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세상의 지배자를 꿈꾸는 힘과 힘이 부딪칠 때, 부서져 내리는 것은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1-20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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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부터였을까, 서해가 이처럼 뜨거운 공간이 된 것은.
    • 그동안 우리가 한반도의 서쪽 뒷마당쯤으로 생각했던 이 탁한 바다는 순식간에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굉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 미국이 지배하던 20세기의 질서가 끝나고 중국이 그리는 21세기의 질서가 시작되는 공간. 어제와 같지만 또 전혀 다른 이 바다가 지금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 뻗어나가는 생각의 끝을 다잡으려, 서해를 가로지르는 배에 올랐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인천에서 중국 칭다오를 왕래하는 여객선 위에서 본 일출.

    “중국 동부 해안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한국에서는 서해(西海)라고 부른다. 북쪽의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 사이에서 보하이(渤海)만에 이어진다. 동중국해와의 경계는 일반적으로 제주도와 양쯔강(揚子江) 하구를 연결하는 선으로 보고 있다. 보하이만을 제외한 면적은 약 38만㎢, 평균심도는 44m의 얕은 바다다.” - 중국의 인터넷 백과사전 ‘바이두(百度)’의 ‘황해(黃海, Yellow Sea)’ 항목 중 일부

    검은 바다는 쇠처럼 무거웠다. 인천을 출발해 칭다오(靑島)를 향해 달리는 골든브릿지5호가 16시간의 여정 가운데 절반을 흘려보낸 새벽 2시, 망망대해로 접어든 배는 연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보따리 상인들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 보이지만, 초행자는 걸음을 떼기조차 쉽지 않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불빛 하나 찾을 수 없는 바다 위를 홀로 가로지르는 배.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끓는 듯 웅웅대는 엔진소리가 안쓰럽다.

    우리는 알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이 바다를 동중국해와 잘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은 ‘동중국해에 속한 황해(Yellow Sea of East China Sea)’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무심해도 좋을 만큼 서해는 충분히 넓었고, 지나간 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없는 공간에 가까웠다.

    눈으로는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힘. 이 어둠의 공간에 팽팽하게 뻗친 힘들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거대한 힘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이 바다 위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는 이 바다를 가로질러 서울을 잇는 온갖 사람과 화물, 정보의 그물망을 구축해놓았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중국의 국제정치는 이 바다를 러일전쟁 이후 처음으로 세상의 지배자들이 행마를 고민하는 체스판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자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여 년, 후자는 이제 막 시작한 변화의 흐름이다.

    지금 이 바다는 좁다. 바다가 치열해질수록, 이 공간에 미치는 힘의 크기가 커질수록, 바다 위를 오가는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과 재화와 정보의 그물망이 두터워질수록 서해는 점점 좁아진다. 세상의 지배자를 꿈꾸는 거대한 힘들이 공존하기에 38만㎢는 너무 비좁은 것이다.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어두운 바다를 내려다보는 동안, 생각은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칭다오항에 기항한 배에서 출입국 검색대로 이동하는 버스 안.

    문미정(가명). 43세. 그녀는 이 바다 위에서 산다. 일주일에 여섯 밤, 96시간을 이 배 위에서 보내며 60㎏짜리 짐 2개를 나르는 보따리 장사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 ‘라오반(老板·사장)’이 연결해준 탁송물을 들고 인천에 왔다가, 시장에서 사 모은 곡물을 들고 칭다오로 간다. 오후 4시에 배에 오르면 반대편 항구에 내려 통관수속까지 마치는 것은 다음날 정오. 네 시간 뒤에는 다시 돌아오는 배에 올라야 하는 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샤워도 빨래도 모두 배 위에서 해결하는 문씨는 스스로를 ‘배숙자’라고 부른다. 노숙자에 빗대 자조하듯 쓰는 말이다.

    인길환(가명). 역시 43세. 문씨의 조선족 남편이다. 15년 전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던 그는 지난해 1월 강제추방 당했다. 전에 혼인신고까지 했던 한국 여자는 약속했던 영주권 취득절차에 협조하는 대신 전세금 3000만원을 들고 사라졌다. 목재공장에서 공장장을 지낸 그가 지금은 칭다오에서 음식점 설거지를 하고 있다. 수입은 10분의 1로 줄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내와 지내기 위해 고향인 옌지(延吉)를 떠나 칭다오에 머물고 있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남편이 추방을 당했을 때는 이미 함께 산 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엉켜있던 인씨의 이전 혼인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법원을 드나드느라 늦어졌다. 신고 1년 뒤에야 영주권이 나오는 규정에 막혀 두 사람은 지금 함께 살 수 없다. 문씨가 월수입 60만원에 불과한 배 위의 삶을 택하게 된 이유다. 사정을 설명해 하루라도 빨리 영주권을 받으려 찾아간 영사관에서 한국인 담당자는 만날 수 없었고, 조선족 출신의 영사부 직원은 “자꾸 이렇게 찾아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차갑게 말했다.

    오늘의 승객 500여 명 가운데 200명 남짓은 상인들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섞여 있는 250명 규모의 청인상인회(靑仁商人會)는 두 달 이상 배를 타야 파란색 정식회원증을 만들어준다. 한때는 다달이 수백만원씩 버는 시절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잘해야 80만~90만원이 전부다. 돈을 위해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는 문씨처럼 양쪽을 오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대부분. 중국과 한국의 접촉면이 열린 이래 20여 년 세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남모를 사연을 하나씩 품게 된 사람들만 이 바다에 남은 셈이다. 급속도로 두터워진 한중 경제 네트워크가 사람들의 삶에 남긴 부산물이다.

    변화의 흐름

    “산업화를 통한 국력증대 속도의 차이에 의해 다른 강대국들보다 상대적으로 급성장하는 국가가 생기게 되고, 이러한 국가는 기존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한다. 도전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을 따라잡는 세력전이 현상이 일어날 때, 이들 간에는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도전국가가 현상타파를 원하는 불만족국가일 경우 전쟁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지고, 도전국가의 성장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위험은 더 커진다.” - ‘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 중에서 ‘세력전이이론’ 부분 요약

    일반 여행객과 상인들이 섞이는 경우란 쉽지 않다. 여행객들의 방은 주로 배 앞쪽, 상인들의 공간은 뒤쪽이다. 곳곳에 붙어 있는 금연 표지판에 아랑곳없이 상인들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운다. 중국인 상인들의 내기 장기판과 한국인 상인들의 고스톱 판이 층계참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맥주로 얼굴이 불콰한 사람들이 한국말과 중국어를 뒤섞어가며 너나들이 농담을 던지는 동안, 점 100원 심심풀이 고스톱 판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는 불청객 따위는 단박에 외부인임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곳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이들만의 마을이다. 하나의 공화국이다.

    이 ‘인터내셔널’한 공동체의 분위기는, 그러나 지난 몇 달 사이만 봐도 금방 느껴질 만큼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2층 침대가 가득한 선실에서는 덜 흔들리는 1층이 2층보다 좋은 자리다. 창문이 보인다면 최고다. 좋은 자리는 대부분 한국인 고참 상인들이 우선권을 갖던 그간의 관례에 중국인 상인들이 한꺼번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 최근의 일이다.

    새로 이 길에 들어선 한국인 상인들이 중국인 ‘선배’들의 텃세에 고달파하는 일도 생겼다. 1층에 누운 중국인 상인들이 침대 사다리를 오르는 삐걱 소리에 짜증을 부리는 일이 잦아 신참들은 이들이 곯아떨어질 때까지 로비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식이다. 중국인이 8할 가까이를 차지하는 상인회의 회장을 한국인이 맡고 있는 것도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더 이상 중국이 못사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등감 따위는 이젠 없다.

    문씨는 중국인 상인들과 잘 지내려 애쓴다. 지금 잘해주면 언젠가 중국인 상인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때 자신에게도 잘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그 기대가 맞아떨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배 위에 만들어진 ‘힘의 균형’이 뒤집히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예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이 배 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씨가 남편에게 중국 국적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영주권이면 충분하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중국이 어떻게 될지, 한국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중국인들이 한국 주민등록증을 동경하지만 언제 한국인들이 중국 공민증을 부러워하는 날이 올지 알 수 없다. 그때가 되면 문씨가 남편 덕에 중국 영주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천과 칭다오를 오가는 배 위의 사람들은, 그 변화의 흐름을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외정책이 도광양회(韜光養晦·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에서 돌돌핍인(??逼人·기세등등하게 호통치며 상대방을 윽박지른다)으로 변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반발, 남중국해 곳곳에서 벌어진 영토분쟁,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금융 시스템에 대한 중국 당국자들의 날선 비판이 모두 한 묶음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동아시아의 일에 미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소리다.

    신냉전의 최전선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지켜야 할 국제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 이후 기대와는 달리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움직임을 노골화하자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중국의 급부상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은 백악관은 한미 합동훈련을 위해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서해에 밀어 넣었다. 제국의 쇠퇴를 인정할 수 없는 지난 세기 지배자의 노익장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중국의 의지, 그리고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지가 이 바다에서 맞부딪쳤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사람들은 ‘신(新)냉전’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후이취안만의 해변에서 본 마천루 숲의 칭다오 신시가.



    이를 가장 빨리 읽은 것은 서울이 아닌 평양이었다. 천안함 사건이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한 이들은,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어깨들의 힘겨루기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9개월 뒤 연평도를 향해 불을 뿜은 포격의 숨은 뜻은 자신들이 언제든 이 바다를 분쟁의 최전선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과시였다. 새로운 대립의 전선이 두터워지면 옛 냉전 시절 소련에 기대어 생존을 도모했듯 중국의 등 뒤에 숨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이 날카로움을 새로운 생존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이었다. 누구도 원치 않는 또 다른 냉전의 시대로 모두를 끌어 잡아당길 힘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선포하는 회심의 한 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다에는 경계선이 없다. 철책도 없다. 배가 중국의 영해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는 어떤 징표도 없다. 경계선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어져 있을 뿐이고, 그 추상을 형상으로 만든 해도(海圖) 위에 그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은 힘이 세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놓고 벌이는 고뇌가 담겨 있는 선이다. 네가 내 목숨을 겨누려 하느냐, 그렇다면 너 역시 무사할 수 없으리라.

    미국의 항공모함 타격전단(Carrier Strike Group). 80여 대의 전투기는 물론 구축함과 잠수함, 상륙부대까지 편성된 ‘떠다니는 제국의 영토’다. 조지워싱턴호가 일본 요코스카 항을 출발해 서해로 들어서면 중국의 심장 베이징이 코앞이다. 신년 벽두 외신을 장식한 중국의 항공모함 마오쩌둥호 건조계획과 젠(殲)-20 스텔스기 시험비행 소식은 이 바다에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는 차가운 으름장이다. 이렇게 해서 두 나라의 국부(國父)는 서해에서 조우하게 되고, 지구가 생겨난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강대한 군사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밀도로 이 바다를 메워나간다. 동서 냉전의 최전선이 휴전선이었다면 새로운 냉전의 최전선은 서해다. 더 이상 10년 전, 20년 전의 그 바다일 수 없는 이유다.

    연평도 사건 직후 상인들의 휴대전화는 “서해가 위험하다는데 괜찮으냐”는 안부전화로 시끄러웠다. 다른 모든 동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최대교역국은 중국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분의 절반이 중국에서 나왔다. 이 바다를 타고 깔려 있는 무수한 그물망은 천천히 드리우는 신냉전의 그늘에 부초처럼 흔들린다.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 짝짜꿍은 미국과만 하느냐”는 베이징의 질시는 언제든 그 네트워크 속의 삶들을 위협하는 칼이 될 수 있다. 인천과 칭다오를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은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서해가 이처럼 뜨거워진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다시, 생각은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桑田碧海, 天地開闢

    “‘화이(華夷)질서론’에 따르면 고대 이래로 중국의 천자가 천하를 다스렸다. 여기서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었고, 동서남북의 주변국들은 야만국이었다. 이 천하세계에서 중국의 주변국들은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치고, 중국은 이들에 대해 책봉과 회사(回賜)로 답하는 위계적 질서 관계가 주종을 이루었다.” - ‘중국의 내일을 묻다’ 중에서

    ‘中國公安(중국공안)’ 네 글자가 번쩍거리는 칭다오 여객선터미널의 출입국 심사대. 하염없이 줄이 늘어진다. “신참이로군. 뭘 저렇게 오래 봐?” 한가득 가방을 챙겨든 한국인 상인의 입에서 불평이 흘러나온다. 한국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한 사람당 30초면 족한데 중국은 1분도 넘게 걸린다는 전문적인 평가도 곁들여진다.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훅 몸을 감싼다. 건축용 가림막과 비계 더미가 즐비한 거리. 터미널이 자리한 칭다오의 서쪽 외곽지역은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수십 년 된 다세대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아찔한 고층 아파트를 새로 지어 올리는 건설인부들이 낡은 안전모와 작업복을 걸친 채 잰걸음친다.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에서 온 지 3년이 되어간다는 택시기사는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굴다리 밑 삼거리를 요령 좋게 빠져나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들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그게 중국식이다.

    배에서 볼 때는 안개에 싸여 있던 칭다오의 날씨가 금세 표변했다. 맑았다가 흐렸다가 눈이 왔다가 다시 맑아진다. 시 정부 청사가 자리한 시내 중심가는 10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공기가 사뭇 다르다. 곳곳에서 눈에 띄던 빈터는 모두 사라졌고, 화려한 첨단빌딩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때만 해도 가장 휘황찬란해 보였던 호텔 샹그릴라가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다. 눈발이 흩날리는 도시의 중심대로 샹강중루(香港中路)는 사회주의 계획도시에서만 가능한 규모를 과시한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20이 쓰촨성 청두의 한 군사기지에서 시험비행에 앞서 1월7일 일본 교도통신의 카메라에 잡혔다.

    선샤인 백화점. 이 거리의 정중앙에 자리한 대표적인 명품 백화점이다. 3층으로 이뤄진 초현대식 매장을 가득 메운 고가 브랜드들은 도쿄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아우라가 아찔하다. 2조2000억달러가 넘는 세계 1위 외환보유고의 나라, 백만장자 숫자가 미국을 추월했다는 중국의 명품 소비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해외 주요 공항 면세점을 중국인 여행객들이 점령한 것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흔은 넘은 듯한 노인이 인민모를 손에 쥔 채 구걸을 하고 있는 교차로는 그로부터 정확히 두 블록 떨어져 있었다. 신호등에 걸린 도요타 렉서스 앞 유리를 더딘 손길로 훔쳐내고는 차창을 두드리며 모자를 내민다. 얼굴 가득히 찌든 신산함. 매정하게 출발하는 자동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노인 뒤로 가족인 듯한 아주머니와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다.

    J커브. 미국의 정치경제 컨설턴트 이안 브레머가 2006년 동명의 저서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한 국가의 안정성과 개방성 사이의 관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알파벳 J 형태의 곡선이 나타난다는, 개방 초기에는 체제의 안정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지만 최저점을 통과하고 나면 개방성이 높아질수록 안정성도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수치를 대는 것이 새삼스러울 만큼 엄청난 중국의 경제성장과 그에 따라 표면화되는 빈부 격차 문제와 관련해 당시 서구의 상당수 전문가가 중국은 아직 이 곡선의 최저점을 지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정치적 자유의 부재와 일당독재 시스템은 또 다른 이유였다. 중국이 과연 파열음 없이 최저점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중국의 방식으로는 결코 항구적인 번영을 구가할 수 없으리라는 비관론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묵시록이었다.

    중국의 새로운 길?

    그러나 이제 중국은 자신들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계획경제로 시장경제의 난점을 해결한 유사 이래 최초의 경제개발 방식을 실현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엄청난 숫자의 농민공(農民工)과 지역 간 격차, 소수민족 문제는 공산당 일당 중심의 강력한 정치체제만이 수행할 수 있는 탄력적인 사회정책으로 돌파해내겠다고 말한다. 월가의 금융자본들도 인정하듯 빠르면 2020년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자신들이야말로 이미 ‘새로운 스탠더드’라는 우월감이다. 서구식 정치이론과 경제이론으로 수천 년 동안 천하의 중심이었던 중국의 저력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개발 국가들에 자신들의 길을 따라오라는 요구는 이 새로운 스탠더드를 확산해 자신들의 영향권을 넓혀나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름하여 ‘베이징 컨센서스’, 대규모 원조와 투자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맞서는 새로운 국제체제를 만들어내겠다는 야심이 가득하다. 78개국 300여 곳에 들어선 공자학원(孔子學院)은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만방에 관철한다는 원대한 계획의 전초기지다.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저자 마틴 자크는 중국이 경제 패권을 거머쥐고 난 이후의 동아시아를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달러 대신 위안화가 무역결제의 수단이 되고, 중국어가 영어 대신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미래다. 중국의 문화가, 중국 정부의 조직원리가 보편적 원칙으로 통용되는 미래다. 그 새로운 세상이 서해를 면해 중국과 이웃하는 한국에 어떤 선택을 강요하게 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그동안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에 목을 매고 여기까지 왔다. 앵글로색슨이 모는 차를 타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고, 그들이 먹는 것을 먹으며, 그들의 언어를 내 모국어만큼이나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폭발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박은 우리를 규정해온 키워드나 다름없었다. 따지고 보면 1980년대의 민주화 열기 또한 보통선거와 수평적 정권교체를 핵심으로 하는 서구식 민주주의, 서구식 인권개념에 대한 욕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좇아온 글로벌 스탠더드가 더 이상 스탠더드가 아닌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호언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보여준 태도, 강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바로 그 태도는 다분히 글로벌 스탠더드와 자신들은 상관없음을 노골화하는 제스처였다. ‘책임 있는 대국의 의무’에서 ‘책임’은 누가 규정하는 거냐고 살천스레 되묻는 것이다.

    100년의 시간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2010년 12월22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당섬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새로운 주류를 만들어낸다면, 한국 또한 그 주류의 일원이 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 일본과 함께 삼각동맹을 구축하며 버틸 것인가. 지나간 100년은 역사 이래 한국이 처음으로 중국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웠던 100년이었다. 그리고 그 100년은 중국이 ‘치욕의 역사’라고 부르는 100년이었다. 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부르짖으며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이 수천 년 역사상 가장 약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과 함께 서 있을 때 중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까. 안보적으로는 베이징발(發) 힘의 정치를 막아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협력하는 길이 과연 가능할까.

    거꾸로 중국의 질서를 수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 이후의 미래는 지난 100년 이전의 역사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생존을 도모했던 옛 역사는 아닌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중국에 의지하며, 중국에 규정당해야 하는 미래는 아닌가. 알량한 소중화(小中華)의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현실의 울분을 버텨야 하는 세기는 아닌가. 조공체제의 핵심은 권력의 정통성이 천자의 나라에서 온다는 데 있다. 과연 한국은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대신, 천자의 나라가 인정해야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국이 지배했던 20세기의 갖가지 부작용을 말하는 이들은 쉽게 중국의 부상을 말하고, 중국이 그려갈 새로운 질서를 말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미래는 지난 세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질서가 한국에 덜 가혹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그간 우리가 신념처럼 일궈온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반도의 사람들

    “구남아, 너 서울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라.” - 영화 ‘황해’중에서

    칭다오 공항에서 출발한 중국동방항공 MU559 여객기.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다가 햇빛에 반짝거린다. 배 위에서 본 그 바다가 과연 맞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40여 분을 날아 당도한 한국의 서해안, 섬들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불과 50여 일 전 저 섬 가운데 하나에 쏟아져내린 포탄들을 연상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규남. 57세.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에 충남 당진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에 시집와 35년을 살았다. 그의 집은 폭격을 맞지 않았다. 대신 포탄을 맞은 나뭇가지가 그의 가슴과 머리를 때렸다. 18일간의 병원생활로 겉 상처는 나았지만 여전히 보건소에서 타온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쏟아지는 폭음, 화염, 연기. 하루 두세 시간의 짧은 잠 속에서 그는 늘 어딘가를 하염없이 허둥지둥 헤매고 있다.

    바다를 향해 뻗은 힘들의 겨루기는, 떠오르는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팽팽한 긴장은, 서해를 터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협한다. 먼 서해 위에서 펼쳐지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이를 이용하려는 평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수십 배로 증폭되어 한반도 품속의 작은 서해를 덮쳤다. 판과 판이 부딪칠 때 부서져 내리는 것은 그 틈새에서 평생을 살아온 바로 그 사람들이다. “왜 꼭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미국이랑 중국이랑 다 잘 지내면 되는 거 아녀? 우리가 다들 잘 지내게 만들면 되는 거 아녀?” 배 위 술자리에서 벌게진 얼굴로 중년의 상인이 고함치듯 던진 말이 구름 위로 겹친다. 순진한 이상론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 짧은 한 마디가 두고두고 가슴을 찌른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황해’는 주인공 구남의 마지막을 이 바다에 묻었다. 빚을 갚기 위해 장기를 팔 것이냐 살인을 위해 밀항할 것이냐,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가혹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야 했던 영화 속 조선족 남자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 저 바닷속 어디엔가 잠들어 있다. 그런 사연은 짐짓 모르는 척, 쪽빛 파도가 천연덕스럽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물길을 헤쳐 나가는 어선 하나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선택은 과연 언제까지 유예될 수 있을까. 양자택일 외에 다른 길을 우리는 과연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은 끝없이 가지를 쳐나간다.

    * 참고문헌

    ‘중국의 내일을 묻다’(문정인) ‘21세기 중국외교정책’(서진영) ‘중국의 강대국화’(정재호 외)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마틴 자크) ‘J커브’(이안 브레머) ‘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강정인 외) ‘중국 해군의 증강과 한·미 해군 협력’(한국해양전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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