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이슈 분석

‘별건수사’로 중소기업 죽이는 게 진짜 적폐

재계의 文정부 공기업 적폐 수사 우려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입력2017-10-2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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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비리 적폐 규정…공기업 수장 물갈이 사정 신호탄?
    • 박근혜 정부 ‘표적수사’ 포스코·KT, 잇따라 무죄 판결
    • ‘별건수사’에 세화엠피, 코스틸 경영 휘청
    문재인 정부의 최대 화두는 ‘적폐청산’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종종 무엇이 진짜 ‘적폐’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특정 기업 또는 기업인을 비리사범으로 꿰맞추려는 수사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공기업 인사비리를 적폐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엔 문재인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에서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황창규 KT 회장을 제외했다. 재계에선 이를 ‘아웃 신호’로 보고 있다. 벌써 차기 회장 후보들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 정부 실세들과 학연, 지연이 밀접한 인물들이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면서 포스코와 KT 회장을 끌어내리고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을 앉힌다면 박근혜,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기관으로서는 공기업이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긴 하다. 배임, 횡령에서부터 인사비리 등 다양한 죄목으로 수장들을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는 박근혜 정부의 경험을 들추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포스코와 KT의 교훈

    검찰은 2013년 6개월에 걸쳐 KT를 탈탈 털어가며 이석채 당시 회장의 비리 혐의를 수사했다. 약 11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횡령), 벤처업체 주식을 의도적으로 비싸게 사들이게 해 회사에 1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에서 대부분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15년 벌어진 포스코 수사는 ‘표적수사’의 결정판이었다. 검찰은 2015년 3월부터 11개월 넘게 초장기 수사를 벌이며 포스코 본사와 해외법인은 물론 계열사와 협력업체 등 3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고, 100명이 훨씬 넘는 관계자를 소환했다.



    검찰은 정준양 전 포스코회장을 부실기업 성진지오텍을 고가에 인수해 회사에 1592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 및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배임 혐의는 지난 8월 2심에서, 뇌물 혐의는 올 1월 1심에서 각각 무죄가 선고됐다. 회사 자금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도 올 1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무리한 표적수사는 KT와 포스코에 그치지 않고, 협력업체까지 이어졌다. 세화엠피의 경우는 전정도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동양종합건설의 경우는 배성로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이상득 의원과 친하다는 친분설이, 코스틸은 박재천 회장이 포항고 출신이라 이명박 정부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울 것이란 소문이 수사 배경이었다.


    혐의 못 찾으면 별건수사로 기소

    당초 검찰은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이 해외 현장에서 30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포스코 고위층이나 이명박 정부 실세 등에 로비자금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단서나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자 검찰은 ‘별건수사’를 벌여 계열사 간 지분거래에 따른 배임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그나마도 검찰이 기소한 9개 혐의 가운데 8개는 1심에서 무죄로 판결받았고, 41억 원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배 전 회장은 횡령 혐의에 대해 “동양종합건설이 인도네시아 현지에 파견한 인건비를 반환받은 것이라 불법 이득을 취할 의사가 없었다”며 항소한 상태다.

    검찰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성진지오텍을 고가에 인수한 것을 비리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 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이 포스코에 성진지오텍을 비싸게 팔면서 취한 이득이 이명박 대통령 쪽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지난 8월 18일 고등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전정도 회장에 대해 별건수사를 통해 나타난 횡령 혐의로 기소했고, 전 회장은 대법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코스틸에 대해서도 포스코그룹 관계자에 대한 상납 관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별다른 부당거래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자 별건수사를 통해 거래대금, 매출액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약 135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박재천 코스틸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코스틸은 “담당 임직원의 체계적이지 못한 재무회계처리 관행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횡령으로 인한 피해자가 없고, 피해 금액을 모두 변제하는 등 최선을 다해 문제를 수습하려 노력했다”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실형 3년을 선고했다.

    김정태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장은 박 회장에 대해 “2010년 한국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중소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며 “혁신중소기업인들의 맏형 노릇을 해온 그에 대한 실형 선고는 중소기업의 사기를 꺾는 일”이라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적폐’의 피해자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검찰 수사는 본래 수사하고자 했던 사건에 대한 혐의가 풀리면 즉각 중단해야 하며, 다른 사건이라도 찾아서 수사 결과를 관철하려는 이른바 ‘별건(別件) 수사’ 관행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8월 7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에 대한 과잉수사 논란이 많았는데 수사심의위원회를 도입해 이를 방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별건수사 관행 때문에 피해를 본 기업들은 지금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세화엠피는 오너 구속 후 매출이 급격히 줄면서 기업회생(법정관리)절차를 밟았지만 끝내 실패, 지난 4월 울산지법 파산부가 회생폐지 결정을 내렸다. 회생폐지는 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업의 회생절차를 중단하는 법원의 명령으로, 파산을 의미한다.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손꼽히던 코스틸도 2014년 3100억 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2100억 원으로 줄어드는 등 경영 위기에 처해 있다.

    신정부 검찰의 별건수사 방지 약속은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조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 당시 ‘별건수사로 기소된 협력업체들은 적폐 수사의 피해자로 볼 수도 있다. 이들 기업의 어려움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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