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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손학규와 ‘진보 다툼’

손학규와 ‘진보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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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보수-진보의 문제인가? 아니다. 국익(國益)의 문제다. 미국 측이 자동차와 쇠고기 등의 부문에서 무리한 양보를 요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미국 측에 일방적 양보를 하려 한다면 야당은 국익을 걸고 반대하면 된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한미 FTA가 한국 측에 더 유리하게 체결됐다는 이유로 국회 비준을 미루고 추가 협상을 요구하는 마당이다. 이렇듯 협상에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딜(거래)의 문제이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당내 헤게모니 다툼에 FTA 문제를 끌어다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민주당은 2008년 총선 참패 이후 우 클릭을 했다가 2년 만에 다시 좌 클릭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내 치열한 이념 논쟁의 결과가 아니다. 세상이, 민심이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는 말이 맞다. 정당이 민심을 수용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결과를 놓고 당내에서 이념의 선명성을 저울질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스운 노릇이다.

한국사회는 빈부 양극화와 고령화,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는 복지 수요를 늘리고 있으며, 따라서 분배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파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친(親)서민정책과 ‘공정 사회’ 담론을 들고 나온 것도 그와 같은 국민 요구에 일정정도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정권이 갑자기 좌 클릭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좌 클릭한 것 역시 그들이 새삼스레 진보적이 되었다기보다 현실 대응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니 특정 인사들이 갑자기 대단한 이념가라도 된 듯 진보 타령을 하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국민은 ‘담대한 진보’ 같은 거대담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성과물을 요구한다. 노무현 정부가 나름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수 국민이 성과물 없는 이념과잉과 그에 따른 혼란에 신물이 났기 때문 아닌가.

따라서 “그 어떤 가치와 이념이라도 우리가 함께 행복하지 않다면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손 대표의 말은 틀리지 않다. 또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치가 우리가 가야할 길이며 국민이 기준이 되는 정치가 진보의 길이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을 우선시하는 국민생활우선 정당이 돼야 한다”는 말도 맞다. 2년간의 춘천 칩거에서 얻어낸 성찰의 결과물이라면 그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실천해내느냐다. 그 내용에 따라 정치인 손학규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보수 3, 중도 4, 진보 3의 구도로 본다. 결국 선거의 결과는 중도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최근 두 차례의 대선을 예로 든다면 노무현은 30∼40대 중도세력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명박은 그 반대로 노무현을 지지했던 중도세력이 돌아섰기에 압승할 수 있었다. 최근 진보의 흐름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보수 정권에 대한 중도세력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진보와 중도를 나누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맞지 않다. 야당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집권하겠다는 것인 만큼 중도세력의 통합이 중요하다”는 손 대표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통합은 어느 정치권력도 성공하지 못한 어려운 과제다. 손 대표는 “호남이 없으면 민주당도 없다”고 했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민주당이 아직 지역당의 한계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지역연합에서 가치연합으로의 과제는 손 대표와 민주당이 집권하기 위한 절대조건이랄 수 있다. 가치는 이념의 문제다. 정치가 이념을 떠나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념적이고 틀에 박힌 이념의 공세로 민심을 얻을 수는 없다. 하여 ‘진보 다툼’은 그만 하라는 것이다.

손학규와 ‘진보 다툼’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한국정치의 가변성에 비추어 다음 대선이 박근혜-손학규의 양자 구도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손학규의 경우 먼저 민주당을 변화시켜 국민의 신뢰를 얻고 희망을 주는 데 실패한다면 대선후보가 되기 전에 낙마할 것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경쟁자들이 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다.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진보 다툼’으로 서로 상처만 입고 입히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전력을 안고 있다. 민주당 내 경쟁자들은 걸핏하면 그 점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 당원의 선택으로 대표가 된 이상 그 굴레에선 웬만큼 벗어났겠지만 정체성 문제는 두고두고 그를 괴롭힐 것이다. 민주당 내 경쟁자들은 그만 해야 한다. 그렇게 믿지 못하겠으면 애초에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고, 그동안 그만큼 우려먹었으면 약발도 거의 떨어졌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누가, 어느 정치세력이 내일의 희망을 줄 수 있느냐다. 그러니 정치권에선 ‘좌파 타령’도, ‘진보 타령’도 그만 하길 바란다. 이념에 앞서 상식에 맞는 정치부터 하면 된다. 그러자면 사(私)를 버리고 공(公)에 헌신하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신동아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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