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2014

7장 인민해방군

  • 입력2011-01-21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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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은 반란을 일으킨 2군단사령관 김경식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폭탄을 보내지만 실패한다.
    • 그 즈음 12군단장 이기준도 김정일에게 반기를 들며 세를 규합한다.
    • 김경식이 중국에 도움을 청하자 인민해방군은 북조선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땅에 진주한다. 이동일 부대는 한국군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이기준의 12군단을 찾아가는데….<편집자>
    2014

    일러스트 · 박용인

    2014년 7월25일 금요일 19시00분, 개전 8시간10분25초 경과.

    중부전선인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 위치한 한국군 제27사단 2연대 1대대 3중대 중대본부 벙커 안이다. 2연대는 DMZ 경비를 맡은 최전선 부대여서 개전 이후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봐, 어디 가는 거냐?”

    본부 선임병 이연구 하사가 물었으므로 김대균 일병이 벙커 통로 앞에서 몸을 돌렸다.

    “예, 담배 한 대….”



    “빨랑 돌아와, 인마.”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터라 이연구가 내쏘듯 말했고 김대균은 밖으로 나왔다. 골짜기에 어둠이 덮여 있다. 이쪽 벙커는 7부 능선쯤이어서 앞쪽 DMZ 건너편의 북한령 산줄기가 가로막듯 펼쳐져 있다. 교통호를 따라 벙커에서 20m쯤 멀어진 김대균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주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능선 위로 이어진 벙커는 모두 비상상태다. 저쪽에서 한 발이라도 사격을 해온다면 바로 전쟁이다. 발사지점이 초토화될 때까지 직사포와 미사일 공격을 할 것이다. 전원이 켜졌으므로 김대균은 곧장 단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나서 바로 통화 연결이 되었다.

    “대균이냐?”

    아버지 김용배다. 김용배의 목소리를 들은 김대균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묻는다.

    “아빠, 진짜 전쟁 나는 거야?”

    “너, 어디냐?”

    김용배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서로 묻는 바람에 이야기가 엇갈렸지만 김용배가 더 빠르다.

    “거긴 괜찮냐?”

    “응, 아직.”

    김대균은 목이 메어서 한 박자 늦었다.

    “아빠, 어떻게 되는 거야?”

    “전면전은 안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아빠, 나, 빼줄 수 없어?”

    “그, 그것이.”

    “시발, 겁나 죽겠단 말야.”

    “너, 지금도 벙커에 있어?”

    “그렇다니까? 행정병도 다 벙커에 몰아넣었단 말야.”

    쏟아지듯 김대균의 말이 이어졌다.

    “이러다 죽으면 나만 손해 아냐? 아빠 친구들 높은 사람 많잖아? 나 좀 빼줘… 응?”

    “대균아, 쫌만 기다려, 아빠가….”

    그때 옆쪽에서 인기척이 났으므로 김대균은 서둘러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

    그 시간에 제55호위대 벙커 안에서 김경식 대장이 대좌 계급장을 붙인 부하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고철상 중장을 통과시켰습니다.”

    김경식이 머리만 끄덕였을 때 안쪽 자리에 앉아있던 무력부장 성종구가 물었다.

    “지도자 동지의 지시를 받고 온 거라고?”

    “그렇습니다.”

    대좌가 김경식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말을 잇는다.

    “혼자 왔습니다.”

    상황실 안은 잠깐 정적에 덮였다. 지도자가 특사를 보낸 것이다. 고철상은 호위총국 소속으로 주석궁 경호 책임자여서 군부 실세다. 그때 심철 상장이 김경식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4군단을 시켜 옆구리를 눌러놓고 또 어떤 수단을 부릴 것 같습니까?”

    낮게 말했지만 주변 장군들은 다 들었다. 김경식이 입술만 비틀고 웃었다. 심철은 맨 처음에 도발한 총참모장 김형기를 체포했지만 곧 김정일의 대리인 자격으로 파견된 호위총국 사령관 강창남 대장이 김경식에게 억류되자 재빠르게 다시 변신했다. 김경식의 측근이 된 것이다. 그때 벙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서 장군 한 명을 앞세우고 소좌 두 명이 들어섰다. 앞장선 장군이 바로 고철상 중장이다. 방 안의 시선이 차갑게 쏟아지는데도 어깨를 편 고철상은 당당하게 걷는다. 바로 안쪽의 김경식을 찾아내고는 거침없이 다가와 두 발짝쯤 앞에서 멈춰 섰다. 김경식의 비스듬한 옆쪽에 무력부장 성종구와 심철 상장 등 고위층이 있는데도 눈길 한번 옮기지 않는다. 부동자세로 선 고철상은 경례는 물론 인사도 하지 않았다. 대신 턱을 번쩍 치켜들면서 말했다.

    “사령관 동지께만 전하라는 지도자 동지의 명령입니다.”

    “그런가?”

    고철상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면서 김경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하지만 이 상황실 안의 모든 동무는 나와 생사를 같이할 전우들이야. 지도자 동지의 명령도 함께 듣겠다.”

    그 순간 고철상의 안색이 희게 변했다. 그러나 김경식의 시선을 2초쯤 더 받고나서 입을 열었다.

    “이 시점에서 지도자 동지의 명령에 따른다면 과오를 묻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김경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이 나한테만 전하라는 명령인가?”

    “그렇습니다.”

    “내 동지들의 운명은?”

    그때 고철상이 반걸음쯤 앞으로 다가서더니 웅얼거렸다.

    “뭐라고 했나?”

    김경식이 묻자 고철상은 다시 반걸음쯤 다가가 우물거렸다. 이맛살을 찌푸린 김경식이 머리를 조금 비튼 순간이다.

    “탕!”

    요란한 총성이 벙커 안을 울리면서 고철상이 번쩍 상체를 세우는 것 같았다.

    “현재로서는 중국군 진입을 저지할 우리 측 명분이 약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동맹처럼 저들도 동맹관계를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설령 국가 지도자인 김정일이 반대를 한다고 해도 그렇다. 북조선이 점령되면 중국 동북방이 위협을 받게 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더구나 국가 간 군사동맹까지 체결된 상황이다. 그때 박성훈이 잇사이로 말했다. 눈까지 치켜뜨고 있다.

    “중국놈들은 64년 전인 6·25전쟁 때도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했지요. 그때 상황과 비슷합니다.”

    오바마는 눈만 껌벅였고 박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도 우리가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을 때 중국군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밀려 내려와 이 상태가 된 겁니다.”

    그러나 흥분한 박성훈과는 달리 오바마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것을 본 박성훈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이 훼방을 놓는다는 것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 다르다.

    “초소 경비병은 7, 8명 정도가 됩니다.”

    다가온 오규성이 가쁜 숨을 고르면서 말을 잇는다.

    “초소를 피하려면 강을 건너 돌아가든지 국도 쪽으로 가야 됩니다.”

    둘 다 어렵다. 수심을 알 수 없는 강은 제법 넓었고 강을 건너다가 발각되면 몰사당할 것이다. 그리고 국도로 올라가면 금방 노출된다. 밤인데다 국도가 비었다고 전시에 감시병도 두지 않겠는가? 더욱이 통신 감청으로 이쪽 위치까지 찾아내어 추적대를 보낸 상황인 것이다. 추적대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이동일이 시선을 돌려 오른쪽의 강과 왼쪽의 국도를 바라보았다. 주위에 쪼그리고 앉은 부하들의 표정은 덤덤하다. 이곳은 황해북도 은파 동남쪽의 작은 야산 기슭이다. 이윽고 이동일이 말했다.

    “초소를 부수고 가는 수밖에 없다.”

    “제가 맡지요.”

    1소대장 황찬우가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정면을 맡고 1소대는 국도 쪽으로 돌아서 우측과 뒤쪽을 맡아라. 그리고 3소대는.”

    머리를 돌린 이동일이 조한철을 보았다.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노농적위대 5명을 제외한 46명의 해병 중 부상자가 넷이다. 모두 경상이었지만 행군에 지쳐가고 있어서 이동일은 부상자를 예비대인 3소대에 편입시켰다. 그때 오규성이 말했다.

    “대장, 우리는 뭘 합니까?”

    그러자 이동일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적위대는 쉬시지요.”

    노농적위대 대장 격인 오규성은 61세의 노인이었고 나머지 넷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중년인 것이다. 그러자 오규성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내가 힘은 달리지만 총질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계엄사령부 소속 3국장은 민간인 사찰 담당이다. 그래서 휘하에 국정원, 경찰, 검찰, 기무사 등 모든 정보기관을 동원해 보안법 위반자로부터 통신, 광고, 언론을 통한 반국가 세력의 소탕을 맡고 있다. 그 3국장인 오달순 육군 소장이 오산의 연합사 지휘벙커에 들어온 것은 대통령 박성훈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보고를 마친 오달순이 벙커 통로로 나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육본작참부장 박진상이 다가왔다.

    “나 좀 보자.”

    “너 볼일 없는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오달순이 걸음을 멈췄다. 둘은 육사 동기로 30년간 경쟁자 관계다. 그러나 박진상이 중장 진급한 지 2년 되었지만 오달순은 석 달 전에야 겨우 소장을 붙였다. 그것도 계급 정년이 있는 감찰관 겸 헌병사령관이다. 그 직책은 소장으로 끝나는 것이다.

    “앗따. 높은 자리 있을 때 좀 봐주라.”

    하면서 박진상이 오달순의 팔을 끌고는 옆쪽 벙커의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은 한미연합사 전시사령부였던 것이다. 사방이 시멘트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배구장 두 개를 합친 것만큼 규모가 컸고 오가는 인간들은 모두 장군이다. 전군 지휘관 회의 때 모인 별들보다 많은 것 같다. 박진상이 데려간 곳은 구석 장방형 테이블 앞이다. 그곳에는 7, 8명이 앉아 있었는데 합참의장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외에 해병사령관 정용우의 얼굴까지 보였다.

    “거기 앉아.”

    오달순의 경례를 받은 장세윤이 눈으로 앞쪽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서 불렀어.”

    “예. 사령관님.”

    자리에 앉은 오달순에게 장세윤이 물었다.

    “어때? 시중에 중국군의 북한 진입 소문은 퍼져 있겠지?”

    “예, 사령관님.”

    정색한 오달순이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말을 잇는다.

    “지금은 트위터, 문자 메시지로 다 퍼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좌익들이 퍼뜨렸겠지.”

    “중국군 진입으로 놈들의 사기가 충천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발신자를 체포하고 있지만 송출을 금지하지 않는 한 완전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막으면 더 기술적인 수단으로 뚫고 나오는 것이다. 아예 중계소 전원을 차단해 송출을 금지한다면 가능하다. 장세윤이 입맛을 다셨다. 개전 초부터 반역세력의 선동과 준동은 무선통신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오달순이 말을 이었다.

    “대통령께선 무선통신 금지를 지시하셨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이다. 이로써 통신 세계는 갑자기 3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문명의 30년 후퇴나 같다. 그러나 군과 정부기관의 통신은 제외된다.

    “잘됐군. 그럼 이젠 종북세력 소탕만 남았구먼.”

    육참총장 조현호가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오달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북세력 소탕도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군사정권 이후로 15년간 사회 곳곳에 깊숙이 박힌 종북, 친북 세력은 그동안 한번도 대대적인 소탕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남북한의 전쟁상태가 되자 다급해진 것이다. 포용정책으로 한때 더불어 가자는 정책을 폈다가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뒤통수를 맞았으며 핵 공갈은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15년간 약에 면역력이 생긴 기생충처럼 종북세력은 사회 깊숙이 박혀 끊임없이 저항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시발, 전화위복이다.”

    조현호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다 들린다. 눈을 치켜뜬 조현호가 말을 이었다.

    “중국놈들 때문에 다시 남북이 합쳐지지 못하더라도 남쪽에 박힌 빨갱이 새끼들은 이 기회에 다 쥑인다.”

    그들의 반대쪽 구석에서는 해병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이 연합사 장교들과 함께 위성이 비춰주는 북한 땅을 살펴 보는 중이었다. 조금 전까지 46용사와는 30여 분간 공백이 있었으므로 최재창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북한지역은 3개 위성이 훑고 있는데 46용사만을 추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치는 위성을 잠깐씩 각도를 조절해 찾아내고 있다.

    “아, 저기.”

    하고 먼저 찾아낸 것은 역시 위성 영상 점검에 익숙한 미군 장교였다. 소령 계급장을 붙인 흑인 장교가 각도를 맞추더니 화면을 확대했다. 그 순간 최재창은 반짝이는 붉은 섬광을 보았다. 10여 줄기나 된다. 푸른 화면에서 반짝이는 붉은 섬광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전투 중이야!”

    소령이 소리쳤으므로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불꽃이 반짝일 때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치켜뜬 최재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이 최대한 확대되면서 사람 형상이 담배 필터 크기만해졌다. 그러나 누군지 분간되지 않는다.

    “초소를 공격하는군.”

    누군가 소리치듯 말했고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제압했어. 상대방 불꽃은 보이지 않아.”

    그렇다. 이동일은 초소를 기습해서 제압했다. 그러나 누가 이동일인지는 분간되지 않았다.

    “그냥 통과한다!”

    몸을 세운 이동일이 소리쳤다.

    “어물거리지 마라! 전진!”

    그러고는 앞장서 부서진 시멘트 건물을 지났다. 시멘트 건물과 기관총이 거치된 참호 2군데, 그리고 창고 건물 하나인 경비 초소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적 사살 9명. 이쪽은 부상자도 없다. 다시 일렬횡대로 늘어선 대열은 빠른 속도로 동진한다.

    “12군단 소속의 제82경비대 소속 병력입니다.”

    옆으로 따라붙은 오규성이 이동일에게 말을 잇는다.

    “경비대로 이곳저곳 분산 경계를 맡겨 파견하지만 군량미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서 자급자족을 합니다.”

    “…….”

    “식량이 떨어지면 벌이를 나가거나 농사를 짓기도 하고 약탈을 하는 놈도 있지요. 후방 군단은 다 그렇습니다.”

    그때 이동일이 오규성에게 묻는다.

    “봉산 시내에 들어가보신 적 있습니까?”

    “없는데요.”

    머리를 기울였던 오규성이 바짝 붙어 걸으면서 묻는다.

    “봉산 시내로 들어가시려고요? 거긴 12군단 사령부가 있어서 위험합니다.”

    “…….”

    “거긴 작은 도시라 전체가 군부대나 같습니다.”

    “저 초소가 공격받았다는 것이 군단 사령부에도 알려지겠지요?”

    “물론이지요.”

    어둠 속에서 오규성이 눈을 크게 떴기 때문에 흰자위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더 빠르게 걸으면서 말했다.

    “오 선생, 봉산 쪽을 향해 앞장서주세요.”

    “힘들어요?”

    조한철이 묻자 윤미옥은 머리를 저었다. 횡대 간격이 5m쯤 되었기 때문에 앞뒤쪽 병사들이 둘의 대화를 들을 수는 없다. 그리고 또 들으면 대수인가? 조한철이 윤미옥 옆으로 바짝 붙어 섰다.

    “윤 중위는 몇 살이시오?”

    “그걸 이제야 물어요?”

    낮게 쏘아붙이듯 물었던 윤미옥이 대답했다.

    “스물일곱요.”

    “나하고 동갑이네.”

    해놓고 조한철이 다시 묻는다.

    “난 해병으로 사관학교 나왔어요. 윤 중위는?”

    “사범대 졸업하고 군관학교 나왔어요.”

    “어디 사범대?”

    “평양.”

    “좋은 대학 나와서 그런 촌구석 부대에 있다니.”

    “군인이 아무 곳에나 있으면 어때?”

    “부모 형제는 어디 계시오?”

    “그건 알아서 뭐 하게요?”

    “혹시 압니까? 내가 윤 중위한테 청혼을 할지.”

    “오해하지 마요, 조 중위.”

    정색하고 윤미옥이 말했을 때 조한철이 성큼 발을 떼어 앞쪽으로 멀어졌다. 윤미옥이 어둠 속으로 묻혀가는 조한철의 등을 노려본 채 발을 뗀다.

    22시15분, 개전 11시간25분25초 경과.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앞쪽의 벽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옆에는 김정은과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 둘이 몸을 굳힌 채 서 있다. 구석 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내는 통역이다. 통역의 얼굴은 누렇게 변해 있다. 그만큼 방 안 분위기가 험악한 것이다. 이윽고 김정일의 귀에 중국어가 들렸다. 시진핑이다. 통화를 시도한 지 네 번째 만에 연결된 것이다. 그동안 중국군은 6개 루트를 통해 6개 사단 병력이 북한 땅으로 진주했다. 가장 깊숙이 들어온 부대는 평안북도 박천까지 닿았다. 그때 한국어 통역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김정일 지도자 동지. 우리는 중조군사동맹에 따라 인민해방군을 진입시켰습니다. 이것은 중국이 동맹국 북조선의 안위를 위한 것입니다.”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한마디씩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시진핑 주석 동지. 북조선의 대표자이며 동맹을 맺은 당사자로서 주석 동지께 요청합니다. 북조선의 반란군을 소탕해주시지요. 지금 북조선의 안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이 반란군이라는 것을 주석 동지가 가장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말을 그친 김정일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고는 통역을 보았다.

    “한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전해.”

    김정일의 표정을 본 통역이 숨을 들이켜더니 메모해놓은 글을 한마디씩 또박또박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정일이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은 채 김정은을 보았다.

    “너, 조선민주주의 공화국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느냐?”

    불쑥 김정일이 묻자 김정은은 당황했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옆에 선 전백준을 보았다. 얼굴이 상기되었다가 금방 하얗게 굳어졌다. 전백준이 외면했을 때 그것을 본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통역이 끝났으므로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그러자 곧 시진핑의 중국어가 들렸다. 이어폰을 낀 통역이 진땀을 흘리면서 시진핑의 말을 메모하고 있다. 시진핑의 말이 끝나고 한국어가 이어졌다.

    “곧 중국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 장군이 양측을 조정할 것입니다. 그동안 지도자 동지께서도 자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측을 조정하다니? 저 반란군을 나하고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것입니까?”

    김정일이 소리쳐 묻고는 다시 전화기의 송화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지만 머리를 든 김정일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번져 있다.

    “이 통화를 도청한 미국, 남조선 놈들이 웃겠다.”

    그때 김정은은 김정일의 두 눈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영문을 몰라 눈만 껌벅였을 때 갑자기 옆에 선 전백준이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그러자 김정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이봐, 영감. 우는 거야?”

    “죄송합니다, 지도자 동지.”

    마침내 전백준이 흐느껴 울면서 말했고 김정일은 다시 전화기를 귀에 붙인다. 시진핑의 말이 끝나 통역이 말을 시작하고 있다.

    “지도자 동지. 지금은 그것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북조선을 미군과 남조선의 협공에서 구해내고 정권을 안정시킬 작정입니다. 우리 중국 정부와 인민해방군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짧게 말했다.

    “후의에 감사합니다, 주석 동지.”

    그러고는 전화기를 내려놓더니 김정은을 다시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김정은은 눈만 껌벅였으므로 김정일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삐라는 평안도는 물론 함경북도까지 떨어졌어요.”

    기무사령관 배광우가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은 장군들을 향해 말을 잇는다.

    “지금이 밤이어서 그렇지 내일 아침이면 결과가 드러날 겁니다.”

    배광우는 아직도 연합사 벙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길이다. 다시 배광우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침 제트 기류가 동북풍이어서 풍선이 잘 나갑니다. 21시 현재까지 풍선 3만5000개, 삐라 1억장, CD 350만장, 라디오 200만개가 날아갔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북한 땅 전체가 삐라로 덮여 있을 겁니다.”

    계엄 상황이어서 기무사가 삐라 작전을 맡게 되었지만 배광우의 열의는 대단했다. 기무사가 전투부대가 아닌 터라 대신 삐라에다 열의를 실어 북한 땅에 침투시키려는 것 같다.

    “저 새끼들이 두 손을 들 때까지 삐라로 도배를 할 테니깐.”

    육참총장 조현호도 있는 자리였지만 배광우가 욕까지 섞어 말했을 때였다. 연합사 소속 준장 한 명이 뛰다시피 다가오더니 말했다.

    “시진핑과 김정일의 통화 내용이 입수되었습니다!”

    그러자 모두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몰려갔고 배광우도 뒤를 따른다.

    “중국군이 왔어.”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가 12살짜리 아들 오연수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제 미국놈들하고 그 주구들은 꼼짝 못하고 물러갈 거야.”

    마침내 임민희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주 교외의 야산 골짜기에 박힌 농가 안이다. 옆쪽에 폐쇄된 축사가 있는 이곳은 임민희의 먼 친척 소유로 국도에서 300m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때 마당에서 남편 오종구가 집주인 양수택하고 두런거리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으로 가족 세 명이 피난을 온 셈이다. 계엄이 실시되면서 바로 대규모 검거 선풍이 일어났을 때 임민희는 남편, 아들과 함께 곧장 이곳으로 피신했다. 도망치고 숨는 데는 부부가 운동권 시절부터 이골이 난 터여서 이번에도 놈들의 허점을 찌른 셈이 되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려는 상황에서 누가 휴전선 근처로 북상하겠는가? 다 남쪽으로 가려고나 할 것이다. 세 식구는 텅 빈 자유로 북상길을 달려 재빠르게 이곳에 안착한 것이다.

    “엄마, 그럼 북한이 이기는 거야?”

    초등학교 5학년짜리 오연수가 묻자 임민희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럴 거야. 위대하신 지도자 동지께서 혈맹인 중국군과 함께 한반도를 통일하시게 될 것 같다.”

    “학교는 그대로 있는 거지?”

    “그럼.”

    “선생님도?”

    “그걸 말이라고 하니?”

    “그럼 대한민국만 없어지는 거야?”

    “그렇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본래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나라였어.”

    임민희는 물론이고 오종구도 자식인 오연수한테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다. 다 크면 알려주기로 하고 놔두었던 것이다. 그때 오연수가 머리를 들고 임민희를 보았다.

    “엄마. 엄마 빨갱이야?”

    “응? 누가 그래?”

    놀란 임민희가 묻자 오연수는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편의점에서 누가 나한테 그랬어. 저기 빨갱이 자식이 간다고.”

    “그, 나쁜 자식.”

    눈을 치켜떴던 임민희가 다시 오연수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런 말 안 듣는다. 그런 놈은 다 잡아넣을 테니까.”

    임민희는 다시 서랍 위에 놓인 라디오 스위치를 켰다. 계엄군이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을 차단시켰지만 라디오는 들린다. 지금 임민희는 중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다.

    잠깐 잠이 들었던 송아현이 꿈속에서 이동일을 보았다.

    “이리 와.”

    이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부른다. 이곳이 어딘가? 주위를 둘러본 송아현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안면도의 별장, 여관이지만 가족용 독채 건물로 만들어져 있어서 둘은 별장으로 부른다.

    “이건 꿈이야.”

    송아현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동일 쪽으로 발이 떼어졌다. 이동일은 침대에 누워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알몸이다.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송아현이 놀라 손으로 골짜기를 가렸다. 자신의 몸도 알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깨어나야 돼.”

    송아현이 말했지만 이미 몸은 이동일의 옆으로 다가가 있다.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이동일의 손이 허리를 감아 안았을 때 송아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별장이 송아현에게 섹스의 쾌락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곳이다. 그것을 이동일도 알고 있었으므로 둘은 별장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다.

    “언제 온 거야?”

    이동일이 위로 올랐을 때 송아현이 두 손으로 목을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그 순간 송아현은 눈을 떴다. 집이다. 자신은 지금 침대에 누워 있다. 벽시계의 야광침이 밤 10시45분을 가리키고 있다. 상반신을 일으킨 송아현이 한숨과 함께 신음을 뱉는다. 한 시간쯤 잠을 잔 것 같다. 집 안은 조용했고 응접실에서도 TV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목이 메었으므로 송아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디 있는 거야?”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이 갑자기 미안해진 느낌이 들었으므로 송아현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계엄이 선포되어 오후 8시부터 통행금지가 되는 바람에 도로는 텅 비었다. 상가와 빌딩의 불도 등화관제를 하고 있어서 도시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송아현이 어두운 도시를 향해 말했다.

    “꼭 살아 돌아와.”

    송아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을 뿐이다. 그때 앞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병장이 다가왔다.

    “중대장님. 앞쪽에서 셋이 다가옵니다.”

    다가선 한 병장이 가쁜 숨을 고르며 말을 잇는다.

    “손전등을 휘두르면서 거침없이 다가오는데 인민군 같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이동일이 뒤쪽에 웅크리고 앉은 조한철 중위에게 말했다.

    “자, 가자.”

    그러자 조한철이 몸을 일으켰고 이동일이 그 뒤쪽의 황찬우에게 다시 말을 잇는다.

    “황 중위, 부탁한다.”

    “예, 중대장님.”

    어둠 속에서 대답이 들렸다. 이곳은 은파 동남방 4㎞ 지점의 미박천. 개울이 산모퉁이를 따라 직각으로 구부러지면서 물살이 빨라졌고 물소리가 크다. 한 병장을 앞세우고 걷던 이동일이 문득 머리를 돌려 조한철을 보았다. 그러고는 불쑥 말한다.

    “너, 임마. 윤 중위 잘 돌봐.”

    놀란 조한철이 숨을 죽였을 때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상처 주지 말란 말야.”

    조한철이 허청거리며 걸었고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사령부에서 암호 통신을 받았어. 이 지점에서 12군단장이 보낸 사람하고 접선하라는 거야.”

    조한철이 아, 그랬구나, 하는 표정을 짓고 머리를 끄덕였지만 아직 얼떨떨한 상태다.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따라오기만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다시 이동일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12군단장이 김정일을 배신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릴 그쪽으로 보내는 거야.”

    “감시 역할입니까?”

    조한철이 묻자 이동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병력으로 감시가 되겠나? 확인 정도겠지.”

    앞쪽에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으므로 이동일이 서둘러 덧붙였다.

    “무리가 떠도는 것보다 그쪽에 붙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멸공.”

    앞쪽에서 암구호를 낮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감시하고 있던 박 하사다.

    “통일.”

    한 병장이 대답했고 일행은 바위 뒤에 엎드려있는 박 하사 옆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저기.”

    하고 박 하사가 앞쪽을 가리켰지만 이동일은 이미 개울가로 내려오는 불빛을 보았다. 가깝다. 이제 100m 정도. 불빛은 3개. 흔들리고 있는 것이 험한 비탈길을 내려오는 것 같다.

    “서! 움직이면 사살한다!”

    거리가 20m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이동일이 버럭 소리쳤다. 개울물 소리가 압도되어 외침이 바위벽을 울리면서 여운이 이어졌다. 그 순간 손전등이 멈췄다. 어둠 속이라 흔들리는 것만 멈췄을 뿐으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그쪽에서 소리쳤다.

    “남조선 해병이오?”

    “그렇소!”

    이동일이 대답하자 그쪽에서 다시 소리쳤다.

    “난 군단장 부관 최상철 중좌요. 어서 나오시오!”

    어둠 속에서 이동일이 옆에 엎드린 조한철을 힐끗 보고는 낮게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지금 그쪽으로 갑니다.”

    “누구시오?”

    “해병대위 이동일.”

    이동일이 다가서며 말했다. 서너 걸음 더 걷자 서 있는 세 사내의 윤곽이 드러났다. 모두 군복차림. 그중 가운데 서 있는 사내가 중좌인 것 같다. 그가 다가선 이동일에게 묻는다.

    “일행은 모두 어디에 있소?”

    한 걸음 간격으로 다가선 이동일이 중좌를 보았다. 눈의 흰자위가 번들거렸다. 어둠 속이었지만 단단한 체격. 다부진 용모다. 이동일이 대답했다.

    “뒤쪽에 있습니다.”

    “모두 몇 명이오?”

    “저까지 포함해서 51명.”

    “트럭 두 대를 가져왔으니 갑시다.”

    중좌가 서두르듯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물었다.

    “어디로 갑니까?”

    “사령부 근처로. 모두 인민군복 차림이겠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럼 갑시다.”

    다시 재촉한 중좌가 반 걸음쯤 다가서더니 이동일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한 뼘쯤 작았기 때문이다. 중좌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한다.

    “이봐요, 대위. 날 믿지 못하면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오.”

    23시15분, 개전 12시간25분25초 경과.

    평안북도 박천 동남방 2㎞ 지점에 세워진 중국 진주군 사령부 상황실. 이곳은 북한군 425기계화군단이 사용하던 빈 탄약 보관소여서 시멘트 건물에다 엄폐도 잘되었다. 상황실 안의 지휘부는 활기에 차 있다. 깊은 밤이지만 건물 밖은 불이 환했고 장갑차와 트럭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내일 오전 12시까지 2개 집단군은 이동을 끝낼 것입니다.”

    벽에 붙은 작전지도에 지휘봉을 붙이면서 참모장 양훙이 보고했다.

    “마지막 제40집단군은 오후 7시까지 진주를 끝냅니다.”

    머리를 끄덕인 후성궈가 두꺼운 눈꺼풀을 들고 양훙을 보았다. 선양군구(軍區)사령관이었던 후성궈는 이번 진주군 사령관을 맡으면서 군구 사령부 인력을 모조리 데려왔다. 양훙도 군구 참모장이어서 손발이 맞는다.

    “425기계화군단은 이상 없지?”

    후성궈가 묻자 양훙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예, 내일 오전에 군단 참모를 보내 작전에 협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동시에 우리도 고문단 형식으로 참모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쪽에서 보내는 고문단은 감시 역할이다. 평안북도 정주에 사령부를 둔 북한군 제425기계화군단은 후방 부대였지만 4개의 기계화보병여단과 1개의 전차여단으로 편성된 무시 못할 전력이다. 그러나 군단장 박정근 대장은 김경식 일파로 이미 중국군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상태였다. 머리를 끄덕인 후성궈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거야. 내 아버지가 60년 전 한국전쟁 때 연대장으로 참전하셨거든.”

    “그렇습니까?”

    양훙이 다시 웃었다.

    “우리가 이 작은 나라를 돕는 것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역사를 보았더니 1400년 전 신라라는 나라의 삼국통일 때, 600년 전인 조선시대 일본 침략 때까지 더하면 이번이 네 번째인가 봅니다.”

    “본래 이 땅이 우리 땅이었어.”

    자르듯 말한 후성궈가 한국 지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그 기회가 온 거야.”

    후성궈가 지도를 보는 그 시간에 연합사 상황실 안에서도 지휘관들이 지도 앞에 모여 서 있다. 이쪽 지도는 전자 상황판으로 제작돼 더 큰데다 갖가지 색상의 불빛으로 치장되었다.

    “빠릅니다.”

    상황판에서 돌아선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우드워드 대장에게 말했다. 해리슨이 큰 키를 구부정하게 굽히고는 말을 잇는다.

    “사령부를 설치하고 각 집단군 지휘부도 일사불란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미리 예행연습을 한 것 같습니다.”

    북한군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우드워드가 옆에 선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말 그대로 인민해방군의 기세로군. 그렇지 않습니까?”

    장세윤은 눈만 껌벅였지만 뒤쪽에 서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가 나섰다.

    “저놈들이 옛날 생각만 했다가는 큰코다칠 겁니다. 내기를 해도 좋아요.”

    그러자 우드워드가 짧게 웃었다.

    “북한군 425기계화군단하고 사이좋게 위치해 있군요.”

    눈으로 상황판을 가리킨 우드워드가 말을 잇는다.

    “이제 김경식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어진 것 같다.”

    상황판 앞에서 물러난 한국군 지휘부가 상황실 반대쪽 벽 앞에 모여 섰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장세윤과 조현호 주위로 모여든 것이다. 먼저 입을 연 장군은 육본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이다.

    “미국 측은 중국군 개입이 잘된 것 같다는 분위기인데요.”

    하고 박진상이 말했을 때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거들었다.

    “이것을 기회로 현 상태를 굳히려는 겁니다. 다시 38선으로 나눠진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죠. 어떻게 되건 간에 확전만은 막으려는 겁니다.”

    “예전이라지만 바로 어제야.”

    하고 장세윤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듯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다.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시발, 이미 수천 명 희생이 난 전쟁이다. 글고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다. 싸우자.”

    “따르겠습니다.”

    바로 박진상이 동조했고 장군 서너 명이 호응했다. 그때 장세윤이 말했다.

    “또 독단으로는 안 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야.”

    그때 조현호가 머리를 돌려 해병사령관 정용우를 보았다.

    “이동일이는 어디에 있어?”

    “지금 12군단장 이기준의 품 안에 있습니다.”

    머리를 든 정용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고 정용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놈이 또 키를 쥔 것 같군요.”

    “탕!”

    다시 총성이 울린 순간이다. 갑자기 옆에서 덮쳐온 군관이 김경식을 깔아뭉개듯이 넘어뜨렸다.

    “꽈앙!”

    그 순간 벙커가 무너질 것 같은 폭음이 울리더니 김경식은 강한 냄새를 맡는다. 화약 냄새다. 고철상은 인간 폭탄이었던 것이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가 김정일 앞으로 다가가 섰다. 얼굴이 굳어 있다.

    “지도자 동지. 12군단의 3개 사단과 3개 교도사단, 2개 기갑연대, 2개 포병여단이 이기준에게 붙었습니다.”

    상황실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 있다. 김정일은 전백준에게 시선을 준 채 앉아 있었는데 숨도 안 쉬는 것 같다. 전백준이 말을 이었다.

    “나머지 1개 사단과 2개 교도사단하고 통신은 되었지만 이쪽 명령을 들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기준이 배신한 것을 안 것은 10분쯤 되었다. 군단사령부에서 겨우 살아남은 정치참모 하나가 실상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쪽은 서둘러 예하 부대를 포섭했지만 역부족이다. 12군단 산하의 정예부대 대부분은 이기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정치참모들을 처형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방 안에 정적이 흐른 후에 김정일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놈을 김경식이 견제 세력으로 놔두면 되겠다.”

    낮게 말한 김정일이 머리를 돌려 옆에 선 김정은을 보았다.

    “김경식이하고 사이에 또 전연 지대가 생긴 것 같군.”

    김정은이 눈만 껌벅이고 있는 것은 웃어줘야 할지 말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2군단 오른쪽의 제5군단이 조금 전에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전연지대의 4개 군단은 김정일과 김경식이 각각 2개 군단씩 장악하게 되었다. 서부지역부터 배치된 4, 2, 5, 1 군단은 김정일의 4, 5군단. 김경식의 2, 1군단이 된 것이다. 거기에다 4군단과 2군단 사이의 북방에 배치된 12군단이 독자 세력으로 등장했으니 북한은 3개 군벌로 나뉘었다. 지금 수십 군데에서 터지는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의 반란은 별도다. 그때 소장 계급장을 붙인 호위대 소속 측근 경호 장군이 서둘러 김정일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한국제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다. 다가선 장군이 김정일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지도자 동지. 김경식 대장입니다.”

    그 순간 상황실 안이 이번에는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역적, 배신자, 반란군의 괴수 김경식이 감히 지도자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김정일이 잠자코 휴대전화를 받아 쥐었다. 얼굴에는 엷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그래, 동무. 무슨 일인가?”

    김정일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그때 김경식이 말했다.

    “동무, 고철상이를 보내 날 폭사시키려고 하셨던데, 유감이오. 내가 살아서.”

    “그런가?”

    쓴웃음을 지은 김정일이 묻는다.

    “그래, 몸은 무사한가?”

    “동무보다 낫소.”

    “김경식이, 너는 이 싸움에서 절대로 승자가 될 수 없다.”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너도 알 것이다. 내가 너보다 둘 수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23시35분, 개전 12시간45분25초 경과.

    문이 열리면서 계급장 없는 인민군복 차림의 사내 둘이 들어섰으므로 이동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장선 사내는 5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건장한 체격에 눈빛이 매섭다. 이동일의 두 걸음쯤 앞에서 둘이 멈춰 섰을 때 뒤쪽 40대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12군단장 이기준 대장 동무시오.”

    그러자 앞에 선 사내가 머리를 조금 끄덕였다.

    “동무가 해병대위인가?”

    “예, 군단장님.”

    이동일이 부동자세로 섰다. 이제 이기준은 아군이다. 그러니 상관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병대위 이동일. 신고합니다.”

    “너희들, 내 호위대로 편입시킨다.”

    이기준이 자르듯 말하고는 눈가에 주름을 만들면서 웃었다.

    “부상자가 있다던데 이곳에서 다시 부대를 편성한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인민해방군이 진입했다. 벌써 박천에 진주군 사령부가 세워졌고 내일이면 3개 집단군이 모두 북조선 영토 안으로 진입해올 것이다.”

    놀란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이기준이 이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예상은 했지만 이제 김정일은 북한 땅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어. 그렇다고 인민해방군 진입을 고대한 김경식이 이로운 것도 없어. 반란군 수괴로 처형될 신세는 면했겠지만 말야.”

    그러더니 옆에 선 사내를 보면서 말했다.

    “내 부관과 함께 행동하도록.”

    “너희들에게 소개해드릴 분이 계시다.”

    장교와 하사관까지 모았더니 20명 가까이 되었다. 노농적위대 5명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이곳은 봉산 교외의 빈 보급대 건물 안이다. 이기준이 떠나고 나서 이동일이 바로 간부들을 소집한 것이다. 이동일이 옆에 선 사내를 소개했다.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의 부관이신 강성일 중좌시다. 우리 안내를 맡으실 거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강성일이 해병을 둘러보았다.

    “남조선 해병 소문은 많이 들었다. 잘해보자고.”

    “반갑습니다.”

    기죽지 않으려는 듯이 조한철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고 몇 명은 박수를 쳤다. 그때 이동일이 말했다.

    “중국군이 북한 땅으로 진입해왔다. 북한 반란군이 진입을 요청했다지만 전황이 변할 것 같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이동일의 말이 이어졌다.

    “부상자는 이곳에서 치료하고 부대를 재편성한다. 이상.”

    밤 12시가 되어가고 있다. 2014년 7월25일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윤미옥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거친 숨소리에 섞여 터지는 신음을 삼키느라 윤미옥은 자꾸 조한철의 어깨를 물었다. 보급대 끝 쪽의 초소 안이다. 이곳을 소대장 임시 숙소로 삼았기 때문에 문을 안에서 잠갔더니 아늑한 침실이 되었다. 바닥에 낡은 모포까지 깔려 있어서 둘이 눕기에는 적당했다. 이윽고 윤미옥이 두 다리를 치켜세우면서 온몸을 둥글게 오그렸다. 조한철 작업복 어깨에 박아 넣은 이가 더 깊게 들어갔고 허리를 치켜 올리는 동작이 격렬해졌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굳히면서 떨기 시작했다. 절정에 오른 것이다. 그 순간에 윤미옥의 허리를 당겨 안으면서 조한철이 폭발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느낌을 받으면서 조한철이 윤미옥의 귀에 입술을 붙인 채 굵은 신음을 뱉었다. 윤미옥이 목을 더 끌어안는 것으로 화답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가쁜 숨을 뱉은 채 둘은 포개진 채 그대로 있다. 그러나 몸은 펴져서 자연스러운 자세가 되었다.

    “대장이 우리 사이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조한철이 윤미옥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말했다. 윤미옥이 몸을 굳혔을 때 조한철이 말을 잇는다.

    “글쎄 갑자기 윤 중위 잘 돌보라고 하는 바람에 오줌을 쌀 뻔했어.”

    조한철이 윤미옥의 귓불을 이로 살짝 물었다.

    “그리고 또 뭐라고 한 줄 알아?”

    그러더니 이제는 귀에 더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상처 주지 말라는 거야, 시발.”

    휴대전화를 켠 이동일이 버튼을 누르면서 심호흡을 한다. 몇 시간 만에 다시 휴대전화를 켜는 것이다. 앞에 앉은 강성일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보급대장실로 사용된 방 안에는 둘이 앉아 있다. 주위는 조용하다. 그러나 부하 대부분은 잠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곧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다.”

    해병 대령 최재창. 사령관 작전참모로 이동일의 직속상관이다.

    “예, 참모님.”

    갑자기 목이 멘 이동일이 그렇게만 대답했을 때 최재창이 내쏘듯 말했다.

    “이젠 그쪽 품 안에 들어갔으니 통신을 다시 시작한다. 넌 양쪽의 전달자 겸 집행자 역할이다, 알았나?”

    “예, 참모님.”

    “직책 빼라.”

    “예.”

    “해방군 진입으로 12군단의 처지가 묘하게 되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잘 들어.”

    해놓고 잠깐 뜸을 들인 최재창이 목소리를 낮췄다.

    “12군단은 인민들의 혁명세력과 함께 해방군을 공격하도록 한다. 그렇게 전하도록. 알았나?”

    “예.”

    “내일 날이 밝으면 북한 인민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도 중국군 진주에 대한 삐라를 다시 뿌릴 테니까.”

    숨을 죽인 이동일이 이제는 맞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때 최재창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12군단하고 바로 연락이 되나?”

    “옆에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해.”

    그러더니 최재창이 덧붙였다.

    “이것이 우리 측 결정이라고.”

    통신이 끊겼으므로 이동일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긴 숨을 뱉는다. 이제는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이 조그만 땅이 왜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가?

    (8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나보다 더 많이 잃게 될 것이오.”

    수화기에서 울리는 김경식의 목소리도 단호했다. 김경식의 말이 이어졌다.

    “김형기는 미사일을 동무한테 발사한 거라고. 이건 남조선과의 전쟁이 아냐.”

    그러고는 통화가 끊겼으므로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

    “남조선에서 다 들었겠군.”

    쓴웃음을 지은 김정일이 휴대전화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김경식이 일부러 들으라고 했겠지만 말야.”

    그러나 통화 내용을 모르는 터라 아무도 말을 받지 않는다.

    “김용배씨 맞죠?”

    하면서 다가선 사내는 30대 중반의 젊은 사내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에 머리가 짧아서 운동선수 같기도 했다.

    “네, 그런데.”

    조금 짜증이 난 김용배가 눈을 치켜떴다. 오후 7시 반. 전시여서 등화관제 상태였으므로 문광부 청사는 창문을 검은 천으로 막아놓았고 사무실에는 대기 상태의 직원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그때 사내 뒤로 또래처럼 보이는 두 사내가 서둘러 다가왔으므로 김용배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사내들은 군인인 것 같다. 무슨 일인가? 김용배의 시선을 받은 사내가 말했다.

    “저, 계엄사령부 소속입니다. 같이 가십시다.”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이제 김용배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문광부 국장이면 같은 공무원이다. 군인 계급으로 따지면 장군은 못되어도 대령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건방진 놈 같으니. 그때 눈을 치켜뜬 사내가 다가섰다. 이미 주위는 조용해졌고 사무실에 남은 직원들의 시선도 모두 이쪽으로 모여 있다. 사내가 잇사이로 말했다.

    “당신은 전시 계엄법을 위반했어. 전선에 있는 아들과 통신을 했어. 자, 일어나.”

    “아, 잠, 잠깐.”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굳어진 김용배가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균이는 어떻게 됩니까? 내 아들요.”

    “그건 군법으로 처리되겠지.”

    뒤쪽에 선 사내가 뱉듯이 말을 잇는다.

    “아마 현장에서 총살당했을지도 모르겠군. 자, 갑시다.”

    “아이구.”

    김용배의 입에서 저절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19시45분, 개전 8시간55분25초 경과.

    재령 남서쪽 야산의 8부 능선. 이미 주위는 짙은 어둠에 묻혀 있다. 이동일이 둘러앉은 10여 명의 분대장급 이상의 간부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중에는 노농적위대 출신인 오규성과 네 명의 일행이 포함되어 있다.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이동일은 작전참모 최재창과 통화를 한 것이다.

    “적이 우리 위치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한다. 은파와 안악 쪽에서 각각 1개 부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거야.”

    급박한 내용이었지만 이동일의 말투는 느린데다 소리도 낮아서 옆쪽에 쪼그리고 앉은 황찬우 중위는 지금 야간 훈련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트럭 7, 8대씩이라니까 아마 1개 중대 병력쯤 될 거야. 20분쯤 걸릴 것 같다더군.”

    “어느 쪽으로 갑니까?”

    불쑥 조한철이 묻자 이동일이 머리를 들고 아래쪽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빛이 없는 것이다.

    “사리원 쪽으로.”

    그러더니 머리를 들고 누구를 찾는 시늉을 하다가 끝쪽의 오규성을 향해 시선이 멈춰졌다.

    “오 선생이 선두에 서주실랍니까?”

    이동일이 묻자 오규성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지요, 대장 동지.”

    그러더니 덧붙였다.

    “우리 노농적위대가 앞장서겠습니다.”

    “놈들의 탐지 수단도 보통이 아냐.”

    이동일이 회의를 하는 그 시간에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작전참모 최재창에게 말했다. 둘은 지금 오산 한미연합사 벙커 안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다. 서둘러 스테이크를 자르면서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통신을 차단시켰으니까 당분간 위성으로 이동일을 살피는 수밖에 없구나.”

    “어쨌든 12군단이 중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김정일과 김경식 사이에 완충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전쟁이 탕, 터지니까 북한 군부가 사분오열되는군요. 덕분에 우리하고의 전면전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김정일도 예상하고 있었을 거야.”

    씹던 것을 삼킨 정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면전이 일어나면 망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어. 수십 년 전부터 말야.”

    “그럼 전쟁할 거냐고 협박을 해대던 친북 반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다 알면서 국민을 갖고 논 거죠.”

    “지금 가장 불안한 놈들이 그놈들이다.”

    포크를 내려놓은 정용우가 정색하고 최재창을 보았다.

    “합참의장이 기무사령관, 국정원장하고 지금 12군단장 이기준을 포섭하려고 저녁밥도 못 먹고 끙끙대고 있어. 그것만 잘되면 북한은 망한다.”

    물잔을 쥔 정용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감청단은 김정일과 김경식의 통화를 도청,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군 12군단장 이기준 대장이 김정일의 지시를 어기고 중립으로 돌아선 것까지 알아낸 것이다. 물잔을 내려놓은 정용우가 일어섰으므로 스테이크를 썰던 최재창도 칼과 포크를 놓고 따라 일어서야 했다. 정용우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이젠 웰빙 족속들이 문제가 되는군.”

    계엄상황이 지속되자 긴장상태가 슬슬 느슨해지면서 특히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엄통신법 위반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부모, 사병이 현재까지 400여 명이나 되는 것이다. 발을 떼면서 정용우가 잇사이로 말했다.

    “그런 족속들은 국민 자격이 없어. 법으로 보호해줄 필요가 없는 무리야.”

    이화원 근처에 위치한 시진핑의 안가(安家)에서는 곤명호가 내려다보인다. 한국과는 한 시간 시차가 나는 터라 이곳 시간은 오후 7시10분.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8시10분이며 개전 9시간20분25초 후다.

    “주석 동지, 이젠 급하게 되었습니다.”

    베란다의 원탁에 둘러앉은 세 인물 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백발의 사내가 말했다. 국방위 부주석이며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인 진양이다. 70대 초반인 진양이 말을 잇는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전연지대 한 곳이 뚫릴 것이고 북한군의 대량 투항이 시작됩니다. 그럼 남조선군이 자연스럽게 북진할 계기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럴까요?”

    머리를 기울인 시진핑이 진양에게 물었다.

    “김정일씨나 김경식이 그 경우에는 같이 힘을 합쳐 남조선군을 대적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진양이 머리를 저었다.

    “중립으로 돌아선 12군단이 남조선군과 제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일과 김경식은 남조선보다 상대방을 더 증오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러자 시진핑이 심호흡을 했다. 김정일이 김경식에게 자폭 결사대를 보내 폭사시키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든 시진핑이 옆쪽에 앉은 50대쯤의 사내를 보았다. 단정한 용모의 사내가 시선을 받더니 긴장했다.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평양주재 중국대사 펑훙위다. 상반신을 편 펑훙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중조국경에 배치된 조선군 8, 9, 10, 11 4개 군단은 김경식에게 충성을 맹세한 군단입니다. 김경식은 중국군에 길을 터주기 전에 중국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평양방위사령부와 호위총사령부, 후방에서도 남포직할시에 주둔한 3군단과 함흥에 주둔한 7군단은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다. 김경식을 인정한다면 김정일은 아예 중국군과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때 진양이 나섰다.

    “두 놈 다 그렇게 여유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중국군이 그냥 밀고 내려가도 북한군은 가로막지 못해요. 우린 지금 바로 북조선으로 남하해야 됩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오.”

    진양이 상기된 얼굴로 시진핑과 펑훙위를 노려보았다.

    “평양 북방에 해방군 3개 집단군을 배치하고 김정일과 김경식을 중재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고, 북조선은….”

    말을 멈춘 진양이 시진핑을 보았다. 그 뒷말은 이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북조선은 조선성(朝鮮省)이 된다. 한나라 시대부터 영토였던 조선 땅이 이제야 정식으로 중국령에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자 시진핑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평양 대사 펑훙위를 보았다. 펑훙위는 특별기편으로 평양을 떠나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금 김경식의 벙커에 우리 연락원이 있소?”

    “예, 그렇습니다.”

    긴장한 펑훙위가 시진핑을 보았다. 대사관 무관 황방산을 말한다. 시진핑이 말을 이었다.

    “즉시 그에게 연락을 하시오. 그리고….”

    시진핑이 머리를 돌려 진양을 보았다.

    “김정일씨한테도 연락을 하세요. 우리가 내려간다고.”

    “늦었지요.”

    만족한 표정이 된 진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미연합사가 가동되었을 때 우리 인민해방군도 북조선 땅으로 진주했어야 맞습니다.”

    국도에서 100m쯤 간격을 두고 나아가는 중이어서 도랑을 만나기도 했고 작은 언덕을 넘을 때도 있었다. 자연히 행군 속도는 느려져서 30분 동안 2㎞ 정도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아, 저기.”

    이동일이 다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을 때였다. 앞에서 걷던 김선우 병장이 낮게 소리쳤으므로 이동일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국도 위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자동차 전조등이다. 이동일이 걸음을 멈췄으므로 곧 일렬횡대로 나아가던 앞뒤쪽 대열이 모두 멈춰섰다. 불빛이 가까워지면서 그것이 여러 개로 나뉘었다.

    “차량 대열입니다.”

    옆으로 다가온 황찬우가 낮게 말했다. 밤이 되면서 북한 땅은 이동일을 포함한 해병대원들에게 전혀 낯선 대지가 되었다. 도로는 물론이고 산야가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 마치 외진 공동묘지 같은 분위기가 된 것이다. 전시라고 하지만 도로에는 차량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고 통행인도 없다. 가끔 마을을 지났지만 어둠 속에 지붕 윤곽만 보이는 것이 묘지 같았던 것이다.

    “우릴 잡으려는 추적대 아닐까요?”

    황찬우가 물었을 때 차량 대열이 가까워졌다. 엔진음과 함께 윤곽도 드러났다. 모두 8대. 국도와는 70m쯤 떨어져 있는데다 짙은 어둠 속이어서 발각될 우려는 작다. 이동일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곳으로 가는 것 같다.”

    휴대전화 통신이 감청에 걸렸을 것이다. 이동일이 발을 떼면서 지시했다.

    “전진.”

    그 순간 이동일의 눈앞에 송아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통신이 중단되었으니 아현은 집에 돌아갔을까? 알 수가 없다.

    이동일로부터 50m쯤 떨어진 후위를 맡은 조한철 중위는 발을 떼다가 문득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2m쯤 뒤에서 따르던 윤미옥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둠 속이어서 눈의 흰자위와 검은 눈동자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피곤하지 않아요?”

    걸음을 늦춰서 한 발짝 간격으로 좁혀진 윤미옥에게 조한철이 물었다.

    “아뇨.”

    짧게 대답한 윤미옥이 시선을 돌렸으므로 조한철은 머리를 세우고는 발을 떼었다. 해병과 노농적위대 혼합군 51명은 묵묵히 국도 아래쪽 개울가를 따라 전진하고 있다. 그때 조한철 앞쪽 누군가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데는 개짓는 소리도 안 들려.”

    그러고 보니 개 짖는 소리는 물론이고 새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다 잡아먹었나보다.”

    누군가 그 말을 받았을 때 다시 대열이 주춤거리며 멈춰섰다.

    “전달, 앞으로 장교들 집합.”

    낮게 전달이 전해져 왔으므로 조한철이 윤미옥을 보았다.

    “갑시다.”

    트럭 대열이 지난 지 10분쯤은 되었을 것이다. 조한철과 윤미옥이 다가갔을 때는 이동일, 황찬우와 노농적위대 지휘자가 된 오규성까지 셋이 모여 있었다. 개울이라지만 물이 말라서 드문드문 물만 고인 자갈밭이다. 바위 옆에 다섯이 둘러앉았을 때 이동일이 말했다.

    “재령을 좌로 끼고 직진해서 동진(東進)한다.”

    이동일이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켰지만 짙은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오규성이 이동일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이 재령이요. 직진해서 1㎞만 가면 재령 교외의 검문소가 나옵니다.”

    이미 이동일과 말을 맞춘 듯 오규성의 말이 이어졌다.

    “이쪽으로 가면 자갈밭과 습지가 이어집니다. 이 속도로 세 시간쯤만 걸으면 은파를 지나 봉산 아래쪽 미박천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곳에 뭐가 있습니까?”

    머리를 든 조한철이 이동일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동일이 심호흡을 하고나서 말했다.

    “황해북도 봉산에 12군단 사령부가 있어.”

    그 순간 놀란 모두가 숨을 삼켰지만 오규성만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오규성은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동일이 목소리를 낮췄다.

    “휴대전화 전원을 켰더니 그렇게만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21시05분, 개전 10시간15분25초 경과. 오산 한미연합사 전시사령부 벙커 안.

    “2개 집단군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벽에 붙은 화면에는 길을 가득 메운 차량 대열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밤이지만 위성의 적외선 촬영으로 전송된 화면은 선명하다. 차량 대열이 철저하게 등화관제를 했어도 모든 물체가 드러났다. 단지 푸른색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의주와 만포, 그리고 혜산을 통해서 진입해올 것이고 연길 위쪽의 제16집단군은 두만강을 넘어 남하할 것입니다.”

    지휘봉을 겨드랑이에 낀 채 설명하는 장군은 연합사 참모장인 해리슨 중장이다. 해리슨이 화면에 등을 대고 서서 말을 잇는다.

    “이 속도라면 지금 남하하는 제16군, 39군은 내일 오후 3시까지 북한령 진입을 완료할 것이고 제40집단군의 이동도 내일 오후 7시면 끝납니다.”

    영어였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군 지휘관은 없다. 말을 그쳤을 때 넓은 상황실 안에선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제 전황(戰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인민해방군 집단군은 편제상 5개 사단으로 구성되었고 각각 1개의 기갑사단과 전차사단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3개 보병사단은 1개 포병연대와 1개 기갑연대, 2개 보병연대로 구성되어서 전력이 막강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차량으로 이동해오는 것이다. 3개 집단군이면 15개 사단이다. 북한군 정예는 전연지대라 불리는 휴전선에 배치된 4, 2, 5, 1군이며 조중 국경지대의 8, 10, 11, 9군의 장비는 노후되었고 기동력도 형편없다. 만일 가로막는다면 단숨에 무너질 것이었다. 그때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우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나, 대통령께 보고하러 가겠소.”

    장세윤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을 때 우드워드도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대답했다.

    “나도 대통령이 있어!”

    “무엇이?”

    놀란 김정일이 눈을 크게 떴지만 목소리는 낮다. 상황실 안의 모든 시선이 모아졌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대좌가 말을 잇는다.

    “공정대가 8군단지역 삭주군 청수 근처의 압록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중국대사를 연결해!”

    김정일이 소리치자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펑훙위는 베이징으로 떠났습니다.”

    “그럼 시진핑을 바꿔!”

    “예, 지도자 동지.”

    하고 윤국순이 돌아섰을 때 김정일이 다시 대좌에게 묻는다.

    “그럼 몇 개 지역에서 넘어오고 있는 거냐?”

    “의주에는 선발대로 1개 대대급 병력이 넘어왔고 그 위쪽으로 두 군데. 거기에다 청수까지 모두 네 곳입니다.”

    그때 김정일 앞으로 서둘러 군관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10군단 지역의 초산 근처에서 중국군 기갑부대가 압록강을 건너오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눈치를 살핀 군관이 말을 잇는다.

    “아군 지휘관에게 조중 군사동맹 조약에 따라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의주에서 다리를 건너 넘어온 선발 기갑부대 지휘관도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군은 두말 못하고 비켜섰다. 그때 윤국순이 다시 옆으로 다가왔다. 얼굴이 더 굳어져 있다.

    “지도자 동지. 지금 회의 중이시랍니다.”

    김정일이 어금니를 물었고 윤국순의 말이 이어졌다.

    “회의 끝나는 대로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김정일이 통화 요청을 했을 때는 언제든지 시진핑이 받아주었다. 한 번도 무슨 핑계를 댄 적이 없는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제55호위대 벙커에서도 중국군의 도강(渡江)이 보고되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어, 이제야 오는군.”

    부하의 보고를 받은 김경식 대장이 얼굴을 펴고 웃었고 옆에 선 심철 상장도 따라 웃는다.

    “좋아. 그럼 황방산을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이제 같이 있는 것이 낫겠다.”

    김경식이 부관에게 지시하고는 몸을 돌려 상황실 안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더 이상 김씨 부자의 종노릇은 안 하게 될 거요. 그리고 남조선에 흡수통일도 되지 않을 것이고.”

    어깨를 편 김경식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중국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공산주의 정권이 탄생하는 것이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김씨 3대 세습은 이것으로 끝난 겁니다.”

    그때 상황실 안으로 들어선 부관이 김경식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사령관 동지. 황방산은 한 시간쯤 전에 대사관에 일이 있다면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

    퍼뜩 눈을 치켜떴던 김경식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황방산에게 종용했던 중국 인민해방군 진입이 시작되고 있는 터라 얼굴의 웃음기는 지워지지 않았다.

    “알았어. 국경지대 지휘관에게 연락해서 중국군 도강을 협조해주도록 지시하라.”

    김경식이 지시하자 상황실은 활기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김경식에게 무력부장 성종구가 묻는다.

    “중국 측과 어느 선까지 합의를 했소?”

    그러자 심철은 물론이고 지휘관급 장성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모두 김경식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김경식의 지휘권을 단단하게 굳힌 원인이기도 했다. 시선을 받은 김경식이 쓴웃음을 지었다.

    “개방이요.”

    한마디로 말했던 김경식이 그 반응을 보겠다는 듯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입을 다문 채 얼굴만 굳히고 있었으므로 김경식이 말을 잇는다.

    “중국식 개방. 우리도 중국처럼 잘살 수가 있는 겁니다. 다만 김씨만 없어지면 말입니다.”

    그러자 한동안 김경식을 바라보던 성종구가 두 손을 들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주위 장군들이 따랐고 곧 벙커 안은 박수 소리로 뒤덮였다.

    21시20분, 개전 10시간30분25초 경과.

    모니터 정면에 앉은 대통령 박성훈이 심호흡을 했다. 앞쪽 벽에 걸린 오바마의 사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얼굴에 저절로 쓴웃음이 번졌다. 지금 오바마와 통화를 하려는 것이다. 그때 모니터 화면이 켜지면서 오바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피로한 얼굴이다. 워싱턴 시간은 오전 7시 반쯤 되었다. 둘은 통역을 제쳐두고 직접 통화를 한다. 박성훈이 목례를 하고나서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통령 각하. 보고는 받으셨겠지만 중국군이 북한 영토에 진입했습니다. 동맹관계를 내세우겠지만 이것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 행위나 같습니다.”

    한마디씩 박성훈이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그리고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씨의 요청도 없는 상태에서 진입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박성훈이 말을 이으려다 말았다. 오바마도 연합사령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오바마가 물었다.

    “김정일씨하고 그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바마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중국군은 김경식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경식을 도우려는 건 아닙니다.”

    그것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박성훈은 시선만 주었다. 중국의 목표는 북한 땅을 조선성(朝鮮省)으로 귀속하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은 결국 조선성으로 마무리된다. 오바마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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