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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⑦

‘4.5세대’ 5인방의 좌절과 야망

“고지가 바로 저긴데…”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4.5세대’ 5인방의 좌절과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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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정·성

온갖 풍상 겪은 ‘황친국척(皇親國戚)’ 장쩌민이 발탁한 뒤 승승장구

위정성(66)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상하이시 당 서기는 태자당 중에서도 ‘황친국척(皇親國戚)’으로 불린다. 이는 ‘황제의 가솔과 친척’을 일컫는 말로 거물급 세도가를 의미한다.

위 서기의 부친 황징(黃敬·1912~58, 본명 위치웨이·兪啓威)은 항일투쟁 및 혁명전사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톈진시장과 국가기술위원회 주임 겸 제1기계공업부 부장까지 지냈으나 1958년 46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했다. 황징은 항일투쟁 당시 한때 마오쩌둥(毛澤東)의 4번째 부인인 장칭(江靑)과 동거했다. 말 그대로 황친(皇親)인 셈이다. 이 때문에 장칭은 문화대혁명 때 베이징(北京) 부시장을 역임한 옛 연인의 처인 판친(範瑾·1919~2009, 본명 쉬미엔원·許勉文)을 심하게 박해했다.

황징의 숙부 위다웨이(兪大維)는 대만의 국방부장을 지낸 인물로 그의 아들 위양(兪揚)은 장제스(蔣介石)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의 딸 장샤오장(蔣孝章)과 결혼했다. 대만 최고지도자의 친척이니 국척(國戚)인 셈이다.



위 서기의 가족과 친척은 문화대혁명 때 직계와 방계가족 9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5남매 중 여동생 위후이성(兪惠聲)은 온갖 박해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려 자살했다. 모친 역시 반당분자로 몰려 감옥살이를 했다. 외할머니는 공사판에서 굶어죽었다. 같은 태자당인 시진핑 국가부주석이나 보시라이 충칭(重慶)시 서기 집안보다 훨씬 심한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그의 큰형 위창성(兪强聲)이 1985년 국가안전부 간부의 신분으로 미국에 망명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런 그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 서기와 건설부장, 후베이(湖北)성 서기를 거쳐 2002년 가을 제16차 당 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부친의 음덕과 장인, 형 등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이 제1기계공업부 부장일 때 수하에서 일한 사람이 바로 장쩌민 전 주석이다. 덕분에 위 서기는 장 전 주석과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됐다. 부친의 보살핌을 받았던 장 전 주석은 1980년대 초 전자공업부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밑에서 일하던 그를 적극 후원했다. 그가 상하이 당 서기로 오게 된 데도 장 전 주석의 지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4.5세대’ 5인방의 좌절과 야망
한국과 인연…빠른 승진에 한몫

그는 국무위원 겸 국방부장을 지낸 장인 장아이핑(張愛萍·1910~2003) 덕분에 군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아들 덩푸팡(鄧樸方)과 친한 둘째형 위민성(兪敏勝)의 도움으로 그는 덩푸팡이 설립한 중국장애인복리기금회 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위 서기는 한국 덕을 많이 본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는 1992년 수교하기 전부터 한국인 사업가가 진출하기 시작한 산둥성 칭다오시에서 1987년부터 1997년 건설부 부부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무려 10년간 시장과 서기로 재직했다. 지방 시장에 불과하던 그가 일약 중앙정부의 부부장으로 승진하고 이어 건설부 부장으로 오른 데는 한국인 기업가의 대대적인 진출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칭다오엔 상주인구로 등록한 한국인이 무려 11만명으로 베이징에 이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칭다오시 재정 수입의 3분의 1은 한국 기업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있다.

1945년 4월생으로 4.5세대인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에 도전하는 다른 태자당 출신 간부들보다 경력 면에서 앞선다. 그가 정식으로 처음 부장급(장관급) 직책을 맡은 것은 1998년 건설부 부장이었다. 같은 중앙정치국 위원이지만 왕치산 부총리는 2년 뒤인 2000년 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 주임(부장급)을 맡았다.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는 2001년에 랴오닝(遼寧)성 성장에 임명됐다.

장가오리 톈진시 서기나 류옌둥 국무위원도 2001년과 2002년에 정(正)부장급 직책에 임명됐다. 그보다 정부장급 승진이 빨랐던 사람은 1995년에 지린(吉林)성 서기를 맡은 장더장 부총리와 1997년 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서 정부장급으로 승진한 류윈산 중앙선전부 부장뿐이다. 하지만 2012년 가을 제18차 당 대회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5명 중 누가 최고지도부에 진입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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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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