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블랙 컨슈머의 세계

세 업체에 ‘이물질 햄’ 허위 신고 인상 험악한 지인 대동해 협박

  • 김희연 | 신동아 객원기자 foolfox@naver.com

    입력2011-01-20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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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명 ‘쥐식빵’ 사건이 연말연초를 뜨겁게 달궜다.
    • 한 제과점 식빵에서 쥐가 나왔다며,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며 논란이 됐다.
    • 경찰 수사 결과 이 네티즌의 자작극임이 밝혀져 그는 결국 경찰에 구속됐다.
    • 이 사건 이후 악의적인 의도로 기업에 접근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블랙 컨슈머의 세계

    ‘쥐식빵 사건’으로 블랙 컨슈머 논란을 일으킨 빵집 주인 김모씨가 12월31일 서울 수서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

    제과점에서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성탄절을 앞둔 지난해 12월23일 새벽,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쥐가 들어간 식빵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올린 곳은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의 ‘과자빵 갤러리’로, 누리꾼들의 손 빠른 대응에 힘입어 이 사진은 단시간에 큰 이슈가 됐다. 빠른 것은 누리꾼만이 아니었다. 해당 업체인 파리바게뜨는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 신고하는 한편 경찰에도 수사를 의뢰했다. 반죽을 얇게 밀어 부풀리는 식빵의 특성상 제조과정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해명이었다.

    수사 결과는 경쟁업체인 ‘뚜레쥬르’ 점포 운영자의 남편인 김모씨의 조작으로 판명됐다. 김씨는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다. 피의자인 김씨도 사태가 이토록 크게 번져나갈 줄 예상하지 못한 채 구속되기 전까지 큰 심적 부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같이 해당 기업에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거나 보상금을 노리는 소비자를 일컬어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라고 한다. 악성이라는 뜻의 영어 ‘Black’과 소비자를 가리키는 ‘Consumer’의 합성어다.

    블랙 컨슈머 논란은 식품처럼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고, 공정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업종에서 종종 터져 나온다. 입으로 먹어서 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한 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다른 제품보다 훨씬 민감하다. 행여 블랙 컨슈머가 공정 과정을 왜곡했다는 사실이 판명되더라도, 좋지 않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는 타격을 입는다. 사람들은 처음의 충격을 나중의 결과보다 잘 기억한다.

    블랙 컨슈머는 실제로 규정하기가 힘들다. 일단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한 상황에서 그것이 상품을 만든 기업의 과실인지, 소비자의 일방적인 주장인지를 판가름하는 게 관건이다. 끝내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면 최초에 문제를 제기한 고객이 블랙 컨슈머였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한국소비자원이나 소비자단체 측에서는 아예 블랙 컨슈머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정부에서 설립한 한국소비자원 측은 “민원을 구제하는 입장에서 블랙 컨슈머라는 용어를 쓸 수는 없다”면서 “우리에게는 모두가 민원일 뿐”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소비자단체 중 하나인 사단법인 소비자모임 측에서도 “블랙 컨슈머라는 말을 쓰지도 않고, 해당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기업이라면 어떨까. 다수의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은 내부적으로 악성 민원 처리 규정과 절차와 전담팀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고객을 분류해놓았다는 사실을 외부에 밝히기를 꺼린다. 고객의 반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고객 처지에서는 정당한 불만을 제기한 자신을, 기업이 블랙 컨슈머로 여긴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표시할 것이다.

    ‘요주의 소비자’는 따로 분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이번 ‘쥐식빵’ 소동이 워낙 특수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피의자인 김씨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됐다. 김씨가 한 행위는 명백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블랙 컨슈머는 범죄자가 아니라, 과도한 대응을 하는 소비자다. 이 과도한 대응의 범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업에서조차 블랙 컨슈머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조윤미 본부장은 “위법 행위와 적법한 소비자 민원을 구분하지 않으면, 블랙 컨슈머에 대한 적절한 방책을 논의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홈쇼핑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만큼 블랙 컨슈머가 접근하기 쉬운 업종이다. 홈쇼핑의 경우 한 철 잘 입고 난 옷을 바꿔달라거나 1년 전 구입한 화장품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하는 악성 민원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상습적으로 반품 요구를 하는 고객은 기업의 요주의 명단에 올라 있다. 황색, 적색 등으로 등급을 구분해 담당자가 따로 처리한다. 단순히 자주 반품이나 환불을 요구한다고, 블랙 컨슈머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요구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정하고, 관련 데이터를 누적 관리한다.

    민원이 제기되면 기업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때도 있다. 문제가 크게 퍼져나가느니, 일정 수준에서 보상을 해주고 마는 것이다. 업체에서는 쉬쉬하지만,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한 지인을 데리고 와서 보상을 요구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비자도 없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블랙 컨슈머의 첫 번째 특징은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랙 컨슈머는 같은 제품으로의 교환이나 제품 가격에 상응하는 환불에 만족하지 않는다. 제품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따른 의료비 등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금액을 요구한다. 두 번째 특징은 언론이나 인터넷에 제보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표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비자 피해보상 규정을 뛰어넘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협박하는 소비자는 기업의 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 식품업체의 가공 햄에서 벌레가 나왔다고 허위 신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30대 남성 고객이 방송국과 식약청에 신고하겠다고 해당 업체에 접촉해왔다. 업체 측이 바로 다음날 방문해 식품 수거를 요청했으나 고객이 거부해 사진만 찍었다. 다시 사흘 후 제품생산 담당자가 확인할 수 있었으나 눈으로는 판별이 어렵고 원인도 불명확했는데, 업체 측에서는 보상 합의를 할 의향이 있었다.

    이 남성은 햄의 성분 분석을 거부하며 8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신고 열흘 만에 기업 측은 공정상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원칙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또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이 의심스러워 조사를 해보니 비슷한 내용의 신고가 다른 업체 두 곳에도 들어와 있었다. 결국 이 남성은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역시 ‘쥐식빵’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범죄 사례에 해당한다.

    ‘판정 불가’ 사례 40%

    법정까지 가지 않고는 블랙 컨슈머의 의도를 가려내기란 쉽지가 않다. 식품에 이물이 들어간 사례만 집중적으로 살펴봐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식약청은 매년 식품에 이물이 들어간 것으로 보고된 사례를 발표한다. 현재 통계가 잡혀 있는 2010년 상반기(6월)까지 총 4217건이나 된다. 기업체 보고가 2815건, 소비자 신고가 1402건이다. 기업체에 신고가 들어오면 식약청에도 보고하도록 돼 있어 이대로 처리하는 기업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물질의 종류는 벌레가 1위로 37.7%인 1591건이다. 뒤이어 금속 10.2%, 플라스틱 6.6% 순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조단계와 유통단계에서 들어간 것이 각각 9.3%이고, 소비단계에서는 755건 23.0%이다. 이물이 들어간 것으로 가장 많이 보고된 식품은 면류이고, 다음은 커피류다.

    기업과 소비자 간 시비는 판정 불가로 처리된 이물에서 일어난다. 2010년 상반기 식약청 판정 불가 사례는 1301건으로 신고 건수 전체의 39.6%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이물을 분실했거나, 훼손했거나, 판정이 어려운 경우가 포함된다. 또한 조사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면류를 취급하는 식품업체 관계자는 “면은 150℃의 고온에서 튀기고, 스프는 영하 40℃ 이하에서 냉동건조하기 때문에 온전한 형태의 벌레 같은 것이 나오기는 힘들다”면서도 “원인불명으로 처리되면 소비자가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내는 블랙 컨슈머라는 얘기냐’며 강하게 항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찾아와 보상 금액으로 1억원을 요구하던 고객이 한국소비자원과 식약청에 조사를 의뢰하고 기업 전담팀이 제조와 유통 과정을 설명하는 단계에서 누그러진 일도 있다고 한다.

    식품은 식약청 관할이지만 소비자 피해는 한국소비자원이 담당한다. 한국소비자원은 우선 소비자 상담을 받고 분쟁조정국 관할하에 검사와 조사로 사실을 확인해 합의를 유도한다. 기업과 소비자가 합의에 실패하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가고, 추가 조사 등을 거쳐 조정을 결정한다. 여기에서도 한쪽이 불응하면 재판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보상 기준도 정해져 있다. 식품의 경우 용량이 부족하거나 이물이 들어갔을 때는 교환하거나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부작용이나 파손 사고에 대해서는 치료비나 경비를 지급한다. 품목마다 방문판매법, 공정거래법, 제조물책임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보상 기준을 마련해놓았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정 사례를 살펴보면 보상 액수가 블랙 컨슈머의 기대만큼 높지 않다. 변질된 음료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대한 배상금액이 20만원, 뜨거운 커피로 인한 화상 치료비가 64만원 등이다. 커피 사례의 경우, 소비자는 향후 성형수술 등을 이유로 500만원을 청구했으나 구체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보상금을 노린 블랙 컨슈머가 끼어들 틈이 많지는 않은 셈이다. 그 대신 기업 이미지 훼손을 무기로 뒤에서 협박하는 악질적인 사기 행위가 가끔씩 발생한다.

    식품이 블랙 컨슈머의 타깃이 되는 배경에는 일상에서 접하기 쉽고, 파급 효과가 크다는 이유 외에도 제조부터 소비까지 어느 단계에서든 이물이 투입되거나 제품이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조·보관·유통 과정은 물론 소비자가 구입한 후에도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음식을 뜯어서 바로 섭취하지 않고 나눠서 먹는 일도 많다.

    악성 민원, 소비자에게 득 될까

    식약청 대변인실의 안만호 서기관은 “제조 과정에서 섞여 들어갔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소비자가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 신고를 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청은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블랙 컨슈머에 엄격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블랙 컨슈머가 사기·공갈 단계까지 넘어가지 않도록 방지할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논의 중이다.

    한 예로 2008년 슈퍼마켓에서 유통되는 빵에서 지렁이가 발견됐다는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일명 ‘지렁이 단팥빵’으로 TV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된 사건이다. 신고자가 기업이 아니라 방송사에 먼저 제보를 해서 타격이 더 컸다.

    그러나 ‘지렁이 단팥빵’의 사진이 공개되자마자 의문이 제기됐다. 해당 빵에는 단팥 고물이 갈려서 자동 투입되는 데다 수분이 당도가 높은 쪽으로 빠져나가는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문제의 지렁이는 원형 그대로 남아 있었다. 250℃ 고온에서 20분 이상 구워지는 과정까지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었다. 조사 결과 제보자가 제품을 뜯은 상태로 장시간 노상에 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적어도 블랙 컨슈머가 나타날 때면 식품 위생에 대한 세간의 주의가 환기되는 효과가 있다. 해당 기업의 이미지는 타격을 입지만, 어떤 측면에서 소비자에게는 좀 더 이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대목이다.

    앞의 ‘지렁이 단팥빵’ 사례에서 제조 기업은 해당 라인의 생산을 전면 중지하고, 시중에 유통된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 그 뿐만 아니라 유사 품목의 재고도 전량 폐기했다. 정확한 진상은 3만5000개 이상의 정상적인 빵이 폐기된 후 드러났다. 결국 블랙 컨슈머에 대비한 보상비, 기업 이미지 회복을 위한 홍보비, 제품 회수로 인한 손실 등은 전체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과 소비자 간 신뢰 회복 필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블랙 컨슈머 사건은 생계형 범죄로도 볼 수도 있다. 세계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에 굵직한 사례가 많았다. 법정에서 처벌받은 사례만 봐도 악성 민원을 제기한 소비자의 직업은 건설현장 노동자, 시간강사 등으로 경제적 위치가 불안정한 편이었다.

    악질 범죄야 개인의 잘못이지만 기업이 블랙 컨슈머를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소비자는 크고 작은 기업 광고에서 ‘효과 없으면 환불’이라는 식의 문구를 본다. 파는 입장에서는 무슨 말이든 못하랴 싶지만, 사후에 블랙 컨슈머가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기업이 제조와 판매 행위에서 책임 있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블랙 컨슈머가 발을 붙일 공간도 작아진다.

    또 악성 민원을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조용히 넘기려는 기업의 태도가 사기꾼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몇 년간 홈쇼핑 고객만족센터에 근무한 한 관계자는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손님이 기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된다”면서 ”기업의 대응이 이른바 진상고객을 부추기는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으로는 보상을 받아야 할 소비자가 블랙 컨슈머로 오인받는 경우도 나타난다. 제품을 회수하고 환불해주면 잠재울 수 있는 일인데, 보상을 지연시켜 소비자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불만이 잘 해결되면,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는 소비자가 기업의 처리 태도에 화가 나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를 블랙 컨슈머로 의심하고, 소비자는 기업이 사건을 은폐한다는 인상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렇듯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가 약해지는 것은 사회적인 손해이기도 하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벌어진 ‘쥐식빵’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도 불만사항이 발생했을 때 요구사항이 제품과 서비스 향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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