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범죄의 생생한 재구성 ‘범죄학 강의 콘서트’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 수사 실패가 있을 뿐”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1-01-21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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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의 생생한 재구성 ‘범죄학 강의 콘서트’

    범죄학 강의 콘서트를 기획한 표창원 경찰대 교수.

    끝내 미궁에 빠진 사건들이 있다. 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화성연쇄 살인사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1991년 대구 성서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이다. 실종된 지 11년여가 흐른 뒤 산속에서 아이들 유골이 발견돼 전국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9명의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역시 진범이 잡히지 않았다. 이 두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후유증을 남긴 채 공소시효가 지나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됐다.

    끔찍하고 잔인하게 부녀자를 살해한 화성 사건의 진범은 누굴까, 그는 왜 아무런 원한관계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죽였을까. 남자아이 5명을 한꺼번에 살해해 암매장한 범인은 한 명일까, 동네 지리를 잘 아는 아이들은 왜 위험한 순간에 도망치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끝나버린 사건은 갖가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2000년대 들어서는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서래마을 영아살해유기 사건 등 세상을 발칵 뒤집은 잔인한 사건이 많았다.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수도권에서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부자를 더 해치지 못해 안타깝다” “살인에 대한 배고픔이 여전하다”고 말해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법정에서조차 태연히 살인 욕구를 내비친 그의 머릿속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처럼 범죄에 대해 갖가지 호기심을 품은 사람들이 매달 셋째 주 금요일 저녁 서울 서초동에서 열리는 ‘범죄학 강의 콘서트(이하 콘서트)’에 몰려들고 있다.

    ‘김길태’ 이름 바꾼 까닭

    한국경찰과학연구소(KIPS·소장 조권탁 변호사)가 주최하는 콘서트는 지난해 9월 이창무 한남대 교수의 ‘패러독스 범죄학-상식 속에 가려진 범인의 진짜 얼굴’ 강의로 문을 열었다. 10월에 열린 2회 강의는 KIPS 부소장인 경찰대 범죄심리학 담당 표창원 교수가 맡았다. 자신의 저서 ‘한국의 연쇄살인-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수사와 심리분석’을 토대로 강의에 나선 그는 이날 연쇄살인범의 심리와 시대 변화에 따른 살인범죄의 경향, 영화 속 연쇄살인범과 현실의 연쇄살인범의 차이점, 국내 대표적 연쇄살인사건 사례에 대한 분석 등을 소개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1년간 현직 경찰로 근무했던 그가 직접 겪은 사건 뒷이야기, 미궁에 빠질 뻔한 전북 고창 남매살인사건 수사에 대한 감춰진 얘기를 실제 현장기록 사진을 보여주며 풀어놓자 객석은 열띤 반응을 보였다.



    실질적으로 콘서트를 이끄는 표 교수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사건의 내막과 배경을 알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에 의한 연쇄살인사건이나 ‘묻지마 살인’ 같은 흉악범죄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사건의 범인 김길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중 14명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름을 바꿨다.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동명이인 19명도 개명했다. 잔혹한 살인범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살인사건의 여파가 사회에 남기는 후유증이 큰 셈이다.

    KBS 드라마 ‘아이리스’를 쓴 드라마 작가 김재은씨는 지금껏 열린 네 번의 콘서트 중 표 교수 강의를 포함해 3번 참석했다. “김태희씨가 맡은 아이리스 주인공의 직업이 프로파일러였는데 드라마 속에서 그 부분을 충분히 다루지 못해 아쉬웠다. 앞으로 범죄 관련 드라마를 쓰기 위해 취재 중인데 이번에는 프로파일러를 좀 더 잘 다루고 싶어 강의를 들었다”고 했다.

    주부부터 대학교수까지

    ‘거룩한 속물들’ 등 여러 권의 소설집을 낸 오현종 작가는 “전문가들이 사건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고 당시 상황과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까지 들려주기 때문에 나중에 범죄 관련 소설을 쓸 때 치밀한 묘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범죄 영화를 준비 중인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하준원씨도 “수사과정의 얘기를 전문가들로부터 듣다 보면 여러 가지 관련 지식이 쌓이고 그 안에서 자극을 받아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범죄의 생생한 재구성 ‘범죄학 강의 콘서트’

    다양한 직업·연령대의 수강생으로 가득 찬 범죄학 강의 콘서트 강의실 모습.

    주말 저녁 시간을 포기한 채 범죄학 강의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 외에도 경찰학과 진학을 꿈꾸는 고교생, 대학생, 고시생, 직장인, 주부, 대학교수, 교사, 학원강사, 현역 경찰관과 경찰지망생, 언론인 등이 콘서트에 동석한다. 연령층도 1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겨울방학이 끝나면 고3 수험생이 되는 서울 자운고 서우희양은 범죄심리학자가 되고 싶어 강의에 참가했다. 평소 관련 서적과 신문기사, 인터넷 정보 등을 통해 범죄학 정보를 틈틈이 섭렵해온 그는 “12월18일 열린 4회 강의에 처음 참석했다. 놓친 앞의 강의가 몹시 아쉽다”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감식센터장 한면수 박사가 강사로 나선 이날 강의 주제는 ‘이중나선에 숨겨진 비밀찾기-과학수사의 총아 DNA’. 한 박사는 우리나라 과학 수사가 세계적인 수준에 있음을 보여준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을 예로 들며 수사 과정과 그것이 남긴 아쉬운 점 등을 들려주었다.

    서양은 “DNA 검사 결과를 분석한 자료들과 사건 포트폴리오, 현장 사진 등을 통해 DNA가 어떻게 증거로 활용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본 범죄학 관련 책은 너무 학술적이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았는데, 오늘 강의는 흥미진진했다. 반드시 내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생 민정원씨는 3회 강의 때 참석했다. 경찰대에서 강력범죄수사학과 과학수사학을 가르치는 유제설 교수가 강사로 나선 날이다. ‘한국의 CSI’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의는 1954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정형외과 의사 샘 셰퍼드의 아내 살해사건과 현재 국내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노파 살해사건이 사례로 제시됐다. 민씨는 “혈흔과 시체에 남은 상처자국 등 증거를 놓고 법정에서 벌어진 실제 다툼을 중심으로 강의가 진행돼 인상적이었다”며 “원래 전공이 독문학인데 심리학 쪽으로 다시 공부해서 범죄심리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CSI

    표 교수는 “강의가 끝난 뒤 개인적으로 찾아와 범죄는 왜 일어나며, 범죄를 예방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모범적인 시민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며 뿌듯해했다.

    첫 회에 수강생 40명으로 시작한 콘서트 참석자 수는 회를 거듭할수록 급증하고 있다. 협소한 공간 때문에 3회 때 ‘선착순 70명 접수’라는 제한이 생겼는데 1시간 만에 마감됐을 정도다. 이 때문에 KIPS 홈페이지 게시판은 항의성 글과 읍소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주최 측은 1월21일로 예정된 5회 콘서트를 100석 규모의 서울역 대회의실로 장소를 옮겨 열기로 했다. 물론 이미 접수는 마감된 상태다. 콘서트를 기획한 표 교수는 이처럼 단기간에 열띤 호응을 얻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며 “범죄학 관련 학술대회 참가자는 대부분 30명도 안 된다”고 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범죄학’이라는 타이틀을 단 강의콘서트가 예상밖의 호응을 얻은 데는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CSI’, ‘멘탈리스트’, ‘크리미널 마인드’같은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연쇄살인과 ‘묻지마 살인’ 사건이 늘고,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에 대한 언론보도가 늘면서 일반인이 불안과 위험을 느끼는 사회 분위기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표 교수는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려면 경찰 발전과 과학화가 필요하다. 그걸 현실화하려면 예산 확보와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감대를 마련하기 위해 대중에게 경찰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키고, 범죄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 콘서트를 연 것”이라고 소개했다.

    콘서트 운영비용은 전액 한국경찰과학연구소가 낸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연구소 홈페이지(www.kips.re.kr)를 통해 신청한 뒤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지상강좌 / 범죄학 강의 콘서트 Q&A

    1. 흉악범죄는 왜 계속 늘어나나.

    “통계적으로 보면 인구 대비 범죄율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 매체가 발달하면서 흉악 사건을 과거에 비해 자세히, 크게 보도하기 때문에 범죄가 증가했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범인들이 첨단 수사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증거 인멸 목적으로 사체를 훼손하거나 방화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흉악범죄가 늘었다는 인상을 받게 하는 것 같다.”

    2. 한국형 연쇄 살인의 특징이 있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의 연쇄살인은 대개 성적 쾌감이나 개인적 욕구 충족을 동기로 일어난다. 반면 우리나라 연쇄살인의 주요 동기는 사회에 대한 반감, 세상에 대한 복수인 경우가 많았다. 지춘길, 지존파, 유영철, 정남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안양 초등학생 살인범 정성현이나 강호순 등 최근 발생한 연쇄살인사건들은 개인의 쾌락을 목적으로 벌어졌다. 범죄 역시 서구화하고 있는 셈이다.”

    3. 끔찍한 연쇄살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정신병자인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나쁜 일인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쇄살인범들은 엄격한 의미의 ‘정신질환자’가 아니다. 다만 대부분 습관적으로 남의 탓을 하고, 극단적으로 무책임하며, 지나치게 말초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등 비뚤어진 사고체계와 잘못된 행동양식을 갖고 있다. 감정 조절을 잘못하는 ‘인격장애’ 증상도 보인다.”

    4.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프랑스 법과학자 로카르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범죄를 저지르면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거나 현장에서 흔적을 묻혀가게 된다. 직접 접촉하지 않는 사이버 범죄나 청부 범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초기 현장 보존의 실패, 경찰력 부족 등으로 인해 ‘미해결’ 상태로 남는 사건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경찰의 ‘수사 실패’의 결과물이지 범인이 ‘완전 범죄’를 달성한 것은 아니다.”

    5. 미국 드라마 ‘CSI’와 현실은 어떻게 다른가.

    “처음 지적할 것은 법과학자들이 사건 현장에 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우리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경찰이 가져온 증거물을 분석하고 감정한다. 드라마에서처럼 법과학자가 총을 차고 범인과 격투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증거물 분석과 사건 해결이 몇 시간 혹은 며칠 내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6. 우리나라의 DNA 수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대부분 국가에서 국제 표준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채취된 DNA 샘플의 분석 기술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시료에서 미세한 샘플을 채취해내는 손기술은 우리나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들이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의 우수성으로 보인다.”

    7.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과학분석관이 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한가.

    “생물학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의 석사 학위 이상 자격을 받은 뒤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8. 우리나라에서 CSI 요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국 경찰과 달리 한국은 CSI 요원 특채가 없다. 따라서 특별한 자격요건도 없다. 일선 경찰관이 된 뒤 경찰수사연수원의 과학수사요원 교육과정을 거친 후 경찰청이나 지방경찰청 혹은 경찰서의 과학수사요원으로 지원해야 한다.”

    9.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경찰청에서 심리학이나 사회학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비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범죄분석요원 특채 시험에 응시하는 방법. 둘째 일단 경찰관이 된 뒤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실시하는 범죄분석요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수사경과를 부여받아 범죄분석요원이 되는 방법. 셋째 박사학위를 취득해 교수나 연구원이 돼 범죄분석 관련 연구와 자문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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