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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막걸리 교실 ③

폭탄주? 몸이 안 받으면 가슴으로 받는다!

직업별로 본 술문화

  • 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폭탄주? 몸이 안 받으면 가슴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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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 몸이 안 받으면 가슴으로 받는다!
이때 회식 비용은 모두 회사의 공금으로 댄다. 은행권에서는 캠페인과 행사 실적에 따른 포상이 돈으로 내려와 부서마다 적립된 돈이 얼마씩 있다. 또 부서별로 책정된 야식비, 회의비, 문구비 등을 다 쓸 수 없어서 영수증 처리해 털어내고 비자금으로 200만~300만원씩은 여퉈둔다. 작은 금융 사고는 이 돈으로 메우기도 하지만, 대체로 부서 회식비로 사용된다. 술 마실 여비가 든든한 편이다.

같은 금융권이라 해도 업무의 성격에 따라 술을 마시는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투자금융권 부서장 P씨에 따르면 증권사와 은행권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P씨는 “가령 여름휴가 전에 사둔 주식이 휴가 갔다 오니 20%가 날아갔다면 술을 안 마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증권사는 영원한 ‘을’로 접대를 해야 하지만, 대출권을 쥔 은행권은 갑의 처지라 대접받을 일이 더 많다고 한다. 증권사는 돈을 유치하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하는 집단이지만, 은행권은 아쉬운 소리를 듣는 집단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이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술 접대도 많이 한다는 것.

그러면서 P씨는 “은행이든 증권사든 금융권의 술문화는 극히 가부장적”이라고 했다. 술 마시러 갈 때는 언제, 어디서, 무슨 술을 마실 것인지를 모두 좌장에게 의존한다. 좌장인 행장 또는 부장이 회를 안 좋아하면 1년 내내 회를 못 먹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술자리에서는 누구보다 좌장이 즐거워야 한다. 친구들끼리 10명쯤 회식을 하면 가까이 앉은 사람끼리 삼삼오오 짝지어 대화를 나누겠지만, 금융권의 술자리에선 줄곧 좌장을 쳐다봐야 한다. 제3자가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민주적이겠지만, 금융권은 손실(리스크)을 막아야 하는 조직이기에 습관적으로 몸조심을 한다. 10원 하나 안 틀리게 톱니바퀴처럼 조직이 돌아가야 하니 좌장이 만든 폭탄주는 고량주에 맥주를 섞은 것이든, 소주에 고량주를 섞은 것이든 사양 말고 받아 마셔야 한다. 술자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술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좌장의 기분이 좋으면 좋은 술자리였다고 여긴다.

몸이 안 받으면 가슴으로 받는다



그래도 요즘에는 금융권 술문화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외환위기 무렵엔 구조조정으로 바짝 긴장하고 조직의 위계를 잘 따라 술 못 마시는 사람도 죽기 살기로 마셨다면, 2002년 월드컵 이후엔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는 것. 길거리 응원이라는 형태로 광장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맘껏 발산하는 경험을 갖게 된 젊은층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스포츠나 공연, 축제 관람 문화를 통해 서로 단결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경기나 영화 관람으로 회식 술자리를 대신하자는 건의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부서장들도 재량권을 유연하게 행사했다. 40대 중반인 P씨는 30대 중반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은 2차 술자리가 많이 줄었고, 새벽 2~3시까지 이어지기 일쑤이던 회식도 12시 이전에 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점심에 밥을 먹자고 하면 진짜 밥이지만, 저녁에 밥을 먹자고 하면 술 마시자는 뜻이라는 건 여전하단다. 점심 때 간 음식점을 저녁에 다시 가도 식단이 다르다. 요즘은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두 잔씩을 비운다. 속도전을 내려 할 때-자리를 빨리 털고 일어나기 위해, 회식비를 줄이기 위해, 빨리 취하기 위해…등 이유는 각각 다르다-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 폭탄주를 돌린다. 좌장이 술잔을 돌리면 “아, 제가 먼저 돌렸어야 하는데…”라며 줄줄이 술잔을 받고, 술잔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술잔을 돌린다. 10명이 모이면 소주가 됐든 소맥이 됐든 기본이 10잔, 20명이 모이면 20잔을 마시는 일이 보통이다. 빈속에 술을 마시기 불편한 사람들은 눈치껏 음식점 주인에게 밥 한 공기를 달라고 해서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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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 술 평론가 sultour@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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