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대권 굳히기 3대 전략

먼저 제압한다. 세 불린다. 신뢰 얻는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1-20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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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적 대세론과 우파적 복지, 두 날개로 난다
    • 범야권과 복지전쟁 일전불사
    • 뉴 박근혜 스타일
    •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변수
    대권 굳히기 3대 전략
    2011년 새해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 2위군을 압도하는 고공행진이었다. 주관식 여론조사, 즉 응답자에게 보기를 주지 않고 선호 주자를 직접 기입하게 하는 조사에선 박근혜와 다른 주자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박근혜의 승부수, 그 결과는?

    ‘박근혜 대세론’이 탄력을 받는 와중에 박 전 대표는 싱크탱크를 언론에 공개했고 우파적 복지모델도 제시했다. 선두 주자의 이러한 선제적, 능동적 행보는 파격으로 비쳤다. 이 승부수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 ‘신동아’는 ‘대세론 조기점화’와 ‘우파적 복지’라는 두 가지 키워드(key words)로 박근혜 대선 스타트(start)의 함의를 취재했다.

    지난해 12월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김광두(서강대), 김영세(연세대), 신세돈(숙명여대), 안종범(성균관대), 최외출(영남대) 교수 등 5인 그룹을 주축으로 78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월10일엔 사무실 개소식이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1년여 앞둔 2006년 8월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대선조직인 안국포럼을 출범시킨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과 경선 경쟁을 벌이던 박 전 대표는 특별한 조직을 만들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0일 국회헌정기념관. 박 전 대표는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있었다. 그는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한다. 박근혜 복지론의 핵심은 ‘최저생활 보장과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기존 복지개념을 ‘생애주기별 복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전 생애에 걸친 보장’이라는 박 전 대표의 복지 개념은 그가 국회 상임위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택할 때부터 지론이었다. 2008년 9월15일 그는 미니홈피에 이렇게 쓴다.

    “먹거리와 연금, 육아, 건강과 의료 등….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겪는 삶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이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변화는 항상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으면서.”

    그동안 친(親)복지는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통했다. 보수는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구도가 일상적이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초등학생 무상급식’ 공약을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이를 반대했다. 지금은 전선이 더 확대됐다.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놓고 민주당의 서울시의회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 시장은 시장 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무상보육, 대학생 반값등록금 등 일련의 무상 시리즈를 쏟아내고있다. 이런 와중에 박 전 대표는 보수우파 진영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복지’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토끼는 남이 낸 길을 가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길로만 다니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여당 내 친이명박계 일각은 박 전 대표의 이런 행보에 비판적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1월8일 박근혜의 조기 대선 레이스에 대해 “본인들이야 한시가 급하겠지”라고 비꼬았다. 박근혜의 복지론에 대해선 “복지니 이런 건 어느 정부나 하는 것” “복지는 어젠다가 될 수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진보진영도 박근혜 복지를 “사기이고 허구에 불과”(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할까”(한겨레21 보도)라고 공격한다.

    정치전문가 집단의 분석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국가미래연구원 출범 등 박 전 대표의 이른 대선행보와 관련해 ‘(다른 경선 주자를) 먼저 제압한다, (당내에서) 세(勢)를 불린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세 가지 대선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복지에 대해선 “박 전 대표의 주요 선거 어젠다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2007년 대선의 쟁점은 경제였다. 성장주의, 신자유주의 풍조가 지배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경제가 성장해도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친다. 양극화가 점점 더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이런 흐름에서다. 국내에서도 계층 간 사다리의 붕괴, 빈곤의 대물림, 사회안전망의 미비, 청년실업부터 고령화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의 삶의 위기는 수많은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복지는 낭비라고 보는 기존 우파, 복지를 정략적으로만 활용하는 좌파와 차별화해 국민이 신뢰할 만한 우파적 복지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권 굳히기 3대 전략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서울 ‘양재시민이 숲’에서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모습.

    지지율 1위 후보의 가장 큰 맹점은 유권자들이 식상하기 쉽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친박계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예컨대 2009년 ‘손석희 스타일’이라는 책을 쓴 바 있는 진희정 작가가 ‘박근혜 스타일’이라는 책을 집필 중이다. 곧 출간될 예정이다. 대표도 그 작가의 인터뷰에 응했다. 청소년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박근혜 일상의 새로운 스타일이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치·복지 분야 전문가는 박근혜의 대선 조기 스타트 및 복지이슈 제기에 대해 그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우선 5명의 정치전문가 집단(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남궁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이종훈 전 CBS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이 ‘신동아’의 의뢰로 이를 분석했다.

    >>> 대선 조기 스타트 이유는

    김민전 | 박근혜는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다’고 패인을 분석한 것 같다.

    박성민 | 박근혜는 존재하는 그 자체가 대권 행보다. 이번 국가미래연구원 출범은 의원들이 다른 경선주자인 오세훈, 김문수에게 가지 못하게 견제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강원택 | 박근혜는 자기 외 유력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다른 주자들은 박근혜의 행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궁곤 | 객관적으로 보면 빠르다. 그러나 박근혜는 장단점이 드러난 상태라 대선행보를 조기에 가시화해도 별로 잃을 것이 없다.

    이종훈 | 국가미래연구원은 최고 전문가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 초기에 치고나온 것 치고는 인상적인 인선은 아니다. 진짜 실력자는 아직 안 나왔다는 느낌을 준다. 시간에 쫓겨 출범한 감도 있다. 마이너스 요인이다.

    >>> 박근혜 대세론 지속될까

    박성민 | 예측불가다. 인기 있는 후보가 나중에 탈락한다는 징크스는 중요하게 안 본다.

    이종훈 | 이명박이 못한다고 친이계가 박근혜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다. 지지표는 이미 박근혜에 결집된 상태다. 중도표를 더 얻어오지 않는 한 박근혜는 빠지면 빠졌지 더 늘어날 요인은 없어 보인다.

    강원택 | 예측불가다. 박근혜는 아주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기에 이전의 대세론 추락 경우와 다르다.

    남궁곤 | 예측불가다. 박근혜 입장에선 대세 굳히기에 매진하는 것 외에 다른 옵션이 없다.

    김민전 | 예측불가다. 다만 대세론 추락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주자 주변 사람들이 거만해진다. 이 때문에 국민 반감이 커진다. 둘째 주자가 아이디어를 더 가다듬고 혁신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정책이 뭔지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학자와 정치꾼이 몰려 내부권력투쟁에 휘말린다. 박근혜가 대세론을 유지하려면 이점을 유념해야 한다.

    >>> 친이계 및 내년 총선 전망은

    이종훈 | 이명박의 힘은 더 빠질 테지만 ‘박근혜가 과연 최종 후보자가 될 것인가’라는 회의론도 상존할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 의원들의 양다리 걸치기 행보가 활발해질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다소 유리할 것이다. 당내 핵심층은 박근혜가 대통령 되는 것이 야당이 되는 것보다 더 싫을 것이다. 박근혜의 총선 공천권 행사 권한이 커지는 게 반가울 리 없다. 청와대와 친이계가 선거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를 견제할 것이다.

    강원택 | 내년 총선은 구도 자체가 한나라당에 불리하다.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나서는 것이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도움이 된다. 박근혜가 지지율을 유지한다면 이명박이 막으려 해도 당의 무게중심은 박근혜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

    대권 굳히기 3대 전략

    서울 성북구 삼선초등학교의 무상급식장면(왼쪽). 2010년 12월1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무상급식 조례안 통과를 놓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격돌하고 있다.

    김민전 | 내년 총선은 민주당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나서면 불리한 국면을 조금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대선 주자로 나서기 위해서 총선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궁곤 | 한나라당이 유리하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대체할 만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가 총선을 지휘하는 게 당연한데 친이계와의 문제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책임론에서 박근혜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 박근혜 복지이슈 효과는

    이종훈 | 박근혜가 복지이슈를 잘 던졌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건 시의적절하다. 중도는 물론 진보세력까지 지지층을 확장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보수층도 복지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아직 민주당 표가 박근혜에게 옮겨갈 정도로 확신을 주는 상태는 아니다.

    남궁곤 | 민주당은 박근혜가 복지이슈를 선점했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리하는 것 같다. 대선에서 복지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안보·경제보다는 보육·급식 등 먹고사는 문제가 국민에게 더 피부 깊숙이 다가올 것이다.

    김민전 | 박근혜가 복지이슈를 꺼낸 건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 민주당과 복지이슈를 놓고 계속 경쟁할 것이다. 다만 2007년 제시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과 2011년의 박근혜 복지는 입장이 상충한다. 따라서 2007년과 생각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두 정책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박성민 | 박근혜가 민주당과의 복지 대결에서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복지프레임으로 중간층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이 무상시리즈를 들고 나오는 것은 야권연대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복지의 핵심은 재원인데 세금 이슈가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강원택 | 대선 때 제기될 이슈인데 일찍 시작됐다. 가라앉았다가 대선 때 다시 떠오를 것이다. 지금으로선 복지논쟁에서 박근혜와 민주당 중 누가 유리할지 평가하기 어렵다.

    진보·보수단체의 엇갈린 평가

    대표적인 진보·보수성향 시민단체 두 곳(참여연대, 자유기업원)은 ‘신동아’의 의뢰로 박근혜의 복지이슈인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만을 별도로 평가했다. 두 시민단체는 100점 만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를 보내왔다.

    진보성향인 참여연대가 이 개정안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점수는 80점이었다. 이 단체 사회복지위원인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박 전 대표가 복지국가를 핵심 어젠다로 내세운 점을 높이 샀다. “대표적 보수정치인이 시대의 징표인 복지국가에 대해 신념을 밝히고 정책 비전을 제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내용에 있어선 개정안만으로는 그 정보가 부족하다”고 했다.

    반면 보수성향인 자유기업원은 30점을 줬다. 복지에 대한 접근 관점, 실현 가능성에서 저평가됐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장은 “이 개정안은 정부가 국민의 모든 삶의 위험을 책임지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며 “국민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관계설정하에서는 복지정책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듯 두 시민단체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 것으로 나타나지만 두 단체가 공통적으로 높게 본 부분도 있다. 복지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김연명 교수는 “정책 수립, 대상자 선정, 관리, 평가, 사후 모니터링, 부처 간 협의를 체계화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어떤 집단도 강조하지 않은 지점으로 이렇게 체계화했다는 점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했다. 권혁철 실장도 “복지정책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부분은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자원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대권 굳히기 3대 전략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종인 전 장관(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은 박근혜의 조기레이스와 복지이슈와 관련해 ‘신동아’와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금의 건강보험체계를 만든 복지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여야의 정국현안과 연계해 가끔씩 목소리를 높이며 신랄하게 이야기했다. 다음은 김 전 장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무상급식을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민주당 서울시의회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상급식은 복지와 별 관계가 없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하면 나라 망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헛소리다. 무상급식은 1981년부터 도입된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같은 교육의 차원으로 봐야 한다. 애덤 스미스도 교육은 국가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잣집 초등학생이라고 의무교육대상에서 제외되지 않고 연말정산 자녀공제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

    ▼ 무상급식에 포퓰리즘 측면도 있지 않은가?

    “무상급식에 드는 재원 규모도 그렇고 오 시장이 이 문제를 필요이상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대통령 되겠다는 분이 현상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스타일리스트 정치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대 흐름이나 국민 의식과 전혀 관계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 무상급식에 드는 재원 때문에 다른 교육 투자가 줄어들 수 있지 않나?

    “우리가 가장 걱정해야 하는 건 인구감소다. 출산율이 엄청나게 내려가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의 교육과 함께 급식을 책임진다면 이는 학부모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일이다.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된다. 여권에선 ‘무상급식은 세금급식’이라는 말도 하던데 이 역시 난센스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세금서비스다.”

    ▼ 민주당의 무상의료도 타당하다고 보는가?

    “내가 현 건강보험 체계를 직접 입안했다. 무상의료는 무상급식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재정 규모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무상의료를 시행하면 수요가 폭발할 염려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환자 본인 부담 30% 규정을 둔 것이다. 사실 무상의료는 무상이 아니다.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더 징수하는 건 어렵다. 결국 건강보험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 상당한 반발이 따를 것이다. 복지정책의 원칙은 사회안전과 경제발전의 균형유지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복지다.”

    ▼ 민주당이 내놓은 대학생 등록금 반값 정책은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데, 그렇게 막연하게 일 하면 안 된다. 돈이 넘쳐흐르면 모르되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 진보진영은 지금 뚜렷이 내세울 게 없다. 그래서 복지로 한판 치를 생각이다. 그런데 재원 대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 그래서 이재오 장관이 ‘복지는 어느 정부나 하는 것이다. 어젠다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 사회 밑바닥의 현실이 매우 좋지 않다. 양극화가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가 말만 친서민이지 복지 분야에서 한 게 없다. 우리나라의 복지체계는 최저생활비, 연금, 의료보험, 실업수당 등 기본 형태가 갖춰져 있는 수준이다. 사회의 많은 곳으로 온기가 미치지 못한다. 선진국의 사회안전망에는 한참 못 미친다. 양극화 문제와 복지는 국내외에서 시대적 담론이 되고 있다. 개혁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복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국내의 보수진영은 복지를 낭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복지는 안보문제고 경제성장문제다. 국민이 잘 참다가 어느 시점에 폭발한다. 사회가 뒤숭숭해지면 경제도 안 된다.”

    “우파만이 복지 성공시켜”

    김 전 장관은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우파만이 성공한 복지를 이뤄왔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성향인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은 근로자들이 좌파의 선동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최초로 사회의료보험을 만들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가 된 것도 이웃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이 자기 나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보장을 강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의 베버리지 복지 프로그램은 보수성향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 최초로 기획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보수진영은 지금 진보진영이 친복지 이슈를 내놓으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라고 반대만 한다. 박근혜의 복지론은 우파가 남의 정책에 반대만 하지 말고 자기만의 친 복지정책을 꺼내어 이슈를 주도하자는 것이어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그와의 대화내용이다.

    ▼ 진보진영에선 박근혜 복지안에 재원문제가 빠져있다고 비판하는데….

    “법 개정안만 내놓은 상태이니 재정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구체안이 나오면 검증이 가능할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추구하는 방향 자체는 맞는 것 같다.”

    ▼ 복지프레임에서 보수는 진보에 늘 밀려왔는데….

    “복지에 보수적 복지와 진보적 복지가 따로 있지 않다. 누구의 복지안이 더 합리적인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가로 평가돼야 한다.”

    ▼ 박 전 대표가 국가미래연구원을 출범시키면서 조기에 대선레이스에 들어간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자기 계산 방식이 있겠지. 앞으로 차기 주자들은 자기 인맥과 활동상황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 돕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만들고 있는지, 그게 믿을 만한지를 철저하게 검증받아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왔다.”

    “관객 질리게 하는 지휘자”

    ▼ 왜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됐다고 보는가?

    “대선 주자는 대통령 당선되는 데만 급급했다. 집권하고 나선 대통령이 됐다는 황홀경에 빠져 들뜬 생활을 했다. 정신을 차릴 땐 시간이 없었다. 우리의 대통령은 막이 오른 뒤에도 무대 위에서 30분째 조율만 하고 있어 관객을 질리게 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 현 청와대는 어떠한 것 같나?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지난해 6·2지방선거의 한나라당 패배로 이어졌다. 여권의 재집권을 위해선 대통령이 자기 주장을 접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장 후보가 사퇴를 한 이후에도 청와대는 자기 주장만 계속 강변하더라. 국민에게는 오기로 비쳐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번 감사원장 인사파동을 보니 지금의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예스’라고만 대답하고 무조건 충성하는 것 같다. 누구 하나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추세면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등장할 것이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선도 어렵게 할 수 있다. 박근혜 등 어떤 한나라당 후보가 나와도 그렇다. 본선에서 어느 날 야당 후보 지지율이 갑자기 튀어 오를 것이다.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면 파장이 더 커진다. 총선 전에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고 본다.”

    ▼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유권자가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 대통령은 선거의 짐이 된다.”

    김 전 장관은 “박 전 대표가 지난 경선 이후에도 계속 줄·푸·세를 말하고 다녔다면 지금의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박 전 대표의 미래도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으며 만들어져가는 상태임을 암시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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