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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원조’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차기 여권구도 향배 가를 숨은 세력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한나라 원조’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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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원조’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2010년 11월29일 한국자유총연맹의 중국대사관 앞 규탄대회 광경.

여권 핵심 인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종교단체의 찬반을 ‘찬성 0 대 반대 100’에서 ‘찬성 50 대 반대 50’으로 돌려놓은 획기적인 전기였다”면서 “이 대통령이 한국자유총연맹의 행사개최 소식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3.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해 10월10일 사망했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보수 인사들이 연로해 현장에서 실무를 도와줄 사람이 부족하다”는 전언이 청와대와 한국자유총연맹에 전해졌다. 마침 한국자유총연맹은 최근 젊은 층으로 파고든다는 전략으로 대학생 글로벌봉사단(1000명), 대학생 글로벌리더연합(600명), 자유청년산악회(5000명)를 잇따라 결성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이들 소속원을 장례 도우미로 보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한국자유총연맹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일을 신속하게, 매끄럽게 처리한다. 이 점이 이 대통령을 흡족하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한나라당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한나라당 중심세력은 유력 대선주자에서부터 당 지도부, 초·재선 의원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합당과 외부영입 사례에 의해 충원된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반면 박 총재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1981년 민주정의당 대구경북지부 조직부장에서 출발해 신한국당 경북지부 사무처장을 거쳐 30년째 한나라당에 뿌리를 박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 당 공천을 받아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7대 국회의원에도 당선됐으나 지역사무소 직원 3명에게 월급을 지급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2005년 9월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이 처분에 대해 그는 일전에 “나는 의원직을 잃었지만 이후 이런 처벌은 부당하다고 해서 국회에서 법이 개정됐다. 상대후보 측에서 고발한 것도 아닌데 사정기관이 집요하게 조사한 끝에 이 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조직의 전문가여서 한나라당 조직을 약화시키려는 노무현 정권의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독특한 위상…그를 필요로 할 것”

실제로 친이명박계나 친박근혜계 상당수 인사는 박 총재에 대해 ‘조직의 달인’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특히 대통령후보 경선, 당 대표 경선과 같은 전국 단위 당내 선거에서 그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는 경선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인단(대의원, 당원)에 대한 그의 장악력에서 나온다고 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직전 당 대표로서 당내 영향력이 컸던 박근혜 후보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대의원 표를 얻었다. 이는 이 후보가 박 후보에 신승(辛勝)하는 발판이 됐다. ‘신동아’ 2009년 1월호 기사는 이 과정에 대해 “경선에서 이 후보가 대의원 표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운 조직이 박창달 전 의원의 손에서 움직였다고 한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2009년 3월부터 한국자유총연맹 총재(11, 12대)를 맡고 있다. 당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지만 여권을 오랫동안 취재해온 정치부 기자들의 관측에 따르면 당심(黨心)에 대한 그의 장악력은 과거보다 더 세졌다는 평이다.

‘한나라 원조’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2010년 10월1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4대강 사업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범종교인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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