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집중취재

밤의 도서관 夜間 사서의 눈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연다?

  • 입력2017-10-2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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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10시까지 도서관 지키는 ‘야간 사서’,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

    • 사서 자격증 있어도 月 150만 원도 못 받아

    • “경과적 일자리다” 對 “상시·지속 업무다”

    • 고용부 “정규직 전환 여부, 도서관에 맡길 것”

    산기슭에 비스듬히 자리 잡은 동네 도서관. 배우 신민아가 도서관 안내데스크에 앉아 책을 읽는다. 도서관은 그의 직장이고, 그는 이 도서관의 계약직 사서다. 카메라 앵글은 책 읽느라 망중한에 빠진 신민아를 오래 비춘다. 그는 “책에서 나는 냄새가 참 좋다”며 서가로 옮겨가 책을 정리한다. 2007년 방영된 TV 드라마 ‘마왕’ 속 장면이다.

    경기도 소재 Y공공도서관에서 일하는 김미희(가명·54) 씨는 극 중 신민아와 같은 직업을 가졌다. ‘개관시간 연장 기간제 사서’(이하 야간 사서)다. 하지만 김씨는 “TV 드라마와는 달리 도서관에서 여유 부릴 틈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하면 자리를 지키며 한가롭게 책이나 읽는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밤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도 꽤 많습니다. 또 책 대출과 반납은 물론 예약도서와 책 바코드 관리, 서가 정리를 합니다. 책 수레에 쌓인 책 수십 권을 옮기고 나르면서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은 예삿일이고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정보접근취약계층이 수월하게 책을 찾아볼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주요 업무입니다. 분기별로 도서관 기획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면서 도서관 운영에도 참여해요.”

    ‘야간 사서’란 평일 오후 1시 이후에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사서를 말한다. 주말 이틀 중 하루도 도서관을 지킨다. 전국 공공도서관은 2007년부터 평일 밤 10시, 주말 오후 6시까지로 도서관 운영 시간을 늘렸다. 야간 사서는 이렇게 연장된 개관시간을 책임지는 도서관 직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전국 512개 공공도서관에서 1258명이 야간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 사이 100여 명이 늘었을 정도로 매해 증가하는 추세다.





    공공도서관도 위탁·비정규직 위주

    김씨는 2009년 초등학교 기간제 사서로 처음 도서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문헌정보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도서관 일을 하면 할수록 전문성을 갖춰야겠다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급 정사서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2015년부터 Y공공도서관에서 야간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사서직 지방공무원에 도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인구 1252만 명의 경기도가 해마다 신규 채용하는 사서직 공무원(정규직)은 26명. 그중 김씨가 사는 지역의 채용 인원은 단 한 명이었다(2017년 기준). 당장 일자리가 급한 그는 비정규직 사서 채용을 알아봤다. 공공도서관은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도시관리공단이나 각 지역 문화재단 등에 위탁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위탁 운영되는 도서관은 사서를 무기계약직이나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초·중·고·대학 학교도서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는 ‘도서관인으로서 제대로 된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졌어요.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했습니다. 월급은 150만 원이 채 되지 않고 휴일은 들쑥날쑥하죠. 무엇보다 해마다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합니다. 제 처지가 불안하니 도서관인으로서 포부를 갖는 것은 사치예요.”

    현재 야간 사서에게 지급되는 월 급여(기본급)는 주당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147만6500원. 공무원 9급 3호봉에 해당한다(2016년 기준 기본급, 각종 수당 제외). 연차에 따라 급여가 오르는 구조는 아니다. 7년차 야간 사서인 김씨 역시 148만 원을 받고 있다. 또한 야간 사서의 고용 조건은 보통 평일 4일 근무, 주말 1일 근무이기 때문에 주말에 근무하더라도 주말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명절휴가비, 상여금 등 각종 수당도 받을 수 없다.


    메뚜기 뛰는 야간 사서들

    부당한 대우 개선을 호소하는 야간 사서는 김씨만이 아니다. 부산 지역 야간 사서들이 ‘신동아’에 제보한 문건에 따르면 부산 지역 소재 22개 이상 공공도서관에서 적게는 3명, 많게는 6명의 야간 사서가 3개월에서 364일짜리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하며 ‘장기’ 근무하고 있다.

    이들 역시 김씨처럼 상당수가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사서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인력이라고 한다. 이들은 개관시간 연장 업무는 물론 민원서비스, 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기계가독목록형식)를 다루는 업무도 맡고 있다.

    MARC는 컴퓨터가 지은이, 제목, 출판사, 출판연도 등 책의 정보를 식별해 축적·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도서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장기 근무하는 방법은 이렇다. A공공도서관이 B라는 야간 사서와 11개월짜리 근로계약을 맺는다.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1개월이 지난 후 A도서관은 B와 다시 11개월간의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이 종료되면 이번에는 새로운 C 야간 사서를 고용한다. 한편 물러난(?) B 야간 사서는 D공공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현행법상 사업자명(공공도서관)이 다를 경우 기간제 근로자로 2년 이상 일해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야간 사서 상당수가 1,2년에 한 번씩 부산 지역 공공도서관을 바꿔가며 수년간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신규 채용일 뿐 한곳에서 동일한 업무를 1년 이상 지속한다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연속 근로’를 인정받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도서관의 야간 사서직에 지원할 때 채용 불이익을 받을까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서관 사람들은 야간 사서의 근로계약 기간이 1년을 넘지 않는 이유가 야간 사서들에게 퇴직금과 연차휴가 등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본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야간 사서 일자리는 여러 사람에게 근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채용 기간이 1년을 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계약 시점이 돌아오는 연말마다 가슴 졸이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은 ‘일당’ 지급

    한편 문건에 따르면 부산 지역 공공도서관은 2,3년 전까지 야간 사서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일당을 지급했다. 이를 월 급여로 환산하면 80만 원 조금 넘는다(20일 근무·2014년 기준). 2016년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을 따라 월급제로 바뀌었지만, 현재도 일부 공공도서관은 야간 사서에게 일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신동아’ 취재 결과 부산 지역 37개 공공도서관 중 야간 사서에게 일당을 지급하는 도서관은 기장군을 포함한 5개 구·군에 있으며, 기장군 포함 3개 지역 도서관은 행정자치부가 올해 밝힌 단순노무직종 보수를 적용해 일급 6만5674원을 지급한다. 기장군 측은 “이를 월급으로 환산할 경우 약 158만 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권고하는 147만 원보다 많다”며 “월급제일 경우 야간 사서가 받게 되는 퇴직금 등을 고려해 책정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도서관의 야간 사서들은 “일당제라서 월차(月次) 휴가 사용에 불이익이 있다”고 토로한다.

    월급을 받는다면 월차를 사용해도 급여에 변동이 없다. 하지만 일당제라 월차를 사용할 경우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이틀치 일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통상 주 5일 근무하면 주차수당이 추가돼 6일치 임금을 받는데, 월차를 사용하면 주 4일 근무가 돼 주휴수당까지 못 받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장군 측은 “월차를 사용해도 월차수당 및 주차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동아’는 월급명세서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월급명세서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언론이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정보공개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아’ 취재 결과 다른 도서관은 주말에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하고 공휴일에는 문을 닫지만, 기장군 도서관은 주말과 공휴일 모두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야간 사서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밤늦도록 일하지만 정해진 일급 외의 보상 또한 없다. 부산 기장군은 ‘휴관 없는 도서관’을 지향하며 주말과 공휴일에도 휴무 없이 밤 10시까지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에 대해 기장군 측은 “야간 사서 근로계약서는 주말 · 공휴일 근무를 근무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휴일근무수당의 지급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야간 사서에게 여전히 일당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또 있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도립도서관 11개 중 공공도서관 개관시관 연장사업에 참여하는 7개 도서관이 그러하다. 이들 도서관은 사서 자격증 소지 여부에 따라 일당을 차등 지급한다. 자격증이 있으면 5만9310원, 없으면  5만3120원으로 6000원가량 차이가 난다. 사서 자격증 미소지자의 지난 9월 월평균 급여는 132만 원으로, 문체부가 권고하는 147만 원보다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도교육청 측은 “문체부 지침과는 달리 야간 사서들에게 일당을 지급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다른 지역 공공도서관들과는 달리 1년 근로계약을 맺고 야간 사서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YES’, 문체부는 ‘NO’

    지난 9월 국가보훈처는 기간제 근로자 109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대부분 ‘보훈섬김이’(1065명)로, 거동이 불편한 국가유공자들에게 가사·편의·건강관리·정서지원 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다. 보훈섬김이 서비스는 공공도서관 개관 연장과 마찬가지로 2007년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경과적 일자리’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경과적 일자리란 일종의 취업지원 정책으로, 구직자에게 일정한 근로 경험을 제공해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취업의욕과 기초직업능력이 낮아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경과적 일자리 사업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직접’ 일자리 사업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반복 참여가 제한된다. 야간 사서와 보훈섬김이 모두 경과적 일자리에 속한다.

    그러나 보훈섬김이는 해당 업무의 상시·지속성을 고려해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국가보훈처 혁신행정담당 최예은 서기관은 “지난 10년간 보훈섬김이 서비스를 운영해온 결과 근로자 평균 근속기한이 5년을 웃돌았다. 또 보훈섬김이 서비스는 수혜자들의 만족도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운영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다. 이에 따라 보훈섬김이 근로자들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야간 사서 김씨는 “밤늦게까지 공공도서관 문을 여는 것 또한 이제는 중단될 수 없는 사업”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주민들은 과거보다 도서관 이용이 편리해졌다고 좋아합니다. 도서관 측도 연장 운영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야간 사서도 보훈섬김이와 마찬가지로 상시·지속성을 띠는 일자리가 됩니다. 저와 같이 장기간 근무해온 야간 사서가 꽤 많아요. 우리 역량이 제대로 대우받지도, 활용되지도 못해 속상합니다.”

    공공도서관 비정규직 사서 형태는 다양하다. 야간 사서 외에도 작은도서관 순회사서, 주민센터가 운영하는 도서관 전담사서, 도서 관외대출 서비스 전담사서, 주말 사서 등이 있다. 이들 비정규직 사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다. 야간 사서만 예외다. 지난 8월 문체부는 지자체 소속 공공도서관에 ‘야간 사서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야간 사서가 속한 공공도서관 개관시간 연장사업은 문체부가 2007년 국민문화향유 기회 확대 및 전문인력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시작한 사업. 예산은 중앙정부와 시·도 지자체가 반반씩 부담한다. 즉, 야간 사서는 정부 재정이 지원돼 만들어진 직접 일자리로 “실업·복지대책 차원에서 제공하는 경과적 일자리”라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야간 사서는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면 없어지는 한시적 일자리라는 고용노동부 의견이 있다”며 “고용부 방침이 바뀔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공도서관 개관시간 연장사업 예산은 총 288억 원(국비 118억 원, 지방비 170억 원)이다.


    상시적인 ‘재계약’

    그러나 도서관 근로자 관련 노동단체는 공공도서관 개관시간 연장사업이 상시·지속업무 요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야간 사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부 정책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 근거로 △문체부 국고보조사업 중 상시·지속업무로 지정된 점(2012년 6월) △야간 사서 상당수가 반복 참여하며 장기 근무하는 점을 제시한다. 실제로 상당수 야간 사서가 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6년 채용된 야간 사서 1152명 중 계약을 1회 이상 갱신한 경험이 있는 야간 사서가 1016명에 달했다. 전체의 약 88%가 반복 참여하는 셈이다.

    정부가 상시·지속업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는 업무. 동일한 장소에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제 근로자가 수개월 단위로 반복 사용되면 연중 계속되는 업무로 간주된다. 둘째,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 사업 명칭과 관계없이 향후 성격이 비슷한 업무가 2년 이상 계속 수행될 것으로 예상되면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고용부는 이 사업이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다양한 사람에게 근로 경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든 일자리이기 때문에, 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사업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다. 다만 고용부는 도서관 현장에서 불거진 논란을 의식해 자격 및 근무역량 등을 고려해 일부 야간 사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추가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야간 사서가 일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고, 각 도서관이 심의위원회를 열어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야간 사서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고용부의 이번 방침은 향후 정부 재정지원 직접일자리 사업에 고용된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판단하는 주요 선례가 될 전망이다.



    예산·신규채용 등 넘어야 할 ‘산’

    이 같은 야간 사서 사안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대책에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이번 논란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위한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데서 비롯됐다”며 “부처마다 입장이 다르다 보니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야간 사서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후 정부의 재정지원이 중단될 경우 지자체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과 같은 맥락의 논란도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일부 야간 사서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향후 정규직 사서 선발 인원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야간 사서 김씨는 “상시·지속 업무임에도 정부가 재정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사각지대에 놓이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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