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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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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 그 막돼먹음과 비천함

재벌가의 자제인 최철원 전 M&M 대표. 그는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폭행한 뒤 수천만원의 ‘맷값’을 건넨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우리에게도 혈통과 관계없는 아버지의 전통이 있었다. 스승과 임금이 그들이다. 서양처럼 여러 사람을 하나로 통일해서 부르는 호칭은 없지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해서 세 분의 위격을 동등하게 받들었다. … 서양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하면서 계급이 높은 스승이나 임금이 아니라 아버지의 의미를 강조했다. 우리는 서양의 하느님이 위치하는 자리에 실제의 아버지를 배치했다. 이것이 한국의 아버지다.” (전인권, ‘남자의 탄생’ 중에서)

스승도 아버지요, 법정 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도 아버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도 아버지요, 심지어는 믿고 섬기는 하나님도 아버지다. 군사독재 권력 아래서 우리의 사회적인 아버지들은 나쁜 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은 존경은커녕 타도 대상이었다. 좋은 사회적 아버지를 갖지 못한 시절, 우리는 불행했다.

오늘의 젊은이들도 믿고 따를 아버지를 갖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년배의 젊은이들을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와 덕목을 배운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쓴 시가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해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가족 내부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어떠한지를 일러주는 의미심장한 시다. ‘아이의 눈’은 편견과 이그러짐이 없어 투명하다.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풍부한 물질적인 혜택을 받고 자란 자식들이 아버지의 희생에 대해 나 몰라라 한다고 불효자라거나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책임을 자식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아빠는 왜 있을까”

이 시를 접한 뒤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아이의 시선이 투명하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고, 두 번째는 아이의 심리적 환경 속에 아버지의 자리가 없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이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냉장고나 강아지만도 못하다는 건 충격적이다. 당분간 아버지의 자리는 동결(凍結)이다. ‘부재(不在)’라는 이름의 자리다. 가족 안에서 부재한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오늘날 방황하는 젊은이들은 부성의 은혜와 축복 없이 자란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버지에게 적개심을 품는다. 세대 간의 불화에서 나온 이런 분노와 적개심의 누적으로 더러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사회적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나 ‘경제적인 기부자’가 아니다. 진짜 아버지다. 실패를 겪었을 때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자애로운 아버지, 위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나서서 구해주는 용감한 아버지, 내가 삐뚤어질 때 붙잡고 훈계하거나 야단쳐서 바로잡아주는 엄격한 아버지. 그게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세상은 점점 더 아버지가 없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본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는 힘과 권위를 가진 ‘영웅’이었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가? 인류가 겪은 산업화 이후의 불가피한 현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사회에서 수많은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녀야 했다. 산업화와 더불어 집에서 더는 아버지를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비가시성(the invisibility of the Father)이라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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