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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한일 라면전쟁

  • 이종각│전 동아일보 기자, 일본 주오대학 겸임교수│

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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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일본라멘’과 도쿄의 ‘신(辛)라면’

한 여성이 일본 본토 요리인 ‘멘무샤 라멘’을 먹고 있다.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당지(當地)라멘’이란 것도 생겨났다. 그 가운데 삿포로(札幌)라면, 하카타(博多)라면, 기타카타(喜多方)라면, 요코하마라면 등이 유명하다. 지금은 ‘하카타 잇푸도(博多一風堂)’ 등 전국에 수백 개의 점포와 뉴욕 등에 해외지점까지 가진 라면 체인점도 여러 개 된다.

한국의 인기 있는 곰탕이나 냉면 전문점은 대체적으로 본점 외에 가족 등이 ‘강남분점’식으로 점포 몇 개를 경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달리 일본의 인기 라면집은 기업형이 많다. 이 같은 기업형은 수백 개에 달하는 전국 체인점에서 대량 소비하므로, 양질의 재료를 싸게 대량 구입해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최대 면류 체인점인 ‘고라쿠엔’은 2010년 8월 현재 일본 전역에 425개의 점포를, ‘히데이 히다카야’는 260개의 점포를 주로 도회지의 역 주변에 두고 있다. 체인점의 1년 매출이 수백억엔에 달하는 중견기업들이다. 이들 체인점은 10년 이내 각각 1000점포 , 500점포를 목표로 하는 확대전략을 펴고 있다.

일본 귀화 대만인이 만든 인스턴트 라면

일본경제가 급속히 회복돼가던 1958년, 전세계 식품업계를 뒤흔들 만한 발명품이 생겨났다. 닛싱(日淸)식품이란 회사에서 개발한 ‘닛싱 치킨 라멘’이란 이름의 인스턴트 라면이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출현한 것이다. 물만 넣고 몇 분만 끓이면 되는 이 인스턴트 라면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스턴트 라면의 출시와 함께 지나소바 등으로 불리던 라면의 명칭도 ‘라멘’으로 통일됐다. 1971년엔 역시 이 회사에서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 누들’이 출시됐다.

이 두 가지 라면을 개발한 사람은 이 회사의 창업주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타이완(臺灣)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다.



우주식 라면도 개발

1910년,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온 뒤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을 졸업한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의 어려움 속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먹는 것, 즉 ‘식(食)’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안도는 자신이 개발한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특허 등을 독점하지 않고 국내외 업체에 사용을 광범위하게 허용했다. 한국에선 1963년 삼양식품의 전중윤 사장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을 한국에 처음 도입, 삼양라면이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첫 인스턴트 라면이다. 필자도 1960년대 후반 고교시절, 연탄불에 끓여 먹던 삼양라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닛싱식품은 자사 홈페이지에 “자사 이익만을 우선하지 않은 안도의 경영방침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라면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적고 있다.

도쿄 신주쿠의 코리아타운 인근에 있는 닛싱식품 본사 1층 로비엔 안도의 흉상이 세워져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고, 수많은 라면 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안도의 경영철학은 ‘먹는 것(食)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聖職)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식족세평(食足世平),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는 식창위세(食創爲世)라고 그의 자서전에는 소개돼 있다. 안도의 이 같은 경영철학에 의해 인스턴트 라면은 시대와 국경, 인종을 넘어 계속 사랑받는 식문화가 될 수 있었다.

안도는 91세 되던 2001년엔 일본우주개발사업단의 협력을 얻어 우주에서 먹을 수 있는 우주식(宇宙食)라면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그가 발명한 ‘스페이스 럼’으로 명명된 우주식 라면은 미우주항공국의 심사를 통과해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먹을 음식으로 선정됐다.

2005년 7월,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野口聰一)가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우주 스테이션에서 사상 처음 라면을 먹는 중계 장면을 보고 안도가 감개무량해하는 모습을 일본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1997년 전세계 라면생산메이커 최고경영자들의 회의체인 ‘라면 정상회의(RAMEN SUMMIT)’를 조직, 의장으로 취임해 매년 각국에서 회의를 개최하며 라면산업의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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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각│전 동아일보 기자, 일본 주오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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