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 격정토로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운동권의 치고 빠지기 식으로 나를 공격”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0-09-17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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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나쁜 사람들이야
    • 대응하면 같은 사람 된다
    • 박영준 차관 시키라고 할 바보 아니다
    • MB 국정운영 잘하고 있다
    • 박근혜가 되든 경선 승자 중심 뭉쳐야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 격정토로
    현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언론의 조명을 받아왔다. 정두언·남경필·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등 여권 소장파와 민주당은 그를 향해 사사건건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여권과 경쟁관계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외형상 같은 편인 여권 소장파의 공세는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에서 ‘남·정·정’ 혹은 ‘정·남·정’으로 묶어 부르는 소장파 세 사람은 자신들이 국무총리실과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불법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의원을 그 배후로 지목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의원)은 또한 ‘영포(경북 영일·포항) 라인’의 인사전횡을 비판하면서 포항 출신인 이 의원이 그 핵심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경향신문 8월10일자 보도)

    구체적인 발언에 있어 정태근 의원은 8월31일 의원 연찬회에서 “이상득 의원이 불법사찰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어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군 라인과 전면전을 이젠 피할 수 없게 됐다”고도 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 고위 인사가 소장파를 비판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청와대에 차지철이 되살아온 게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남경필 의원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가면서 국정을 농단한 사조직 ‘빅브라더’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 “아프지만 도려내고 수술하고 가는 게 맞다”고 했다.

    그러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언론에 “김태호 총리후보자를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추천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인데 이제 와서 이상득 의원과 청와대를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재차 반박했다. 소장파들이 인사전횡 의혹을 제기하지만 자신들도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소장파들은 최근 여권 지도부로부터 자제하라는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상득 의원은 별말이 없다. 대통령의 형이고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지만 언론 인터뷰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참아야지”

    9월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419호실의 문을 두드렸다. 이상득 의원의 방이다. 보좌진 책상 너머 그의 집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이 의원이 선 채로 보좌관으로부터 뭔가를 보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마침 이 의원의 다음 일정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의원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입니다.” 기자의 첫마디에 이 의원이 혼잣말처럼 했다. “참 나쁜 사람들이야. 치고 빠지고…. 전형적인 운동권식이야.” 그러다 기자를 쳐다보더니 “에이, 그런 말 안 할래, 대응해봤자 같은 사람이 되고, 참아야지”라고 했다. 일단은 더 물어보지 않았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3일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그해 한나라당의 4·29 재·보궐선거 패배로 소장파가 당·정·청 전면 쇄신 바람을 일으키자 동생인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그는 대외적인 정치행보를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대신 지역구 활동, 자원외교,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서 대일(對日) 의원외교에만 전념해왔다고 한다. 물론 소장파와 야당은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지만 말이다.

    현재 이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에는 대형 현안이 발생해 있다. 2008년 8월 야심 차게 시작된 포스코 신제강공장 건립 공사가 고도제한에 묶여 지난 8월20일 전면중단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업비 1조4000억원이 투입돼 공정률 93%를 보이고 있는 신제강공장의 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현장근로자 1500여 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지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 격정토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이 의원은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매우 조심한다고 한다. 그는 기자에게 “절대 정치적으로 풀어선 안 된다.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방부, 국토해양부, 포스코, 포항시민의 입장을 모두 종합해 해결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대일 의원외교에서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8월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한일강제병합과 관련한 전향적인 담화가 발표되기까지 이 의원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담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이번 담화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한 뒤 “내가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조금은 도왔다. 그렇게만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책상과 응접 테이블에는 각종 서류뭉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언뜻 보니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 그가 자원외교를 위해 다녀온 중남미 국가의 이름을 파일제목으로 붙여 분류해놓은 서류들이었다. 이 의원은 이 중 이날 저녁에 있을 라파엘 코레아 델가도 에콰도르 대통령과의 만찬회동에 필요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기자가 자원외교 이야기를 꺼내자 이 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에콰도르와는 정유공장 건립 공사를 따고 20~30년 후 공장을 리모델링할 때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남미 대통령들의 ‘이상득’ 언급

    코레아 대통령은 이 의원과의 만찬 다음날 전경련 회장 등 경제 4단체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서 “기술자립 정책을 펴겠다. 이는 이상득 의원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지난 6월 대통령 특사로 에콰도르를 방문했을 때 코레아 대통령에게 “1960∼70년대 한국에는 돈도, 자원도 없었다. 그러나 기술개발로 자립해 성장했다. 에콰도르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과거 한국보다 나은 편이다. 기술 자립을 추진하면 한국도 돕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코레아 대통령은 또 경제4단체장 오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지지하고 북한의 핵 보유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좌파성향인 코레아 대통령은 앞서 8일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에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도를 바꾼 것은 이 의원이 만찬 때 천안함 사건, 북핵 문제 등을 설명한 뒤 “에콰도르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려면 우리 한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게 여권 고위 인사의 전언이다.

    이 의원은 “요즘은 자원이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오면 청와대와 정부에서 하루 정도 공식 일정을 잡고 나머지 일정은 나와 관련 업계가 맡는다. 볼리비아와 페루 대통령이 왔을 때도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 나라 대통령 일행과 업계가 유대를 강화하고 공사 수주에 유리하도록 일정을 짜기 위해서죠. 외교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되는 일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논의하면 구체적이고 확실한 성과가 나옵니다.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리비아가 우리나라와 외교적 마찰이 있었던 건 너무 공식적이거나 의례적인 방식으로 접촉해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부 사람이 아닌 국회의원이고, 집권당의 원로 격인데다, 대통령의 가까운 친척이니 그런 일에 적합하고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봐요.”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은 8월26일 이명박 대통령과 우유니 호수(Great Lake of Uyuni)의 리튬자원 개발과 관련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리튬은 2차전지의 원료로, 차세대 핵심 자원으로 각광받는 광물이다. 볼리비아는 우유니 호수의 염수에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이 매장돼 있지만 개발 기술이 없어 관련 기술을 보유한 외국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식을 타진 중이다. 일본과 프랑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이 가세한 상황이었으나 우리나라가 새롭게 치고 나가는 모양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방한 기간 중 “한국의 기술과 열정을 봤다”면서 “세 차례나 볼리비아를 방문한 이상득 의원의 공로로 이러한 신뢰가 더욱 강화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의원은 “(개발권 확보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모랄레스 대통령이 한국의 기술과 열정을 인정했으니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아프리카나 페루 등지의 석유자원 확보를 비롯해 추진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특사 자격 등으로 7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그러자 야당 일각에서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7월28일 국가정보원 직원이 리비아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다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을 때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 특사로 7월6~13일 리비아에 다녀와 놓고는 ‘자원외교를 열심히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상득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대화는 리비아 문제에서 영포회로 넘어간다.

    “골병들었는데 다들 몰라줘”

    ▼ 대통령 특사로 해외에 자주 나가는 것을 놓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만….

    “특사라고 하면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 취임식 같은 경축행사의 사절단 정도로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나는 자원보유국, 정치가 불안정하고 기후조건이나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은 나라만 다니지요. 속된 말로 골병들고 몸이 다 상해가면서 다니는데 다들 몰라서 하는 말이지. 어떤 때는 비행기 안에서 코피가 나니까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무슨 그런 말을.”

    ▼ 리비아에 특사로 간 과정은요?

    “남미에 다녀와서 몸이 많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리비아에 가라고 하더군요. 사흘 동안 링거로 영양제 맞고 비서도 없이 약속도 없이 그냥 갔지. 여섯 시부터 세 시간 동안 주사 맞고 열한 시 반에 비행기 타고 열일고여덟 시간을 갔어요. 다른 일 같으면 절대 못 갔지. 가족도 말렸고. 그러나 국가가 위급한데, 스무 곳에서 100억달러가 넘는 공사가 중단된다는데, 정부가 가달라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나. 안 가면 비겁하지. 그래서 간 거예요.”

    “미안하오. 좀 봐주시오”

    ▼ 그런 고생의 성과가 있었나요?

    “총리를 만나 ‘우리 외교관이 실수해서 미안하오’라고 했어요. 주삿 자국을 보여주면서 ‘나이도 많고 몸도 아프지만 대통령이 가라고 해서 왔소, 좀 봐주시오’라고 통사정했지. 우리 외교관이 실수한 게 사실이니까. 처음에는 그쪽에서 ‘한국과 상대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세 번이나 총리를 찾아가고 그쪽 정보원장을 만난 끝에 일단 기업 활동은 지장 없도록 해놓고 왔어요. 정말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니까.”

    ▼ 그러나 의원께선 7월13일 리비아에서 귀국한 날 공항에서 기자들에게는 ‘경제협력 문제’로 다녀왔다고 했는데….

    “내가 없는 동안 국내에서 이른바 ‘영포회’ 얘기가 나왔죠. 그러자 내가 논란을 피해서 나갔다느니, 달아났다느니 별소리가 다 나오더군요. 공항에서도 기자들이 그렇게 묻는데 뭐라고 하나. 그때까지는 리비아 사건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데, 정보원이 실수해서 갔다 왔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경제활동 다녀왔다고 했어요. 나중에 리비아 사건이 공개되고 나서 내 역할이 조금 드러났는데 그걸 두고 야당이 ‘거짓말했다’고 하니….”

    영포회 논란은 총리실의 불법사찰 의혹과 인사전횡 의혹이 묘하게 결합된 양태다. 즉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및 정치인 불법 사찰의 배후에 이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 출신과 포항에 통합된 영일 출신 고위공직자 모임인 ‘영포목우회’가 개입했다는 야당 주장에서 시작됐다. 이어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의원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세 사람 모두 부인의 사업과 관련해 당국으로의 제보 내지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 격정토로

    (왼쪽)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오른쪽)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눈덩이가 구르면서 더욱 커지듯 영포회 논란이 진행되면서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의원이 이 의원을 지목해 쏟아내는 언사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정두언 의원은 한나라당 연찬회를 박차고 나오면서 안에 있던 이상득 의원에 대해 “영감이 자리에 있잖아… 열 받아. 압력 주는 것도 아니고…”라고 막말을 했다. 정태근 의원은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사찰을 당했다면서 “내가 고발할 줄 몰라서 하지 않은 게 아니다”며 “이 문제를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에게 전하고 바로잡아달라고 말씀드린 바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상득 의원에게 말씀드린 이유는 국정원과 청와대에 의해 사찰이 이뤄진 것을 이 의원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경필 의원도 비공개 연찬회에서 “(사찰 배후가) 누구인지 짐작 가는 분이 있다. 그러나 굳이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인사는 “이상득 의원은 세 사람의 부인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말 정도를 주변에서 듣지 않았겠느냐”고 관측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나를 고발하면 되는 것이고”

    ▼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의원의 발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요.

    “그것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차차 시간이 가면 국민이 알 것은 알게 되겠지. 그 사람들은 나에게 많이 후배고, 내가 그래도 자기들보다는 나이와 선수(選數)도 많은 사람인데, 젊은 사람들이 그러는 데 대해서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도 전번에도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어요. 법적으로 잘못됐다면 법에 호소해서 나를 고발하면 되는 것이고…. 국민이 판단해주겠죠. 내가 기업인과 정치인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느낀 건데, 여론에 의해서 결국은 진실이 밝혀지더라고.”

    ▼ 그래도 상황이 이쯤 됐으면 어떤 입장을 밝혀야 되지 않을까요?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대통령과 가까운 친인척인데다, 6선 국회의원이고 나이도 많으니까 내가 주목받는다는 것을 잘 알아. 그래서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난해 6월에 정치에 개입 안 하겠다고 했죠. 철저히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말 한마디를 조심함으로써 대통령 친인척으로서의 신변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이었지. 국민은 대통령의 친인척이 인사에 개입한다, 이권을 챙긴다, 이렇게 막연히 볼 수도 있겠죠. 과거에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했고, 경제외교와 지역구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내가 1년 동안 7번 출국했는데 한 번 나가면 세 나라 정도 돕니다. (응접테이블에 놓인 자료들을 들춰보며) 이것 봐. 한 번 나가는 데 보따리가 이렇게 많잖아. 나가기 전에 이거 공부하는 데 한 열흘쯤 걸린다니까. 공부를 해야만 나가서 그쪽 대통령, 총리, 장관들을 만나서 제대로 된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들추는 자료는 공기관이나 기업체에서 만든 각 나라의 현황, 일정표, 만날 사람들의 인적 사항, 사전 검토 목록 등이었다. 이 의원의 수첩 수십 권에는 ‘공장운영’ ‘사후관리’ ‘기술이전 보장’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이 의원과 함께 대통령 특사단으로 볼리비아를 다녀온 친박근혜계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은 “이 의원이 기내에서 준비를 엄청나게 하더라. 열 몇 시간을 타고 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데 혼자서 이것저것 읽고…. 정말 독한 분이다. 감탄했다”고 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 고위인사가 2000m 고지대인 콜롬비아의 대통령 취임식 특사로 갔다가 병이 났다. 75세인 이 의원이 해발 4100m 지역에서 거뜬히 버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요?

    “대통령이 잘하고 있어요. 사회분야든 경제분야든 100% 좋은 정책은 없고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새만금사업도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지만 자꾸 보완하고 보완하니까 지금은 나쁘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죠. 대통령이 기업경영을 오래한 CEO 출신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판단을 원칙적으로 잘못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여러 생각을 가진 국민을 이해시키고 정책에 반영해 같이 간다는 건 어려운 문제죠. 난 걱정 안 합니다. 잘합니다.”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사심 없는 국정운영’을 강조했다. 그 역시 코오롱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썼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6선 의원을 지내면서 다섯 차례 당3역(사무총장·정책위의장·원내총무)을 맡았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사심 없이 국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당직을 맡았는데 사심 없이 일했기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면 나에게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지요. 그럴 때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보는 견해에 따라선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나는 내 판단을 갖고 소신 있게 일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까 해명도 되고 나를 돕는 사람이 많아지더군요. 다른 사람이 같은 당직을 두 번, 세 번 하면 죽습니다. 자기 혼자 다 한다고… 그러나 내가 당직에 갈 때는 얽힌 문제를 풀어줬으면 해서 들어간 거고 말썽 없이 해냈지요.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사심 없이 한 거죠. 나는 아직 대통령 시계 하나도 공짜로 못 얻었어(웃음).”

    “자기네들이 어거지로 갖다 대”

    ▼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강조한 ‘공정한 사회’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여당에 부메랑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는데요.

    “나는 그런 걱정 안 합니다. ‘공정’이란 것이 자칫 같은 대학 나와서 같이 입사했는데 10년 후에 왜 나는 과장이고 너는 차장이냐, 이런 것을 불공정으로 생각할까봐 그런 것이죠. 이번 것은 법치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가령 이번 일(외교부 특채 파동)은 인사를 법 기준에 어긋나게 한 바람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기준에 맞게만 했으면 뒤탈이 없는 것이죠. 고교 졸업했다고 대학에 다 가야 한다는 것이 공정이 아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대학에 가도록 기준을 두는 것이 공정이죠.”

    이명박 대통령은 9월6일 국가정보원 인사를 단행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상득 라인’으로 꼽히던 코오롱 출신 김주성 기조실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물려받은 점이다. 소장파는 정치인 불법사찰 논란과 관련해 김 실장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논란을 종결짓자는 메시지를 소장파에게 보낸 것 아니냐, 이상득 라인이 퇴조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 김주성 기조실장의 퇴진을 어떻게 보나요?

    “김주성? 나는 그가 기조실장으로 간다는 것조차 상상도 못해봤어요. 이번에도 (교체된 사실을) 신문 보고 알았는데 뭘. 그만두고 난 뒤에 전화는 한 번 왔어요.”

    이 의원은 인사 문제가 나오자 자기 심경을 이어서 이야기한다. 8월13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에서 국무차장에서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옮긴 박영준 차관을 염두에 둔 말이다.

    “(박영준씨가 차관이)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좋은 거지. 대통령이 필요하면 언제든 쓸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박영준 좀 시키지 말라’고 하는데 박영준 시키는 사람이 대통령이지 나인가요? 내가 대통령 보고 시키라, 시키지 마라 할 수 있나요? 내가 그렇게 말할 바보가 아닙니다.

    내가 (코오롱) 사장 할 때도 인사권을 내가 행사했지. 누가 옆에서 그 사람 중역 시키라고 한다고 시킨다? 그건 바보입니다. 대통령도 형님 말 듣고 친인척 말 듣고 인사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우스워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인사권을 사사로이 가족들하고 상의하는, 그런 어수룩한 지도자라면 나라가 망할 겁니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입니다.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는데 사사로운 관계로 간섭하면 안 되는 것이죠. (인사전횡은) 자기네들이 어거지로 갔다 대는 건데, 내가 아는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간다고 해서 내게 이득도, 손해도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이번에 (박영준씨를 지식경제부 차관) 시킬 때도 전혀 몰랐어요. 8월2일 해외출장 갔다가 장·차관 인사 발표가 끝난 뒤에 왔으니까.”

    이 의원과 친한 전직 중진의원은 “실제로 이 의원에게 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의 형이니 당연히 있지 않겠느냐. 그러나 본인이 정말 안 하려고 한다. 공교롭게 큰 인사가 있을 때면 외국에 나가버리는 것 같기도 하더라. 그러는 사이에 이명박 정부는 임기 후반기를 맞았다. 새로 청와대와 내각에 들어간 ‘신주류’가 인사권을 장악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주류는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이재오 특임장관을 지칭하는 듯했다.

    또 다른 친이명박계 인사는 “정말 이 의원이 인사에 관여한다면 자기 밑에 있던 박영준 차관과 관련된 소문을 그대로 놔뒀겠나. 박 차관에게 ‘내가 욕 얻어먹으니 그만하라’고 했겠지”라고 말했다.

    “박근혜도 그런 분 중 한 분”

    정두언·남경필·정태근 의원이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 차장을 계속 흠집내는 데 대해선 다른 해석도 있다. ‘포스트 이명박’ 구도를 짜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선제공격이라는 견해다. 이어지는 이 의원과의 대화다.

    ▼ 의원께선 정권 재창출에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정권이 바뀌어서 과격한 노조와 좌파가 판치고 대미 관계가 나빠지면 사회혼란이 가중되고 경제도 나빠질 것으로 봅니다. 결국 우리는 좋든 싫든 똘똘 뭉쳐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긴 사람을 밀어줘야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 경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원할 의사가 없는 건가요?

    “지금으로선 가만히 있을 생각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내 정치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만일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당선된다면….

    “아직 경선에 누가 나올지도 모르고…. 현재 거론되는 주자들은 모두 당의 소중한 자산인데, 그때 당선 가능성이 있고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분을 뽑아야죠. 물론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본선에 나가) 대통령이 됐지만 나라가 잘 안 된 적도 있었죠. 그래서 나라가 잘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 중에 뽑아야 하는 것이고. 물론 박 전 대표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죠. 지금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이런저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때 봐서….”

    물어볼 거리가 많았지만 문밖에 다른 내방객이 오래 기다리고 있다는 쪽지가 전달되면서 이상득 의원과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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