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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9월 평양·남포 사진으로 본 북한 경제의 오늘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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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차 핵실험 전후 평양과 남포에서 촬영한 일상생활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입수했다. 남포의 생활상이 언론 지면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 도시 일상을 포착한 사진이 소개된 적은 거의 없다. 일상 모습을 포착한 평양 사진도 흔하지 않다. 북핵에 가려진 북한 주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보자.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①〉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②〉

여학생들이 평양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웃는다〈사진①〉. 천으로 만든, 목이 짧아 발목 아래로 오는 신발을 신었다. 끈 달린 스니커즈를 신은 여학생도 보인다. 사진을 확대해 살펴보면 천으로 만든 신발의 만듦새가 조악하기 그지없다. 여학생들 앞쪽에서 걷는 남학생들이 신은 신발도 여학생들의 것과 디자인 및 소재가 같다. 잔디를 심어놓은 화단 너머로 ‘자주의 길’ ‘선군의 길’ 같은 표어가 적힌 정치 선전물이 보인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9월 초순 촬영한 평양의 길거리다.

〈사진②〉는 9월 촬영한 남포 거리다. 남포는 수도 평양으로 가는 관문도시다. 평양-남포는 서울-인천과 관계가 비슷하다. 대동강 하구에 터 잡은 남포는 북한의 특별시다. 대동강을 경계로 평양 낙랑구역·강남군과 맞닿아 있다. 남포항은 9월 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5에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목된 섬유 제품을 수출하는 통로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석탄도 해상을 이용할 때 남포항을 거친다. 남포의 풍경을 깎아내려 말하면 거지꼴을 갓 면한 수준이다. 19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풍경이다. 평양의 휘황찬란한 마천루와 남포의 허름한 살림집이 대비된다. 

〈사진②〉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교육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자’는 구호 아래는 칠판이다. 분필로 시민에게 알릴 사안을 적어놓았다. 체육 경기 소식란(欄)도 있다.



함석지붕 얹은 주유소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③〉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④〉

조선중앙통신은 평양 도심 전광판을 통해 방송 뉴스를 보는 시민을 찍은 사진을 타전하곤 하나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적어 소식을 알리는 게 평양과 접한 북한의 특별시 남포의 현주소다. 다른 지방도시의 풍광이 어떨지 짐작해볼 수 있다. 분필로 쓴 글씨가 빗물에 번져 옹색함이 부각된다.

〈사진③〉은 남포의 주유소 모습이다. 주유기에 각각 ‘휘발유’와 ‘디젤유’라고 쓰여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7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 주유소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주유소가 입길에 올랐다. 9월 말 평양 기준으로 휘발유와 경유는 1L에 각각 1.92달러, 2.04달러에 팔린다. 1달러는 북한 돈 8000원가량이다. 유엔 제재에도 환율은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남포의 주유소는 시멘트로 기둥을 세운 후 함석으로 지붕을 얹었다. ‘남포연유판매소’라는 간판 위로 ‘유성’이라는 회사 이름이 보인다. 연유(燃油)는 연료로 쓰는 기름을 뜻하는 한자어다.

〈사진④〉는 평양의 택시다. ‘돈주’(북한에서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가 당국의 묵인, 협조하에 지방도시의 운수업·사금융·인력시장에 진출했다. 운수업이 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세차업, 예식업도 활황이다. 북한 군부가 소유한 고려항공이 평양에서 택시 사업을 벌이는데, 고려항공은 콜라, 통조림을 생산하는 식품가공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평양에서는 고려항공이 운영하는 운수업체 외 7개 택시 회사가 경쟁한다.

한국 재벌을 연상케 하는 초기 형태의 기업집단도 등장했다. ‘내고향’이라는 명칭의 기업은 담배, 빵, 스포츠 의류, 생리대 등을 생산하는 기업군을 거느렸다. 김정은이 피우는 담배 ‘727’이 내고향이 생산한 제품이다. 내고향은 ‘아침’이라는 브랜드로 중동에 담배를 수출한다. 내고향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다. 담배와 술은 북한 공산품 중 수출이 가능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품목이다. 



일터 잃은 ‘교통 소녀’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⑤〉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포함된 것에서 미뤄볼 수 있듯 섬유 공업도 성장세다. 중국 기업에 하도급을 받아 운영하는 봉제 산업 중심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2016년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액이 7억5246만 달러(8517억 원)로 전체 수출액 가운데 26.7%를 차지해 광물 관련 수출품(51.7%)에 버금간다고 밝혔다. 북한은 한국 기업이 떠난 개성공단에서도 의류 등 섬유제품을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했다.

북한 GDP(국내총생산)는 19조 원가량으로 추정된다(2015년 기준). 한국의 광주광역시 절반 규모다. 북한은 더는 배급경제나 폐쇄경제가 아니다. 공식 경제(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비공식 경제(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사회주의 붕괴 직후 동유럽 국가의 경제체제 이행 단계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외화가 정권을 떠받치고 시장이 주민을 먹여 살린다.

북한 경제가 개선된 것은 2010년 이후다. 급상승한 지하자원 가격에 힘입어 북한 처지에선 로또 같은 돈을 벌었다. 러시아, 중국 등으로 인력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도 상당했다. 외화를 마식령스키장을 비롯한 다수의 전시성 사업에 썼으며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를 비롯한 건축에도 투자했다. 김정은은 잔디 심기 등 평양의 환경 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모던한 나라가 되려면 초고층 건물과 잔디 깔린 거리가 필요하다고 여긴 듯하다. 핵개발 속도가 빨라진 데도 경제 상황 개선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북·중 무역에는 킥백(kickback·리베이트)이 오간다. 킥백으로만 북한에 들어간 외화가 많을 때는 연간 4000억 원에 달했다. 킥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북한이 중국 기업에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무연탄을 판다. 중국 기업은 시세 차액 중 일부를 킥백으로 북측에 준다. 킥백은 보통 매출의 7%다. 북중 무역 규모가 6조 원에 달하므로 킥백만 4000억 원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사진④〉에는 신호등도 보인다. 과거에는 평양에 신호등이 거의 없었으나 이제는 흔하다. 교통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카메라가 설치된 교차로도 많다. 평양에서도 교통 정체가 이따금 일어난다. 개인 차량 증가는 평양 거리에서 신호등 역할을 하던 ‘교통 소녀’의 수를 줄였다. 개인 차량 증가는 사회가 시장화한 동시에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진⑤〉는 평양의 버스 정류소다. 지난해 7차 당대회 결정을 5개년 개혁으로 달성하자는 정치 선전물이 붙어 있다. 평양과기대에서 영어 교사로 일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킴은 “평양의 정치 선전물은 북한 주민의 피를 빨아먹는 체제를 압축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버스 정류소에서도 분홍색 모자를 쓴 ‘교통 소녀’가 보인다. 평양의 대중교통 사정은 좋아지고 있으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사진⑤〉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뒤편으로 양복점 등 상점 간판이 보인다. 북한에서 자영업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 식량난으로 자생적 시장이 생기면서 장마당 상인이 등장한 게 처음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계획경제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자생적으로 등장한 자영업과 시장화된 경제가 북한 경제의 개선을 이끄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길 원하는 남녀에게 방을 대실해주는 가내 사업이 각 도시에 활성화했을 만큼 북한 주민들은 돈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욕망의 바벨탑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⑥〉

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남포… 대동강에 배 띄워 위스키 홀짝

〈사진⑦〉

북한은 남포항〈사진⑥〉을 통해 석탄과 섬유제품을 중국에 수출한다. 무연탄과 섬유 제품 수출이 주요 외화 획득 통로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석탄 생산량이 4000만t을 상회했으나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이후 경제난을 겪으면서 전력 부족 등으로 석탄 산업은 타격을 받았다. 2010년 이후 중국 기업이 북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탄광 가동률이 생산능력의 80% 수준까지 회복됐다는 평가다. 3000∼5000t급 중국 화물선 수백 척이 남포항을 통해 석탄을 실어간다. 석탄 수출항은 〈사진⑥〉에서 보이는 컨테이너 부두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컨테이너 화물선 수도 2010년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세를 보였다.

북한은 폐쇄경제가 아닌 개방경제다. 무역의존도가 50%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장, 무역이 들어간 북한과 그렇지 않은 북한은 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차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발주한 물품이 북한에서 생산돼 중국산으로 둔갑한 후 한국에서 팔리기도 한다. 북한이 무단으로 재가동한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이 한국에 들어와 있을 소지도 있다. 

〈사진⑦〉은 남포의 ‘만리마’ 조형물이다. 만리마는 북한이 만든 신조어로 천리마보다 빠른 말을 가리킨다. 1999년 처음 등장한 후 2007년, 2008년, 2011년에도 노동신문에 이 낱말이 쓰였으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단어다.

북한은 지난해 5월 7차 당대회 폐막 이후 노력 동원 운동을 펼치자며 만리마 운동을 제시했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 호소문에는 ‘만리마속도 창조 운동에서도 세상을 놀래우는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자는 것을 다시 한번 열렬히 호소한다’고 적혀 있다. 하루에 1000리를 달리는 속도인 천리마운동을 넘어 1만리를 달리는 속도로 노력 동원에 나서자는 뜻이다. 남포의 ‘만리마’ 조형물과 1970년대에 멈춰 선 듯한 시내 풍경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3대 집권자 김정은 등장 이후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부산 해운대, 뉴욕 맨해튼을 닮은 형태로 치솟는다. 사회주의적 근대와 자본주의적 현대가 모순(矛盾)의 형태로 공존한다. 하늘로 치솟은 욕망의 바벨탑은 어쨌거나 평양도 바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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