 2척의 초계함단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붉은 불기둥이 보였으므로 오태근은 망원경을 눈에 붙였다. 북한 전투함 한 척의 함교에서 대폭발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그 다음 순간 뒤쪽의 유도탄정 후미가 폭발을 일으켰다.

    “두 척 명중!”

    역시 옆에서 망원경을 보던 부함장이 소리쳤다. 그때 다시 좌우의 북한 함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김천함과 여수함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명중한 것이다. 그때였다. 알람이 울렸으므로 오태근이 레이더를 보았고 동시에 미사일 담당장교 최대진 대위가 함대용 지대공 미사일 KAAM-220의 발사 버튼을 눌렀다. 다음 순간 함교 좌우에 배치된 KAAM-220 16기가 차례로 발사되고 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레이더의 노란 점들을 응시하며 오태근이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지시했다.

    “회피 운동!”

    함포 사격 시대에는 지그재그 회피 운동으로 포탄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사일도 지그재그 곡선을 그리면서 따라온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안양호가 거칠게 꺾이는 바람에 오태근의 몸이 기울었다. 미사일은 점점 가까워졌다. 이쪽에서 발사한 KAAM-220 16기와 뒤쪽의 두 구축함. 초계함들 몫까지 100여 개의 노란 점이 몰려가고 있다. 레이더 화면은 이제 노란 점으로 덮여 있다. 그것을 본 오태근이 감탄했다.

    “장관이다.”

    “미사일 8기 접근!”

    관측장교가 소리쳤다. 안양호를 향해 8기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에 개발한 천마 7호 함대함미사일이다. 사정거리 45㎞, 속력은 마하 1.8, 전장 5m에 중량은 2t이니 한국군의 KAS-28과 비슷한 성능이다. 레이더에 이쪽에서 날아간 KAAM-220기 중 10여 개가 8기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원산함을 맞히지 못한 건가?”

    부함장 김일주가 투덜거렸을 때 최대진이 레이더 화면을 보면서 대답했다.

    “맞힌 것 같습니다. 원산함은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때 레이더 화면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던 천마 7호 미사일 3기가 사라졌다. 안양호는 회피 운동을 하는 중이어서 4200t급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사일 5기가 남아 있다.

    “잡아라!”

    최대진이 잇사이로 소리쳤다. 미사일을 잡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KAAM-220은 능동적 자체 레이더가 부착된 미사일이다. 찾으라고 안 해도 스스로 찾는다. 그때였다. 비상벨이 울리면서 함교의 좌우에 장착된 8연장 채프 발사기에서 자동으로 채프가 발사되었다. 천마 7호가 바짝 다가온 것이다. 로켓탄에서 쏘아 올린 채프로 허공에 알루미늄과 유리박지 조각이 구름처럼 풀어졌다. 그 순간 미사일 1기가 수면에서 솟아오르더니 채프 구름을 뚫고 뒤쪽으로 사라졌다.

    같은 시각. 장한평 강동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분식집 안.

    이곳도 손님이 없다. 어제만 해도 이 시간에는 방학을 맞은 동네 중고생이 가득 차 있었다. TV를 보고 있던 가게주인 양명옥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집이 상계동이라 가깝긴 했지만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중이었다. 가게 안으로 사내 둘이 들어섰다.

    “아줌마. 김밥 두 줄에 오뎅 두 그릇요.”

    사내 하나가 앉기도 전에 양명옥에게 주문을 하더니 힐끗 TV를 보았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털썩 의자에 앉으며 말한 사내는 한민족민주연합 사무총장 조경구다. 그의 앞에 잠자코 앉은 사내는 조직국장 정수남. 둘은 소공동의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TV에서 시선을 뗀 조경구가 말을 잇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리가 유리해. 중국이 나설 것이고 웰빙 놈들은 지구력이 약하거든, 그때 우리들이 나서는 거야.”

    “그때까지 북한군이 견뎌줘야 하는데.”

    입맛을 다신 정수남이 길게 숨까지 뱉고 나서 조경구를 보았다.

    “왜 이렇게 밀리죠? 지금 서해안의 제공, 제해권을 완전히 뺏기지 않습니까? 옹진반도와 강령쪽 북한 기지는 다 궤멸된 것 같습니다.”

    “남조선 놈들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면 안돼. 놈들이 전과를 조작한 거라고.”

    화가 난 조경구가 북한 사람들처럼 한국을 남조선으로 표현했다.

    “놈들이 화면을 조작한 거야. 600만 인민군이 들고 일어나면 금방 전세가 역전돼. 그리고 북한은 밑져야 본전이라구. 손해 볼 것 없으니까 끝까지 달려들 거란 말야.”

    “하긴 그렇습니다.”

    “당분간 잠수 타고 있어. 동지들한테 연락하고.”

    그때였다. 분식집 문이 열렸으므로 둘은 머리를 돌렸다. 사내 셋이 한꺼번에 들어서고 있다. 사내들의 표정을 본 조경구가 벌떡 일어섰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사내들이 다가와 둘을 둘러싸고 섰다.

    “개새끼들.”

    하고 조경구가 쓴웃음을 연 얼굴로 말했을 때 사내 하나가 따라 웃었다. 비슷한 웃음이다. 그러고는 잇사이로 말한다.

    “쥐새끼들.”

    사재기도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으로 도망가는 차량 때문에 모든 도로가 주차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거기에다 도로에 차를 내버리고 도망가는 놈이 많아서 계엄군은 탱크로 차를 깔아 길가로 치워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시민들은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송아현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20분. 10시45분에 대통령이 남북한 전쟁을 발표하면서 계엄을 선포했으니 35분이 지났는데도 시내는 평온하다. 신호등에 걸린 차들이 일제히 섰고 다른 방향은 출발한다. 이곳은 소공동. 행인들이 바쁘게 지나지만 전에도 그랬다. 인도를 걷던 송아현이 문득 커피숍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옆쪽 제과점도 그렇다. 아마 가게 문을 열었다가 닫고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송아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비상등을 켠 군용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차들이 비켜주지만 앰뷸런스를 비키는 수준이다. 인도를 걷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는 차량 대열을 본다. 송아현도 걸음을 멈추었다.

    “국군 만세!”

    그때 옆쪽에서 외침이 들렸으므로 송아현이 머리를 돌렸다. 머리에 헬멧을 쓴 사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다시 소리쳤다.

    “대한민국 만세!”

    사내의 등에 퀵서비스 선전 문구가 적혀 있는걸 보니 퀵서비스 아저씨다. 40대쯤 되었다. 그때 아줌마 둘이 일제히 따라서 소리쳤다.

    “국군 만세! 만세!”

    지나던 군 트럭 위의 젊은 병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보더니 서너 명이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목이 멘 송아현이 소리는 못 지르고 손만 흔들었다.

    같은 시각. 옹진반도 남해시 북방 3km 지점.

    “중대장님! 적 전차 3대 출현!”

    우측으로 300m쯤 떨어진 교차로에 방어선을 구축하던 3소대장 조한철 중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울렸다.

    “뒤를 약 2개 소대 병력의 보병이 따르고 있습니다!”

    “전차가?”

    이동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적 전차 5대를 격파했다. 그때 조한철의 말이 이어졌다.

    “대전차 미사일이 두 발 남았습니다. 그리고….”

    가쁜 숨을 고른 조한철이 잇사이로 말한다.

    “부상자가 많아서 전투 병력은 12명뿐입니다!”

    사정은 4개 소대가 다 비슷했지만 우측으로 진출한 3소대가 가장 나쁘다. 이동일이 무전기를 쥔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남해시의 북단 3㎞ 지점. 앞쪽으로는 옹진시로 향하는 국도가 펼쳐져 있다. 사방에서 울리던 격렬한 포성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중대 본부가 위치한 2층 벽돌건물 주위로 총탄이 쏟아지고 있다. 시내에서 밀려난 인민군의 잔존 세력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동일이 옆에 세워둔 소총을 들고 일어섰다.

    “중대본부는 3소대와 합류한다.”

    중대본부 요원은 통신병과 행정병을 합쳐 모두 6명이 남아 있었는데 4명이 전사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전차 미사일 3발이 남아 있는 것이 3소대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포탄에 맞아 무너진 벽돌담을 통해 거리로 나왔을 때 이동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기 때문이다. 주위는 인적이 끊겨 있었지만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총성이 전장임을 실감케 한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섞인 공기를 들이켜던 이동일의 눈앞에 문득 송아현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7월25일 11시25분. 전쟁 45분25초 경과. 주석궁 지하벙커 안 상황실.

    김정일이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과 통화 중이다. 주위에 선 군과 당의 원로들은 모두 굳은 표정이다. 시진핑이 말했고 곧 통역의 조선말이 수화기를 울렸다.

    “위원장 동지, 확전이 되면 중국이 참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심사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고 있습니다. 주석 동지.”

    김정일이 피로한 얼굴로 앞쪽의 전광 상황판을 보았다.

    “한국 대통령이 지금 군을 설득 중입니다. 주석 동지.”

    “전선이 옹진반도와 서해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긴 합니다만 이 상황에서 한국군이 쉽게 물러나려고 할까요?”

    통역이 정확히 하려고 또박또박 끊어 말한 것이 비웃는 것처럼 들렸으므로 김정일은 어금니를 물었다. 그러나 곧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전면전이 일어나면 손해 보는 것은 한국입니다. 주석 동지. 잃을 것이 많은 놈이 먼저 손을 드는 법이지요. 그러니까 기다려보시지요.”

    “심양군구의 4개 군단을 대기시켰고 서해에 순양함 5척을 중심으로 대규모 연합함대를 편성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위원장 동지, 우리 정부는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하고는 통신이 끊겼으므로 김정일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옆에 서 있던 원로들의 얼굴도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 그들도 스피커로 대화 내용을 들은 것이다.

    그로부터 3분 후인 11시28분. 전쟁 48분25초 경과. 한국군 합참 상황실 안.

    합참의장 겸 계엄사령관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등 둘러앉은 수십 명의 장성이 스피커에서 울리는 김정일과 시진핑의 대화를 듣는다. 국군감청부대에서 녹음한 즉시 상황실에 보고한 것이다. 둘의 대화가 끝났을 때 조현호가 장세윤에게 말했다.

    “둘 다 우리 들으라고 하는 말 같군요. 우리뿐 아니지 미국 들으라고 하는 말이요.”

    시큰둥한 표정의 장세윤이 말하더니 곧 쓴웃음을 짓는다.

    “흠, 잃을 것이 많은 놈이 먼저 손을 든다고? 난 그 반대 같은데?”

    그러자 조현호가 머리를 끄덕였다.

    “김정일이 표현을 잘못한 겁니다. 진흙탕에서 양아치하고 옷 잘 입은 신사하고 싸운다고 해야 맞아요.”

    옆에 서 있던 작참부장 박진상과 해병사령관 정용우는 눈만 껌벅였다. 중국이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그러나 확전이 되었을 경우에는 중국군이 참전하게 될 것이었다. 정용우가 머리를 돌려 상황판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커다란 상황판의 한 점, 옹진시 남쪽 남해다. 지금 그곳에 그의 부하들이 있는 것이다.

    같은 시각. 평양시 남쪽 제55 호위대의 지하벙커 안.

    무력부장 성종구의 앞에는 조금 전에 김정일이 파견한 강창남 대장이 서 있다. 강창남은 호위사령관으로 김정일이 파견한 감시자 역할이다.

    “아직 남조선 지상군 이동은 없습니다.”

    강창남이 검은 얼굴을 들고 성종구를 똑바로 보았다.

    “남조선은 지금 군사쿠데타 일보 직전이라는 겁니다. 군 강경파가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기를 쓰고 막는 것 같습니다.”

    “아니, 누가 그러오?”

    주름진 눈시울을 들어 올리며 성종구가 묻자 강창남이 바로 대답한다.

    “지도자 동지께서 남조선 박성훈이한테서 직접 들으셨습니다.”

    “허, 남조선이 곧 망하겠다.”

    성종구가 말하자 강창남은 머리를 젓는다.

    “강경파가 나서면 전면전이 됩니다. 그놈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라고요. 솔직히 그놈들이 물불 안 가리고 대들면 우리가 망한다고요.”

    눈을 치켜뜬 강창남의 목소리가 커졌고 벙커 안은 조용해졌다. 오직 기계음만 난다. 모두 강창남을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했다면 바로 총살이다. 그런데 지도자 동지의 최측근인 호위사령관이 이런 말을 한다. 강창남이 소리치듯 말을 잇는다.

    “지도자 동지께선 박성훈이 강경파를 달랠 때까지 확전을 피하라고 하셨소. 따라서 남해만 집중적으로 막도록 합시다.”

    지도자의 지시인 것이다. 심호흡을 한 성종구가 심철을, 그리고 다시 왼쪽 끝에 앉은 참모에게로 옮겨졌다.

    “해주의 4군단에서 제22, 27사단을 강령 쪽으로 전진시켜 놈들을 고립시키도록.”

    그러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또 다른 참모를 보았다.

    “제808 방사포 여단으로 남해시 전역을 집중 포격하도록, 지금 즉시!”

    “예, 부장 동지.”

    참모가 돌아섰을 때 심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민들의 피해가 크지 않겠습니까?”

    “희생을 각오해야 되오.”

    자르듯 말한 성종구가 외면했으므로 심철은 입을 다물었다. 제808 방사포여단은 제4군단 소속 2개 포병여단 중 하나이며 다른 1개 여단인 807여단은 자주포병단이다. 그때 강창남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를 들었다. 김정일에게 보고하려는 것이다.

    7월25일 11시35분. 전쟁 55분25초 경과. 남해시 북방 3km 지점.

    “중대장님! 저쪽입니다!”

    앞장선 박대규 하사가 소리치며 가리킨 곳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바위투성이의 구릉 왼쪽 골짜기였는데 제3소대가 포진한 곳이었다. 박대규는 보급하사로 조금 전에 3소대에 다녀오다가 부하 2명을 잃었다. 구릉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총탄을 맞은 것이다. 저격병이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렸고 폭음이 터졌지만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아군 헬기 편대나 전폭기가 날아와 앞쪽을 불구덩이로 만들고 사라졌지만 총성은 여전했다. 종대로 선 7명은 구릉 밑쪽을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위 사이로 달리면서 엄폐를 했어도 총탄이 날아와 깨뜨린 바위 부스러기가 온몸에 맞는다. 이동일이 헐떡이며 3소대와의 거리를 재었다. 70~80m 남았다.

    “잠깐 쉬어!”

    이동일이 소리치자 모두 바위틈 사이로 엎드린다. 이동일이 옆에 엎드린 무전병한테서 무전기를 받아들었다.

    “3소대! 나, 아래쪽 자갈밭 옆에 있다! 보이나?”

    이동일이 소리치자 곧 3소대장 조한철 중위가 대답했다.

    “예, 보입니다.”

    그때였다.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는데 그것이 수십 수백 가닥이다. 수백 개의 송곳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다. 순간 얼굴을 굳힌 이동일이 버럭 소리쳤다.

    “엎드려! 포격이다!”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이동일은 온몸이 들썩이는 느낌을 받는다. 머리를 땅바닥에 붙인 채 두 손으로 철모를 감싸 안았다. 대지가 화산처럼 폭발해버리는 것 같았다. 폭음과 함께 몸 위로 무수한 돌멩이 파편이 떨어졌다. 어떤 놈은 커서 신음을 뱉을 정도였다. 놈들이 집중 포격을 해오는 것이다. 조금 머리를 든 이동일은 폭발하는 능선을 보았다. 무차별 포격이다. 놈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남해 주위의 모든 인간을 폭파할 모양이다.

    같은 시각. 이동일의 뒤쪽 1㎞ 지점의 대대본부 참호에서 대대장 강규식이 머리를 벽에 처박고 엎드려 있다. 그러고는 큰 목소리로 숫자를 센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포탄이 떨어진 직후부터 숫자를 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별 뜻이 없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대대장인 자신이 살아 있다는 표시를 주변 부하들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겠다. 또 하나는 소리치면서 공포를 잊으려는 것이다.

    “스물아홉, 서른.”

    그래놓고 강규식이 번쩍 머리를 들고 소리쳤다.

    “시발놈들아. 쌀도 없으면서 좀 아껴라!”

    같은 시각. 그 뒤쪽 2㎞ 지점에 위치한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의 지휘부 안.

    이곳은 시내 중심부여서 주변 건물이 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잔해가 허공으로 치솟고 있다. 이곳은 시멘트 건물 반지하였지만 벽이 갈라지면서 먼지가 휩쓸려 들어온다. 폭음과 섬광이 쉴 새 없이 터지는 바람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단장 고달호가 손을 뻗자 참모가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참모의 얼굴이 분을 바른 것처럼 희다. 돌가루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무전기를 귀에 붙인 고달호가 소리쳤다.

    “적 포대를 없애주기 바란다!”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이지스함 대구호는 이틀 전에 함장이 구속되어서 지금 사령실에 서 있는 이광도 대령은 함장을 맡은 지 만 하루밖에 안되었다. 대구호는 광주호 뒤쪽 5마일 해상에서 동급 이지스함 대전함과 인천함을 이끌고 지원차 출동해 있었는데 방금 남해시에 침투한 해병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의 무전을 들었다. 그 무전은 해상의 모든 해군 함정, 전대사령부, 공군사령부, 그리고 합참 지휘부는 물론이고 한미연합사, 중국, 북한, 일본 측의 통신망에 잡혔을 것이었다.

    “발사!”

    이광도의 별명이 ‘강도’다. ‘강도’가 된 근거로 수십 가지 해설이 붙었지만 전임 오순일과는 대조적인 인물이었다. 이광도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뒤쪽에서 누군가 복창을 했고 곧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이 3초쯤 지났을 때 선체가 진동하더니 미사일이 쏘아 올려졌다. 목표는 남해 서북방, 옹진반도 오른쪽에 위치한 제808방사포여단, 지금 그쪽에서 남해시로 다연장로켓포가 발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은폐되어 있어서 찾지 못했던 표적이다. 3척의 이지스함은 아직 발사하지 않은 대지미사일 KAS-75를 각각 3, 4 캐니스터씩 싣고 있었으므로 기함인 대구호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1캐니스터에는 8기의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다. 사정거리가 500㎞인 KAS-75는 토마호크를 변형시킨 한국형 미사일로 750㎏의 재래식 탄두를 장비하고 있지만, TERCOM TV 카메라가 잡은 영상을 조합하는 지형재조합유도장치 DSMAC(Digital Scene Matching Area Correlation)를 결합한 고도의 유도장치를 부착하고 있어서 명중률은 99%다. 이광도는 3캐니스터에 든 마지막 24기째 KAS-75가 허공으로 솟아올랐을 때 상황판에 찍힌 시각을 보았다. 오전 11시39분. 전쟁 발발 59분25초다.

    바로 그 시각. 7월25일 오전 11시39분. 합참의 지하 상황실.

    별 셋짜리 중장 군복을 입은 장군이 다가서자 먼저 육참총장 조현호가 눈을 치켜뜨고 묻는다.

    “마, 너, 경례했어?”

    “했습니다.”

    안 했으면서 중장이 시치미를 뚝 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시선을 옆에 앉은 합참의장 장세윤에게로 돌린다. 건방진 태도였지만 조현호는 벌쭉 웃고 만다. 사내는 한미연합사의 한국 측 작전차장 하중복 중장이다.

    “의장님, 제가 연합사 연락관으로 왔습니다.”

    하중복이 말했을 때 이번에도 조현호가 나섰다.

    “연락관은 무슨, 감시 역할이겠지.”

    조현호를 외면한 하중복이 말을 잇는다.

    “연합사령관은 확전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정부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건 립 서비스야.”

    또 조현호. 다시 하중복.

    “중국군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심양군구의 4개 군단이 조중 국경을 향해 남진하고 있습니다.”

    “글쎄, 쇼라니까.”

    “조중 국경 근처의 8개 중국 공군기지에서 전폭기 270대 정도가 출동 대기 상태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만.”

    마침내 장세윤이 눈을 들어 하중복의 말을 막는다. 쓴웃음을 지은 장세윤이 하중복에게 말했다.

    “방금 남해시를 무차별 폭격하던 북한 제808방사포여단을 괴멸시켰어. 가만 놔뒀다면 7사단 1연대는 전멸했을 거야.”

    그러더니 덧붙였다.

    “놈들이 우리 국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도 방아쇠에서 손을 떼지, 그렇게 연합사령관께 보고드리게.”

    “자위수단이야, 자위수단.”

    조현호가 커다랗게 말을 받는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저 시발놈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니까 먼저 손을 떼어야 돼.”

    이쪽은 명분이 있다는 뜻이다.

    7월25일 오전 11시42분. 개전 1시간2분25초 경과. 남해시 북방 3㎞ 지점.

    “그쳤습니다.”

    얼굴이 흙먼지로 범벅이 된 조한철 중위가 머리만 들고 말했다. 그 순간 옆쪽 구릉의 흙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으므로 이동일이 흙먼지를 털면서 비켜섰다. 이제 포격이 그친 것이다. 포격이 뜸해졌을 때 이동일은 3소대장 조한철과 합류했지만 사상자가 많았다. 본부 중대원 2명이 사망했고 3소대에서도 3명이 사망, 2명이 중상이다. 이제 전투 가능 병력은 중대본부 요원까지 합해도 다시 12명이 되었다.

    “전차가 남아 있다면 다시 움직일 거야.”

    바위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이동일이 말했다. 아직도 아래쪽 이곳저곳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적의 움직임은 없다. 수십 발의 포탄이 구릉을 뭉쳐놓아서 전차가 오르기가 더 쉬워졌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쪼이는 한낮이다. 눈을 가늘게 뜬 이동일이 바위틈으로 앞쪽을 본다. 이곳은 구릉 중간 부분이어서 시야가 앞쪽 5㎞ 정도까지 트여 있다. 아래쪽 낮은 언덕, 골짜기, 비탈진 밭, 불에 타고 있는 서너 채의 농가를 훑어보던 이동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딴 세상 같구나.”

    그때였다. 불타는 민가 한쪽이 허물어지면서 먼저 탱크의 포신이 드러났다. 그러더니 요란한 캐터필러 소음이 울리면서 탱크가 이쪽을 향해 움직였다.

    “저놈이 살았어!”

    조한철이 소리쳤을 때 왼쪽 비탈에서 다시 탱크 한 대가 나타났다. 두 대다. 거리는 약 400m, 놈들은 이쪽을 향해 똑바로 올라오고 있다. 구릉의 경사각이 10도도 안 되었으니 평지를 오는 것이나 같다. 이동일이 옆에 놓인 대전차포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내가 우측으로 돌아 우측 전차를 칠 테다. 좌측 전차를 누가 맡겠나?”

    “접니다.”

    하사 한 명이 벌떡 일어섰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이며 조한철을 보았다.

    “은폐하고 있도록.”

    대전차 무기도 없이 전차와 정면대결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같다. 그때 전차의 소음이 더 가까워졌고 뒤를 각각 10여 명의 보병이 따른다.

    “지원병 둘씩!”

    이동일이 서둘러 소리치자 이쪽저쪽에 엎드려 있던 병사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좌측을 맡은 하사와 이동일이 각각 둘씩을 뽑고는 좌우로 갈라져 내달렸다. 그때 요란한 발사음이 들리더니 조한철이 은폐해 있는 구릉의 뒤쪽 30m쯤에서 전차 포탄이 터졌다. 어림잡아 발사한 것이지만 이만하면 탄착점이 가깝다. 이동일은 골짜기 아래로 구르듯 달려 내려간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탱크 격파다. 탱크가 구릉 위로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서 부상자까지 포함한 제3소대 잔존 병력 10여 명은 몰살당한다.

    같은 시각. 시청 앞 지하상가의 이탈리아 식당 나폴리 안.

    스파게티를 시킨 송아현이 식당을 둘러보고 있다. 식당에는 손님이 절반쯤 차 있다. 항상 이 시간쯤이면 빈자리가 없는 식당이지만 전쟁이 났어도 이만큼 찬 것이 신기했다. 이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서울에 포탄이 한 발도 떨어지지 않았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전장(戰場)이 되어 있는 서해의 연평도, 백령도도 멀쩡했다. 한국군이 전 화력을 쏟아 부어서 옹진반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진동으로 떨었으므로 송아현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휴대전화를 집어든 송아현은 발신자부터 보았다. 박기성이다.

    “응, 웬일이래?”

    그렇게 묻는 순간 송아현은 자신이 반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직 피부로 닿지는 않았지만 말로만 듣고 화면으로만 보았던 전쟁이다. 가슴이 답답했고 초조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혼자 있기가 무섭다. 지금도 시내 분위기를 취재 나왔다가 멀리 가지도 못하고 회사 주위를 빙빙 도는 중이다. 그때 박기성이 말했다.

    “저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현아.”

    “뭔데?”

    “내가 들은 정보로는 두 시간쯤 후인 오후 2시쯤이면 인천공항이 폐쇄돼, 김포는 운항을 하겠지만 비행기 좌석이 없어. 부산까지 표가 1000만원으로 암거래되고 있다지만 그걸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야.”

    “… ….”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하지만 뜬금없이 날아온 포탄에 맞아 개죽음을 하는 것보다는 살아남아서 뭔가를 이뤄놓는 게 낫지 않겠어?

    “… ….”

    “내게 오후 1시 반에 떠나는 방콕행 티켓 두 장이 있어, 난 그걸로 떠나려는데 넌 어때? 같이 안 갈래?”

    “… ….”

    “그냥 여권만 갖고 인천공항으로 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이번 전쟁은 길게 안 끌 거야. 하지만 양쪽 다 잿더미가 될 거라고, 그러니까 그동안만 피해 있다가 돌아오면 돼.”

    “… ….”

    “아현아, 우리 같이 가자. 가서 좀 피했다가 돌아오자.”

    그때 송아현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는 덮개를 닫았다. 덮개를 닫는 것이 마치 인천공항을 폐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개전 1시간7분 경과. 오전 11시46분35초. 남해시 북방 31㎞지점.

    잡초 사이에 엎드린 이동일이 구릉으로 올라오는 전차를 응시하고 있다. 전차는 구 소련제 F-62형 전차를 개량한 북한산 천마호, 북한군의 최신형이다. 전차와의 거리는 185m, 지금 이동일이 겨누고 있는 대전차포의 조준경 하단에 거리가 찍혀 있다. 대전차포는 독일제 판저 파우스트(Panze-Faust) 3을 개량한 한국형으로 길이는 1m, 발사기 구경은 60㎜이며 로켓탄의 무게는 4㎏, 총 무게는 12㎏이어서 1인용이다. 거기에 유효사거리가 500m인데다 장갑관통능력이 75㎜여서 어지간한 장갑은 관통할 수 있다. 전차는 비스름한 측면을 보이면서 올라오고 있었는데 뒤를 10여 명의 보병이 따르고 있다. 조금 전의 무차별 포격 때 인민군도 많이 당한 것 같다. 이제 거리는 172m, 조준경에 비친 전차의 측면이 더 넓어졌다. 이동일이 앞쪽을 응시한 채 좌우에 엎드린 두 해병에게 말했다.

    “내가 전차를 쏘고 나서 바로 뒤쪽 보병들을 맞혀라.”

    “예, 중대장님.”

    병장과 상병 두 병사가 거의 동시에 대답해서 한 목소리 같다. 둘은 K-5 소총을 뺨에 붙인 채 긴장하고 있다. 조준경에 거리가 158m로 찍혔고 포탑 옆구리가 70%쯤 드러났다.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반대편으로 달려간 최영수 하사로부터는 아직 반응이 없다. 이쪽에서는 그쪽 탱크가 보이지도 않는다. 거리가 149m가 되었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이동일이 이제 다 드러난 포탑 밑 부분의 틈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쉬익!”

    발사음은 그렇게 들렸다. 투사기 뒤쪽에 부착된 카운터 메스가 날아가면서 로켓탄이 일직선을 그으며 날아가고 있다.

    “타탓탓. 타타탓. 타타타타타탓!”

    다음 순간 이동일 양옆의 두 병사가 사격을 시작했다. 잘 훈련된 해병이다. 처음 세 발은 탄착점을 맞히려고 발사하더니 다음에는 연속사격이다. 그 순간.

    “꽈앙!”

    탱크의 포탑이 번쩍 치켜올려지면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뒤를 따르는 보병들이 네 활개를 펴며 쓰러진다. 이동일이 발사관을 내던지고 소총을 손에 쥐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때였다.

    “깡! 깡!”

    폭음이 연속으로 울렸으므로 이동일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K-5 소총을 오른쪽 뺨에 붙인 이동일이 이제 150m 거리에 엎드린 인민군 병사의 상반신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탓. 타타탓. 타타타타탓!”

    10발의 총탄 중 마지막 서너 발이 인민군의 상체에 맞았고 표적은 늘어졌다. 좌우의 해병들도 계속해서 쏘아대고 있다. 10여 명의 인민군 중 이제 서너 명만 남았다. 탱크는 포탑이 앞으로 꺾인 채 불길을 내뿜고 있다.

    “깡!”

    다시 폭음이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그때야 그것이 탱크포의 발사음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최 하사는 실패했는가?

    “2중대가 가장 멀리 진출했다.”

    그 시간에 무전기를 귀에서 뗀 수색대대장 강규식이 말했다. 강규식의 한쪽 뺨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 때문이다. 파편이 머리 가죽만 찢었기 때문에 강규식은 붕대만 감고 철모로 눌러 덮었다. 이곳은 이동일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능선에서 동남쪽으로 2㎞ 떨어진 남해시 서북단. 지금 뒤쪽 2㎞ 지점에 7사단장 고달호가 이끄는 1연대 주력이 진용을 정비하고 있다. 땅바닥에 펼쳐진 지도 위를 손끝으로 짚으면서 강규식이 말을 잇는다.

    “2중대에서도 3소대가 서쪽으로 500m나 더 진출해 있어. 현재 이곳에 이동일이가 있다.”

    “다른 소대와 너무 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요.”

    작전참모 박 대위가 말하자 강규식은 머리를 끄덕였다.

    “3소대가 가장 많이 피해를 보았어. 그래서 이 대위가 중대본부 병력을 끌고 합류한 거야.”

    그러고는 둘러선 대대본부 요원을 둘러보았다. 산비탈의 바위틈에 급조된 대대본부에는 10여 명의 요원이 남았다. 시가전과 포격으로 절반가량이 피해를 본 것이다.

    “방금 이 대위가 탱크 한 대를 부쉈다는군, 하지만 탱크 하나는 살아남아서 치고 올라오는 중이라는 거야.”

    강규식은 방금 3소대장 조한철의 보고를 받은 것이다.

    “좋았어.”

    김일주가 소리쳤고 다시 채프탄이 쏘아 올려졌다. 안양함은 좌측으로 기울면서 달리고 있다. 그때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또 한 발의 미사일이 날아와 왼쪽의 채프 구름을 뚫고 지나갔다.

    “아, 시발, 간이 타는구먼.”

    부함장 김일주가 잇사이로 말했을 때였다. 오태근은 눈을 부릅떴다. 미사일 한 발이 우측 정면으로 날아오고 있다. 붉게 칠한 탄두까지 보인다.

    “좋아, 할 만큼 했다.”

    오태근이 그 탄두를 노려보며 말했고 조용해진 함교 안의 모두가 그 말을 들었다. 그 순간 함교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적기 4기가 도주하고 있습니다.”

    2편대장 주명렬 소령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을 때 안재성 중령은 막 기수를 남쪽으로 비트는 중이었다. 이겼다. 안재성은 레이더 스크린에서 MIG31기가 빠르게 도주하는 것을 보았다. 4개 편대 16기의 KF-24형 전투기 중에서 3대를 잃었다. 그렇지만 MIG31기는 20대 중 16대가 격추된 것이다. 저쪽에서 먼저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KF-24 편대의 완벽한 승리다. MIG31기에 비교해 KF-24기종의 우수성이 증명되었다.

    “대대장님, H편대의 수색기 한 대가 사고 해상으로 내려갔습니다.”

    2편대장 주명렬 소령의 목소리에 안재성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헬기 편대의 수색기가 격추된 조종사들을 찾으려는 것이다. 안재성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좋아. 임무 교대다. 돌아간다.”

    그때 레이더에 흰 점들이 나타나더니 곧 헤드셋이 울렸다.

    “K편대, 여긴 F다. 2분 거리에 있다.”

    F편대의 지휘관은 박기동 중령으로 공사 동기다. 박기동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공군 작전 지휘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 현장의 지휘관, 합참의 벙커에 쑤셔 박힌 별들이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는 수작이다. 박기동이 소리치듯 말을 잇는다.

    “16대 3이야. 16대 3. 세계 기록이다!”

    7월25일 10시52분. 옹진반도 남해시. 개전 12분25초 후.

    “1㎞만 더!”

    헬기연대장 탁경섭 대령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동일은 안전벨트를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있다. 헬기는 지금 남해시 상공을 날고 있다.

    선발대는 이미 2㎞ 전방에 상륙해 교전 중이었고 지금 수색대대의 후미가 착륙 지점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엄호 헬기가 왜 빠져나가는 거야!”

    옆에 앉은 작전참모 민봉구 소령이 버럭 소리쳤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앞쪽을 엄호하던 공격용 AH-253기 3대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것은 엄호편대장 직권이다.

    “대공포 진지가 살아 있습니다.”

    개전 1시간10분 경과. 7월25일 오전 11시49분35초. 제55 호위대 벙커.

    무력부장 성종구가 지시했다.

    “815기계화군단을 출동시켜라.”

    복창한 참모가 돌아서자 성종구는 옆쪽에 선 강창남에게 말했다.

    “놈들이 후속 병력을 투입하기 전에 해병 놈들을 전멸시켜놓는 것이 상책이오. 지도자 동지와의 통신도 남조선 놈들이 다 도청할 테니 이 일은 내 독단인 것처럼 처리하겠소.”

    강창남은 눈동자만 굴린 채 말이 없다. 제808방사포여단이 일제사격을 퍼부었다가 한국 해군과 공군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멸해버린 것이다. 지도자가 유화작전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군이 기선을 잡자는 전략이다. 이윽고 강창남이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책임을 지시겠다니 그렇게 하시지요.”

    같은 시각. 남해시 북방 3㎞ 지점.

    이제는 이동일이 능선 아래쪽에서 위쪽의 전차를 올려다보고 있다. 전차 한 대는 그야말로 전선을 유린하는 중이다.

    “중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다가선 박대규 하사가 마지막 남은 대전차포를 움켜쥐고 말했다. 전차를 맡았던 최 하사와 해병 두 명은 전사했다. 거의 동시에 양측이 쏘았지만 전차포가 먼저 닿았던 것 같다. 전차에 쫓겨 흩어진 3소대는 소대장 조한철이 좌측 골짜기에 남은 소대원 셋을 모은 채 대기 중이다. 그리고 이쪽이 넷, 그동안에 또 넷을 잃었다. 3소대와 중대본부 증원이 여덟 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제몫을 했다. 지금까지 6대의 탱크를 격파했고 적 사살은 100여 명도 넘는다.

    “이리 내라.”

    손을 내민 이동일이 박대규의 오른쪽 어깨를 쏘아보았다. 어깨의 군복이 찢어졌고 피투성이다. 파편을 맞은 것 같다.

    “그 어깨로 쏠 수 있겠어?”

    “됩니다.”

    “이리 내, 인마.”

    대전차포를 낚아챈 이동일이 상태를 점검했다. 박대규는 대전차포를 가져온 것이다.

    “넌 소대로 돌아가 기다려. 난 여기 둘하고 같이 간다.”

    둘은 김 병장과 윤 상병이다. 이제 전차는 능선 위에서 다시 우측으로 틀더니 앞쪽의 잡초 숲을 향해 기총소사를 했다. 몇 분 전까지 3소대장이 은폐하고 있던 곳이다. 전차를 따르는 보병은 15명 정도. 거리는 300m가 조금 넘는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박대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어깨의 고통 때문인 것 같다.

    “중대장님, 그럼 가겠습니다.”

    이동일은 머리만 끄덕였다.

    개전 1시간12분 경과. 7월25일 오전 11시51분35초. 소공동 국제신문 빌딩의 1층 로비.

    송아현이 창가의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었기 때문인지 인도는 한산하다. 거리의 차량 통행량도 평상시보다 많이 줄었다.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인데도 그렇다. 전쟁 때문이다. 그때 로비 안쪽 벽에 걸린 TV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볼륨을 높인 것 같다.

    “예비군은 오후 2시까지 통고된 각 부대와 직장으로 집합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부대 배치를 받고 무기를 지급받도록 하십시오.”

    송아현은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전투 가능 예비군이 50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 무기를 지급받고 후방에 실전 배치될 40세 미만의 전투 예비군이 300만, 엄청난 숫자다. 북한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인구의 30%인 600만을 동원할 수 있다고 큰소리쳐왔으니까. 14세에서 60세까지를 동원해서 그렇다. 100만 정규군 외에 전투동원 대상인 교도대가 150만, 민방위 성격의 노동적위대 350만, 고등학교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가 60만, 거기에다 인민경비대가 10만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양쪽 병력을 합하면 1000만이 넘겠다. 세계 제1의 군사력이다. 송아현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던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버튼을 누른다. 전쟁이 일어난 후 이동일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동일과 어제 오후 6시 가깝게 되었을 때 통화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동일은 지금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 중이다. 나라 지키려고 바쁜 사람이 너무 욕심 부리는 거 아니냐고 비꼬아 말해준 것이 너무 미안하다.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던 송아현은 전원이 끊겨 있다는 안내말을 듣는다. 그 순간 문득 박기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쯤 박기성은 오후 1시 반에 출발하는 방콕행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중이겠다.

    “815군단이 움직였습니다.”

    미8군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은 큰 키에 마른 체격이어서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와 같이 서 있으면 머리통 하나만큼 크다. 그래서인지 우드워드는 해리슨하고 나란히 선 적이 거의 없다. 오늘도 우드워드는 앉았고 해리슨은 앞쪽에 서 있다.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목표는 남해, 4시간 후면 남해에 닿습니다.”

    해리슨이 테이블 위에 펼쳐진 한반도 지도의 두 지점을 가리켰다. 바로 815군단이 출현한 신천군 남부와 남해시다. 지도에서 시선을 든 우드워드가 해리슨을 보았다. 찌푸린 표정이다.

    “이제 한 시간이 넘었어, 확전이 되면 우리가 끌려들어가게 돼.”

    해리슨은 잠자코 시선만 주었다. 현 상황은 북한군의 선제공격에 대한 한국군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발생했다. 따라서 데프콘2 상황에서 즉시 전시체제인 데프콘1으로 전환되었지만 한국군은 한미연합사령관인 우드워드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거 정말, 등에 업힌 아이놈이 제멋대로 이웃집에다 불을 지르는 기분이야, 해리슨.”

    “사령관, 그것은.”

    쓴웃음을 지은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이웃집 아이놈이 먼저 돌멩이를 던져 우리 애를 때렸거든요.”

    “어쨌든 이대로는 안돼. 오바마가 난리야.”

    조금 전에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한국 대통령 박성훈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들은 다음 동맹관계를 강조하고 위로했다. 그러고는 바로 우드워드에게 연락을 했는데 즉시 지휘권을 회수해 한국군에 끌려들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오전 11시53분. 개전 1시간13분이 경과한 시점이다.

    그 시각. 남해시 북방 3㎞ 지점.

    “쉬익!”

    발사음과 함께 로켓탄이 발사되었다.

    “타탓, 타타탓, 타타타타타탓!”

    이번에도 좌우에 엎드린 김 병장과 윤 상병이 전차 뒤를 따르는 보병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퍼붓는다.

    “꽈앙!”

    162m 거리에서 날아간 로켓탄이 포탑 뒤쪽 틈에 맞으면서 폭발했다.

    “명중!”

    사격을 하면서 김 병장이 기쁜 나머지 함성을 뱉었다. 전차는 포탑이 기울어졌는데도 10여m를 달리더니 바위를 들이받고 옆으로 들려졌다. 전차의 바닥이 다 드러났다.

    “타탓! 타타타탓!”

    두 병사가 뒤쪽 보병들을 향해 맹렬히 사격을 했고 이동일도 소총을 쥐었다. 그 순간 왼쪽 윤 상병이 털썩 머리를 숙였으므로 이동일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떴다. 윤 상병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부서져 있다는 표현이 맞다. 이를 악문 이동일이 다시 앞쪽을 향해 K-5 소총을 겨누었다.

    “타타탓 타탓!”

    그 순간 뒤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숨을 죽였다. 그러자 앞쪽에서 흰 불꽃을 토해내던 적 보병들이 금방 잠잠해졌다. 제3소대의 남은 병력이 지원사격을 해온 것이다.

    “윤 상병! 윤 상병!”

    그때서야 옆쪽 윤 상병을 돌아봤던 김 병장이 아우성을 쳤다. 그러고는 몸을 뒤쪽으로 굴리더니 곧 윤 상병 옆으로 다가붙는다.

    “얀마! 야! 야! 죽지 마!”

    이미 늘어진 윤 상병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김 병장이 악을 쓰며 부른다. 뒤쪽 총성이 더 요란해졌고 인민군 보병의 응사는 뜸해지고 있다.

    “야! 윤 상병!”

    김 병장이 다시 울부짖었을 때 이동일은 허벅지가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 엎드린 채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든 이동일은 수신음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벅찬 이동일이 휴대전화의 덮개를 올리고 귀에 붙인다. 전원을 꺼 놓았는데 격하게 몸을 굴리는 동안에 켜진 모양이다.

    “여보세요.”

    그 순간 수화구에서 송아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야, 어디야?”

    그 대답을 김 병장이 옆에서 했다.

    “윤 상병! 너, 죽으면 안돼! 안돼!”

    그러더니 소총을 쥐어들고 앞쪽을 향해 쏘아 젖힌다.

    “타타타탓! 타타타타탓!”

    이동일이 수화구를 귀에 딱 붙이고는 말했다.

    “여기, 전장이야.”

    그때 송아현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이동일은 자꾸 되묻기만 했다. 김 병장이 미친 듯이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탄창이 비어진 김 병장이 탄창을 갈아 끼울 적에 송아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송아현은 아예 소리치고 있다.

    “사랑해! 사랑해! 살아서 돌아오라고!”

    갑자기 목이 멘 이동일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알았다. 전화 끊을게.”

    그러고는 서둘러 전원을 껐다. 총탄이 송화구를 타고 송아현에게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분 후인 오전 12시 정각. 개전 1시간20분25초 경과. 소공동 국제신문 편집국 안.

    “됐다! 특종이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친 편집국장 백한섭이 벌떡 일어섰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회부장 홍동수는 그것 보라는 듯이 두 눈을 치켜뜬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좋아, 이것을 특집방송으로 내자!”

    백한섭이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전화기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바로 송아현의 휴대전화기다. 그들은 방금 휴대전화에 녹음된 송아현과 이동일의 대화를 총성과 함께 생생하게 들었다. 백한섭이 송아현을 노려보며 말한다.

    “송 기자, 이건 대특종이야. 좀 있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현장상황을 알아내. 아무것이나 좋아.”

    숨을 고른 백한섭이 말을 이었다.

    “이 총성, 아우성에다 남녀 간의 사랑.”

    백한섭의 입가에 흰 거품이 맺혔다.

    “두어 번 하다가 끊어질지 모르지만 내보내라고! 서둘러! 내가 방송팀한테 연락할 테니까!”

    국제신문 계열사인 국제방송을 말하는 것이다.

    송아현은 가늘고 길게 숨을 뱉는다. 대화를 녹음한 것은 기자의 본능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이것을 부장과 국장한테 듣게 한 것은 공명심이다. 그때 백한섭이 다시 소리쳤다.

    “송 기자! 이건 네 몫이야! 네가 주인공이라고!”

    (4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조종석에 앉은 중위가 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역시 소리쳐 대답한다.

    “제압하려는 겁니다!”

    그때였다. 요란한 폭음이 울리면서 탄막이 퍼졌다. 대공포다. 30㎜ 대공포의 위력은 대단하다. 헬기는 한 발만 맞아도 치명상을 입는다. 정면의 엄호 헬기는 아마 5대쯤 남았을 것이다. 수색대대 후위를 실은 AH-39 수송용 헬기는 17대, AH-39는 미사일과 게틀링포로 무장되어 있지만 속력이 느리다. 금방 사방에 자욱한 탄막이 덮였고 포탄 파편이 기체에 맞아 튕겨나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12번기가 맞았다.”

    그때 조종사가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25번기도!”

    그 순간 기수가 와락 낮춰지는 바람에 이동일은 헬기가 추락하는 줄 알고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아앗!”

    이동일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창밖으로 벽돌 건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헬기는 남해시에 착륙하고 있다.

    같은 시각. 상륙함 강릉호의 해병 7사단 지휘부.

    “수색대대 전 병력이 남해시에 착륙했습니다.”

    무전기를 내려놓은 참모장 김길중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7사단장 고달호 소장을 쳐다봤다.

    “어쨌든 진입 성공입니다. 사단장님.”

    김길중의 표정이 칭찬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달호는 외면했다. 아군의 피해도 크다. 우선 헬기연대만 해도 처음 주경리 북한 미사일전대의 기습공격으로 AH-253 4대가 격추되었다. 그리고 이번 강습상륙 중에 AH-253 9대와 수송헬기 5대가 격추된 것이다. 수송헬기 AH-39에는 해병 수색대원이 20명씩 탑승하고 있었으니 승무원을 포함해 200명 가까운 해병이 전사했다. 남해시를 밟기도 전에 부하 200명을 잃은 것이다. 그때 함교의 창밖으로 앞서가던 구축함이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좌우에서 따르던 초계함에서 무수한 빗발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금방 하늘이 흰 빛줄기로 뒤덮였으므로 고달호의 시선도 그쪽으로 옮겨졌다.

    “해군이 잘하는군.”

    고달호가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지만 김길중은 들었다. 전속력으로 전진하는 상륙함 3척은 아직 북한 측으로부터 총알 한 발 맞지 않았다. 그것은 호위 헬기와 KF-24편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지스함 광주호를 주력으로 하는 해군 함대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해 해변까지 8㎞입니다.”

    김길중이 혀로 입술을 속이며 말했다. 앞쪽 화면에 뻔히 나타나 있는데도 이렇게 보고하는 것은 조바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황실 안의 지휘부는 물론이고 상륙함에 탑승한 전 장병, 그리고 지켜보고 있을 군 지휘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7월25일 10시55분. 합참 지하 벙커. 개전 15분25초 경과.

    “수색대대가 남해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작전참모부장 박진상이 소리쳐 말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전쟁은 막 시작했을 뿐이다. 북한의 기습을 받은 한국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로 밀고 올라가 버렸다. 그것이 북한군 수뇌부의 허를 찌른 것 같다. 격멸된 MIG31기의 후속 편대를 지금까지 보내지 않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 시간 현재 옹진반도는 물론이고 서해상의 제공·제해권은 한국군이 장악했다. 현재까지 한국군의 전과는 대승(大勝)이다. 박진상이 소리칠 만했다. 그때 육참총장 조현호가 입을 열었다.

    “북한군 수뇌부가 지금까지도 혼란 상태가 되어 있을 리는 없어요.”

    주위의 시선을 받은 그가 말을 이었다.

    “수뇌부가 대응을 억제시키고 있는 거요. 아군 헬기를 향해 쏜 미사일은 수뇌부의 지시를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현호가 머리를 돌려 장세윤을 보았다.

    “의장, 어쨌든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사불란한 체계로 우선 남해에 상륙시킨 해병을 고립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전면전이다. 심호흡을 한 장세윤이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으니까.”

    그때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벌떡 일어섰다.

    “7사단 1연대 주력이 곧 남해에 상륙합니다. 그놈들이라도 지원해야 됩니다.”

    “해·공군 배치는 그만하면 됐어.”

    장세윤이 뱉듯이 말했다. 그렇다. 한국의 5개 전투기지에서 발진한 KF-24 6개 편대 96기의 전투공격기가 서해상을 뒤덮고 있다. 또한 해군은 이지스함 3척과 구축함 8척, 초계함 12척이 추가로 증원되어 현장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러나 육군의 후속 부대가 없다. 정용우는 해병 1연대 병력이 고립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때 상황실 탁자 위의 붉은색 전화기가 울렸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장세윤이 서둘러 전화기를 들었을 때 벽에 붙은 스피커에서 대통령 박성훈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대통령입니다.”

    “예, 대통령님.”

    장세윤이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부동자세로 섰다.

    “대통령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조금 전에 김정일씨 전화가 왔습니다.”

    조용해진 상황실 안에 박성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정일씨는 휴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남해시에서 병력을 철수한다면 공격을 중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먼저 공격을 한 것은 북한입니다. 저들이 지금 밀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제의를 한 것입니다.”

    장세윤의 옆에 선 조현호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고 정용우는 입을 쭉 다물었다. 그러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다시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을 대통령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북한군이 반격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상황실 안이 술렁거렸다. 목소리를 낮추고 서로 수군거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인 장세윤이 말했다.

    “대통령님, 북한군 지휘부는 자중지란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반격 기회를 놓친 것이지 김정일의 지시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박성훈이 낮게 물었다. 이것이 박성훈의 장점이다. 전문적인 일은 과감히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장세윤이 옆에서 조현호를 보고나서 헛기침을 했다. 이제 남해시에 해병 7사단 1연대가 상륙하려면 10분 정도가 남았다.

    “대통령님이 군을 설득 중이라고 말씀해주시지요.”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그러자 조현호는 물론이고 박진상, 정용우까지 일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한국군 수뇌부가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고 하면 그쪽도 반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7월25일 11시 정각. 개전 20분25초 경과. 옹진반도 남해시.

    “2중대장이 전사했습니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연락장교 김 중위가 파편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소리쳤다.

    “소대장 두 명도 부상을 당해서 중대가 앞쪽 로터리 부근에서 전열을 정비하는 중입니다.”

    “이런, 빌어먹을.”

    눈을 부릅뜬 대대장 강규식이 잇사이로 말했다. 남해시는 옹진시 서남단의 소도시로, 아래쪽에 북한 해군기지인 사곳이 있다. 그러나 이제 사곳은 철저히 파괴되어서 폐허가 되었다. 사방에서 격렬한 총성이 울리고 있다. 단층 건물이 운집한 도시는 텅 비었다. 개 한 마리 보이지 않는데도 건물은 불에 타올랐고 폭발과 함께 고막이 터질 듯한 총성이 울리고 있다. 그때 아래쪽에서 해병 한 명이 달려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본 강규식이 퍼뜩 허리를 세웠다.

    “아니, 저 자식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옆에 웅크리고 있던 장교들은 다 들었다.

    “사령부에서 온 이 대위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을 때 이동일이 지친 숨을 뱉으며 달려와 옆쪽 담장에 어깨를 부딪치며 주저앉는다. 이쪽으로도 총탄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뒤쪽 3중대에 있었잖아?”

    강규식이 버럭 소리쳐 물었을 때 이동일이 답답한지 철모를 벗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말했다.

    “거기서 뭐 합니까? 저한테도 일을 맡겨주시지요.”

    “잘됐다.”

    강규식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너한테 일 맡기려고 2중대장이 전사한 것 같다. 당장 2중대장을 맡아!”

    그때 그들이 쪼그리고 앉은 담장 옆쪽으로 기관총탄이 쏟아졌다. 파편이 튀면서 벽돌 담장이 절반이나 무너졌다. 자리를 옆쪽으로 옮긴 강규식이 다시 소리쳤다.

    “옹진의 동남쪽 방향으로 진출해서 진지를 구축하도록.”

    “알겠습니다.”

    “2중대는 중대장 전사. 소대장 둘이 부상했고 전사자가 40명 가깝게 돼.”

    전력의 4분의 1이 소진된 셈이다. 이동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갑니다.”

    철모를 집어 든 이동일이 이제는 뒷모습을 보이며 길가로 달려 나간다. 그 모습을 본 강규식이 다시 혼잣말을 했다.

    “저자식이 오기 잘했군.”

    7월25일 11시06분. 개전 26분25초. 남해항 근처 바닷가.

    상륙정이 멈췄을 때 7사단장 고달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예상보다 2분 늦었다. 그 순간 앞쪽 해치가 내려지면서 해병들이 쏟아져 나갔다. 훈련이 잘 된 해병들은 구호 한번 지르지 않는다. 이미 해안은 아군 함정과 헬기 공격기, 그리고 공군 전폭기까지 융단 폭격을 해놓아서 초토화 상태다. 고달호도 참모장 김길중과 함께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무릎 정도밖에 차지 않는다. 머리 위로 AH-253 공격용 헬기 10여 대가 요란한 폭음을 울리며 날아갔다.

    고달호의 주위로 해병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질러 뛰어갔다. 눈을 부릅뜬 고달호가 앞쪽의 불에 타오르는 남해시를 보았다.

    “망할 자식들아. 내가 왔다.”

    고달호가 저도 모르게 혼잣소리를 했다.

    7월25일 11시08분. 개전 28분25초. 제55 호위대 지하 벙커 안.

    무력부장 성종구가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부동자세로 서 있다. 지금 김정일과 통화를 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10분 사이에 세 번째 전화를 해왔다.

    “남조선 해병 주력이 조금 전 남해에 상륙했습니다.”

    지친 표정의 성종구가 앞쪽 벽을 응시하며 말했다.

    “1개 연대 병력입니다. 전차 10여 대, 장갑차 10여 대, 그리고 차량 30여 대까지 상륙했습니다.”

    “해군은?”

    김정일의 목소리는 마른 나무처럼 건조하게 들렸다. 심호흡을 한 성종구가 말을 잇는다.

    “전력이 분산되어서 모으고 있지만….”

    말끝을 흐린 성종구의 시선이 옆쪽의 군 수뇌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도 그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이미 서해상에서 한국군의 함대에 맞설 북한군 해상 전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함정은 제각기 한두 척씩 도망쳐 있지만 다 모아도 맞설 전력이 되지 못한다. 조금 전에 해상에 시체처럼 떠있던 원산함이 해저로 가라앉은 것을 끝으로 대형함은 한 척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이 시점에서 휴전을 제의할 테니 더 이상의 확전은 중지하시오.”

    “예, 지도자 동지, 하지만.”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성종구의 시선이 옆쪽 심철 상장을 스치고 지났다.

    원망스러운 시선이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좋은 이야기만 듣고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성종구는 벙커 안 지휘부의 대표다.

    “지도자 동지, 남조선 해병은 해공군의 지원을 받아 지금도 북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민군을 투입한다면 남조선군도 육군을 북상시킬 거요.”

    김정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내가 현 시점에서 남조선군 북상을 중지시켜볼 테니까 그동안 동무들도 가만있으시오.”

    “예, 지도자 동지.”

    “물론 대비는 해놓아야겠지.”

    “그렇습니다. 지도자 동지, 그래서 815기계화군단을 대기시켰습니다.”

    성종구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815군단만 옹진으로 밀어붙이면 단숨에 격멸할 수 있습니다.”

    815기계화군단은 기계화보병여단 5개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또한 기계화보병여단에는 1개의 전차대대(31대)가 편성되어 있어서 군단의 전차 보유대수는 편제상 155대다. 거기에다 자주포병여단 1개에 경보병여단과 정찰대대를 거느린 기계화군단의 장점 중의 하나가 기동력이다. 김정일도 고무된 듯 목소리에 활기가 있었다.

    “남해까지 도착 시간은?”

    “명령만 내리시면 4시간이면 남해에 닿습니다.”

    그러자 김정일이 목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좋소. 대기하도록.”

    7월25일 11시12분. 개전 32분25초. 서울 소공동 국제신문 빌딩.

    편집국 안의 대형 TV 앞에 수십 명의 기자가 모여 있다. 지금 계엄사령관인 합참의장 장세윤이 대국민 방송을 하는 중이다. 장세윤이 말을 잇는다.

    “불법시위나 유언비어에 대해서 즉각적이고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이며 반국가 활동 단체에 대해서는 전시(戰時) 계엄법을 적용하여 즉결처분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선량하고 애국적인 대다수의 국민 여러분께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장세윤의 표정과 말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살벌했다. TV 앞에 둘러서거나 앉은 기자들의 표정도 굳어 있다.

    “날벼락을 맞은 거죠.”

    뒤에 서 있던 사회부 김순기 기자가 말했다.

    “계엄령이 발동되자마자 그놈들은 모조리 잠적했습니다. 지금 숨어서 눈치만 살피고 있을 겁니다.”

    머리를 돌린 송아현이 김순기를 보았다. 김순기는 만날 깨지던 부장 홍동수에게 말하는 중이다.

    “김정일이 그놈들 믿고 전쟁 일으켰다면 큰 실수를 한 겁니다. 초전부터 한국군이 치고 올라가자 순식간에 문을 닫은 겁니다.”

    “무슨 문을 닫아?”

    옆쪽에 서 있던 경제부 기자가 묻자 김순기는 쓴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사무실.”

    사무실이란 친북 단체의 모든 위원회, 협회, 연합회란 이름의 모임을 말한다. 그때 홍동수가 혼잣소리처럼 묻는다.

    “만일 한국군이 초반에 깨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들고 일어났겠죠.”

    김순기가 대번에 대답했다. 이제는 서너 명이 김순기를 중심으로 둘러서 있다. 김순기가 말을 잇는다.

    “전쟁 반대 구호를 외치면서 북한 측에 양보를 하는 조건으로 휴전을 주장했을 겁니다. 평화를 간판으로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그럼 웰빙족들이 호응할 것이고 계엄령도 먹히지 않겠지요.”

    “그러다 적화통일이 되겠구먼.”

    누군가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정치부 기자 하나가 매듭을 지었다.

    “이거 소름이 끼치는군. 막상 닥치니까 진면목이 드러나는 거야.”

    “잘한다!”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친 김대호씨가 벌떡 일어섰다. 일산 호수공원 앞쪽의 대호식당 안이다. 지금 김대호씨도 TV에서 방영되는 계엄사령관 장세윤의 발표를 듣고 있다.

    “암먼, 그래야지.”

    오전 11시15분이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고 파주댁도 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김대호가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이제사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라꼴이 되어가는갑다. 어이, 장하다.”

    주방 안에서 박미옥이 눈을 흘기긴 했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7월25일 11시18분. 개전 38분25초 경과. 산본장의 지하 임시상황실 안.

    대통령 박성훈이 이번에는 김정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오전 9시 정각에 해병 훈련에 대한 통고를 하고나서 오늘 두 번째 통화다. 김정일이 말한다.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공화국은 남조선의 침략을 규탄합니다. 우리는 백배 천배의 보복을 할 것입니다. 다만.”

    거침없이 말하던 김정일이 “다만” 하고나서 숨을 가눈다. 뻔한 순서였으므로 박성훈은 전화기만 고쳐 쥐었다. 옆에 서 있던 비서실장 한창환, 안보수석 주명성이 숨을 죽이고 있다. 그들도 스피커를 통해 들은 것이다. 다시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현 시점에서 전투를 중지한다면 전면전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통보합니다. 수백만명이 희생될 이 비극을 막으려면 대통령 각하께서 시급히 결단을 내리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자 박성훈이 차갑게 대답했다.

    “위원장님, 일은 북한군이 먼저 저질러놓았습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뒤집어씌우실 겁니까?”

    외교적 수사를 생략한 때문인지 박성훈의 말투는 내용보다 더 신랄하게 들렸다. 놀란 듯 김정일이 가만히 있었고 박성훈의 말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지금 군부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격앙되어 있어서 잘못했다간 쿠데타라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북한하고 끝까지 해보자고 할 겁니다. 이 기회에 뿌리를 뽑겠지요.”

    김정일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박성훈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달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북한군도 움직이지 말고 말입니다. 확전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십시다. 위원장님.”

    “알겠습니다.”

    김정일이 지친 목소리로 말하더니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났다.

    “먼저 옹진반도 밖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것은 막도록 하지요. 대통령 각하.”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박성훈이 입술 끝을 비틀고 웃는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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